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 글은 '경계의 확장, 전략가의 시선- 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의 네 번째 미리보기입니다.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앞서, 책 산업에 대한 저자의 관찰과 그와 연결된 데이터를 더해 '저자가 바라보는 책 산업의 큰 흐름'을 공유합니다.

이 글은 수정/확장되어 유료 리포트의 일부로 포함될 예정이며 '1편- 오프라인 서점이 돌아온다, 그러나 다른 모습으로'에 이은 2편입니다.

ebook 시장의 포화:
두 번째 분화도 끝났나?

 

책 산업 가치사슬의 첫 번째 분화가 서점에서 일어났다면, 두 번째 분화는 상품, 바로 책 그 자체에서 일어났다. 글이 인쇄된 종이들의 묶음으로서 상품화된 것을 책이라고 부른다면, 그 묶음의 단위 거의 그대로 디지털화되어 유통되는 것을 우리는 통상 ebook이라고 부른다.

 

ebook 시장은 2007년 아마존이 전용 디바이스 킨들(Kindle)을 출시하며 공격적인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세계 최대 서점으로서의 레버리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결과 미국의 ebook 시장은 2013년까지 세 자리수 성장률을 보이며 빠르게 커져왔다.

책 산업 가치사슬의 두 번째 분화: ebook의 등장

그러나 급속한 성장을 보이던 미국의 ebook 시장마저 정체기에 돌입했음을 보여주는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위축되어 오던 미국의 전체 책 시장도 안정기에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2015년 전통적인 종이책 매출은 3% 늘었고 ebook 시장은 소폭 하락세를 보였다. 전체 책 시장에서 ebook 매출의 비중은 2014년 27%였던 것에서 2015년 24%로 하락했다.(그러나 ebook이 특히 강세를 보이는 로맨스와 스릴러 분야에서의 ebook 비중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관련 리뷰 확인하기 2015 U.S. Book Industry Year-End Review

 

독자들의 독서패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2016년 3-4월 실시한 조사의 결과를 보면, 책 읽는 독자 중 89%가 종이책으로 읽고, 38%가 전자책으로 읽는다. 2015년에는 이 숫자가 각각 88%, 38%, 2014년에는 각각 91%, 37%였다. 전자책의 침투율이 정체를 보이고 있는 분위기다.*
* 관련 기사 확인하기 Book Reading 2016

 

주요 출판그룹의 ebook 매출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펭귄 랜덤하우스, 아셰트, 하퍼콜린스, 사이먼앤슈스터의 ebook 매출 비중은 각각 약 20%, 10%, 22-23%, 25-27% 수준을 지난 3년(2013-2015)간 유지해오고 있다. 아셰트와 사이먼앤슈스터는 2015년 오히려 소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모두 특별한 상승세도 하락세도 없이 어느 정도 안정적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아셰트는 전자책 매출 비중이 유난히 낮은데, 미국에 비해 ebook 침투율이 훨씬 낮은 유럽 시장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만을 놓고 보면, ebook 매출이 펭귄 랜덤하우스의 경우 30%, 아셰트의 경우 25-30% 수준을 차지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Global Ranking of the Publishing Industry 2015, Frankfurt Book Fair White Paper

 

열독자 그룹으로의
ebook 침투는 끝났다

 

ebook 시장은 한동안 가파른 성장곡선을 보였고, 한때는 ebook이 종이책의 지위를 위협할 대체재가 될 것이라는 예견을 내놓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2014년에 들어서면서
성장 곡선은
점차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의 행동패턴에 대한 관찰이 상당 수준 축적된 현재, ebook 독자의 독서 패턴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ebook을 읽는 독자 대부분이 종이책 독서를 병행한다.
2. ebook을 읽는 독자는 종이책만을 읽는 독자에 비해 평균적으로 많은 책을 읽는다.

 

결국, ebook 시장은 저렴한 전용 디바이스로 열독자 계층에 빠르게 침투함으로써 초반의 가파른 성장세를 선취할 수 있었으나, 열독자 계층을 넘어 일반 독자층으로 침투하는 데는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책만 읽는 독자는 전체 미국인의 6%에 불과하다.

퓨리서치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 포함)만 읽는 독자는 전체 미국인의 6%에 불과하며, 29%의 미국인이 종이책과 전자책을 병행해 읽는다.

 

직관적으로 추측해 보아도 그렇다. 1년에 두세 권의 책을 읽는 독자가 새로운 방식의 독서 패턴을 익히고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주 한 권씩 책을 읽는 독자에 비해 훨씬 적을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전자책 매출이 하락하고 있다는데,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마존, 코보, 누크 등 유통사들은 출판사에게 데이터 공유를 해주지 않는다. 나도 데이터를 좀 보고 싶다."

"유통사 데이터가 없지만,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 현재 상황 추정해 보자면 전자책 전용 e-ink 디바이스는 기본적으로 열독자들에게 팔리는 품목이다.

책을 원래 많이 읽는 사람들이 아마존 킨들을 통해서 조금 더 싸게 책을 사는 혜택을 주는 모델이다. 하지만 이제 전용 디바이스를 살 사람들은 다 샀다. 포화되었다는 뜻이다. e-ink 디바이스는 디지털 세대나 밀레니얼 세대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 아셰트 리브르 CEO Arnaud Nourry, 2015년 프랑크푸르트북페어에서의 발언

동시에 ebook의 침투 패턴이 분야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짚어둘 만하다. ebook이 로맨스, 성인물, 판타지, 스릴러 등의 장르 소설 분야에서 훨씬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소식이다. 이 분야에서의 ebook은 제품 및 유통의 측면에서도 그 외 분야의 단행본 중심 시장과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1) 셀프퍼블리싱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 (2) 특히 중국을 필두로 연재 형태/스트리밍 중심의 온라인 문학(Online Literature) 시장이 부상 중이라는 점 역시 이미 ebook을 단일한 종류의 상품으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book 시장의 이같은 분화, 또는 확장은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도 중요한 테마 중 하나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셀프퍼블리싱 시장, 디지털 기술의 새로운 접목 가능성, 중국 시장의 확장성에 대한 논의는 책 산업 가치사슬의 두 번째 분화로 등장한 ebook이 나아갈 다음 단계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숫자 그대로를
믿을 수는 없다는 반론

 

ebook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 퍼져가는 가운데, 2015년 디지털북월드(Digital Book World)에서 어써어닝즈(Author Earnings)*는 기조 발표를 통해 현재의 미국 출판 통계를 바탕으로 ebook 시장 트렌드를 가늠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써어닝즈는 셀프퍼블리싱을 통해 활동하는 필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 사이트로 셀프퍼블리싱으로 데뷔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Hugh Howey라는 작가가 설립했다. 독자적인 분석을 통해 시장에 대한 데이터와 견해를 발표한다.

 

미국 출판 시장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따르는데, 특히 아마존이 최대 변수로 작용한다. 전자책 시장은 아마존이 미국 전체 전자책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존은 매출 자료를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아마존 킨들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전자책 중 상당수가 셀프퍼블리싱 기반 독립저자들의 책이고 많은 경우 ISBN을 발급받지 않는다. 대다수 독립저자들은 아마존의 독점 유통을 조건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굳이 ISBN을 받급받을 필요가 없다. 이 독립저자들의 전자책 판매 데이터는 당연히 시장 통계자료에 반영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형 출판그룹의 ebook 매출은 정체해 있거나 소폭 하락했지만, 셀프퍼블리싱 출판물의 매출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 결과, ebook 시장 내 5대 출판그룹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 46%에서 2015년 34%로 떨어졌다. 적지 않은 수준의 하락폭이다. 같은 기간, 소형 출판사 및 독립 출판자들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14%에 불과했던 데서 2015년 30%로 성장했다.*
*Rüdiger Wischenbart, 〈The Business of Books 2016: Between the first and the second phase of transformation〉, 2016 Frankfurt Bookfair Whitepaper

 

어써어닝즈는 이와 같은 공식적 통계치보다 더 급진적인 그림을 제시한다.

아마존의 매출을
모두 반영할 경우,
독립출판자들의 시장점유율이
이미 5대 그룹 점유율을
앞섰다는 것이다.

어써어닝즈는 2016년 1월 10일 기준으로 베스트셀러 20위내 10종이, 베스트셀러 100위 내의 절반 이상이 셀프퍼블리싱된 타이틀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독립출판물 매출을 모두 반영하면, 미국 ebook 시장 매출은 금액 기준으로 줄어들지 않고 늘어났다고 어써어닝즈는 주장한다.

 

ebook 시장이 전체적으로 정체 혹은 감소세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셀프퍼블리싱 시장의 성장이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착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성장은 대부분 아마존의 셀프퍼블리싱 플랫폼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숫자가 옳든,
더 근원적인 시장의
구조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실제 ebook 시장이 정체에 들어선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종이책을 단순히 디지털화하여 한 권의 단위로 판매하는 방식이 e-reading 시장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는 별 이론의 여지가 없다.

 

ebook 시장이 빠르게 종이책 시장을 침투하던 때는 경쟁의 구도가 종이책이냐 ebook이냐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ebook은 온라인상, 디지털 디바이스 상에서 읽는 수많은 콘텐츠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콘텐츠를 '책'이라고 규정할 것이냐 아니냐, 책 산업의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는 독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ebook 전용 디바이스의 점유율이 점점 줄어들고 다목적 디바이스(태블릿이나 스마트폰)로 ebook을 읽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현상도 ebook이 다른 종류의 콘텐츠와 점점 같은 시장에서 경합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 중 하나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서 책을 읽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출처: Book Reading 2016, Pew Research Center)

결국은 모두 스마트폰 위에서 만난다. ebook의 숲은 종이책 산업의 숲에서 출발해서 스마트폰 위에서 유통되는 각종 읽을거리의 숲으로 이어진다. 이 숲에는 페이스북에서 공유되는 신문기사들, '웹소설'이나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는 픽션과 만화가 공존한다.

 

이 지점에 이르면, 권 수나 다운로드 수로 집계되는 통계는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을지 모른다. 퓨리서치센터는 책을 읽는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2012년 74%였던 것에서 2014년 76%, 2016년에는 73%를 찍음으로써, 출판시장의 독자 유실이 거의 멈췄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75%가량의 독자가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도
과연 유지되고 있느냐일 것이다.
모두가 소비자의
24시간을 놓고
싸우고 있다.

 

이제 2막의 시작

 

2016년 2월 CNN Money는 "책 출판의 세계에서 옛것은 이제 다시 새롭다"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이 말의 증거로 첫째, 미국의 서점 매출이 2007년 이후 처음 성장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둘째, 2015년 종이책 매출이 다시 상승하는 가운데, ebook 매출은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 관련 기사 확인하기 Bookstores Record First Rise In Sales Since 2007

 

지난 10년간, 책 산업 가치사슬의 분화는 가장 크게 두 가지 전선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유통의 전선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품의 전선이었다. 이 최초의 두 가지 분화는 앞서 설명했듯이, 이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국면의 전환은 홀로 오지 않는다. 가치사슬 분화의 2막은 모든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실은 책 산업의 가치사슬을 따로 떼내어 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책 산업 가치사슬 분화의 2막은 모든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글을 쓰는 저자는 더 이상 책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 않는다. 조각조각 다른 채널에서 유통되던 콘텐츠가 책으로 묶여 2차 상품으로 판매되는 현상은 이제 너무도 흔하다.

 

책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방식은 이제 수많은 원소스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 모델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포맷이나 플랫폼에서 이미 발행된 콘텐츠가 책으로 묶이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서점도 더 이상 그저 책을 파는 장소로 남지 않는다. 서점이냐 카페냐 학원이냐, 그 규정이 무의미한 서점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게 보고 있다. 책을 보는 바로 그 디바이스에서 숱하게 많은 다른 읽을 거리, 볼 거리와 만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프랑크푸르트북페어의 올해 구성을 살펴보면, 이런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독자를 이해하기 위해, 마케팅을 위해, 유통을 위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위해 온라인과 모바일을 어떻게 감싸안을 것인가가 모든 책 산업 종사자의 화두다. 특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서점을 가운데 두고 독자와 만날 수밖에 없었던 출판업체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 보인다.

 

어떻게 직접 독자에게 가닿을 것인가는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의 콘텐츠 시장에서 피할 수 없는 화두다. 출판업체는 필연적으로 멀찍이 떨어진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 산업, 책 산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점점 더 까다로운 문제

그런 의미에서 책 산업의 선도업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나라 책 산업이 어떻게 진화할지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콘텐츠 산업의 다른 영역들이 어떻게 교차하며 진화할지, 어디에 기회가 있으며 그 기회를 노리려면 충족해야 할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다. 아니 실은 콘텐츠 산업의 '다른 영역'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르겠다. 이미 경계는 흐려졌고, 우리는 모두 하나의 게임을 하고 있다.

 

 

 

[경계의 확장, 전략가의 시선-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지난 1년 동안 글로벌 출판 컨텐츠 시장의 경계선은 어디까지 확장되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롤링다이스 제현주 디렉터와 PUBLY 김안나 CCO가 프랑크푸르트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