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아키오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기후 현의 오가키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다. 부친이 운영하는 '야마다 전선 제조소'에 전무이사로 들어가 일하지만, 일보다 연극에 미쳐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그는 1965년, 극단 '미라이자'의 동료 세 명과 극단의 이름을 딴 전기 제조 설비 업체 '미라이 공업(未?工業)'을 설립한다. 대기업과 싸워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자본금 50만 엔과 아버지 회사의 거래처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가 선택한 길은 제품과 경영의 '차별화'와 직원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인간 중심 경영이었다. 상식을 뒤엎는 '전략'을 펼친 결과, 미라이 공업은 창업 이래 48년간 적자 없이 연매출 약 3,000억 원(2012년), 연평균 경상이익률 15%(동종업계 3%), 전기 스위치 박스 시장 점유율 80%라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한다. 일본에서는 그의 경영 비법을 듣고자 기업 강연과 취재 요청이 쇄도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7월 MBC스페셜에서 그의 경영 방식을 방영한 이후, 큰 화제를 모았다.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라이 공업의 대주주로서 이사상담역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1989년 오주호쇼 훈장, 1999년 오가키 시 공로상, 2001년 소코쿄쿠지츠쇼 훈장을 받았다. 2014년 7월 30일, 다발성장기부전로 인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평소 그의 검소한 성품처럼 화환을 받지 않았고 친척과 가까운 지인들만 모여 조촐하게 치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