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열풍: 경제와 문화의 새로운 결합

💡 10분 안에 이런 내용을 알려드려요! 

  • 강력한 취향 공동체, 케이팝 및 아이돌 팬덤 문화가 대중문화의 핵심이 된 이유
  • 팬덤에서 파생되어 전 세대와 산업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최신 문화와 트렌드
  • 주변 산업이나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는 팬덤 문화에 대한 생생한 사례

[트렌드의 시작점, 팬덤 문화와 마케팅 사례] 시리즈의 콘텐츠입니다. ※

저자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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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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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재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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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밈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죠?

Q. 홍대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A.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2022년부터 유튜브에서 행인에게 지금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는지 물어보는 콘텐츠가 유행했는데요. 이 시기 아이돌 뉴진스의 하입보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해당 콘텐츠에 유독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이후 길을 물어보는 질문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답한 영상이 인기를 끌며 하나의 밈으로까지 자리 잡았는데요. 

이제는 젊은 층을 넘어 나이 지긋한 어머니까지 밈에 참여할 정도로 확산되었어요. 유행어는 한 시대를 풍미한다고 하죠. 이렇게 케이팝에서 파생된 밈이 대중적인 유행어가 될 정도로 케이팝과 아이돌 문화는 이제 우리의 일상 가까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단순한 밈 이외에도 아이돌의 메이크업이나 패션 스타일이 유행하고, 수학여행·OT·MT·축제에서 랜덤 플레이 댄스 게임을 즐기기도 하죠. 또 주말에 찾은 핫플에서 아이돌 팝업 스토어를 접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돌 문화뿐만 아니라 이를 향유하는 팬덤만의 문화로 여겨졌던 현상들이 다른 분야로 확산하거나 대중화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는데요. 강력한 취향 공동체 '아이돌 팬덤'에서 생겨난 문화들은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과 마케팅에 다양하게 녹아들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대중화된 케이팝과 아이돌 팬덤 문화가 우리의 일상과 마케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 가장 매력적인 코드이자 마이크로 트렌드를 확산해 가는 아이돌과 팬덤 문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힌트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중좋마, 중요한 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바야흐로 취향 디깅*의 시대입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각 지역의 대표 막걸리를 먹어보기 위해 전국 일주를 떠나고, 식집사(식물을 기르는 사람)는 식물에 좋은 영양분이나 장마철 대비 방법을 전문가에게 상담하기도 하죠. 뷰티를 좋아하는 코덕(코스매틱 덕후)은 1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 자신의 취향을 깊이 파고드는 행위. '채굴'을 뜻하는 영단어 '디깅(digging)'의 의미가 확장되어 마치 광산을 채굴하듯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모든 행위를 '디깅'이라 일컫게 됨.

 

또 '문토'와 '프립'처럼 취향을 기반으로 한 모임이나 술, 공간, 음악 등 특정 취향을 깊게 파고드는 뉴스레터나 공간, 서비스, 아이템도 다양하게 생기고 있어요. 누구나 하나쯤 자신의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일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취향 디깅을 즐깁니다.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일은 더 이상 유난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한때 덕질을 특이한 행위로 치부했던 인식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릅니다.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과 같은 유행어에서 알 수 있듯이 덕질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며, 현생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이 된다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취향을 깊게 디깅 하는 사람에게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분명한 취향을 가진 것이 개인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것이죠.

 

취향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이런 취향 디깅의 시대에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행동들이 새롭고 독특한 현상을 만들고, 같은 관심사로 끈끈하게 모인 취향 공동체에서 취향을 함께 향유하고 확산하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이런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는 취향 공동체가 바로 '아이돌 팬덤'입니다. 아이돌 팬덤은 자신의 취향을 깊게 파고들며 자발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커뮤니티입니다. 팬덤 안에서 형성된 독특한 문화는 이 안에서만 향유되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나 마케팅에도 큰 파급력을 미치고 있어요. 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핵심 타깃이 달리지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이 생기기도 하죠. 

 

취향 공동체를 대표하는 아이돌 팬덤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팬덤의 특징 1. 굿즈 제작부터 영업까지, 자발적 엠버서더

지난해인 2022년, 유안타증권에서 발행한 〈2022 엔터 르네상스의 시작〉 보고서가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화제였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팬덤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내어 케이팝 팬덤을 '무보수 크리에이터 집단'이라고 표현한 것이 크게 공감을 사 트위터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아이돌 팬덤은 열정적이고 자발적인 무보수 크리에이터입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활동기가 시작되면 덩달아 팬들의 하루도 바쁘게 흘러갑니다. 공식 계정에서 올려준 각종 영상과 콘텐츠를 재가공해서 트위터나 유튜브에 올리고, 직접 공연장을 찾아 무대 직캠 영상이나 고화질 사진을 찍어 올립니다. 

 

순간의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해 팬들만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매력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재가공하죠.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콘텐츠는 공식 계정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아이돌의 새로운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며, 더 많은 입덕을 부르는 떡밥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자발적인 제작 활동은 활동기가 아닐 때도 이어집니다. 과거에 올라왔던 콘텐츠를 끌어올리고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들을 찾아내기도 해요. 트위터에는 팬들이 만든 'N년 전 OOO 최애*' 계정이 활발히 운영되기도 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의미

 

또 팬들은 비공굿(비공식 굿즈)이라고 불리는 포토카드, 포토 프레임, 키링, 인형 등 굿즈를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함께 덕질하는 덕메(덕질 메이트)에게 무료로 나누거나 마플샵과 같은 굿즈 플랫폼을 통해 소정의 금액을 받고 판매합니다.

 

이렇게 팬들이 스스로 만들고 나누는 굿즈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해요. 아이돌 인형 굿즈 문화를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아이돌 팬들 사이에는 자신의 최애를 동물에 비유하거나 캐릭터화하여 최애를 본 딴 인형을 직접 만들어 사고 파는 문화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인형뿐만 아니라 어울리는 액세서리나 옷을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하죠. 

 

더 나아가 인형 미용 커미션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는 인형의 얼굴형을 이리저리 만져 뭉친 털을 풀어주며 관리하는 '인형 경락', 털을 곱게 빗어 정리하는 '빗질' 등 자신의 최애 인형을 택배로 보내면 소정의 커미션을 받고 관리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팬들이 직접 만드는 굿즈는 팬들 간 거래나 꾸미기 문화, 아이돌 인형을 기반으로 한 놀이나 아이템으로도 파생되어 덕질 라이프를 더 풍요롭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자발적으로 아이돌의 매력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 홍보하면서 팬덤의 파이를 키우기도 하고, 공식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나 아이템 외의 즐길 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덕질을 풍요롭게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있죠.

차례대로 1) 세븐틴 도겸의 인형 겸디와 겸도그 인형 2) 시아준수, 박지훈, 엔하이픈 등 아이돌 인형과 굿즈 모음 3) TXT 범규의 왕바미와 뽀송밤 인형 4) 엔시티 지성의 뵤찌 인형 5) 아이돌 인형 떼샷 ©대학내일 사내 아이돌 팬덤 동호회 내일시티즌 

팬들의 영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는 '덕후의 미덕은 영업'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이 사람의 매력을 알리는 것에 적극적입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트위터의 '최애 영업'입니다. 

 

트위터에서는 자신의 멘션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아 리트윗(공유)됐을 때 "RT 탄다"라고 표현하는데요. 많은 수의 RT를 타게 되면 해당 멘션이 반드시 최애와 관련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스레드로 "RT 탄 김에 최애 영업합니다"라고 하며 자신의 최애 사진을 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본 글을 자신의 최애 아이돌을 홍보하는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RT탄 김에 최애 영업하는 트위터 멘션 재가공 이미지 ©트위터

또, 팬들은 최애의 이름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도 끼치고자 기부나 봉사활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기업으로 치면 사회적 책임(CSR) 활동에도 열심히 나서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팬 개인의 이름이 아닌 최애 이름 혹은 팬덤명으로 기부를 하거나 팬들끼리 모여 봉사활동을 합니다. 이는 최애의 이름을 알리면서 좋은 일도 하는 1석 2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혹시 서울 송파구에 있는 방탄소년단 'RM숲'을 들어보셨나요?* 이 숲은 2019년에 팬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첫 번째 숲입니다. 그 이듬해에는 RM의 생일을 맞이해서 용산구에 'RM숲 2호'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숲 조성 외에도 직접적인 기부 활동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임영웅, 김희재 등의 팬덤은 지적장애시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등에 '영웅시대', '김희재와 희랑별' 등의 팬덤명으로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콘텐츠와 굿즈 제작부터 영업까지. 소속사 사장님이나 나의 최애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팬들은 스스로 열정적인 엠버서더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더욱 잘됐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이뤄지는 것인데요. 좋아하는 마음의 힘으로 귀찮음도,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A부터 Z까지 직접 만들고 영업하는 모습은 아이돌 팬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팬덤의 특징 2. 알아서 잘 노는 취향 공동체

아이돌 팬덤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돌 없이도 우리끼리 잘 논다'는 것입니다. 팬들은 서로 같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합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혼자 간직할 때보다 함께 나눌 때 더 즐겁고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