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선 작가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연극 〈프라이드〉에서는 성 소수자, 〈킬 미 나우〉에서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카포네 트릴로지〉와 〈벙커 트릴로지〉로 폭력의 도시와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도 살폈다. 그는 연극을 통해 차별의 현장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약자들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혐오를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보여준다. 지이선 작가가 펼쳐낸 이야기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들이 발견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여성은 지구상 가장 큰 규모의 약자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보다 공연이 좋아서 작업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연극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지이선: 혜화여고를 다녔었는데, 아침마다 이상한 옷차림에 술 냄새 풍기면서 휘적거리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연극쟁이라더라. 어우, 너무 싫었다. (웃음)
그런데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극작과에 입학하지 않았나.
지이선: 라디오랑 책만 끼고 살던 때라 대학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연기과 준비하던 친구 때문에 학교를 알았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상원에 지원하려고 했지만 이미 접수가 끝난 상태였다. 비슷한 게 연극원 극작과라서 지원한 거다. 입시면접 때 실제로 본 연극이 한 편도 없다고 하니 선생님들이 다 당황해할 정도였다.
언제쯤 연극에 흥미를 갖게 되었나.
지이선: 당시만 해도 한예종은 현역이 별로 없어서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이쪽 일을 할 거라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연극이 좋아서 온 사람들에게는 내가 되게 치열하게 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을 거다. 그러다 〈오장군의 발톱〉을 쓰신 박조열 선생님과 1:1 수업을 하게 되면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선생님 중 연세가 가장 많으셨지만, 가장 젊고 저항적이고 열려있는 분이셨다. “사람은 다 생긴 대로 글을 쓰게 되어 있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나를 늘 ‘박군’(본명: 박지선)이라고 불렀는데, 삐뚤빼뚤하고 이상해도 되게 잘생긴 글을 쓸 거라고 하셨다. 가끔 그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