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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결혼식 문화를 까놓고 말하다

한국 결혼식 문화를 까놓고 말하다

미리 짚고가는 비혼족 이야기

PM's Comment

본 콘텐츠는 저자의 주관이 특히 많이 들어간 글로, 다수의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읽는 사람에 따라 공감 가는 부분도, 이해되지 않는 것도, 때로는 불편한 내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여 읽어주세요. [PM의 기획의도 읽기]

어릴 때 나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말로 비혼주의자였다. 우리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특히 엄마는 더 많은 걸 희생하는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한 엄마는 당신의 행복과는 별개로 착취당해왔다. 나는 그런 엄마로서의 모습을 닮기 싫었다. 물론 아빠도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독립적인 공간이 중요한 나는 가족과도 힘든데, 다른 누군가와 부대끼며 평생을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나이가 들면서 가족 외에 누군가와 집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연애를 하면서 그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나를 사랑해주고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들었다. 독박 가사노동, 육아문제, 시댁 어른들과의 세대 갈등 등 속에서, 마치 N포 세대*처럼 결혼을 피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자 계약)을 공식적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아이는 가지기 싫지만.

* 2015년 취업시장 신조어.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왠지 내 마음과 달리 결혼하지 못할 것 같다. 행복한 결혼을 하기에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나에게 너무나 버겁다.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만약 내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으면 엄마는 대외적으로 딸이 비혼주의자라며 포장할 수 있겠으나,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미안 엄마.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 부부가 주는 혜택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결혼식만 생각하면...

요즘 것들의 결혼 준비

몇 명의 친구들이 이미 결혼에 골인했다. 9월에 결혼식을 올리는 내 친구 A는 결혼 준비 중 청첩장 샘플을 찾아보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모든 청첩장 샘플에 적힌 부부 이름은 늘 신랑의 이름이 먼저였단다. 이제까지 받아본 청첩장 중에서도 신부의 이름이 먼저 들어간 청첩장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쯤 있을 법도 한데. 오히려 해외에는 신부의 이름이 앞에 위치한 경우가 더 흔하다고 한다.

 

게다가 스스로 인생의 결정을 내린 성인 주체 둘의 결혼식인데도 청첩장엔 두 주인공이 부모의 몇 번째 자식인지 늘 빠지지 않는다. 그마저도 아버지 이름이 어머니보다 늘 먼저다. 쉽게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기형적인 사회 구조*가 반영된 모습일 수도 있지만.

* 관련 기사: '[암울한 청년풍속]경제위기로 '캥거루족' OECD 최고…부모와 동거하는 청년비율 84%' (헤럴드경제, 2017.3.17)

 

나와 비슷한 부류인 A는 청첩장 시안을 맡길 때 1) 부모의 이름을 빼고 2) 신부의 이름을 먼저 기재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며칠 뒤 돌아온 청첩장 시안엔 여느 청첩장처럼 신랑의 이름이 먼저였다. 안 그래도 요즘 야근에 출장에 바빠 죽겠는데 일을 두 번 시키냐며 A가 투덜거렸다. 바쁜 A 역시 이렇게 사소한 것쯤은 넘기고 싶었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A는 억지 부리는 프로불편러*에 가깝게 느껴질 테다.

* 사회 문제에 문제 제기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한 단어

 

그러나 68혁명을 이끈 페트라 켈리의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개인적인 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 사소한 것에서 우리는 결혼식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를 읽을 수 있다. 이 사소한 것들이 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결혼식 문화를, 그리고 이 문화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사회를 만들어냈다.

 

내가 꿈꿔오던 나만의 결혼식 모습이 있다. 그렇지만 이걸 계속 고집하다 보면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의 결혼식 문화 때문에 어쩌면 나는 평생 반강제로 비혼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혼이라니, 내가 비혼이라니!

신부의 자세

나는 평소 힐을 신지 않는다. 키가 크진 않지만 굳이 커 보여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서다. 내 눈에 예쁜 신발의 대부분은 낮은 굽의 편한 신발들이다.

 

얼마 전 A의 웨딩드레스를 골라주러 드레스 가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친구의 키는 160cm인데 무릎까지 오는 미니드레스를 제외하고 모든 드레스 길이가 175cm 신장의 사람에 맞춰져 있었다. 플래너가 들고 온 웨딩드레스 샘플집에 바닥이 조금 끌릴 정도 길이의 드레스는 단 하나도 없었다. 샵에 걸려 있던 다른 드레스들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되는 길이의 드레스는 선택지에 없었다. 한국 여성 평균 키가 162.5cm라는데 그렇다면 신부들은 적어도 10cm, 15cm가 넘는 구두를 신어왔던 걸까. 웨딩 슈즈를 검색해보면 뒷굽도 모자라 앞굽에까지 높은 굽이 들어간 구두가 태반이다. 매번 긴 드레스 안에 신부들의 발이 감춰져 있으니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힐은 여성성을 대표하는 몇 가지 물건들 중 하나다. 하지만 굽이 있는 신발을 신으면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프다. 군데군데 물집이 잡히고 부르튼다. 뒷굽 때문에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발가락이 단단한 구두에 자꾸만 부딪힌다. 높은 굽 탓에 휘청휘청 걷다 발목을 접질리기도 한다. 물론 어떤 여자들은 구두를 신은 후의 키가 커 보이고 다리가 길어 보이는 모습을 포기할 수 없어서 일상에서도 힐을 즐겨 신는다. 그건 온전히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며 고나리질*을 당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 관리 질의 오타에서 비롯된 신조어로, 쓸데없는 지적질, 관리질, 오지랖 등을 일컫는 말

** 1994년, 변화하는 X세대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취재한 MBC 뉴스의 영상이 작년 다시금 회자되면서 만들어진 유행어. 한 X세대 여성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는 발음으로 인터뷰한 게 인터넷 상에서 이슈가 됐다. 특히 해당 유행어는 여성의 옷차림에 왈가왈부하지 말란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심각하게 협소한 웨딩드레스와 웨딩 슈즈는 다른 문제다. 긴 웨딩드레스와 높은 힐은 단순히 안전과 불편함의 문제를 넘어 신부를 수동적인 위치로 전락시킨다. 신부가 프로 모델이 아니고서야 10cm가 넘는 아슬아슬한 힐을 신고 자유롭게 걷기 어렵다. 드레스가 없어도 걷기 힘든데, 힐을 신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끌며 걷는 것은 더욱 어렵다. 신랑의 한쪽 팔에 의지하고 뒤에선 예식 도우미들이 드레스를 들어주고 정리해줘야 한다. 누군가가 들어주고 도와줘야만 제대로 걸을 수 있다니.

 

누군가는 이런 신부의 모습을 '참하고 조신하다'고 여기겠다. 나는 참하거나 조신하고 싶지 않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나도 신랑과 함께 자유롭고 힘차게 걷고 싶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부는 항상 정숙하고 조신하다. 크게 소리 내지 않고 크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옆에서 사회자의 짓궂은 요청에 팔 굽혀 펴기를 하며 신부를 맞이하겠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 신랑과는 상반된다. 일부 요즘 신부들은 가끔 제자리춤을 추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시댁 식구의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결혼식 전 신랑은 자유롭게 밖에서 사람을 맞이한다. 결혼식에 와줘서 감사하다고 웃으면서 손님들을 반긴다. 반면 신부는 신부대기실에서 양 손으로 부케를 쥐고 손님들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신부는 그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힐을 신고서, 놀라울 정도로 대기실에만 앉아서 손님들을 맞는다. 사람들은 신부를 구경하고 신부는 가만히 앉아 사진을 찍는다. 어차피 드레스 탓에 일어설 수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신부대기실에서 웨딩 로드로 걸어가는 그 짧은 구간에도 예식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다. 꼼짝 않고 앉아 웃기만 하는 신부를 보면 마치 전시돼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시되어 있던 신부는 식이 시작하면 곧 식장 문 앞에 선다. 아직 결혼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꼬꼬마 시절, 부모님을 따라 친척 결혼식에 간 적이 있었다. 식이 시작되고 곧 웅장한 노래가 흘러나오며 식장 문이 열렸다. 아름다운 신부 언니가 신랑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바뀌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많은 결혼식에서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웨딩 로드에 들어선다. 신부는 아버지에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인 채로 신랑을 향해 걸어간다. 신랑에게 다다른 신부의 아버지는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준다. 잘 부탁한다고. 이 장면이야 말로 가부장제로 점철된 결혼식의 가장 끝판왕, 클라이막스다.

 

지난 5월에 결혼식을 올린 내 친구 B는 도저히 이런 결혼식의 '관례'를 용인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에겐 뭉클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신부 당사자인 내 친구에겐 자신이 마치 아버지의 소유물이 되는듯한 불쾌함을 안겼다. 다행히 신부의 아버지는 공감해주셨고, B는 신랑과 함께 손을 잡고 웨딩 로드로 들어섰다. 신부는 애초에
'아버지의 것'도 아니었으며 
결혼 후
'신랑의 것'이 되지도 않는다
결혼은 동등한 두 주체가 만나 이루는 약속이고 일종의 계약이다. 동등한 주체가 될 때까지 잘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뭉클함은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2017년의 결혼식. 아직도 삼종지도(三從之道)*, 부창부수 같은 몇 백 년 전의 케케묵은 유교 사상에 따라 신부가 소유물인양 건네고 건네 지게 된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10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 이런 사상이 전제된 관례라니. 세상에, #thisis2017**! 이건 관례가 아니라, 구태고 적폐다.

*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어서는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고사성어

** 현대 사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기 위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상에서 벌어진 해시태그 운동에서 따왔다. 원 표기는 #thisis2016. '지금이 2016년인데 어떻게 아직도 인종차별이 벌어질 수 있냐'의 의미.

불편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에서 신랑으로 신부가 건네지는 것이 가부장제의 클라이막스라면, 혼인서약서와 주례는 굳히기다. 신랑, 신부를 몇 번 본 적도 없을 주례 선생님은 신랑에겐 신부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막'이 되고, 신부에겐 신랑의 '순종적인 안식처'가 될 것을 요청한다. 다 같이 먹고살기 바쁜 요즘 세상에 대체 누가 누구를 지켜주며 누가 누구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남성은 여성을 지키고 여성은 순종적으로 지켜지는 성별 고정관념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 대목은 애초에 신부를 집 안에 머무를 사람이자 감정 노동의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상정한다. 

 

주례 없는 결혼식의 혼인서약서도 별 반 차이가 없다. 신랑은 그저 신부를 사랑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자상한 남편이 될 것을 약속하지만, 신부는 일단 받고 거기에 '따뜻한 아침밥을 꼭꼭 챙겨주고 남편이 바깥일을 잘 하시도록 내조를 잘 할 것'을 약속한다. 그나마 몇 신랑은 인심 쓰듯 집안일을 잘 '도와주겠다'고 한다. 신부가 전업주부가 아닌 이상, 집안일은 신랑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물론 부부라면 누군가는 상대에게 방패막이 될 수도,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상대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 줄 수도, 감정 노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왜 한국의 결혼식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신랑과 신부에게 늘 동일하고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할까.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결혼 후도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결혼과 상관없이, 여성들은 평생 살아가며 이러한 류의 성 역할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2017년에 이런 구시대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을 여성 스스로 읊어야 한다니. 마치 앞으로의 결혼 생활의 전주곡인 양. 

한국 맞벌이 부부 중 남편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 꼴등이다. 심지어 인도, 남아공 등 성평등이 낮은 국가에 비해서도 낮다. 남편들에게 가사노동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여성의 몫이다.*

 * 관련 기사: '한국 맞벌이 부부 하루 평균 가사노동, 남편 40분 아내 194분' (경향비즈, 2015.12.7) 

예전에 친구 C가 자기 결혼식의 사회를 맡아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다. 당시 어렸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재밌겠다며 신나 했다. 그러나 친구네 집안에서도, 심지어 우리 부모님마저도 어떻게 아나운서나 전문 MC도 아닌 '여자'가 결혼식 사회를 보냐며 만류했다. 결국 나는 사회를 보지 못했다. 대체 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맥락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주례 선생님이 여자인 경우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가수 양희은 씨가 주례에 선 게 이슈가 돼 뉴스까지 보도된 걸 보면 내 주변만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 관련 기사: '양희은, 女 주례 할 말 많다…엄마로서 아내로서' (머니투데이>, 2016.3.26)

 

폐백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한국에서의 결혼은, 출가외인인 신부가 남(신랑)의 집 가족으로 편입되는 걸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래 폐백은 신부가 신랑네 일가친척에게 인사하며 집안의 어르신들이 누군지 배우는 자리에서 비롯됐다. 그 자리에 신부네 어른들은 없으며 신랑은 인사하지 않는다. 시부모는 신부의 치맛폭에 대추를 던지며 부귀다남 할 것을 빈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남아를 선호한다. 부귀다남에 대한 집착은 폐백이라는 풍습만으로 남은 게 아니라, 공식 통계만으로도 여아 2만2천 명을 뱃속에서 죽였다.* 이 시대착오적인 전통은 그나마 개선돼 요즘은 폐백을 생략하거나 폐백 때 신부의 친척들도 들어오고, 부귀다남 대신 그냥 아이를 건강히 잘 낳으라고 하신다. 나같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선택지는 여전히 배제되지만.

* 관련 기사: '뱃속 여아 살해…광란의 유혈극' (시사저널, 1998.11.12)

 

신부는 '결혼식의 주인공'이라는 말보다 '결혼식의 꽃'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구경하기 좋은 꽃. 이보다 적확한 말이 있을까. 

그래서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단 거냐고?

지금까지 쓴 이 모든 것들을 하지 않는 결혼식을 하고 싶다. 혼자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길고 불편한 드레스를 입지 않고, 힐 대신 굽 없는 로퍼를 신고 싶다. 신부의 순결함 따위를 강조하는 '흰색' 드레스도 거절. 행복한 날인 만큼 신랑처럼 자유롭게 거닐고 싶다. 청첩장엔 부모 대신 우리의 이름을, 일부러라도 내 이름을 먼저 넣고 싶다. 신부대기실에 앉아 웃고만 있을 게 아니라 남편과 함께 오늘 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내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고 싶다. 식을 시작할 때에는 아버지 대신 함께 평생을 살고픈 신랑과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걷고 싶다. 

 

적폐와 다름없는, 서로 눈치 보며 돈 쓰기 바쁜 보여주기 식 예물, 예단은 모두 생략할 테다. 아침밥과 내조 따위 대신 남편과 서로 믿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싶다. 내가 일도 집안일도 모두 하는 슈퍼우먼이 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가사를 공평하게 하겠다는 신랑의 다짐을 듣고 싶다. 애는 낳지 않을 테니 폐백도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은, 신부가 집을 나와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두 개인의 만남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라고 썼지만 매우 비현실적인 결혼식이다. 이런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몇 개의 산을 넘고, 얼마만큼의 갈등을 일으켜야 할까. 결혼을 하고 싶지만 자꾸 결혼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한국의 결혼식이 지나치게 비(非) 개인주의적이고 남성(집안)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지 않은 결혼의 모습이 상식적이지만, 어른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이들은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았고 그 시간 동안 지금 내가 맞서는 가부장 문화나 성차별보다 곱절은 강한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것의 결혼식에서 옛 것을 그대로 답습하긴 싫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딩크*족이라는 말이 생기고 비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주례와 예물, 예단이 사라지고 있다. 신부들이 결혼식에서 신랑보다 더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면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며느리가 남편도 하지 않는 남의 집 조상 제사 음식 마련에 무급으로 동원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 DINK, Double Income, No Kids의 준말로,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맞벌이 부부를 이르는 말

** 참고 자료: 며느라기 그림 시리즈 (출처: 며느라기 페이스북)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반개인주의적인 구태와 적폐를 담아야 할 결혼식이라면, 차라리 그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 결혼... 할 수 있을까?

#2 한국 결혼식 문화를 까놓고 말하다 마침.

독자 리뷰

현재까지 1,239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정**

    요즘 애들이 아니라서 관심이 없었는데(없다기보다는 무서웠는데) 읽어보니깐 정말 요즘 애들이 멋있네요!!! 이 시대의 희망은 요즘 애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 살롱 때 '요즘애들'과 '요즘애들이 아닌 사람들'이 나눈 대화도 궁금하네요.
    서로 다른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좋겠어요.

  • 강**

    요즘애들의 사적인 생각이라는 제목 처럼 사적인 의견이지만 사적이지않은,

    요즘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한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사회문제에 속해있는 당사자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했기때문에 사회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볼수있는 컨텐츠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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