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을 권장하지 않는 이유
저자 천성호
작가 겸 출판인. 9년간 책 블로그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일상의 생각을 글로 옮겨 담습니다. 1인 출판사 '리딩소년'을 직접 운영 중이며 펴낸 저서로는 에세이집 <지금은 책과 연애중>, <가끔은 사소한 것이 더 아름답다>,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가 있습니다.
책 좀 읽어라.
유년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들어온 말이었습니다. 이런 얘기는 아마 저만 듣진 않았겠죠? 민망하게도 저는 학창 시절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아, 딱 한 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예외로 두겠습니다.) 제대로 읽지 않을 거면 한두 권쯤 읽어봐야 별 티도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책을 멀리했던 지난 학창시절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스물세 살의 나이부터 조금은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집안 사정으로 학업보단 사회생활에 먼저 뛰어들어야 했던 저는 못다 한 배움에 대한 갈증이 심했고, 또래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조급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학업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습니다. 하루 근무시간이 10시간이 넘다 보니 무언가 배우려고 해도 시간이 잘 맞지 않았고, 번번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기 이르렀죠.
그러다 차선책으로 발견한 것이 책 읽기였습니다. 책은 내 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잡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펼쳐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그래서 처음엔 마구잡이로 책을 읽곤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읽은 덕분에 남들보다 빠르게 많은 책을 읽을 순 있었지만, 그때 읽었던 책이 지금에 와서는 거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가 않습니다. 마치 영화를 2배속으로 돌려본 것처럼, 읽었던 수많은 책 속의 장면들은 소화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속독과 다독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그 후로는 한 달 평균 4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책에서 파생된 생각을 블로그에 조금씩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책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고, 독서와 관련된 책 <지금은 책과 연애중>을 시작으로 총 세 권의 책을 펴낸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독서는 시험이 아니라 일종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건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읽는 것보다, 이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가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