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과 기본소득의 관계

- 들어가며 -

이 글은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의 모든 것 프로젝트의 네 번째 미리보기글입니다. 프로젝트 저자, BIYN(Basic Income Youth Network)의 김주온님이 자신의 삶과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전에 발행된 다른 세 저자의 글 '망원동 동네서점에서 세계를 보다', '품위있는 직업인을 위한 기본소득', '당신의 취향에 기본소득이 미치는 영향'은 프로젝트 새소식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PUBLY의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의 모든 것을 담다' 보고서의 목차4,

 

저의 세 가지 주요 역할 중 두 가지, 'BIYN'과 '대학원생'이란 정체성은 서로 연결돼있습니다. 대학원은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더 자세히 연구해보고 싶었기에 선택한 곳입니다. 기본소득의 정치철학적 당위에 대한 논의, 기본소득 개념의 변천사와 경제사상사적 의의, 재원 마련 방안 및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의, 탈성장과 생태, 페미니즘 진영과의 논의, 알고리즘 사회와 기본소득 등 여러 분야와 기본소득의 연결점을 다룬 연구가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는
찾아보기 드뭅니다.

문화인류학 연구의 핵심은 '필드워크', 즉 현장에서의 참여관찰일 텐데요. 연구질문에 맞는 현장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지구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물론 기본소득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시행되어온 알래스카의 영구기금이 있지만 다른 주로 확장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막대한 재원 때문에 시행주체를 국가로 상상해온 기본소득 제도는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집니다. 브라질 역시 2010년에 '시민기본소득' 입법에 성공했지만 재원 마련의 어려움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중입니다. 

 

그렇기에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국가는 커녕 지역 단위 실험도 드물게 진행되는 기본소득 연구를 하겠다고 하는 경우라면 난감해집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도'를 관찰할 수 있는 현장이 어디일까요?

 

이때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의 연구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줍니다. 퍼거슨은 스탠포드대학의 인류학과 교수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금지급식 사회부조에 대해 연구하여 기본소득이 공동체 안에 만들어낼 활력*을 얘기해왔습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제안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가들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경험적 관찰로부터 급진적인 정치를 실험해보자."

* 관련 내용은 리포트에서 소개됩니다. - PUBLY.

 

기본소득이 도입된 이후를 기다릴 게 아니라, 이미 와있는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혹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통찰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현장'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닌 제가 있는 '지금, 여기'가 됩니다. 
 

또한 기본소득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기술적 등 다방면에서 연구해야 할 아이디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류학 연구자들의 관점은 제도의 시행 후 발생할 변화들을 다층적이고 복잡한 관계망 안에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 경계선을 넘어선 지급을 논의하고 있는 '전지구적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비판적, 발전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캐나다, 글로벌 기본소득 지구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하다

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2013년에 BIYN에 합류했습니다. 권리에 기반해 정당성을 주장하는 의제,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 자체가 새로웠고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신선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얘기하는 '필요' 담론을 넘어, 개인의 '욕망'에 주목한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의 실험과 연구, 그 흐름이 글로벌한 운동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동료들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특히 기본소득을 매개로 국내외 여러 활동가, 연구자들과 만나는 일을 주분야로 활동해왔습니다. 그 맥락에서 2014년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과 2016년 여름 한국 서울에서 열린 15차 BIEN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 총회는
전 세계 기본소득 연구자, 액티비스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이며
최신 정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캐나다 총회에서 새로 알게 된 여러 활동가들 중에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또래의 활동가 스태니슬라스 조던(Stanislas Jourdan)인데요. 스스로를 미디어액티비스트라고 소개하는 그는 2013년 유럽에서기본소득 시민발의운동을 이끌었던 젊은 활동가 입니다.

 

비록 발의운동 서명수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발의된 제안을 검토하도록 하기 위한 목표치, 100만 명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를 준비하는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범유럽적 홍보가 이루어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본소득 모임이 자발적으로 결성됐다고 합니다.

"캠페인을 하는 동안에 전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여행도 많이 했고, 기본소득 활동가들도 많이 만났어요. 유럽 어느곳에서나 사람들이 우리 이야길 들어주고 흥미있어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고무됐었죠.

 

이 캠페인을 통해 각국에서 움직임이 생겨나는 걸 보는 게 정말 흥미로웠는데요,  진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똑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각국이 처한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얘기들이 나온 거예요. 올해(2014년 당시) 제가 목격한 것들은 정말 놀라웠어요."*

 

 

이밖에 캐나다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인도에서 있었던 기본소득 파일럿 실험의 결과 발표였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인도의 SEWA(Self Employed Women's Association)의 레나나 자발라(Renana Jhabvala)여사와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대학의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가 실험 전과 후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작은 규모라도 실험을 해보는 것의 중요성과 더불어 실증적인 결과가 보여주는 변화*에 개인적으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 관련 내용은 리포트에서 소개됩니다. - PUBLY.

 

가이 스탠딩 교수는 "30년 동안 기본소득 실험 연구와 현실화에 몸담아왔는데, 우리가 인도에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와, 또 거기서 목격해온 일들에 겸허함을 느낍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주어지면, 스스로 회복해서 자신을 위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걸 이젠 알아요."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SOAS 대학의 개발학 교수이자 BIEN의 공동 설립자이며, 한국에는 프레카리아트*의 출현과 문제점, 대안을 분석한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의 저자로 알려져있습니다.

* 프레카리아트 :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 이탈리아에서 2003년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해, 2005년 프랑스 최고고용계약법 관련 시위에서 쓰인 바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88만 원 세대',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 유럽의 '700유로 세대' 등 불안정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습니다(출처: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 PUBLY. 

"기본에 대한 보장없이 사람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를 위해 기본소득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해야만 해요. 공동체와 공유, 가족에 대한 더 나은 감각이 자라날 겁니다.

 

제가 알기로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온 많은 것들이 나아질 거예요. 나도 상대 입장에 처할 수 있고, 상대도 내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전통적인 나눔사회에서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공감에 대한 감각을 갖춰야만 합니다. "

 

 

2016년 한국, 지금 우리의 기본소득을 위해

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 16차 총회는 올해 서울에서 '사회적,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란 주제로 열렸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곳곳에서 파일럿 프로젝트가 설계되고 시작되는 상황을 반영하듯 성황리에 진행됐습니다. 대회 직전 치러졌던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 결과 발표를 포함하여, 인공지능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등 기본소득과 관련한 고전적인 주제에서부터 최근의 화제까지 고루 다뤄졌습니다.*

* 관련 내용은 리포트에서 소개됩니다. - PUBLY.

 

올해 총회에서는 앞으로의 총회 주기를 1년으로 정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과 관련한 논의들이 쏟아져나오고, 거기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개입하기 위해서는 2년 마다 여는 총회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참가자들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더 자주 만나서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고, 활발히 토론하자는 의지가 반영됐습니다. 

 

내년 2017년 9월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기본소득을 실행하다(Implementing a Basci Income)'라는 주제로 17차 총회가 열립니다. 키노트 스피커에 Y Combinator와 Give directly의 기본소득 실험 각각의 담당자인 Elizabeth Rhodes와 Joe Houston도 초대되었습니다.*

* 관련 내용은 리포트에서 소개됩니다. - PUBLY.

2016년 7월 7일~9일, 서울에서 열린 16차 서울 BIEN 총회 참가자 기념 사진. 서강대학교 다산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

올해 칼 와이더키스트 BIEN 공동의장은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며 시기를 나눴습니다. 학자들 위주로 기본소득 개념을 토론하다 그 개념이 세계 곳곳에 점차 소개되어 지역 활동과 연결되던 초기, 젊은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유럽연합 시민발의 운동이 화제가 되고 스위스 국민투표 발의안 상정에 성공해 학자들 위주의 BIEN에 자극을 줬던 시기, 그리고 곳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준비하는 지자체나 기업이 등장하고 시민주도의 크라우드펀딩 기본소득 실험도 등장하는 최근까지 몇 차례 전환점을 거쳐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구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이 이론적으로
100퍼센트 완벽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기본소득이 이 시대의 여러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지지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 모두의 정동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매력적인 의제라고 생각합니다.

 

퍼블리 보고서를 통해 새로 시작될 대화와, 그로 인한 변화가 기대됩니다.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의 모든 것을 담다]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 Y 컴비네이터, 핀란드 정부와 네덜란드 도시 19곳, 한국 성남의 청년배당 등 전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어 온 기본소득 실험의 성공과 한계, 실패의 기록 

 

2012년부터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 동향을 꾸준히 연구해온 젊은 저자 5명이 참여하는 리서치 리포트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