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인생을 배우는 방법 중 하나예요

🗨️ Editor's comment

저자 박상훈 님은 마케팅을 주제로 퍼블리에 4편의 글, 브런치에서는 150편의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상훈 님의 글을 읽다 보면, 일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글에도 묻어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킬이나 공략집이 넘쳐나는 요즘,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름길을 쫓기보다 본질을 먼저 고민하는 분이라면,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은 어떠실지 궁금했습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인터뷰를 주목해 주세요!

  • 독립 디지털 마케팅 회사 대표가 말하는 나의 본진을 찾는 과정
  • 일하면서 느끼는 불안,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는 글쓰기의 시간
  • 깊이 생각하고, 생각의 겹을 쌓으면서 남다른 결과물을 내는 법

🎤Interviewee 

디지털 마케팅 회사 플랜브로 대표 박상훈 > 프로필 더 보기

퍼블리 독자분들께 간단히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업의 성장과 사업을 운영하는 개인의 성장을 돕기 위해 열심히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의 분야가 마케팅이고요. 처음에는 컨설팅 + 대행 위주였는데, 제 생각을 조금 더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요즘은 글도 쓰고 강의도 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2017년에 첫 직장에 들어간 이후로 F&B, 교육, 여행 카테고리 기업에서 세일즈, 마케팅 일을 해왔어요. 이름만 들으면 아는 큰 기업부터 아무도 모르는 극초기 스타트업까지 골고루 경험하고 지금의 회사, 플랜브로를 시작했습니다. 

 

사회초년생 때와 대표가 된 지금, 어떤 점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바뀐 게 너무 많죠. 제가 최근에 '시야'에 관련된 글을 썼잖아요? 그 글은 마케팅에 대한 글이긴 하지만, 일 자체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는걸 요즘 느껴요. 

 

초년생 때는 진짜 경주마였어요. 나에게 떨어진 일만 생각하면서 앞만 보고 막 달려 나가는. (웃음) 인센티브 제도 같은 게 있었는데, 그런 게 걸리면 또 1등 하고 싶은 욕심이 들잖아요. 그럼 매출 1등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거예요. 열정이 넘치다 보니까 조직 안에서 누가 속도를 못 따라오거나 옆 부서에서 뭘 안 도와주면 '이걸 왜 못 하지? 속이 터진다 진짜!' 막 이랬어요. (웃음) 돌이켜보면 참 오만한 생각이죠. 

 

지금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고객사들 상대하면서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거든요. 제 3자 입장에서 한 기업의 실무자분들을 다 만나보기도 하고, 여러 대표님들의 어려움이나 고민도 듣고요. 작지만 제 회사를 운영하는 경험까지 함께 쌓이면서 시야가 점점 넓어졌어요.

 

사실 어디에나 제약은 있잖아요. 어느 조직을 가나 물리적인 한계는 있고, 오랫동안 형성된 그곳만의 분위기도 있고,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부딪히는 지점도 있어요. 이런 것들을 다 피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제약을 포용하고, 그 안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마케팅뿐 아니라 일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 자체가 많이 바뀐 거죠.

 

시야가 넓어지면 약간의 여유도 생기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일이 뜻대로 안되면 조급해지고 그랬어요. 지금은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해요. 일이 막히면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이게 안되네. 그럼 내가 뭘 더하면 이 일을 되게 할까?' 내 뜻대로 안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또 열심히 생각해내고 실행해요. 조급할 필요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그냥 계속 하는거예요. 종료될 때까지는 제 일이니까. 

 

사회초년생 때부터 일 욕심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상훈 님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을 많이 하지만 일하는 것 자체를 엄청 좋아하진 않아요. 힘들잖아요. 어쨌든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니까요. 돈을 버는 일은 다른 사람의 만족과 연결되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일 덕분에 너무 행복하고 막 이렇게 되긴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건 취미에 가깝겠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마케팅'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케팅을 하면 할수록 잘 사는 법을 배운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개인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일이라.

 

마케팅을 통해 사는 법을 배운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케팅을 잘하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어야 해요. 나를 선택할 상대방 (고객)의 입장도 깊게 생각해야 하고요. 그래야 이 일을 잘할 수 있어요. 

 

보통 처음에는 마케팅 자체에 대해 고민해요. 그런데 마케팅에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또 개선할수록 결국 그 앞단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제품이나 서비스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거죠. 스스로를 다시 마주하는 이 과정을 자꾸 피하면 마케팅을 아무리 해도 성과가 안 나와요. 그래서 지금은 일을 할 때 마케팅 과정에서 발굴한 인사이트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도 같이 고민하게 됐어요. 

 

생각해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잘 살아가려면 자기 객관화를 잘해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해요. 내 일이 겉돌지 않으려면 단단한 실체가 있어야 하고요. 그러다 문득 나 스스로의 문제를 직시해야 하는 순간도 오죠. 

 

브랜드와 마케팅을 같이 공부하다 보면 사는 것과 비슷한 면이 많아서 공부할수록 재밌어요. 여기에서 위안을 많이 받는 편인데… 그래도 역시 일을 많이 하는 건 힘들긴 해요. (웃음) 쉽지 않습니다.

나의 본진을 찾는 과정, 글쓰기

일을 하면서 얻는 장점도 많지만 일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요. 위축되기도 하고, 좌절하거나 불안함을 느낄 때도 있는데, 상훈 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으세요?

쉽게 위축되지 않는 편인데, 가끔 불안감을 느낄 때는 있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결국 다른 기업이나 개인이 더 잘 성장하도록 돕는 거잖아요. 정말 열심히 하다가도 '이게 내 것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길면 2~3년, 짧으면 3~4개월씩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을 해요. 계약이 종료되면 저는 다른 프로젝트를 하죠. 일정 기간 동안 아무리 제가 노력을 쏟아부어도 어쨌든 그 사업은 클라이언트가 꾸준히 이어가야 할 사업이거든요? 저는 중간 단계에 잠깐 들어가서 막힌 부분을 풀어드리고,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드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실 수 있게 옆에서 돕는 조력자의 역할인 거죠. 문득 '내 본진, 내 알맹이는 꾸준히 커지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직장에 속해 일하면 '이게 온전한 내 일이 맞나'라는 생각이 가끔은 들잖아요. 누군가는 이런 불안감 때문에 부업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도 하고요. 컨설팅이라는 제 사업의 특성 때문인지, 저는 플랜브로라는 제 회사 소속으로 일하면서도 이런 불안감이 조금씩 올라오더라고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털어버리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런 불안을 극복하려고 시작한 게 글쓰기였어요. 얼마 전에 유튜브를 보는데, 홍진경 씨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이 잘 된 게 본인이 이룬 것 중에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걸 듣는데 이상하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어요. 

 

연예인이란 직업도 결국 내 노력도 노력이지만 누군가가 찾아줘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 찾는 사람을 위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개인의 채널은 온전히 자기의 일터인 거죠. 물론 그 채널도 잘 되기 위해서는 타인이 봐줘야 하긴 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의 생각이 더 담기는, 내가 주인인 곳이잖아요. 단순히 돈 버는 일만 담는 곳이 아니라 내 가치관을 드러낼 수도 있는 공간이고요. 저도 글을 쓰기 시작할 시점에 이런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계속 남의 일을 대신 해준다고만 생각하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공간을 하나쯤은 만들자. 거기에는 일 이야기도, 나를 드러내는 이야기도 함께 해보자. 열심히 '내 생각'을 축적해서 내 알맹이를 더 크고 단단하게 만들자.'

그래서 브런치에 저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내가 전념하고 있는 내 일, 내 생각, 내 가치관을 견고하게 쌓아두기 위해서요. 그래야 내가 흔들리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글을 쓰다 보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요. 글을 한 편, 한 편 내놓으면서 느끼는 저만의 뿌듯함이 있었거든요. '내가 무언가를 또 기록했구나. 내가 추구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발견할 때마다 기쁘고 즐거웠어요. 초반의 그 즐거움 때문에 지금까지 꾸준히 기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이걸 습관으로 만드는 게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상훈 님께서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꾸준히 쓰다보니까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생겼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의 주제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생기고요. 

 

저는 여러 카테고리를 넘나들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다양한 소비 시장을 번갈아서 보다보면 가끔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해요. 그 당시 맡은 프로젝트에 바로 적용할 때도 있지만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과 맞지 않아 적용하지 못한 것들도 꽤 많아요. 다른 사업을 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이 그냥 버려지는거죠.  

 

언제부터인가 이게 너무 아까운 거예요. 이것도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결과물인데, 해당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폴더에만 넣어놓는 건 낭비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걸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핵심만 끄집어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적용할 수 있도록  다듬고 그걸 글로 써서 발행했죠. 글로 공유해두면 다른 누군가가 제 생각들을 가치있게 쓸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브런치를 통해 저희 플랜브로를 알게된 후 웹사이트를 통해 문의를 주시는 분들도 더 많아졌어요. 개인적인 협업 제안도 조금씩 받고 있고요. 글을 쓰고 나누는 일이 나의 불안을 해소하는 역할도 해주지만, 제가 발견한 무언가를 널리 퍼트리는 수단이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글은 꾸준히 쓸 것 같아요. 물론 빼먹는 날도 있겠죠. 진짜 바쁘면 몇 주 못 쓸 수도 있잖아요. 저는 무조건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게 꾸준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번 놓치면 끝이야!'가 아니라 '한동안 못썼지만 또 써야지'가 현실적인 꾸준함 아닐까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 뭐든지 더 꾸준하게 하는 것 같아요.

지름길은 없다

상훈 님의 글에서 뿌리가 되는 메시지는 '지름길은 없다'인 것 같아요. 진정성, 꾸준함이 본질이라는 건 알지만, 요즘은 빠르고 가성비 있게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잖아요. 상훈 님은 어떤 계기로 '정도를 걷는 것'이 중요하다 느끼셨던 걸까요?

많이 실패해 봐서 그래요. 마케팅 스킬이나 무슨무슨 법칙을 따라 하다가 시행착오를 겪은 적이 많거든요. 물론 치트키가 통하는 영역도 어쩌다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여러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산업 카테고리는 물론이고 각 조직의 특성, 추구하는 가치도 다 다른데 거기에 '어디서 통한다던 스킬'을 적용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걸 금방 알게 됐어요. 

 

지금은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아예 백지부터 시작해요. 제가 마케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그 클라이언트가 노리는 타깃 고객의 성격이나 그 기업 자체에 대해선 잘 모르잖아요. 그걸 먼저 제대로 파악하려고 애쓰는 작업부터 하는 거죠. 

 

'비슷한 제품에서 통했으니까 여기서도 통하겠지'하면 오히려 일이 더 잘 안 풀려요. 저도 괜히 쉽게 가려다가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한 적이 많아요. 이런 경험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달라졌어요. 

 

물론 프로세스는 있어요. 제품과 시장을 스터디할 때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고, 고객은 어떻게 구체화해야 하는지,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등 기본적인 가이드는 만들어놔요. 하지만 그 외 부분,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그 프로젝트에 필요한 '통하는 기술'은 그때그때 만들어 나가야 해요. 안 통하면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고요.

이 뿌리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틀리면 돌아올 데가 있어야 하잖아요. 

돌아가서 다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 보고, 그걸 실행해 보고, 어느 정도 답이 찾아지면 체계화해서 고객사 내부 직원분들께 더 쉽게 알려드리고…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세상에 어디에나 통하는 스킬 같은 건 없구나'라는 걸 점점 더 확신하게 됐어요. 저희에게 그것만 요구하는 분들과의 일은 대부분 거절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성공 스킬이나 법칙 같은 건, 정말 실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 때문에 탄생한 거라고 봐요. 빠른 길을 찾는 사람들의 욕망과 그 사람들을 노리는 욕망이 부딪히면서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한 거지, 어딘가에 숨겨진 '만능 스킬'이라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공유해 주는 건 아닌 거죠. 그래서 제가 쓴 글들에도 본질을 탄탄히 다져야 한다는 기조가 있는 거고요.

 

어떤 일을 할 때 스킬과 공략집에 의존하기보다, 깊게 고민해야 한다는 거네요. 상훈 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일을 잘한다'라는 것도 이 기조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을까요? 

일을 잘한다는 건 생각을 겹겹이 쌓을 줄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게 트렌드잖아요. '깊이 고민하면 뭐가 나와?'라는 분위기가 있는데, 저는 작은 업무를 할 때도 서너 번 이상 생각을 거듭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업무량이  실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한 번 생각해서 100개를 하는 것과 10개를 하더라도 3~4번 고민해서 하는 건 딱 봐도 차이가 나요. 어떤 결과물을 보면 '이 사람, 생각을 많이 했겠구나'라는 게 보이잖아요. 반대로 '한 10분 고민했겠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결과물도 있죠. 

 

작은 일에서도 자기 생각을 쌓아본 사람들이 나중엔 깊은 생각을 빠르게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왜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냥 내뱉는 말에 전부 감탄이 나오는 사람. 깊은 생각이 습관이 되면서 내공이 축적되는 거죠. 반대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초안 같고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결과물을 내놓아요. 대충 한 느낌의 결과물, 고민이 담기지 않은 결과물만 가져오는 사람이 조직에 있으면 누군가는 그 사람의 구멍을 메꾸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요. 결국 '빨리빨리만'하면 더 늦어져요. 

 

빠르게 해내는 것만 능력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금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니까 최대한 많이, 깊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조직에서도 이 부분을 배려해 줬으면 하고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도 결과물이 조금 부족하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초반에 이렇게 하다 보면 실력이 빨리 늘어요. 그런데 애초에 빨리빨리 제출하는 습관을 들이면 그걸 고치기가 더 힘들어요.

일을 잘하고 싶다면 작은 것 하나라도, 

사소한 업무라도 내 생각을 쌓아보세요. 

내가 한 번에 생각해낸 건 다른 사람들도 한 번에 생각해 내요. 거기서 한 번 더, 두 번 더 생각해 깊이를 더해보세요. 아마 걱정하는 것만큼 일이 늦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생각을 거듭하면 실제로 많은 것들이 해결돼요. 꼼꼼함도 챙길 수 있고, 기존 히스토리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고, 스스로 문제를 재정의해서 남들은 찾아볼 생각도 못 했던 레퍼런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죠. 이렇게 나온 결과물들에 사람들의 '와우'가 나와요. 

 

만능 치트키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쉽게, 빠르게 하려는 마인드를 내려놓으세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어떤 사람의 성과 뒤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고민이 축적돼 있어요. 이걸 건너뛸 수 있는 게 진짜 존재한다면 성공한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거예요. 결국 효율은 실력에서 나오고, 그 실력은 내 시간과 내 고민이 축적되어야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훈 님께서도 일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분이신 거 같아요. 일, 왜 잘하고 싶으신가요? 일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게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도를 걷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미 그런 길을 걸어 성공하신 분들의 경험담, 혹은 그런 길을 걸으면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더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어요. 지름길을 찾는 수요를 넘어서면 좋겠어요. 이런 분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빠른 성장에 더 도움이 되니까요.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분들에게 정말 좋은 배움을 얻고 싶어요. 그런 분들이 만든 결과물은 한 명의 소비자로서도 기꺼이 돈을 내고 보거나, 배우거나, 사용하고 싶고요. 돈이 안 아까운 만족스러운 소비 뒤에는 대부분 누군가의 이런 노력들이 숨겨져 있더라고요. 

 

물론 빠른 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이기기는 쉽지 않겠죠. 그냥 제 바람이에요. 그래서 저부터 그 길을 가보려고 하는 거예요. 기술의 발전이나 트렌드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에요. 필요한 건 빠르게 습득하되, 그걸로 인생의 지름길을 찾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희망은 품지 말자. 이런 노력이 계속 축적되면 언젠가는 제가 훌륭한 예시가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우직하게 했더니 결국 더 빠르게 성장하더라'라고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제가 일할 때마다 늘 되뇌는 문구가 있어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이동진 평론가 님의 이야기인데, 정말 공감 가는 한마디였어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죠. 저는 가까운 예측도 자주 틀리더라고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긴 목표를 세우고 멀리 내다보는 이유는 오늘 하루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인 것 같아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오늘의 일을 성실히 해냄으로써 미래에 원하는 모습을 이룰 수 있다면 그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요즘 저는 장기적으로 '반드시 이걸 하겠다!' 하는 생각은 덜 하는 편이에요.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자, 오늘의 일을 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신 하루를 성실하게 살기 위해 몇 가지 키워드는 가져가려 해요.

 

너무 먼 미래 말고, 앞으로 몇 년은 열심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싶은 주제를 정하는 거죠. 마케팅 쪽을 예를 들면, [퍼포먼스 마케팅 예산을 줄이면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던가, [인공지능 같은 최신 기술로 더 인간답게 마케팅하는 방법] 등등. 쉽게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테마들을 정해놓고 계속 파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깊게 고민했던 주제들 중에서 내가 특히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도 있겠죠. 시기적절하게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들어올 수도 있고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정한 테마들을 성실하게 공부하다 보면, 이와 관련된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하루하루는 알차게 채워가면서 기회를 기다려보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나만의 관점을 가지려면 '나'를 먼저 알아야 할 텐데요. 혹시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라는 고민을 가지고 계신 독자분들께 추천해주실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자주 고민하는 문제인데요. 사실 저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어요. 조언을 드리기에는 저도 부족한 사람이라,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을 공유하면 어떨까 싶어요. 

 

〈도파미네이션〉이라는 책에 이어폰 없이 못 사는 환자가 나와요. 아주 잠깐의 고요와 정적도 참을 수 없어서 계속 노래를 듣는 거예요. 이 환자에게 의사가 딱 한 달만 이어폰 없이 지내보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지루함이란 지루하기만 한 게 아니에요. 끔찍할 수도 있죠. 뭔가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문제 앞에 우리를 떠밀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지루함을 견뎌내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기 위한 공간을 만든다면, 그 공간을 채우는 건 결국 '나'일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찾으려고 유튜브를 보고 강연을 듣는데, 그것도 결국은 외부에 있는 자극이잖아요. 타인의 조언을 듣는 것도 어쩌면 자극이에요. 뭔가를 밖에서 열심히 찾으면 찾을수록 지루함은 줄어들겠죠. 그러면 무언가를 발견할 기회, 새로운 생각을 형성할 공간도 같이 줄어들어요.

 

저도 예전에 어렴풋이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거든요? 콘텐츠를 너무 많이 보니까 내 생각보다  더 새로운 남의 생각만 찾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주 조용한 상태로, 핸드폰도 끄고 노트북도 치우고 딱 종이와 펜만 두고 가만히 있어봤어요. 곧바로 무슨 생각이 날 줄 알았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질문을 써봤어요. 예를 들면, '지금 불안감이 몰려오는데 뭐 때문인 것 같아?'라고 쓰고, 거기에 대한 답을 썼어요.

 

그렇게 몇 가지 쓰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질문을 적지 않아도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또 적었어요. 생각이 전환되는 것 같으면 크게 가로줄 한 번 긋고, 밑에 또 그 생각의 제목을 붙여서 적고요. 그렇게 적다 보니까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어요. 10장을 썼더라고요. 썼던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까 거기에 흐릿하게 제가 있었어요. 어딘가에 품고 있던 좋은 아이디어도 있었고요.  

 

어쩌면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일기의 효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되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 굳이 매일 쓰려고 하지 않아요. 정말 머리가 지쳤을 때, 마음이 좀 힘들 때 아주 고요한 지루함을 만들어봐요. 아무것도 침범하지 못하는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유일하게 남은 저에 대해서 종이에 적어봐요.

 

처음에는 오래 견디기 힘들 거예요. 최소한 몇 개라도 나를 인터뷰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써보세요. 그걸 가끔 해보면서 시간을 늘려보는 거죠. 내가 생각을 잘 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나보다 남의 생각이 내 머리에 더 많이 차있다는 느낌이 들 때 한 번씩 해보는 거죠. 

 

제가 처음 썼던 노트를 보면 정말 엉망진창으로 적혀 있어요. (웃음) 정말 솔직하게 쓰다 보니 '이건 다른 사람에게 못 보여주겠다' 싶은 내용도 있고요. 그래도 이건 나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잖아요. 어쩌면 그 어떤 책이나 강연보다 이게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