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아픈가
나는 다른 일에 비해 감정을 능숙하지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생각보다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할 때, 예견되는 상처에 대비한 방어 기제를 키우는 데 필사적이었고, 이런 약함은 때로는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나는 애정 관계에 더욱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나의 모습, 즉 비교적 이성적이고 독립적인 모습과는 괴리가 느껴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어렸을 때 봤던 디즈니 공주 만화 탓을 했다. 이성 간의 사랑이 이야기의 큰 줄기로 작용하는 것, 그리고 생명의 위협이나 고난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왕자님에게 선택을 받는 것. 이런 디즈니 만화의 요소들이 결국 내게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으며, 그러려면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 누군가에게 내가 얼마나 만화 속 공주님처럼 느껴지게 하느냐가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내 모습과는 이질적이었기 때문에 줄곧 나는 내가 왜 이 이야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지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심리학이 아닌 사회적으로 분석한 『사랑은 왜 아픈가』의 저자 에바 일루즈의 시도는 나의 이런 점이 온전히 나 자신에게서 기인한 문제가 아니라는 위로를 해 주었다. 저자는 자본주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근대의 계급 인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아 인정에 대한 욕구, 합리적 이성, 인터넷 같은 현대 사회의 산물들 때문에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아픔을 야기한다는 점을 피력한다. 물론 사랑이 왜 아픈지에 대해 조금 더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사랑은 아픔을 수반하기 때문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성애의 낭만적 사랑은 20세기에 일어난 두 가지 가장 중요한 문화적 혁명을 포괄한다. 하나는 생활방식의 철저한 개인주의화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관계의 경제화로 자아와 심지어 그 과정을 꾸미는 일까지 경제모델이 장악했음을 뜻한다.
p.25
전체적으로 과학의 해석체계는 사랑의 경험을 이중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는 '반성적'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디플레이션'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당사자들은 거듭 자신이 사랑을 하는 원인이 무엇일까를 되돌아보며 깊숙이 깔린 메커니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반성적'이며, 또 동시에 사랑을 심리나 화학의 보편적 작용의 결과로 돌려버림으로써 특정 개인의 특수한 욕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깎아내려 결국 감정이 위축되고 수축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디플레이션'이다.
p.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