연초 미국 방송계에서 일어나는 일

Editor's Comment

사람들을 화면 앞으로 끌어당기는 '미드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미국에서 TV 드라마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문성환 저자는 그 힘이 편집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합니다. '미드 비하인드 더 씬'의 첫 번째 미리보기를 통해 편집이라는 화면 밖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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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 이미지 ©Connor Limbocker
연초가 되면 미국 방송계는 파일럿(pilot)* 시즌을 맞아 분주합니다. 각 방송사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대본을 검토해 파일럿으로 만들 작품을 선정하고, 프로덕션에 제작을 주문(order)합니다. 주문을 받은 프로덕션은 파일럿 제작을 위해 바삐 움직이지요.

* 방송 편성 전 만드는 견본 프로그램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주요 방송사 ABC, CBS, FOX, NBC, The CW에서 프로덕션에 주문한 파일럿은 총 73편이었다고 합니다. 매년 치열해지는 이 파일럿 경쟁에서 살아남아, 방송사로부터 '제작 확정' 소식을 듣는 작품은 5월에 열리는 업프런트(Upfronts)를 준비합니다. 업프런트는 방송사가 그해 가을 시즌에 내놓을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예고편이나 일부 클립을 공개하고, 노래와 춤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방송사가 업프런트를 통해 작품을 홍보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광고를 위해서입니다. 광고주는 업프런트에 참여해 각 방송사의 라인업을 보고 어떤 방송, 어떤 프로그램에 광고할지를 결정해 선금(up front)을 냅니다. 이로 인해 방송사는 제작 운영을 위한 예산을 미리 확보할 수 있죠.

화면 속 이야기와
화면 밖 사람들

2018년 3월, 현재 ABC에서 <굿닥터(The Good Doctor)>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입니다. 앞서 말한 2017년 파일럿 중 한편으로 제작되어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후 높은 시청률을 달성하며 시즌2 제작까지 확정한 작품입니다.

 

<굿닥터>는 2013년 KBS에서 방영한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소아과 병동에서 일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드라마인데요. <굿닥터>가 미국에서 새로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역할을 하고, 현재 이 작품의 EP(Executive Producer)로 일하는 이동훈 프로듀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굿닥터> 파일럿 촬영을 위해 밴쿠버로 떠나기 전인 2017년 3월이었습니다.

* 자폐증 등의 뇌 기능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의사소통, 언어, 지능적 측면에서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으며, 비장애인과는 다른 천재성을 동시에 갖는 현상이나 사람

 

그 대화를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당시 <제인 더 버진(Jane the Virgin)>*이라는 작품을 편집하고 있었습니다. 편집실 근처로 찾아온 이동훈 프로듀서, 그리고 또 한 명의 EP인 데이비드 김과 함께 점심을 먹고 햇볕이 잘 드는 옆 노천카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The CW에서 방영한 드라마로, 의료실수로 임신을 하게 된 제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2018년 3월 기준 시즌 4까지 제작되었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문성환: 드디어 제작이 시작되네요. 촬영본은 언제까지 방송국에 보내야 하죠?
 

이동훈: 4월 말까지요. 업프런트가 5월이니까 방송국도 그전에 라인업을 마쳐야 하거든요.
 

문성환: 지금이 3월 초인데, 시간이 많지 않네요. 촬영은 며칠이나 하세요?
 

이동훈: 15일 정도? 후반 작업은 3주로 생각하고 있어요. 시간이 많지 않아 편집에 두 명이 붙기로 했고요.
 

문성환: 4월까진 바쁘겠어요. 편집 쪽에서도 파일럿은 피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일정이 빠듯해서 고생하니까요. 파일럿이 잘 되어서 시리즈로 주문받으면 좋겠어요.
 

이동훈: 다행히 이번에 의학 드라마가 <굿닥터>뿐이라 감은 좋은데,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순 없죠. 경쟁이 워낙 치열하거든요.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미국 드라마가 시즌2 제작으로까지 이어진 건 &#60;굿닥터&#62;가 처음이다. &#9426;ABC

대부분 사람은 TV나 영화를 보며 그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했을지 따지지 않습니다. 마치 매끼 밥을 먹을 때마다 음식을 보면서 산지에서 식탁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화면 밖에서
화면 속 이야기를 만드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작품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할리우드에서는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편집실의 문을 열면 복도에서 ABC의 파일럿 작품에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 차례를 기다리는 배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스타벅스에서 내 뒤에 줄 서 있는 사람 혹은 커피를 건네는 바리스타가 지금 내가 즐겨보는 TV 드라마의 단역 배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작품을 만든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집니다. 작품이 시작된 배경, 촬영장 모습 등에 관한 소식이 작품의 인기에 비례해 조명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조차 카메라 뒤 배우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일이 많습니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과 같은 스타 감독이 참여한 경우에는 그 관심이 좀 더 확장될 수는 있겠으나, 그 경우도 '감독'에서 멈출 뿐 다른 스태프에게까진 미치지 않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칸

마이클 칸(Michael Kahn)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 있으신가요? 영화에 아주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이 이름이 생소할 것입니다.

 

그럼 이 영화는 어떻나요?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칼라 퍼플>, <태양의 제국>,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후크>,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 <뮌헨>,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링컨>, <스파이 브릿지> 그리고 <더 포스트>까지.

 

아마 꽤 많은 작품이 귀에 익숙할 것입니다. 이들 작품 상당수를 극장에서, 혹은 집에서 보셨을 수도 있고요.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마이클 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미지와의 조우>를 시작으로 40여 년 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을 편집하는 에디터가 바로 마이클 칸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마이클 칸이 있다면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에겐 델마 슌메이커(Thelma Schoonmaker)가 있습니다. 델마 슌메이커는 1960년대 심야 방송을 위해 영화를 마구잡이로 가위질하는 편집실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뉴욕대에서 여름강좌로 6주간 영화를 공부할 학생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영화를 찍는 한 학생이 편집하다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 학생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 학생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입니다. 그렇게 슌메이커는 1968년에 제작된 스콜세지의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마틴 스콜세지의 모든 영화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칸, 마틴 스콜세지와 델마 슌메이커 외에도 감독과 짝을 이뤄 오랫동안 작업하는 편집자를 국내외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과 피에트로 스칼리아(Pietro Scalia), 알렉산더 페인(Alexander Payne) 감독*과 케빈 텐트(Kevin Tent),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과 조 워커(Joe Walker) 등이 대표적입니다.

* 국내에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2004년에 개봉한 <사이드웨이>가 있으며, 2017년 개봉한 <다운사이징>의 제작과 감독을 맡았다.

** 대표작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 <컨택트(원제: Arrival)>,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등이 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일하는 걸까
왜일까요? 왜 그들은 계속해서 모든 작품을 함께 하는 걸까요? 영화를 만들 때 영화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은 감독일 것입니다. TV 드라마라면, 작가일 것이고요. 감독과 작가는 자신의 비전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구현해 줄 사람과 함께 일하길 원합니다. 그런 그들이 특정한 에디터와 수십 년을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만큼 편집의 중요성을 방증합니다.

 

편집은 일반인의 관심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편집을 보이지 않는 예술(invisible art)*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에 있어 편집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 관련 기사: Film Editing Is the Invisible Art (NYT, 2014.3.3)

 

영화의 경우 촬영장에서 날아온 재료를 가지고 감독과 에디터가 작은 방에 함께 앉아 머리를 맞대고, 또 에디터 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하는 것이 바로 편집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낱알의 구슬을 잘 꿰어 마침내 보배로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는 수많은 테이크(take)*를 확인합니다. A가 선물을 꺼낼 때 긴장한 모습을 가장 잘 잡아낸 테이크는 어느 것인지, A의 선물을 받은 B의 리액션이 가장 좋은 테이크는 어느 것인지, 이를 몰래 바라보며 질투하는 C의 모습은 어느 테이크에서 가장 잘 잡혔는지 확인합니다.

* 영상에서 끊지 않고 촬영한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이 테이크를 어떻게 구성해야 이야기가 잘 이어질지, 어떻게 해야 감정선이 관객에게 잘 전달될지. 이런 고민은 편집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배우의 대사 속도를 조절하고, 다음 신은 어떤 쇼트(shot)로 시작할지, 그리고 어떤 쇼트로 끝낼지….

 

이 시간을 통해 감독이 마음에 그리는 바로 그 작품이 탄생합니다.

포스트 프로덕션
그 중심에 있는 편집
영화든 드라마든 제작과정은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뉩니다. 제작 준비단계인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촬영단계인 프로덕션(production), 그리고 후반 작업인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입니다. 마지막 포스트 프로덕션에는 사운드 편집, 사운드 믹싱, VFX*, 색 보정, 음악 등이 포함되지만, 결국 그 중심은 편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visual effects, 특수효과

 

편집을 시작하면 먼저 시나리오를 읽습니다. 효과음이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사운드 부서에 이야기해 해당 효과음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주인공이 휴대폰으로 트위터를 한다면 VFX를 통해 합성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그래픽 부서와 트위터 이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VFX는 전문업체에서 최종 작업을 하더라도 편집자가 임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주인공이 파티를 한다면, 음악 감독에게 이 신에서 쓰기로 한 특정 음악이 있는지, 있다면 보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모든 부서가 편집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칩니다. 편집이 완료되어야 모든 부서가 완성된 컷을 기반으로 최종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편집이 포스트 프로덕션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 리포트에서 바로 이 '편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특히 미드 제작에서 편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미드 비하인드 더 씬]

 

<오리지널스>, <제인 더 버진>, <볼드 타입> 등의 드라마 편집팀에서 활동 중인 저자가 편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화면 밖의 일과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미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소개합니다. 드라마 뉴스룸(HBO), 베터 콜 사울(AMC), 그리고 영화 블랙팬서(마블) 등의 편집을 담당한 각 현업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