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언제 물어도 새롭다. 열아홉 살이건 서른아홉 살이건. 사회는 우리에게 미리 만들어진 선택지를 선물하지만, 무엇을 고를지는 각자의 몫이다. PUBLY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재발견하는 나는 서로 다른 맛을 느끼고 배우는 자신이다. 이번 첫 글에는 지금까지 느끼고 겪어온 맛의 여정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의 삶에서 내게 '맛본다는 일'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찬찬히 들여다보아 이해하기

 

인생 최초의 취미로 적어낸 건 '성격 수집'이다. 열다섯 살 때였다. 심리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그로부터 3년 후였다. 무언가를 오래오래 들여다보아 마침내 이해하는 일이 좋았다. 특히 무엇과 무엇이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 일이 즐거웠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 된 대상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서로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홍차

 

나와 당신, 이것과 저것, A와 B가 다르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순간은 늘 매력적이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세상엔 매력적인 차이를 자아내는 대상이 너무나 많았다. 색이 그러하고 소리가 그러하며, 맛이 그러했다. 그렇게 대학원 실험실에서 홍차를 배웠다. 세상이 내게 딱히 친절하지 않은 순간을 살아야 할 땐 따뜻한 게 좋았다. 그게 두 손에 감싸 쥐고 한 모금 머금을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좋았다.

차 한 잔의
따뜻함에 대한 동경은
차이에 대한
흥미로 번져갔다.

같은 홍차라 해도 인도홍차와 중국홍차가 달랐고, 같은 중국홍차라 해도 기문과 운남은 전혀 다른 맛이 났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수확한 차를 어느 타이밍에 마시느냐에 따라 많은 게 달라졌다. 추위 가시지 않은 이른 초봄엔 철관음이, 쨍쨍한 한여름엔 차게 내린 우바가 맛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조촐하게 가지던 티파티는 말하자면, 직접 작곡하는 교향곡이나 다름없었다. 짙고 연한 풍미의 홍차, 녹차, 청차들이 차례로 각자의 색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사과와 초콜릿

 

시간이 흘러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됐다. 작은 캠퍼스타운을 둘러싸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에서 나는 센물은 차를 우리기엔 거칠었다. 꼭 건실하지만 재미는 없는, 동네 유지의 아들과 결혼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면 마음을 기울여 사랑하고 싶었다. 여름엔 복숭아, 겨울엔 사과밖에 없는 동네라지만 여름엔 복숭아, 겨울엔 사과가 있었으니까. 혹은 핑크레이디와 갈라, 재즈, 브래드번, 카메오, 오팔, 오로라, 조나산, 코틀랜드, 그리고 오렌지 피핀이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알았던 사과란 부사와 아오리의 천하이분지계(天下二分之計)였는데, 그 세계의 지평이 한없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씹히는 감촉, 산미, 단맛, 풍미가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았다. 가을에 첫 들어온 허니크리스프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면 눈앞에 벚꽃색이 펼쳐졌다. 완벽한 사과파이를 만들고 싶어 뉴욕타임스 요리면더 키친의 두 사과파이 레시피를 놓고 이것저것 비교해가며 연구하곤 했다. 

당시 만들었던 사과 파이 © 김서경

초콜릿도 사과 못지않게 흥미로운 주제였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유기농 초콜릿 브랜드에서 다크 초콜릿만 하나씩 골라 맛보는 게 한 주의 즐거움이었다. 초코러브나 그린 & 블랙 같은 브랜드는 카카오 함량 52% 이상의 모든 초콜릿을 다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즐기는 맛은 무엇이며 딱히 당기지 않는 맛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도록 돕는 내면의 자침이 만들어졌다. 카카오닙이나 커피콩은 아작아작 씹히는 식감이 유난히 좋았고 캐러멜 소스의 느끼한 뒷맛은 영 달갑지 않았다.


흔히 허허벌판(Middle of Nowhere)이라 일컫는 낯선 곳에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늘 쉽진 않았다. 그 생활에 한 줄기 작은 빛이었던 건 새로운 맛을 접하는 즐거움이었고, 태어나 알게 된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맥주, 그리고 맛에 대하여

그리고 2015년 가을, 북서해에 이르렀다. 시애틀은 실험심리학에서 출발해 사회신경과학을 거쳐 정보과학으로 넘어오는 긴 여정의 종착지였다. 홍차와 사과, 초콜릿을 거쳐 맥주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다 같이 동네 브루어리로 몰려가 프렛젤 과자 한 그릇 앞에 놓고 들이키는 에일의 맛은, 한국에서 시키던 맥주 피처의 심심한 맛과는 매번 달랐다. 맥주의 맛은 새로이 시작한 지적 도전과 더불어, 이전에는 몰랐던 맛이자 새롭게 알아가고 싶은 맛이었다.  

 

먹는 일과 맛보는 일은 일견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매일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음식이라 해도, 어떤 재료 혹은 음식이 무슨 맛을 내는지 찬찬히 느껴보고 이해하는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관심이 필요하다. 소금과 설탕, 지방의 맛은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만 그 세 가지 맛만으로 대변할 수 없는 풍미는 세상에 너무나 많다.

 

내 주변에 어떤 맛이 존재하는지 느껴보는 일은 분명, 즐겁다. 맛을 본다, '테이스팅'을 한다고 하면 비싼 레스토랑에서 흰 식탁보를 앞에 놓고 고가의 와인을 디캔팅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장면은 결국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무수한 경험 중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

 

누구나 유난히 좋아하는 과일, 혹은 좋아하는 먹거리나 마실거리가 하나쯤은 있다. 좋아하는 먹거리를 한 입 베어 물고 혹은 머금고 잠시 멈추어 찬찬히 맛을 느껴보는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게 내게는 홍차이자 사과이며, 초콜릿이자 맥주가 된다.

 

맛보고 기억하는 일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취향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취향'이란 명사는 때로 '과시하다'는 동사와 함께한다. 이때의 취향은 남에게 내보이기 위한 수단이 된다. 물론 그렇게 여겨도 좋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취향이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하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어지는 작은 보물이라 생각한다. 취향, 특히 맛에 대한 취향을 지님으로써 각자가 경험하는 일상을 조금이나마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간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배움의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논문에서는 배움을 '일상 속에서 수행하는 작업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정의했다. 비록 학문적인 직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뭔가를 맛보는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걸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시 정리해 나간다면, 그 또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이 아닐까. 오직 학교를 다니는 순간에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맥주의 맛은 새로이 시작한 지적 도전과 더불어 이전에는 몰랐던 맛이자 새롭게 알아가고 싶은 맛이었다.

맥주라는 새로운 맛의 세계를 느껴보며 얻어진 경험을 내 나름의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정리하여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한국을 떠나오던 2012년까지만 해도, 내가 알던 맥주는 카스와 하이트가 전부였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3년 사이에 부쩍 넓어지고, 비어포럼 등 마이크로브루어리와 홈브루잉 관련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맥주에 대해 잘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 중 맥주가 어떤 맛의 스펙트럼을 지녔는지, 혹은 어떤 맥주가 평소 가장 좋아하는 맛과 닮았는지,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그 여정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긴 글의 타래를 열어본다.

 

본 콘텐츠에 들어가며: 저자 오디오 가이드 (5분)

목 차

1부: 시애틀 비어페스트

- 1일 차: 유서 깊은 맥주로 축제의 막을 열다
- 2일 차: 복잡다단한 벨기에 에일의 색을 맛보다
- 3일 차: 생애 최고의 맥주

2부: 로컬 브루어리 탐방
- 맥주와 사교의 꽃, 프리몬트 브루어리
- 술이 예술을 부를 때, 쉴링 사이다 하우스와 캐피톨 사이다
- 작은 곳으로부터의 혁신, 퀸 앤과 라벤나의 브루어리들
- 맥주로 잣는 인생의 내러티브, 발라드의 크래프트 브루펍
- 도시의 자전거 문화를 반영하는 페들러스 브루잉 컴퍼니

3부: 시애틀 이외의 브루어리들
- 이웃 도시 포틀랜드와 벤쿠버의 맥주들


인트로
현재 시애틀에서 거주 중인 저자 김서경님의 인사로 본 리포트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