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 글은 '경계의 확장, 전략가의 시선- 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로젝트의 세 번째 미리보기입니다.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앞서, 책 산업에 대한 저자의 관찰과 그와 연결된 데이터를 더해 '저자가 바라보는 책 산업의 큰 흐름'을 공유합니다.

이 글은 수정/확장되어 유료 리포트의 일부로 포함될 예정이며, 아래와 같이 미리보기로 2편에 나누어 게재됩니다.
• 1편- 오프라인 서점이 돌아온다, 그러나 다른 모습으로
• 2편- ebook 시장의 포화: 이제 2막의 시작

콘텐츠 생산과 콘텐츠 유통의 구분, 포맷과 채널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산업 전체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한 시기다. 과거에 콘텐츠와 미디어, 포맷을 결정했던 문지기들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책 산업'은 어떤 지평에 놓여 있을까? 이런 시기에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통해 책 산업의 현재를 가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은 콘텐츠/미디어 산업의 격변 앞에 가장 천천히 변하고 있는 산업처럼, 혹자에게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산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이 역사의 기록과 함께 살아남아 온 '정보와 스토리 전달의 포맷이자 미디어'라는 사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시의성이 훨씬 중요하게 작동하는 신문 및 잡지에 비해, 완결적 형태로 정돈된 정보를 제공하고, 심도 있게 서사화된 스토리를 전달하는 책은 디지털과 모바일의 거센 폭격 아래서도 그 규모를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마치면서
조심스러운 낙관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요 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 방어되고 있는 듯 보였고, 특히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하는 주요 글로벌 출판그룹은 견고한 매출을 유지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을 포함한 몇몇 신흥 시장의 급속한 성장 덕에 전체 출판 시장은 약소하나마 다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2015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2014년보다 많은 참가자가 함께 하면서 새로운 활기를 띄었다.

 

이러한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분위기는 올해로 이어져, 페어는 'More Vibrant, More Dynamic, More International'를 새로운 컨셉으로 내걸었다. 이에 발맞춘 사전행사로 'MARKETS 2016: Global Publishing Summit' 컨퍼런스가 개최된다. 이 컨퍼런스에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는 7개국(브라질, 네덜란드, 필리핀, 폴란드, 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영국)이 특별 전시와 발표를 들고 참여한다.

2015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부스 ⓒ박소령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주요 시장과 업체들의 움직임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부스 전시와 판권 거래가 중심이었던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2014년부터 비즈니스클럽을 열면서 출판인을 위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 인사이트가 교류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비즈니스클럽에서는 책이 가진 콘텐츠로서의 힘을 물리적인 책의 형식 바깥으로 가져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포착해보자는 논의가 다양한 층위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작년 비즈니스클럽에서는 총 39개의 세션*이 열렸는데, 그중 디지털/온라인/모바일 트렌드와 연결된 세션이 22개로 전체 세션의 56%에 달했다. 올해의 세션**은 아직 전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같은 양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인 wrap-up 세션 제외
**2016 비즈니스클럽 세션 스케쥴 보기 

2015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비즈니스 클럽' 세션 ⓒ박소령

이에 더해, 2016년 북페어에는 'Arts +' 섹션이 마련되어 "예술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시너지"를 논의한다. 주최 측은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전통적으로 책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영화, 텔레비전, 게임, 그리고 이제 순수예술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런 확장은 크리에이티브 영역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 관련 내용 확인하기 Frankfurt Book Fair 2016 Preview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의
구성에서 나타나는
이런 신중한 자신감은
지난 10여 년간 이루어진 가치사슬의 
두 가지 중대한 분화를
어느 정도 방어해 냈다는
믿음에서 올 것이다.

실제로, 이 중대한 분화는 최근 2-3년새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새로운 양상이 장기적으로 책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아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두 가지 분화에 맞서 기존의 출판업이 예상보다 탄탄하게 버텨주었다는 사실이, 최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흐르는 조심스런 낙관의 숨은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지금부터 그 두 가지 분화가 이제껏 미쳐온 영향과 달라지고 있는 분화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자.

오프라인 서점의 귀환: 가치사슬의 첫 번째 분화는 끝났나?

출판업의 전통적인 가치사슬은 아래와 같았다. 우리 대부분에게 무척 익숙한 그림이다.

1. 저자는 글을 써 콘텐츠를 만든다.
2. 출판사는 콘텐츠를 엮어 물리적인 책으로 '제조'한다.
3. 서점은 그 책을 받아 유통한다.
4. 독자는 읽는다.

전통적인 책 산업의 가치사슬

위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사슬의 첫 번째 분화는 온라인 서점의 등장에서 시작되었다. '아마존'으로 상징되는 온라인 서점의 등장은 가치사슬의 유통 부분, 바로 서점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가치사슬의 첫 번째 분화: 온라인 서점의 등장

아마존이 등장하고, 그에 맞서 보더스와 반스앤노블 등 책 산업의 유통거인이 공격적인 확장으로 반격하면서, 지역의 독립서점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상장회사였던 보더스나 반스앤노블스는 성장잠재력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자본시장에 납득시켜야 했고, 그 때문에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발을 들였다. 독자를 놓고 경쟁하기에 앞서 투자자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장회사가 피하기 어려웠던 결과였을까? 결국 보더스는 백기를 들었고, 반스앤노블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보더스와 반스앤노블의 확장과 아마존의 진격으로 지역 독립서점들이 초토화되고, 이어 보더스와 반스앤노블이 힘을 잃으면서, 미국의 서점 매출2007년부터 2015년까지 내내 축소 일로를 걸어왔다.

이 같은 양상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 서점이 1998년 처음 등장해 40%가량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까지 전국의 서점 숫자1997년 5,170개에서 2015년 1,559개로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서점은 대형화의 길을 걸었다. 전체 서점의 평균 전용면적2003년 33평이었던 데서 2013년 57평으로, 70% 넘게 증가했다.*

* 출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온라인 서점의 포격은 거셌고, 이는 서점업의 지형만을 바꾸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과거 전국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던 유통구조 아래서 책을 만드는 출판업자의 협상력은 유통업자에 비해 작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함께 일어난
유통의 집중화와 대형화는
출판사의 대(對) 유통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출판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유통채널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상대하는 유통사의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판사가 거래하는 서점2008년 평균 33개였으나 2013년에는 29% 줄어든 23곳에 그쳤다. 아마도 온라인서점이 시장 장악력을 높여간 모든 시장에서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오프라인 서점의 파이가 줄어들고, 그나마 남은 서점들은 모두 대형화되는 추세가 이제 종착점에 가까워졌다.

오프라인 서점이 돌아온다, 그러나 다른 모습으로

아마존의 등장 이후 지속적으로 위축되었던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은 2015년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어 소폭이나마 성장세로 접어들었다. 그중에서도 대형 체인에 속하지 않은 독립서점은 2011년부터 빠르게 그 수를 다시 늘려가며 두드러진 약진을 보이고 있다.

 

지역의 독립서점 수2009년 1,651곳에서 2014년 2,094개로 의미있게 상승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천여 곳의 독립서점이 문을 닫았던 것을 생각하면, 가팔랐던 추락에 뒤이은 급격한 귀환인 셈이다. 독립서점은 그 개수만 늘어난 게 아니라 매출 역시 증가했는데, 동네서점의 매출2011-2014년 사이 연 8% 성장했고, 이는 시장 전체 매출 성장률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 관련 기사 확인하기 Why Indie Bookstores Are on the Rise Again

 

이런 독립서점들의 약진과 함께 전체 서점 매출 역시 연이은 감소세를 뒤집고 2015년부터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미국 서점 매출액 추이: 마침내 회복세로? ⓒstatista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던 책 산업 가치사슬의 첫 번째 분화는 이렇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즉, 오프라인 서점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조심스러운 추정은
서점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의 많은 독립서점이 지역성을 기반으로 독자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온라인 서점이나 번화가의 대형서점이 제공할 수 없는 밀착적 경험을 통해 작지만 지속가능한 모델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온라인상의 프레즌스를 함께 높이는 서점도 적지 않다.

 

다른 방식이지만, 일본에서 역시 '츠타야'를 필두로 오프라인 서점의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영향력이 마찬가지로 크게 축소되어 가는 가운데,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모토를 내건 츠타야는 책을 파는 공간 이상으로서 고객을 끌어들인다.*
* 관련 기사 확인하기 여행책 옆엔 여행사, 요리책 코너선 먹거리 판매… 도쿄의 名物 서점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개성을 갖춘 독립서점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점유율 양상에 뚜렷한 변화가 포착되지는 않았지만, 연일 새로운 특색을 갖춘 서점의 개업 소식이 들려온다. 창업자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진입부터 눈길을 끈 '철든책방'과 '최인아책방', '책방무사'부터 맥주와 커피를 파는 서점, 다양한 강의와 세미나, 책읽기 모임을 제공하는 서점은 이제 드물지 않은 모습이고, 1:1 책 처방을 해주는 북 파마시(Book Pharmacy) 컨셉을 내세운 예약제 서점 '사적인서점'까지 등장했다. 모두 전통적인 서점의 모습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델들이다.*
* 관련 기사 확인하기 우리는 지금 '독립서점'으로 간다

 

책 산업 가치사슬의 첫 번째 분화가 일어났던 서점업은 어떤 미래를 향하고 있을까? 우리가 지금 그 분화의 변곡점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편 끝)

이 글에 이은 2편은 'ebook 시장의 포화: 두 번째 분화도 끝났나?'로 이어집니다. 10월 10일(월)에 발행됩니다. 

 

[경계의 확장, 전략가의 시선-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지난 1년 동안 글로벌 출판 컨텐츠 시장의 경계선은 어디까지 확장되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롤링다이스 제현주 디렉터와 PUBLY 김안나 CCO가 프랑크푸르트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