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는 '애매한 사람'이 아니다

💡 10분 안에 이런 내용을 알려드려요!

  • 변수로 가득 찬 세상에서도 발을 딛고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법
  • 〈톡이나 할까?〉의 권성민 PD가 알려주는 직업인의 마음가짐
  •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일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

저자 권성민

예능 PD / 〈톡이나 할까?〉 런칭, 〈가시나들〉, 〈마리텔V2〉 등 연출

* 본 콘텐츠는 2022년 10월 발간된 〈직면하는 마음〉을 퍼블리의 시선으로 발췌해 구성한 것입니다. 

 

스페셜리스트는 폼이 난다. 확실히 잘하는 게 있어서 눈에 띄고 빛나기도 쉽다. 스페셜리스트의 일에는 대부분 정확한 이름도 있다. 디자인을 잘한다, 곡을 잘 쓴다, 영상을 기가 막히게 찍는다며 칭찬하기도 좋다. PD는 이런 스페셜리스트들과 일하는 제너럴리스트이다. 

 

촬영 감독은 현장의 빛과 구도를 고려해 좋은 영상을 찍는다. 동시녹음 감독은 깨끗하면서도 현장감이 살아 있는 소리를 녹음한다. 미술감독은 기획에 어울리는 세트와 미장센을 감각적으로 디자인한다. 각각의 전문가들은 자기 일과 장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 반면, PD는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건 없다.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지도록 조율하고 섞는 '연출'을 하지만, 실체가 없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건데?'라고 물어보면 '다 한다'고 할 수밖에. 

 

PD 개인이 이 중에서 뭔가를 아무리 잘해도 스페셜리스트보다 잘할 수는 없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PD 안 하면 뭐해 먹고 사나', '이렇게 기술이 없어서 쓰겠냐'는 농담도 자주 한다. 

 

하지만 PD가 있어야 방송이 만들어진다. 좋은 스페셜리스트의 결과물도 연출이 제대로 섞어주지 못하면 빛을 잃는다. 애매하고 폼 안 나는 일들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폼 나야 할 것들이 제대로 보인다. 세상은 이렇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수많은 일들로 돌아간다.

 

예능 PD로서 십 년 넘게 일하며 배운 것은 일은 절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제작비를 들이고 여러 출연자와 스태프를 섭외해 판을 꾸리지만, 정작 카메라가 돌아가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굴러갈 때도 많다. 하지만 운동 에너지를 굴려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당할 마음의 힘은 담력이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일단 나아가야 한다

PD에게는 편성이 가장 중요하다. 마감이 정해진 창작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타협을 지속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찬란하든 궁색하든, 정해진 기한까지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을 내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PD뿐만 아니라, 이건 보수를 받는 모든 직업인의 일이다.

 

PD들끼리 나누는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이런 거 재밌을 것 같지 않냐." 이런 아이디어들, 솔직한 말로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이디어 그 자체는 펼치지 않은 책 표지, 만화가 되지 못한 멋진 일러스트와 비슷하다. '진짜 방송'이 되기 위해 세부적인 구성을 만들다 보면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점들이 턱턱 길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