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와 MD를 거친 콘텐츠 기획자
💡 10분 안에 이런 내용을 알려드려요!
- 카카오페이지 누적 50만 뷰 <멋있으면 다 언니> 기획자가 나만의 커리어 정체성을 찾아간 과정
- MD, 마케터, 기획자? 정해진 직무 이름이 아닌 진짜 전문성을 찾는 법
-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업과 시대 속, '스페셜리스트'의 새로운 정의
저자 이수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스토리사업부문 일반도서 팀장 >프로필 더 보기
안녕하세요. 저는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스토리사업부문 일반도서 팀장 이수현입니다. 2013년 전자책 서점 리디북스에 마케터로 입사해서 일반도서를 소개하고 프로모션을 기획하면서 서점을 운영하는 MD로 근무했습니다. 2015년에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로 이직해서 현재까지 카카오페이지 책 탭을 맡아 일하고 있어요.
저희 팀은 에세이, 인문서, 경영경제서 등 '일반도서'로 불리는 전자책을 서비스하는 일도 하고, 모바일 플랫폼에서 읽기 좋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유시민 작가님, 정재승 교수님, 이국종 교수님, 문유석 작가님과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책 읽기를 제안하는 '전 국민 베스트셀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2020년에는 오리지널 인터뷰 콘텐츠 <멋있으면 다 언니: 황선우의 스압 인터뷰>(이하 <멋있으면 다 언니>), 2021년에는 사회적 혁신가들의 대담을 엮은 <문제적 히어로들> 등을 기획했습니다.
소개에서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10년 간 모바일 콘텐츠 업계에서 마케터, MD, 콘텐츠 기획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간 제가 해온 일들을 하나의 직업으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항상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설명이 길어지더라고요. 보통 전문성이 있다고 하면 한 가지 과업을 꾸준하게 해온 사람을 떠올리잖아요. 저는 그 기준에 맞는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왔어요.
2020년 <멋있으면 다 언니>가 예상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저의 커리어 정체성을 고민해보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몇 번의 강연에서 제가 '콘텐츠 기획자'로 소개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더라고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이름으로 저를 불러주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저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도 하지만,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들을 전방위로 서포트하는 매니저의 역할도 합니다. 비즈니스 파트너사가 기획하는 콘텐츠가 잘 되게 하기 위한 모든 전후 과정의 업무에 대한 인사이트, 이를 테면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의견 전달, 원고 피드백, 시장 동향 공유, 가격 전략 제안, 마케팅 방안까지 관여하기도 하고 직접 실행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플랫폼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업무들 속에서, 저는 저의 커리어 정체성을 '질문하는 콘텐츠 기획자'라고 정의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 그동안 어떤 고민과 변화를 거쳐서 비로소 저만의 답을 찾게 되었는지 알려드릴게요.
'직업'으로 일을 이해하던 시절
저는 2013년 리디북스 마케팅 인턴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SNS 채널 운영과 로맨스소설 바이럴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당시 리디북스는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과업을 능동적으로 정하고 일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바이럴 마케팅은 저의 커뮤니티 활동 경험과 잘 맞았고, CRM 마케팅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동료와 함께 업무를 하면서 나의 강점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과정에서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고 그 작품이 왜 좋은지 독자에게 제안하는 일이 정말 즐겁다고 느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케터로 일한 지 1년 만에 일반도서 MD로 직무를 전환했습니다. 콘텐츠 MD는 좋은 콘텐츠를 선별하고, 최적의 타이밍에 경쟁력 있는 가격을 독자에게 제안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강점인 '설득력'을 살려서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출 분석, 가격 전략 수립 등 숫자를 다루는 일이 어렵기는 했지만, 동료와 선배들을 통해 배우고 최단 시간 역대 매출을 달성하는 좋은 성과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감각하는 게 즐거웠어요. 계속 이대로 콘텐츠를 합리적인 가격에 독자에게 제안하고 프로모션을 꾸리는 일을 잘해나가면 MD로서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습니다.
번아웃이 찾아온 건 커리어를 전환한 지 1년 만이었어요. 잘 되는 일을 반복하게 되면 가속도가 붙잖아요. 그런데 더 많이 팔고 싶은 만큼 적합한 콘텐츠를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콘텐츠가 생산되는 시점과 콘텐츠의 양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거기에 더해 경쟁사들이 우리의 성공 방식을 빠르게 벤치마킹하기 시작하면서 차별화된 상품 제안을 하는 데 저와 회사의 리소스가 더 많이 드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같은 콘텐츠로 반복적인 프로모션을 운영하고, 저의 체력을 무리하게 소진하는 상황이 이어져서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퇴사 면담을 거치면서 어느 상사분이 제게 말을 건넨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현씨가 잘하는 게 뭐지?
저는 그동안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냈고, 그에 맞는 성과를 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스페셜리스트로서 인정받고 있으리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게 됐어요.
나와 다른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내 일의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능력과 태도를 갖추어야 할까?
하던 대로 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면
첫 직장에서 일한 지 2년 만에 저는 카카오페이지 일반도서팀 MD로 이직했습니다. 당시 웹툰과 웹소설로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 카카오페이지는 더 넓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도서를 서비스하고 싶어 했어요. 저 역시 새로운 영역에서 콘텐츠를 다르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