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가 독자와 만나는 첫 순간

Editor's Comment

본 글은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 - 잡지 BRUTUS & POPEYE' 리포트 중 표지에 대한 이야기를 발췌했습니다. 각각의 표지 사진은 잡지와 만나는 첫 순간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외부 링크로 처리하였습니다. 포장지를 뜯는 느낌으로 링크를 하나하나 클릭하시며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전문이 실린 리포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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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고 잡지를 살 때가 있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모델에 혹해, 아름다운 사진과 귀여운 일러스트에 반해, 아니면 특집의 제목에 이끌려 잡지가 내민 손을 잡습니다. 잡지가 독자와 만나는 첫 순간입니다.

 

어쩌면 표지는 잡지의 모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콘텐츠 전체를 압축하고, 잡지의 태도와 시선을 전달하며, 이야기의 톤과 분위기를 정하는 일. 이것이 표지의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독자가 표지와 만난 그 시점에 잡지의 정체성이 어슴푸레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지는 중요합니다. 임팩트와 일관성을 지녀야 하며, 표지를 본 순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게 전달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첫인상, 첫인사말이 절반 이상을 좌우합니다.

 

BRUTUS(ブルータス, 브루타스)의 표지는 하나의 작품입니다. 사진이나 일러스트의 완성도가 훌륭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글자체와 배열, 페이지의 디자인이 콘텐츠를 넘어 분위기와 감정을 전달합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을 말한다

2013년 4월 15일에 발간된 BRUTUS 753호의 특집은 '걷자(歩こう)'였습니다. 수풀이 우거진 산을 한 남자가 걷고 있습니다. 초록 바탕 위에 점처럼 작은 한 남자, 그리고 '걷자'라는 제목.

걷자
歩こう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사진 한 장과 단어 하나만 달랑 있을 뿐인데 전달되는 그림은 넓고 깊었습니다. 표지의 임팩트가 마음속 깊숙이 새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표지를 구성할 정도의 대범함에 놀랐고, 최소한의 것으로 완전한 의미를 완성하는 전달력에 감탄했습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산을 걷고 있는 남자는 도쿄의 디자인 스튜디오 GRV 대표 이토 히로시입니다.

위험한 독서
危険な読書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대범함으로 치자면 838호 '위험한 독서(危険な読書)'만한 게 없을 것 같습니다. BRUTUS는 '단지 공감을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닌,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붕괴시키고,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줄, 그래서 마음을 뒤흔들 독서'를 소개하며 이런 제목을 지었습니다.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다섯 글자가 새겨진 책 한 권을 하얀 바탕 위에 덜렁 놓았습니다. 웬만해선 하지 못하는 시도입니다. 용기가 부럽습니다. 

다음은 누구?
次は誰?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질문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795호인 '다음은 누구(次は誰?)'는 차세대 인물을 한 가득 담은 특집입니다. 음악부터 아트, 비즈니스, 건축, 연극 등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을 여럿 모았습니다.

 

차세대 인물을 소개하는 특집은 많습니다. 그리 흔치 않은 기획은 아닙니다. 하지만 BRUTUS의 표지는 이 특집이 정말로 미래를, 새로움을 얘기하고 있다는 예감을 안겨 줍니다. 극작가 후지카 타카히로의 사진 위에 제목만 올려놓은 센스 역시 탁월합니다.

이야기를 품은 표지

Life, Style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속옷 차림 모델에 깜짝 놀랐습니다. 위아래로 새하얀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측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Life, Style'이란 제목이 없었으면 무슨 특집인지 몰랐을 것 같습니다. 패션 특집이라 하기엔 너무나 소박합니다.

 

하지만 이 몽롱한 느낌으로 표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화려한 브랜드 옷이 아닌 속옷을 입힌 이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찻잔 하나, 그리고 '입고 있다, 살고 있다(着ている, 生きている)'라는 부제까지. BRUTUS가 이야기하는 것은 삶을 곁들인 패션입니다.

브루타스 백화점
ブルータス百貨店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786호에서는 백화점이 열렸습니다. 100명의 사람에게 갖고 싶은 것을 물어 구성한 이 책은 '브루타스 백화점(ブルータス百貨店)'입니다. 점원 한 명과 아이와 함께 온 할머니 손님이 마주하고 서있습니다. 단출합니다.

 

한편 여기서 쇼핑의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면이 그려지고 쇼핑의 과정이 떠오릅니다. 사고 싶은 것이 생겨 백화점에 가고 점원이 보여주는 물건을 보며 마음을 결정하고 구매에 이르기까지, 사진 한 장이 쇼핑의 모든 걸 함축합니다. 최소한의 것이 많은 걸 이야기하는 예입니다.

오늘의 이토이 시게사토
糸井糸井重里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 남자와 강아지, 서로가 서로를 바라봅니다. 706호의 제목은 '오늘의 이토이 시게사토(糸井糸井重里)'입니다. 카피라이터이자 신문의 편집장인 이토이의 일과를 따라붙은 특집입니다.

 

별 거 아닌 사진 두 장이지만 그윽한 톤과 부드러운 느낌이 일상의 결을 전하고 있습니다. 굳이 왜 강아지가 등장했을까 싶지만, 실제 이토이가 기르고 있는 작은 강아지 '브이용'입니다. 강아지의 존재가 이토이의 삶 한편을 설명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 특집이기에 감정으로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일러스트가 장식한 표지

고기 한 덩어리가 덜렁 놓여있습니다. 접시도 불 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맛있는 고기(738,うまい肉)'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를 설명하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맛있는 고기
うまい肉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단에 '누군가에게 말 걸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어진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고기를 소셜의 의미에서 바라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일러스트가 하지 못한 얘기를 두 문장이 해결합니다. 선홍색의 고기 한 덩어리는 대학생이 그린 작품입니다.

 

사진과 일러스트 사이에서 고민했던 편집부는 육즙이 줄줄 흐르는 사진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학생에게 일러스트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것도 고급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는 학생에게 편집장의 단골 가게를 알려주면서까지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별로 예쁘지 않습니다. 깔끔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인 느낌의 일러스트입니다. 임팩트가 있습니다. 그림은 펜으로만 그리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존경할 수 있는 일용품
尊敬できる日用品
존경할 수 있는 골동품
骨董品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노리타케가 작업한 '존경할 수 있는 일용품(755, 770, 尊敬できる日用品)'과 '존경할 수 있는 골동품(799, 骨董品)' 특집의 표지는 정갈합니다. 각각 잿빛 느낌의 초록색과 갈색, 그리고 파란색 펜으로 그린 물컵과 머그잔, 사발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존경할 수 있는 일용품'과 '존경할 수 있는 골동품'이라는 제목, 선의 단정함. 많은 걸 늘어놓지 않고 응축해 표현하는 노리타케 특유의 그림 그대로입니다. 이런 미니멀한 방식은 존경의 대상인 일용품과 골동품 앞에 엄숙한 태도를 지니게 하게 합니다.

맛있는 자연파
おいしい自然派
돈의 대답
お金の, 答え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나가바 유가 장식한 '맛있는 자연파(759, おいしい自然派)'와 '돈의 대답(847, お金の, 答え)'은 좀 익살스럽습니다.

 

'돈의 대답'에서는 한 노인이 손에 지갑을 쥔 채 인상을 쓰고 있고, '맛있는 자연파'는 머리에 사과를 얹은 수달과 손에 당근을 쥔 곰이 장난을 치는 것 같습니다. 특집의 주제는 오가닉 요리입니다. 다소 진지한 내용의 무게를 그림으로 덜어주고 있습니다.

시간을 주무르는 표지

잡지에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간 감각입니다. 독자의 삶과 시대를 반영하기에 잡지에는 시간이 흐릅니다. 지구의 시간보다는 조금 느린 콘텐츠의 시간입니다.

 

독자는 잡지의 기사를 읽으며 시대를 맛보고, 잡지는 독자와의 만남으로 시대를 삽니다. 그리고 이 시간의 흐름이 느리고 진중할수록 잡지는 가치를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촘촘한 결 덕입니다.

 

BRUTUS에는 '좋아요(好き)' 시리즈가 있습니다. 종종 속편을 발행하기도 합니다. '좋아요' 시리즈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법이고, 속편은 독자와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과 약속이 독자와 잡지 사이의 시간을 흐르게 합니다.

 

어느 때가 되면 어김없이 좋다고 말해주는 시리즈와 좋았던 특집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속편. BRUTUS는 이 둘을 어기지 않습니다. 약속들이 잡지의 시간에 신뢰를 더하고, 나아가 잡지를 탄탄하게 다지기 때문입니다.

개란…
犬って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2016년 3월 BRUTUS의 개 특집입니다. 개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2016년 12월 31일, 속편을 발행했습니다.

역시 개란…
やっぱい犬って

'역시'란 단어 하나만으로 속편을 암시한 것도 기발한데 표지에 시바견 '마루'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1년 전 표지에서는 함께였던 아키타견 '와사오'를 두고 혼자가 되어 돌아온 겁니다. '개란…' 특집을 봤던 독자라면 반가울 것입니다. 마루와 독자 사이의 시간이 고스란히 잡지에 새겨집니다.

 

'좋아요' 시리즈의 표지를 같은 작가와 작업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스나쿠, 주점 좋아
スナック好き

(위 이미지 링크를 확인 후 글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쇼와(1926년~1989년) 느낌의 하얀 곰이 스나쿠에 앉아 노래를 하고(スナク好き), 거울 앞에서 헌 옷을 대보며(古着好き), 헌 책을 봅니다(古本好き). 일러스트는 쇼노 나오코가 그렸습니다.

 

바뀌지 않는 주인공, 변함없는 쇼와 풍의 그림 톤. 독자는 친밀함 속에서 잡지와의 시간을 공유합니다. 잡지는 새로워야 합니다. 새로움은 잡지가 추구하는 덕목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독자와 잡지 사이의 친밀함은 살아있는 매체로서 잡지를 움직이게 합니다. 잡지의 시간은 표지에서 흐르기 시작합니다.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 - 잡지 BRUTUS & POPEYE]

 

씨네21과 VOGUE에서 기자로 일한 정재혁 저자가 표지부터 특집과 기획, 네이밍과 카피까지, 일본에서 40년 넘게 건재한 BRUTUS(ブルータス, 브루타스)와 POPEYE(ポパイ, 뽀빠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