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성매매의 비범죄화를 방침으로 삼기로 한 앰네스티의 결정이 오랜 논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가치관과 주의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이런 문제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성매매가 가장 오래된 직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논쟁적인 직업으로는 가장 오래 남을 듯 하다.
문학 작품 속에서도 성매매 종사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대체로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특히 성녀이자 구원자로 자주 표현된다는 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노파를 죽인 청년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이는 창녀이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는 무려 90세의 노인이 무려 14세의 창녀를 만나 사랑과 인생에 대해 깨닫게 된다.
혹자는 문학계의 주류 생산자와 평자들이 남성 위주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를 남성들의 판타지쯤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반면 어떤 이는 문학이야말로 현실의 반영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또는 보다 점잖게 도덕의 경계를 탐색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변명할지 모른다.
한편 주인공의 성매매를 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 주인공의 특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는 경우도 있다. 존 쿳시의 「추락」을 보자. 그는 이 책으로 두 번 주지 않는다는 부커상을 두 번째 받았다.
이혼한 쉰 둘의 대학교수 데이비드 루리의 추락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그가 매주 찾아가는 창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데이비드의 시선에서 그녀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랑스런 여인이다. 그는 정기적으로 그녀를 방문하며 그녀를 자기 인생의 일부를 채울 수 있는 상대로 여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길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그녀를 지나치게 되며, 그를 알아본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과 혐오가 서 있음을 본다. 이 일화를 통해 작가는 백인이자 지식인인 주인공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우리는 이 소설이 만만치 않은 소설이 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는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된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인 멜라니와 잠을 자게 된다. 악의 없이, 아니 오히려 무심하게 그는 멜라니에게 접근하고, 약간의 권력과 분위기와 완력을 사용한다. 존 쿳시는 소설의 본격적인 계기가 되는 이 사건을 표현하는 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여전히 독자들이 데이비드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하지만, 동시에 소설 속의 다른 이들이 데이비드를 사회적으로 추락시키는 과정이 충분한 합리적이도록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데이비드의 추락이 이루어지는 대학 징계 위원회 장면은 특히 훌륭하다. 동료 교수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와 데이비드의 대립이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우호적인 한 교수는 데이비드에게 그가 만약 기자회견을 열고 반성 및 참회를 표현한다면 약간의 휴식 후 복직이 가능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특히 그에게) 최선이라고 그를 설득한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들이 부디 신중할 것을 그에게 부탁했을 때 그는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을 내뱉는다. "삶에는 신중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존 쿳시는 이 한 문장으로, 데이비드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남들과 다른 가치에 인생을 건다는 것을 표현했다.
데이비드는 학교를 떠나 교외의 농장에서 개들을 돌보고 있는 딸 루시의 집으로 간다. 남아공의 특성과 맞물려 이 시점부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그려진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남아공 외곽이 지닌 비상식의 상징이며 이 사고를 받아들이는 딸의 태도는 그러한 비상식이 체현된 결과로 보인다. 오히려 데이비드가 주장하는 대처방식이 우리, 곧 문명사회의 상식으로 보이며 우리는 다시금 데이비드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는 딸의 태도를, 생각을, 결정을 바꿀 수 없다. 그 사건은 그에게 육체적인 추락을 겪게 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까지 선사한다. 그가 겪는 이 모든 고통은 무엇 때문일까? 스승으로서 제자를 건드렸다는 그 커다란 사회적 금기를 어긴 대가일 뿐인 것일까?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동성 이성을 막론하고 본질적인 긴장감이 흐른다. 가르침은 일방적이고, 받는 자는 주는 자의 모든 신호에 집중하게 된다.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는 동시에 스승과 맞먹고 싶어 한다. 동경은 쉽게 연정으로 오인되고 연인이 되는 것은 동등한 관계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금기가 되었다.
모든 좋은 말은 다 벗겨내고 보면 바로 그것을 처벌하려고 위원회가 열렸던 것이다.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재판, 부자연스러운 행위에 대해, 늙은 씨, 피곤해진 씨, 생기 없는 씨를 뿌린 것에 대해. 자연에 반한 것.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탐내면 종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고발의 밑바닥에 깔린 것이었다. 문학의 반은 그것에 관한 것이다. 종족을 위하여, 나이든 남자들의 무게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젊은 여자들.
p.248
영화 《데이비드 게일》에서 잘나가는 철학교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 역) 역시 같은 금기를 어긴 죄로 대학에서 쫓겨난다. 그는 실은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여학생의 함정에 빠졌을 뿐이지만 '빠졌다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여학생 역을 맡은 로나 미트라는 드라마 《보스턴 리갈》에서도 그녀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물론 금기를 어긴 대가가 언제나 불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제자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다. 잘 쓰여진 소설이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이입이 가능한 소설이라면, 바로 이 소설이 그러한 소설이다.
여학생을 유혹하는 이혼한 나이든 물리학 교수, 그에게 표현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여학생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여학생의 애인에게까지도 약간의 상상력만으로 자신을 투영해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48화)과 《오디오북 소라소리》 (2015.07.26~2015.08.02)에서 모두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