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의 소원

내가 다녔던 목성전자는 목성그룹의 맏형 격이다. 목성그룹은 가전, 모바일, 식음료, 패션, 교육, 건설 등 다양한 계열사까지 거느린 거대한 공룡기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목성그룹은 작년 사내 벤처를 출범시켰다. 위대한 우주선의 이름을 따 보이저기획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 곳에는 목성그룹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보이저기획에 모였다.

 

나는 실력보다는 막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출되었다. 그룹의 핫이슈에 내가 합류했다는 사실은 꽤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여기는 완전 정글이다. 이전에는 모르는 게 있으면 건성으로라도 가르쳐주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여기는 오직 경쟁뿐이다.

 

보이저기획 마케팅팀의 룰은 하나였다. 팀장이 지시를 내리면 팀원 열 명이 각자 기획안을 제출하고, 그중 하나가 간택되어 실행된다. 보이저기획으로 자리를 옮긴 지 반년이 넘었지만 내 기획서는 한 번도 통과된 적이 없다. 나는 사수도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사 오는 길에 무심코 뽑은 곰 인형. 인형 뽑기 기계 안에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눈이 예쁜 곰 인형이었다. 나는 곰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라도 좋으니 내 사수해줄래? 내 소원이니까…

그 혼잣말이 진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내가 아는 업무용어가 나의 업무능력이다 (feat. 용어 사전)

첫 번째 레슨이 가져온 변화라면, 예전만큼은 혼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바스찬 팀장은 여전히 으르렁거렸지만, 본인의 의도를 계속 파악하려는 나의 노력은 높이 평가한 듯했다. 예전처럼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시자가 원하는 방향은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가 원하는 수준의 기획안은 아직이었다.

 

두 번째 레슨 역시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테디는 지난번과 똑같이 컵 받침에 앉더니 모니터 전원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