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만 그치지 않는 '콘텐츠' 만들기

Curator's Comment

 

머지않아 텍스트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AI가 대체할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오는 2021년입니다. 하지만 반문을 제기하고 싶어지죠. AI가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찾고, 분류하고, 조합할지는 모르지만, 과연 구석구석의 디테일까지 챙길 수 있겠느냐면서요.
 

<생각의 쓰임>은 퍼블리와 종이책을 통해 <도쿄의 디테일>, <교토의 디테일> 시리즈를 펴낸 생각노트의 첫 에세이집으로, 아마 지난 시간 반복적으로 받아왔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수만 명의 눈에 띄는 콘텐츠가 되는 걸까요?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생각노트는 어떤 플랫폼에서든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새롭고 낯선 플랫폼을 만나며 그가 치러야 했던 각종 시도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누구라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라도 5년이나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새삼 알게 되기도 합니다.
 

미래의 본업과 미래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가 될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현재 시점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좋은 추진력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기록이 콘텐츠가 되고, 더 나아가 나만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이 큐레이션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21년 4월 출간된 <생각의 쓰임>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이름을 정하는 것은 늘 어렵다. 촌스럽지 않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심플해야 하며, 발음하기 쉬워야 하고,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아야 하고,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무엇을 담을지보다, 무슨 이름을 지어줄 것인지에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생각을 부여잡고, 채집하고, 수집하는 기록이라는 활동이 블로그 이름에 잘 담겨 있으면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기록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블로그 이름을 되새기면, 기록이라는 본질적인 활동에 대해 상기할 수 있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 관심사가 변해도 내 생각을 기록하겠다는 마음, 이곳은 기록하는 곳이고 기록이 중요한 사람의 공간이라는 가치를 '생각노트'라는 이름에 담을 수 있었다.

생각노트 블로그 캡처 화면 ©생각노트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생각노트를 시작하던 당시 대림미술관의 인기가 상당했다. 대림미술관은 그야말로 '핫플레이스'였다. 사람들은 대림미술관을 설명할 때, 전시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작가가 누구고, 어떤 기획으로 전시가 꾸며졌으며, 인상 깊었던 전시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런 기록이 곳곳에 많았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색다른 것이 보였다. 전시 내용보다도, 미술관 밖에 길게 줄 서 있는 관람객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관람객의 대부분이 2030 세대라는 점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떻게 대림미술관은 줄 서는 미술관이 되었으며,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는 미술관이 되었을까?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미술 관람'을 어떻게 젊은 세대의 방식으로 풀어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며, 내가 직접 관람을 하면서 느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을, 나의 관점으로 적어봤다.

1. 알고 보니 대림미술관은 '건설사'가 지은 미술관. 문화 예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메세나(Mecenat) 정신*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미술관이 바로 대림미술관. 문화 예술에 대한 '철학'이 있기에, 전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

* 기업 또는 개인이 문화예술에의 지원을 뜻하는 말

 

2. 대림미술관의 슬로건인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의 느낌이 좋다. 이런 방향성이 있기에 전시를 보다 쉽게 풀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전시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3. 젊은 관람객이 많은 이유는 관람 문화를 혁신한 것이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티켓 한 장으로 여러 번 입장이 가능하기도 하다. 젊은 세대의 관람 흐름을 잘 읽고 도입한 것이 유효.

그리고 이렇게 적은 것을, 글로 써서 완결지었다.*

 

해석은 정답이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이고 추론일 뿐이다. 기록은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면, 왜 이 유튜브 채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숫자를 붙여가며 해석해보는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내 관점이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콘텐츠를 만들면, 그것이 나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생각노트를 운영하며 지켜온 철학이 있다.

치밀하게 생각하고, 꼼꼼하게 기록해서,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자.

그중에서도 사적인 생각이 콘텐츠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공유'다. 나의 생각과 기록을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콘텐츠라고 할 수 없다. 뭐가 됐든 세상에 내놓아야 콘텐츠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볼 것이 많아진 콘텐츠 시장에서 내 생각과 기록이 눈에 띄는 건,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다. 결국은 계속 내 생각과 기록을 공유하면서 콘텐츠로 그 가치를 증명받는 방법밖에 없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든 생각과 시행착오를 기록하는 블로그 운영 일기, 여행을 준비하는 전 단계를 꼼꼼하게 기록한 여행 준비 일지, 한 편의 글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블로그 글쓰기, 구독하고 있는 뉴스레터, 다이어트할 때 쓰는 앱까지, 어찌 보면 과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공유'가 지금의 생각노트를 만들었다. 나의 이런 기록을 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 '영감을 좋아하는 사람', '인사이트를 나누는 사람'이라는 확실한 색채로 나를 기억했고, 내 기록을 콘텐츠로 여겨주는 팬을 모을 수 있었다. 결국 '공유' 덕분에 생각과 기록이 누군가에게 닿아 완성됐고, 생각노트라는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생각노트스러운' 콘텐츠

어떤 콘텐츠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어떤 콘텐츠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아티클을 발행하며 어떤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알아서 퍼지는데 어떤 것들은 허무하게 묻히는 경험을 거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