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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밭은 내가 간다, 백은하 배우전문기자

내 밭은 내가 간다, 백은하 배우전문기자

‘영화 저널리스트 / 학생’ 백은하 SNS의 소개말이다. 〈씨네21〉의 기자, 「안녕 뉴욕」의 저자, 〈매거진t〉와 〈텐아시아〉의 편집장, 〈경향신문〉의 기자, 그리고 올레TV 〈무비스타 소셜클럽〉 진행자, 이 모든 직함을 차례대로 내려놓은 백은하는 지금 런던의 한 대학교에서 영화 이론 전공의 대학원생으로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밤의 서울, 영상 통화로 백은하와 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노트북 너머 런던의 해는 내내 길어지다 서서히 저물어갔다. 평생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삶에서의 시차는 거뜬히 뛰어넘을 용기를 가진 사람. 아마도 한국 최초의 배우전문기자일, 백은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백은하
: 어릴 때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고 막연하게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SBS에서 스크립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방송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공간이었다. 기본적으로 남성 중심적이라고 해야 하나? 20대 중반인 내가 가진 열정, 아이디어 같은 것을 다 뽑아가기만 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회의가 들던 차에 〈씨네21〉에 지원을 하게 된 거다.

 

처음부터 영화기자를 꿈꿨던 건 아니었던 셈이다.
백은하
: 그렇긴 한데 당시 〈씨네21〉은 모든 대학생의 꿈이었기 때문에. (웃음) 그때만 해도 재기발랄할 때라 당시 신인배우를 소개하던 형식에 맞춰서 좀 특이하게 자기소개서를 썼다. 아마 ‘어떤 애인가’ 싶어서 면접까지 보게 된 거 같다. 무조건 ‘영화기자가 되겠다’ 같은 건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면 직업이라는 게 늘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직업에 대한 고민도 영화기자가 된 뒤에 시작했을 텐데.
백은하
: 영화기자는 감성과 이성이 모두 요구되는 직업이다. 예술인 동시에 산업인 분야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그 안에서 특화된 분야를 갖게 된다. 그때가 기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는 방법, 자기만의 무기를 찾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렇다면 나의 무기는 뭘까? 나도 고민을 했다.

 

무기를 찾았나?
백은하
: 입사한 뒤 선배들이 먼저 시킨 일이 인터뷰였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거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배우에 경외심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영화 촬영 현장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완성된 영화를 볼 때보다 현장에서 더 많은 경외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영화는 연속으로 찍는 게 아니라 분절이 되지 않나. 그 단절의 순간을 배우 스스로가 연결해가는 게 놀라웠다. 

 

인터뷰가 무기가 된 거네. 
백은하
: 나에게 맞는 일이었지. 배우는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매번 그들의 선택에 따른 작업을 보고, 만나서 확인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게 인터뷰하는 사람에게 생명력을 갖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날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졌다. 그렇게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의 시대를 지나가면서 가장 가까이서 보고 기록할 수 있었다. 

 

〈씨네21〉에 있는 동안 ‘여성’ 영화기자라는 게 의식되는 순간은 없었나?
백은하
: 여자라서 부드럽다거나, 혹은 예민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씨네21〉은 개별 인적 자원의 특이성이 높고 그걸 인정해주는 곳이라, 비교적 청정했다. 어느 정도는 운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기회를 무시당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영화기자는 어느 정도 감각이 있는 여성이 자신의 성취를 확인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씨네21〉을 갑자기 떠났다.
백은하
: 〈씨네21〉이라는 잡지가 가진 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 능력보다 워낙 크다 보니까, 내가 〈씨네21〉의 크기를 나의 크기로 착각하는 순간이 오더라.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니까 딱 알게 됐다. 나는 미숙한 사람이구나. 30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에서 ‘노바디’로 살며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내 과장된 능력치를 누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만 할 수 있는 건 또 뭘까?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서 〈매거진t〉를 시작하게 됐다.나를 바꿔가면서까지
명예 남성이 되는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거진t〉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나?
백은하
: 〈씨네21〉 시절에는 나에게 TV 관련 기사를 쓰라고 하면 좋아하고 잘할 수 있었음에도 ‘왜 나한테 쓰라고 하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TV 엔터테인먼트를 영화에 비해서 낮게 보는 시각이 사실 나에게도 있었던 거지. 나도 TV라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왜일까?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는 TV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크다. 그 문화 안에 1년 동안 있으면서 TV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매체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t〉 시절부터 전 〈ize〉 기자인 최지은, 위근우나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와 같은 기자를 후배로 뽑고, 또 동료로서 함께 일해왔다. 후배를 뽑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나.
백은하
: 야심이 있는 사람들은 본인의 큰 포부 때문에 자신만이 아니라 동료까지 망치는 경우가 있다. 야심 없고 뭐 하나 재미있어하는 게 있는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기자는 사람을 설득해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야 한다.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 무엇보다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았다. 

 

편집장이 되기에 많은 나이는 아니었으니 책임감이 막중했겠다.  
백은하
: 그래서 이 업계의 사람들은 빨리 늙는다. 충분히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40대에 접어들면 데스크에 앉아야 하는 거다. 30대 초반에 매체를 만들었으니 나에게는 그 시기가 특히 빨리 왔다. 할머니였지. (웃음) 새로운 걸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먼저 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밭을 갈아야 한다. 억울하지는 않다. 땅을 갈아놔야 거기에 뭘 심고 키울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다 〈매거진t〉에서부터 회사가 넘어가고 옮겨지고 하는 과정까지 7~8년을 지나면서 즐겁게만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갔어야 하는 시간에 이 나라 엔터테인먼트 저널리즘 발전이라든가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같은 큰 생각을 해야 했다.

 

더 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나?
백은하
: 잡지를 만든다는 건 사업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고 어린 여자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바꿔가면서까지 명예 남성이 되거나, 세고 거칠어지는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버는 수단으로써 잡지의 장이 되어 이끌어가는 건 어렵기도 하고, 체질적으로도 나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동시에 기자로서의 생산력이 높아질 수 있는 시기에 관리자로 있으면서 오는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있었다. 분명히 얻은 게 있지만, 잃은 것도 있는 시기였다. 그렇게 회사를 관두고 나니까 30대 초반의 고민을 다시 해야 했다. 

 

그래서 〈경향신문〉에 입사한 건가? 한 매체의 편집장이었던 사람이 일간지의 평기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에 놀란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백은하
: 이미 영화, TV의 스페셜리스트로 10여 년을 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전체적인 걸 배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간지에 가면 나이 많은 사람이 많으니까 나는 중늙은이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고. (웃음) 편집장이나 부장 같은 지위를 갖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가 않았다. 다른 욕심은 많은데 지위를 얻고 싶은 욕심은 없다. 가능하다면 평사원, 평기자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내 경력, 내 나이의 여성이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더라. 그래서 결국에는 5년 정도 전부터 프리랜서의 길을 가게 된 거다.

 

프리랜서가 되면서는 글을 계속 쓰지 않고 방송을 시작했다. 이 또한 백은하라는 기자를 지켜봐 온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선택으로 보였을 수 있을 것 같다.
백은하
: 의외로 청탁이 오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필자가 되어버린 거지. (웃음) 잡지를 졸업했고, 일간지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 일을 그만두느냐 마느냐의 단계까지 와 있었다. 그때가 아직 마흔이 안됐을 때였다. 이제 뭘 좀 알겠는데 써 주는 사람이 없는 거다. 마치 대학교 4학년처럼, 직업을 구해야 하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그때 올레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합을 맞춰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무비스타 소셜클럽〉은 영화배우 인터뷰 전문기자로서의 백은하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프로그램이었다. 
백은하
: 원래는 고정이 아니었는데 “인터뷰 코너를 만들자. 내가 하겠다.”고 역으로 제안했다. 프로듀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믿고 가줬다. 일반 방송사였다면 안됐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따로 라이벌도 없었기 때문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새 밭을 일구게 된 거지. 내 운명이 곡괭이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직업은 계속 영화기자였지만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면 미디어의 흐름을 예측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은하
: 모든 게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물결을 잘 탔다고 생각한다. 계산하지는 않았다. 절실한 생존욕이 만든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자산을 계속 활용할 수 있는 판이 없다면 밭을 갈아서라도 판을 열고 시작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도 내가 모르던 효용이 생기기는 했지만 또 그것만 믿고만 살 수는 없었다.

‘타이틀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그걸 알게 된 거다

그게 바로 런던 유학의 이유인가?
백은하
: 〈무비스타 소셜클럽〉을 진행한 4년 동안 영화 잡지의 환경, 미디어의 환경, 기자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모두 달라졌다. 원고료를 베이스로 한 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버는 준 셀러브리티도 생겨나고. 그걸 보면서 영화기자는 재미없고 폼이 안 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혹해서 시작하는 경우도 생겼을 거다. 애매한 판이 됐지. 나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행사라든가 방송이 언제까지 영화기자들에게 주어질까? 방송에서 소화할 수 있을 만큼의 영화 지식을 가진 연예인이 있다면, 이 시장 안에서 경쟁력이 기자에게 생길까?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건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계속 불안해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럼 뭐가 채워져야 불안함이 없어질까. 어떻게 하던 걸 계속할 수 있을까. 그 답을 한국에서 찾았다면 런던까지 오지는 않았겠지.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앞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까, 또 처음부터 혼자 결정을 해야 했겠다.
백은하
: 어느 순간, 살아남은 여자 영화기자가 거의 없으니까 정작 나에게는 롤모델이 없는데 내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어버리더라. ‘백은하가 저렇게 하는데 나는 왜 안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다. 그건 내가 막고 싶지도 않았고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차피 스스로 서바이벌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 밭을 찾는 건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나. 그저 그들 이전에 나부터도 좀 더 공부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찾아가야 할 것 같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런던 오기 전에는 이 모든 것들이 조만간 끝날 텐데, 배가 떠난 다음에 손가락 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와서도 사실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성이 들더라.

 

어떻게?
백은하
: 내가 내 인생의 사장님이 되면 되는 거다. 누구에게 고용 당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사업자 등록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웃음) 내가 직장을 안 다니고 청탁을 하지 않으면 그냥 나는 놀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을 때도 할 일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럼 내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연구를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런던 와서 처음 쓴 에세이보다 더 영역을 좁혀서 내 나름대로 ‘배우학’이라는 걸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배우연구소의 소장, 배우연구자 액톨로지스트(Actorolorogist)로 살아가면 된다는 거지.

 

백 소장님이 되는 거네.
백은하
: 맞다. 그러니까 모든 게 선명해졌다. 회사나, 내가 가진 타이틀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그걸 알게 된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국 잘하는 걸 해야 한다. 이런 시대에는 프로답게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좋아하는 것과 합쳐지면 가장 아름답겠지만. 분명히 그 모든 게 합쳐지는 무언가가 있을 거다. 

 

백은하에게 인터뷰 같은 것. 
백은하
: 나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 배우들과의 꾸준한 인터뷰, 지식 같은 것이 재산이다. 누가 그것을 빼앗아가겠나? 이건 경쟁할 수도 없다. 지금도 내가 만약 어쭙잖게 평론가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면 얼마나 불행했을지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잘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배우 인터뷰는 연예인 인터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자긍심이 있었다. 지금도 인터뷰를 가치 없게 여기는 사람들과 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후배가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가?
백은하
: 그런 것보다는 그저 다들 자기 자신이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내가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내가 뭐해야 행복한지 아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된 것 같다.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고 후배들이 ‘저렇게 살면 되겠다’ 정도의 생각만 할 수 있다면 고맙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막살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을 찾을 수 있는 거다. 최근 후배들도 물론이고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각자가 잘사는 게 중요하다. 그 어떤 인류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 나도 그렇게 어떤 때보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이기적으로 나 하나 잘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 사는 방법은 찾았나?
백은하
: 이렇게 되면 배우연구자의 운명연구소 같은 느낌이기는 한데. (웃음) 배우에 관한 학문은 극단으로 나뉘어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배우의 연기를 기술로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타인 배우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각지대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인간으로서의 배우다. 책 작업이든, 인터뷰를 통한 데이터 축적이든 계속 이어가면서 내 인생의 연구 한 챕터를 살아가고 싶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학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연기, 배우를 어떻게 분석하겠는가. 실패라는 걸 알고 있지만, 궁금하니까 무리해서라도 가보려고 한다.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을 찾아보면서.

 

글. 윤이나 / 디자인. 정명희

#2 내 밭은 내가 간다, 백은하 배우전문기자 마침.

독자 리뷰

현재까지 758명이 읽은 콘텐츠입니다

  • 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있는 여성이라면 회사 밖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막연히 부럽고 궁금하고 동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컨텐츠라서 만족합니다.

  • 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사이트와 위안을 함께 얻었습니다.

겁내지 않는 우리들, 윤가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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