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우리끼리 사수가 되어줘야 했어요

🗨️ Editor's comment

 

'쪼렙 서비스 기획자'라는 필명을 가진 저자 두 분은 서비스 기획을 주제로  퍼블리에 3편의 글을, 브런치에 52편의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브런치 글을 보고 퍼블리 저자를 제안드리기도 했는데요.

ⓒ쪼렙 서비스 기획자 브런치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진심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을 쓰시는 두 분과 협업하며, 늘 궁금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일하시기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일과 관련된 글을 쓰시는 걸까?'

Interview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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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티클로 익숙한 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퍼블리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지금 어떤 일을 하시나요?

쪼렙 A(이하 A🐼): B2B 서비스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고, 기획자로 일한 지 3년 조금 넘었습니다.

 

쪼렙 B(이하 B🐻): 저는 A🐼와 다른 회사에서 B2C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어요. 저도 4년 차입니다!

 

Q. 저도 처음에 그랬지만, 대부분의 독자가 '쪼렙 서비스 기획자'를 한 명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어떻게 두 분이 같이 활동하게 되신 건가요?

A🐼: 대학교 때 만난 친구 사이에요. 과 동기인데, 동아리도 같이 하고, 교환학생도 같이 갈 정도로 붙어 다녔답니다! 같은 직무로 일하게 된 게 저희도 신기해요.

 

B🐻: 저희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서비스 기획과 관련된 콘텐츠나 교육이 많이 없었어요.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회사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목마름을 느껴서 저희끼리 스터디를 한 게 첫 시작이었어요. 공부한 걸 글로 발행해야 더 책임감을 갖고 공부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글로도 그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Q. 두 분이 친구이자 동료네요! 일에 대한 글을 쓰시면서 실제로 일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때도 있으신가요?

A🐼, B🐻: (동시에) 진짜 많아요!

 

A🐼: 도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진짜 몰라서 공부했던 거니까 일할 때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최근에는 옛날에 썼던 글이 다시 도움이 된 적도 있었어요. '캡차(CAPTCHA)*'라는 걸 공부하고 기고한 적이 있는데, 서비스 개선을 궁리하다가 그 내용이 딱 떠올랐었어요. 공부하고 기록했던 게 자산이 돼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됐구나 싶었어요.

* 캡차(CAPTCHA): 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의 약자로, 로봇과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기술. 보통 특정 웹페이지에 로그인할 때, 찌그러진 글자를 입력하거나, 전봇대를 찾는 작업 등으로 알려짐.

 

Q. 일을 몰라서 공부했던 게 자산이 되어 일을 더 잘하게 되신 점이 멋있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두 분 쪼렙이 아니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럼 두 분은 일하실 때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B🐻: 제가 세운 가설이 진짜 맞았을 때 성취감이 커요! 기획자는 프로젝트의 완전 앞단부터 설계하고 끝까지 책임을 져야 되잖아요. 기획·디자인·개발·QA 다 거쳐서 나온 결과물이 제가 생각한 가설과 맞아 떨어지면 짜릿해요. 늘 새로워요. 도파민이 막 터져요.

 

A🐼: 저는 약간 제 논리가 탄탄해서 모든 사람들이 설득되어 일이 착착 진행될 때 가장 도파민이 뿜뿜하더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이유, 방향을 다들 납득하고 그대로 일이 진행이 됐을 때 희열을 많이 느껴요.

그런데 동시에 논리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해요. 아무래도 쫀쫀한 논리를 세우려면 집중도 깊이 해야 하니까요. 이 순간이 기획의 꽃이면서도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하고 나면 희열을 느끼고…

 

내가 나를 봤을 때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Q. 일 자체보다도 '조직에서 일할 때' 우리가 다들 겪는 어려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으로는, 두 분 다 내 일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그런 순간에 현타를 느끼시는 것 같고요. 그러면 이렇게 멘탈이 흔들릴 때, 어떻게 털어버리려고 하세요?

B🐻: 저는 멘탈이 흔들리면 "어우 힘들어" 하면서 그냥 흔들려요! 막 속에 쌓아두지는 않아요. 다만 일할 때,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를 항상 체크해요. 

 

'위에서 하라는 거니까 하자', '다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냥 하자'의 마인드로 쉽게 생각하면 결국 제가 후회하더라고요.

 

반대로 '진짜 내가 생각하기에 최선이 맞나?'를 체크하면, 일이 잘 안 풀려도 크게 멘탈이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그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당시 제가 그걸 최선이라고 판단한 걸 알잖아요. 

Q. 그런 상황에서도 일을 되게 열심히 하시고 또 이렇게 따로 스터디하실 정도로 되게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크시잖아요. 사실 그냥 하던 대로, 남들 하는 만큼만 해도 될 텐데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어디서 온 걸까 궁금했어요.

B🐻: 큰 명분이나 대의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제 성향상 그렇게 해야겠더라고요. 저는 '그냥 평범한 수준으로만 하자' 이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하는 성격 때문에 그냥 더 공부하고 더 하게 돼요.

 

A🐼: 저도 비슷해요. 최근에 〈싱스트리트〉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같은 맥락인 것 같아서 내용을 살짝 공유해볼게요. 

ⓒ영화 <싱스트리트>

밴드를 결성한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뮤직비디오를 찍는데, 그냥 물에 빠지는 척만 해도 됐거든요? 근데 이 여자친구가 진짜 바다에 뛰어든 거예요. 놀란 주인공이 왜 수영도 못하는데 바다에 뛰어들었냐고 하니까 "적당히 하는 건 없어"라고 답해요.

 

그 장면에서 감명받았어요. 영화 전체의 메시지도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 훔친 자동차처럼 인생을 이끌어 나가라"거든요. 

저희도 대강 얼레벌레 넘기려고 하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일이든 글이든, 노는 거든!

자아가 단단한 사람이라면 못해도 "난 나야!"라고 마이웨이 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단단하진 않거든요. 뭔가를 못하면 '내가 못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그래서 잘해야만 하고 그 잘하는 게 내 모습인 거죠. 그래서 이게 욕심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B🐻: 맞아요. 내가 봤을 때 내가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Q. 나를 위해 뭐든 제대로 하시는군요! 두 분 다 일에 대한 욕심이 있잖아요. 그럼 "제가 그 일 하겠습니다!"라고 먼저 자원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B🐻: 자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일인 경우도 있긴 한데, 누군가는 무조건 해야 하는 일도 자원합니다. 

 

예를 들어서, 데이터를 관리한다거나 여러 명의 기획을 취합한다거나 등 티는 안 나지만 힘든 업무들이 있거든요.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자원해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애초에 정말 하고 싶은 업무는 제가 발제를 해요. 셀프 자원인 거죠. 그렇게 일하면 처음부터 동기 부여도 되고 주체적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A🐼: 저도 자원을 열 번 한다 치면, 열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정말 재밌어 보여서 자원한 거예요. 사실 직장을 다니게 되면 정말 하고 싶은 일도 있지만 그냥 해야 하는 일들도 있잖아요. 눈 딱 감고 '그래, 그냥 내가 하자' 하고 하게 되는 일이 많죠.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멋진 내가 되길

Q. 앞서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뭐든 잘하고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혹시 요즘 흔들리는 순간은 없으셨나요? 최근에 일과 관련해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A🐼: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고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3년 차여서 하게 된 고민이 있어요. 특정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넓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이 똑같은 이 역량을 가지고 다른 데 갔을 때도 동일하게 내가 성장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돼요.

 

왜냐하면 어떤 분이 저한테 "스펙이 네 역량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냐면 그 스펙이라는 게 기획에서는 기능의 전반적인 동작 방식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근데 그게 네가 히스토리를 많이 아는 게 너의 역량이 되어버리면 나중에 다른 데 가서는 그 역량을 쓸 수 없는 거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문제 해결 역량이라든가 서비스 기획에 대한 인사이트가 필요한 건데,  제가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 건지 이런 걸 좀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B🐻: 저도 비슷해요. 한 서비스만 계속 3~4년째 맡다 보니까 당연히 배경 지식이 많아지거든요. 어떤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무산됐다는 등의 히스토리까지도요. 

 

친구들이 가끔 저한테 '야, 너네 서비스는 이 기능이 왜 없어?' 하거든요. 저는 그 히스토리를 다 알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당연히 그걸 하고 싶지. 근데 이게 더 중요해"처럼 자꾸 제가 안 되는 이유를 대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의 이런 모습이 보기 싫은 거예요. 도전하거나 될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이제 '이래서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좀 마음에 안 들어요. 

 

Q.  4년 차에 접어든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어떻게 더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같은 고민을 먼저 해본 독자분들이 댓글을 남겨 주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두 분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세요?

B🐻: 두 가지인데요. 첫째로,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일하다 보면, '~에 대한 업무는 진짜 이 사람한테 물어보면 다 안다' 생각이 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 분처럼 일하고 싶어요.

둘째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도요. 제가 다른 부서에 기술적으로 구현이 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안 된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 "너네가 원하는 게 사실 이거 같은데, 지금 너가 말하는 대로는 안 되고, 이렇게 조정하면 될 것 같아"라고 하는 분이 계세요. 후자의 분처럼 문제를 잘 정의하는 것도, 내 직무와 관련된 해결책을 딱 제안하는 것도 닮고 싶은 모습이에요.

 

A🐼: 저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요. 본인만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따라 프레임을 나누고, 그 프레임에 따라 일하는 걸 본받고 싶어요. 그리고 본인의 논리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주고 전파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보물상자처럼 자기만 논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일이 진행이 안 되잖아요.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B🐻님은 '문제 해결'이라는 키워드를, A🐼님은 '논리'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여기시네요. 앞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과도 같은 결인 것 같아요. 그럼, 실제로 일터에서 만난 분 중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닮고 싶은 분도 계신지 궁금해요.

B🐻: 운 좋게도 회사에 '저렇게 되고 싶다' 싶은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의 첫 번째 공통점이 자기 일에 되게 주인 의식과 책임감이 있고 그러면서도 주위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일도 너무 잘하는데 주니어를 살피면서 '지금 이 친구가 뭐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걸 더 도움을 줘볼까?'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주위 사람들을 챙기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가 좋아하더라고요.

 

두 번째 공통점은 유머 감각이에요. 일할 때 힘든 걸 웃음로 승화시키는 걸 잘하시더라고요. 같이 있으면 약간 힘들어도 같이 웃으면서 이겨낼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래서 저도 일할 때 힘듦 사이에서도 재밌는 거나 약간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꼭 찾아내려고 해요. 일하면서 이상한 말 진짜 많이 해요. 동료들이랑 같이 딱 그냥 희로애락을 다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동료들과 주고받는 짤 

A🐼:  일도 잘하고 사람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분이 계세요. 3년 전, 제가 지금 회사의 인턴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 팀장님이셨던 분인데요. 지금은 임원이 되셨는데, 그분과 제 동기가 어쩌다 식사를 하게 됐어요. 그분이 제 동기한테 A는 잘 지내냐 하면서 'A한테 진짜 맞는 포지션이 있는데 추천을 해주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저는 3년 전에 인턴으로 한 6개월 일했을 뿐인데, 어떤 직무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파악하고, 커리어 고민도 같이 해주시는 게 정말 세심하게 사람을 챙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남몰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분이에요.

 

B🐻: 당연히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만, 어쨌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도 잘하고 사람도 잘 챙기는 분이 저절로 롤모델이 되는 것 같아요.

'할 거면 제대로' 하는 마음

신입 시절,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주니어 기획자에게도 레퍼런스가 되는 콘텐츠까지 쓰게 된 두 분.

 

인터뷰에서 '뭐든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다'라는 말씀이 쪼렙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존재 자체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멋진 내가 되기 위해 일하는 두 분과 독자분들을 응원하며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