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사교의 꽃, 프리몬트 브루어리

[콘텐츠 발행일: 2016.10.25]

 

 

일리노이에서 지낼 무렵, 추수감사절이 찾아오면 와인을 사들고 차로 두 시간 반 거리인 시카고에 올라가 친한 이들과 저녁을 함께하곤 했다. 실험실에서 일하던 시절엔 한국어는 고사하고 영어로도 별로 말을 하지 않는 날이 많았고, 때문에 반가운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얼굴을 마주하고 밤새 환담을 나누는 하룻저녁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행복에 대하여 수많은 책과 논문을 써왔지만 단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걸 먹고 마시며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삶이라면 행복의 조건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샴페인으로 돌아오는 차편에 몸을 싣곤 했다.

 

좋은 술을 장만하고 훌륭한 만찬을 차리더라도 혼자서는 즐길 수 없다. 좋은 맥주는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 최고의 풍미를 발휘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몬트 브루잉 컴퍼니(Fremont Brewing Company, 이하 프리몬트 브루어리)는 맥주가 부르는 사교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프리몬트는 시애틀의 여러 지구 중 하나로, 다운타운에서 '레이크 유니온(Lake Union)'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만의 서쪽 길을 따라 죽 올라가 바다 물길을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곳이다.

 

곳곳을 지나치다 보면 지역 예술가들이 도시의 후원을 받아 지은 조형물이 유독 돋보이는데, 그중 다리 아래 엎드린 거대한 석조 트롤은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는 사이 턱을 괴고 바다를 내다보는 트롤 © 김서경

다리를 건너 강처럼 좁아드는 바다 물길 언저리를 따라 걷다 보면 프리몬트 브루어리의 간판과 마주친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앞뜰엔 수십 명이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눌 만한 큼지막한 목제 탁자와 그늘을 드리운 천막이 가득하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땐 한기 도는 비가 뚝뚝 떨어지는 초겨울이었는데, 캄캄하기만 하던 길목을 종종걸음으로 달려 내려가다 돌아서자마자 한눈에 감겨드는 거대하고 따스한 불빛에 우뚝 멈춰 섰던 기억이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