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포코'를 운영하게 된 계기

Editor's Comment

'트럼프가 온다'는 2016년 미국 대선을 균형 있는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의도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입니다. 미국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포 코리아(Trump for Korea)' 블로그를 운영한 조진서 기자와 이강원 정치 컨설턴트가 트럼프와 미국 대선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 대선을 앞둔 한국에 '트럼프 현상'이 시사하는 바, 트럼프 시대가 한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문이 실린 '트럼프가 온다' 리포트는 2월 28일 오후 6시까지 구매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조진서: 미디어의 편파성에 대한 예시로 자주 나오는 매체가 CNN입니다. 이번 선거 기간에 CNN은 너무 비도덕적이다 싶을 정도로 편파적이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하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이하 트럼프) 간에 총 세 번의 대선 토론이 있었고, 그때마다 CNN에서 토론회를 보도했어요. 누가 더 잘했나라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주제로요.

현지시각 기준으로 2016년 9월 26일에 열린 1차 대선 토론 결과에 관한 CNN 보도 ©CNN

이처럼 62%의 시청자가 클린턴이 토론회에서 더 잘했고 이겼다고 생각하고, 27%의 시청자만이 트럼프가 이겼다고 생각한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그런데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세 번의 토론을 유심히 지켜보고 트위터와 블로그로 문자중계까지 했는데요, 트럼프가 그 정도로 못한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CNN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CNN 외주 업체가 어떻게 여론조사를 했는지 보고서가 있었어요.

여론조사 보고서 ©CNN

외주 업체는 총 521통의 전화를 걸어 조사를 했어요. 표본 자체가 미국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굉장히 적은 숫자죠. 그리고 응답자 구성을 보면 편파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응답자 중 26%는 공화당원이고 41%가 민주당원, 33%는 정당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적 성격을 띤다고 답했어요. 기본적으로 CNN 여론 조사에 응한 사람 중 민주당원이 많았던 거예요.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의 편향성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죠. (중략)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형 미디어 회사에 속한 기자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형성하는 것 같아요. 독과점 이해집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백악관 기자실도 대형 미디어 기자들만 자리에 앉을 수 있잖아요. 기자실 자리가 40여 개 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소수의 대형 미디어들이 몇십 년 동안 기득권을 잡고 앉아 있는 거죠.

 

박소령: 질문이 있어요. 이번에 트럼프 정부가 기자실을 백악관 밖으로 빼낸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조진서: 그것도 노무현 정권 때랑 똑같은 일이죠. 노무현 정권 전에는 기자들이 정부 부처 사무실까지 허락 없이 들어가 공무원에게 막무가내로 질문을 할 수 있었어요. 다만 기자실에 등록된 매체의 기자에게만 접근 권한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경우, 약 30~40명만 접근할 수 있어요. 그들은 공무원 책상 앞까지 쳐들어 가도 돼요. 가서 담당 공무원한테 차 한 잔 하자고 하면 되는 거예요. 쓰레기통 뒤지고 책상에 놓인 서류를 훔쳐보는 기자도 왕왕 있었어요.

 

하지만 풀(pool)에 등록되지 않은 기자는 아예 건물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사실 말이 안 되잖아요. 무슨 기준으로 차별을 하나요. 건설교통부의 경우, 부동산 정책처럼 민감하고 큰돈이 걸린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정보의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은 이 기자실 시스템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구독자가 늘기 시작한 인터넷 매체의 경우, 진보 성향 매체가 많았는데 그들이 등록하지 못하도록 기득권 기자들이 막았어요. 신생 매체들이 정보 접근성에서 심각한 피해를 봤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처별로 있던 폐쇄적 기자실을 없애고, 통합 브리핑실을 만들었어요. 공무원이 직접 기자실로 와서 브리핑을 하고 기자들이 추가 정보를 요구하면 답해주기로 했어요.

 

그때 보수 성향 미디어(조선, 중앙, 동아)뿐 아니라 진보 매체들(한겨레, 경향)도 "이건 언론 탄압이다!"라고 외치면서 다 같이 노무현 정부를 보이콧(boycott)했어요. 세종로 정부청사 1층에 통합형 브리핑실을 제법 잘 만들어 놓았는데, 막상 가보면 저 혼자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가 졌죠. 조중동을 비롯해서 평소에는 우호적인 한겨레, 경향까지 다 들고일어나니까 상대가 안 되는 겁니다.

 

아까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물론 백악관에 기자들이 출입하지 못하는 것 자체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십몇 명의 기자에게만 독점적 권력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에는 찬성합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했다가 실패했듯이, 트럼프도 그 생각을 관철시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좌우 상관없이 뭉치면 그 힘이 엄청나거든요.

 

다만 영국 쪽은 좀 다릅니다. 가장 부수가 많은 신문은 타임(Time)도, 가디언(The Guardian)도 아니고 더 선(The Sun)입니다. 신문지 절반 크기의 타블로이드(tabloid)* 판이죠. 타블로이드 쪽은 제가 좋아하는 샤이(shy)**한 서민을 응원하는 신문사가 많아요.
* 타블로이드 신문의 발상지는 영국이다. 가로 28cm, 세로 43cm 크기의 판형이며, 대판형(broadsheet) 신문의 절반 크기다.
** 여러 사정으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숨은 지지층 - PUBLY

브렉시트 후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미러(Daily Mirror)와 더 선(The Sun)의 반응 ©각 사

그래서 브렉시트(Brexit)가 일어났을 때, 주요 매체(broadsheet paper)들은 지구 종말이 온 것처럼 슬퍼하고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브렉시트를 응원했죠. 유권자 중 평소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고 있는 비엘리트층 50%의 목소리를 타블로이드가 대변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도 타블로이드가 조금씩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반대 목소리를 내는 타블로이드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 사람들 모두가 뉴욕타임스나 CNN을 보고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실제로 뉴욕타임스가 아니라 싸구려 타블로이드 매체나 폭스 뉴스를 보는 사람도 매우 많은데 말이죠.

 

제가 이런 문제 인식을 갖고 '트포코'를 만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쓰니 트럼프에 관한 제보들이 쏟아졌어요. (중략)

'트럼프 코 코리아' 배너 / 일러스트© 장뚜껑 화백

'트럼프가 온다'
조진서 기자가 '트럼프 포 코리아'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트럼프 당선 후 러스트 벨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이강원 정치 컨설턴트는 2016년 미국 대선의 다섯 가지 오해와 더불어 트럼프가 한국에 미칠 정치적 영향을 말합니다.

[자세히 보기]

2016년 미국 대선의 다섯 가지 오해 중 하나

이강원: 클린턴이 경제를 무시해서 망했다? 이런 말들이 많죠. 러스트벨트(Rust Belt)*에 있는 제조업 노동자, 저학력 블루칼라 유권자의 일자리 문제를 무시해서 망했다고들 하는데,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 미국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불황을 맞은 지역을 이르는 말.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등 제조업이 발달한 미 북부와 중서부 지역을 가리킨다. - PUBLY

 

참석자: 클린턴의 남편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이강원: 선거가 끝나고 이런 기사가 나왔어요. "클린턴은 빌 클린턴 말을 들었어야 했다."

클린턴은 이번에 정체성을 부각하는 전략(identity politics)으로 캠페인을 했어요. 예를 들어 클린턴이 언급한 동성결혼이나 여성인권 등의 이슈가 많은 관심을 받았죠. 그리고 이 전략으로 선거를 이끌었기 때문에, 무시당했던 제조업 노동자의 표를 모으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있어요.
그러나 그 의견은 사실이 아니에요미국 미디어 VOX의 기사를 보면, 클린턴이 자신의 연설에 사용한 낱말의 빈도를 볼 수 있어요. 일자리(job), 경제(economy)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고, 실제로 러스트벨트에서 꽤 오랫동안 캠페인을 하면서 돈도 엄청 썼어요. 광고도 많이 했고요. 전략 자체는 옳았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약점도 인지했고요.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는 클린턴 캠페인의 메시지 사용 빈도와 갤럽(Gallup)의 유권자 메시지 인지 정도를 분석했다. 그리고 캠프의 전략과 유권자의 메시지 수용 간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Javier Zarracina/Vox

하지만 유권자들이 인식한 클린턴은 캠프의 전략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유권자가 각 후보에 대해 선거 기간 동안 떠올린 단어들. 클린턴은 '이메일'이 압도적으로 많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다. ©Gallup

갤럽(Gallup)에서는 유권자를 상대로 각 후보에 대해 선거 기간 동안 떠오르는 단어를 조사하여 빈도수를 정리했어요. 그러니까 유권자 관점에서 바라본 캠페인이죠. 자료를 보면, 사람들이 클린턴에 대해 받아들인 것은 결국 이메일 스캔들인걸 알 수 있어요.

 

이건 클린턴이 가지고 있던 전략의 문제보다는 미디어가 어떻게 클린턴을 조명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에요. 동시에 클린턴이 이런 인식 문제에 대비를 잘하지 못했죠. 이메일 스캔들의 경우 부패 이슈가 매우 강한데, 그 약점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어요.

 

부패 문제에 더 취약한 트럼프의 경우, 부패 이슈보다는 성추행 스캔들 같은 이슈에 휘말렸죠. 트럼프는 캠페인 선거나 토론회에서도 계속 클린턴의 이메일 사건을 부각했거든요.

각 후보의 미디어 노출량 분석 ©Gallup

역시 갤럽 자료입니다. 트럼프와 클린턴이 미디어에 노출된 양(coverage)을 분석한 그래프인데요, 맨 마지막을 보면 클린턴이 죽 올라가면서 끝났죠. 그런데 저 그래프가 유리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이메일 스캔들이 터지면서 클린턴의 미디어 노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그리고 투표 막바지에는 클린턴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사실상 클린턴이 처음부터 전략 방향을 잘못 짰다고 볼 수도 있어요. 2016년 이전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정부에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고,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트럼프가 온다]

트럼프 시대,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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