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을 낯익게 하기

스타트업이란 참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존에 없던 재화나 서비스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 설명하는 일이 가장 어렵지요. 삼성전자니 카카오니 네이버니 하는 회사들은 이름만 대도 어떤 일을 하는지 대강 감이 오잖아요. 그런데 '걸스로봇', 그러면 딱 막히는 겁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사실 좀 구차한 생각이 들어요. 간판이나 배경이나 명함 덕분에, 설명이 필요 없는 시절을 겪었던 사람으로선 더 그랬습니다. 그건 진짜 제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럴 땐 초창기 반도체 회사,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도 그랬으리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시를 쓰고 예술을 하는 한 가지 방법 중에서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는 것이 있는데요, 거기서 의외의 진실이 튀어나오니까요, 짐작보다 매우 어렵습니다. 타성에 젖은 생각하기, 상상하기, 말하기, 글쓰기 방식에서는 잘 안 되지요. 그러니까 시인과 예술가들이 대단한 거겠죠.

 

그런데 낯선 것을 낯익게 만드는 데에도 그런 예술적인 수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인 시간의 작용 없이는 난데없음을 극복하는 데 여러 전략과 노력이 들어가죠. 광고와 홍보는 그 시간을 단축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무수한 소음들 속에서 대개 실패하고요. 사실 스타트업의 거의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걸스로봇은 '로봇' 하는 여자들의 네트워크입니다.
여기서 로봇이란 이공계 전반을 가리키는 하나의 상징이고요,
더 많은 여성들이 과학자, 또는 공학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캠페인을 하는 곳입니다."

보통은 이렇게 운을 띄웁니다. 그럼 많은 분들이 더 궁금해 하시죠. 출발은 좋습니다. 처음에는 감탄으로 시작합니다.

"아, 여자 분이 직접 로봇을 만드시는 거에요? 진짜 멋지다!"

- 아직은 로봇을 만들진 않아요. 내년쯤 키트를 선보일 예정이지만요. 지금은 캠페인 단계입니다.

 

그러면 좀 실망한 목소리가 따라 나옵니다.

"아니라고요? 공대 나오신 거 아니에요?"

- 네, 전 인문계 출신이에요. 학부는 사범대, 석사는 사회대서 했어요. 공대는 한 학기만.

 

그럼 어쩐지 좀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과 약간 낮춰보는 표정이 뒤섞여 묻습니다.

"근데 왜 로봇이에요?"

- 워낙에 제가 로봇 덕후이기도 하고, 요즘 제일 핫하니까요. 이공계 마스코트로는 딱이죠.

 

그 다음엔 나오는 것은 의구심.

"진짜로 뭐하시는 분이세요?"

- 캠페이너예요. 페미니스트이기도 하고요.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운동을 하죠.

 

여기서부턴 정색이 담긴 질의응답이 이어집니다.  

"그럼, 로봇보다 걸스가 더 중요하다는 거에요?"

- 네, 어쩌면 로봇보다는 걸스에 더 방점이 찍힐 수도 있겠네요. 여성교육에 가깝겠네요.

 

"대체 그런 걸 왜 하죠?"

- 지금 이공계 여성인력이 기껏해야 10-15%인데 그게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이니까요.

"그걸 왜 당신이 하느냐구요?"

- 그건 제 소명이에요.

 

"돈이 잘 벌리나요?"

- 저희는 일종의 소셜벤처고요. 돈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가 목적입니다.

 

이쯤 되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돌아옵니다. 괜찮습니다. 1990년대까지도 사람들은 아직, 인터넷과 이메일이라는 콘셉트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여자가 로봇을 만든다'는 콘셉트,
가운을 입은 여성 과학자와 여성 엔지니어가
실험을 하고 납땜을 하는 모습.

그건 이메일이 편지를 거의 대체하고,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과 뒤섞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겁니다.

저는 그런 비전을 조금 일찍 보고, 조금 일찍 전파하는 전도사일 뿐이지요. 제 돈과 시간과 정열과 목숨을 들인다는 게 함정입니다만.

에바, 휴보, 지도와 창세기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에바)' 덕후 20년차, KAIST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 덕후 13년차입니다. 여기서 덕후는 '오타쿠'의 다른 말로 어떤 분야의 병적인 마니아를 말합니다.

 

전세계적으로 폐인들을 양산한 에바 시리즈는 1995년 10월에 처음 나왔는데요, 저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대학 단짝과 함께 1997년에 처음 그 세계를 영접했습니다. 종교와 신학과 인간의 정신세계와 메카트로닉스*를 아우르는 에바의 장대한 스케일에 넋을 잃었죠. 머리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그런 걸 접하면서도, 평생 그 그림자를 쫓으며 살게 될 거란 것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우리의 20대를 연장해서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대의 고민, 20대의 상처, 20대의 낭만, 20대의 배움들이 우리의 핵심을 구성하고, 나머지 인생은 거기에 조금씩 맛과 색을 더하거나 빼면서 지속되는 걸 지도요. 저의 20대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과 종교와 신화와 과학과 문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탐구들로 이뤄졌습니다. 깊지는 않았더라도 평생의 화두를 얻었죠.

 

우리 에바가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대결할 때 말입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연결된 영국 런던 딥마인드의 알파고 개발자 중 하나와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에바 덕후란 걸 알게 되자마자 그가 말했습니다. "이세돌 9단이 3연패를 확정짓던 날, 저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듣고 있었어요. 인류 최후의 순간처럼 느껴지더군요.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건 덕후들끼리의 암호 같은 것이었어요. 저는 바로 알아들었습니다. 에바 애니메이션 속 '인류 최후의 날', 남자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사도'와 전투를 벌일 때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이 G선상의 아리아였습니다. 인공지능 엔지니어이자 바둑 애호가인 그 양반이 바흐를 틀어놓고 비감에 젖는 장면을 상상해 봤습니다.

 

엔지니어로서는 프로젝트가 성공해 기뻤겠지만,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는 그 성공 앞에서 마음껏 기뻐할 수만은 없었겠지요. 그런 고백을 듣고 나니 이세돌 국수가 인류를 대신해 싸우는 소년 전사 이카리 신지처럼 느껴지더군요. 

 

당시에 이런 고백을 제보했다면, 제가 아는 누구에게든 전했다면, "충격! 딥마인드, '인류 최후의 날' 선언", "인공지능은 인류 멸망을 가져오는 '사도'인가", 이런 식의 헤드라인들이 지면을 어지럽힐 수도 있었겠네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극적인 속보 이면의 의미를 좀 더 묵혀보기를 원했어요.

 

기자 일을 놓고 제주에 낙향해 아이들 키우며 이것저것 소일하면서, 로봇 커뮤니티에 본격적으로 입문했습니다. 이른바 요새 유행하는 '덕밍아웃(덕후+커밍아웃)'이랄까요. 직접 쇠를 깎지 못할 뿐이지 보고 들은 건 많았거든요. 커뮤니티에서 공대생 특유의 유머를 들으면 먼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 행복했습니다. 그것도 20년 만에요. 

 

그렇게 논지 일 년 만에 우리 휴보가 미국 국방성이 주최한 'DARPA(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하며 전 세계 '풀 메탈 바디' 로봇의 대표주자로 떠올랐죠.

 

우리 휴보가 어떤 로봇이냐면요, 바야흐로 제가 결혼하던 해, 2004년 12월에 첫 선을 보인 제 결혼 생활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제가 결혼 햇수는 안 헤아려도 휴보 덕후 연차는 줄줄 외우거든요. 저는 그 해 11월에 결혼해 시댁에서 살림을 살고 있었어요. 멍하니 티비를 보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와 로봇을 만지고 있더라고요. 미리보기 첫 번째 글, '평행우주 속의 소녀', KAIST에 가다1에서 언급했던 그 고등학교 '과학영재' 커뮤니티, 그곳의 친구 말입니다.

 

저랑 똑같이 실험하고, 저랑 똑같이 경시대회 나가던 제 친구는 로봇을 만들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데, 저는 아나운서 시험 떨어지고 시집 가서 티비나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보통 친구가 아니고요, 같은 반, 같은 테이블에서 공부했던 단짝이었는데요. 그 인연이 대학, 대학원 때까지 이어져 저 아나운서 떨어질 땐 그 친구가 위로해주고, 그의 실험이 안 될 땐 제가 토닥거려주던 완전 친한 남자사람친구였는데 말이지요.

우리의 인생은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처럼
맨 처음 어떤 하나의 선택 이후로
갈라진 겁니다.

너는 KAIST, 나는 서울대.

너는 공대, 나는 사범대.

너는 한길, 나는 이길 저길.

너는 남자, 나는 여자.

 

저는 그 최초의 선택을 돌리고 싶었어요. 그것으로부터 제 인생이 달라졌던, 최초의 갈림길을 말입니다.

 

휴보가 우승하고, 네이버가 로봇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구글, 도요타, 화낙, 세계의 기업들이 역사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로봇 커뮤니티 모임에서 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건 하나의 징후입니다. 이 사인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제가 미리 보고 들은 걸 전하겠어요. 저를 로봇계의 눈과 귀로, 그리고 손과 발로 활용해 주세요."

 

그 선언 이후 열심히 학회들을 쫓아다녔습니다. 어떤 분야든 핵심은 사람, 누가 어떤 연구를 누구와 함께 하는가. 마음 속으로 대한민국 로봇연구의 지형도를 그려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창세기 같은 걸 써보자고 마음먹었죠. 학맥과 혼맥, 관계도,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와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누가 누구와 만나 다투고 협력하고.

 

그러는 사이 알파고가 등장했고요. 비슷한 시기 가공할 속력으로 넘어지지도 않고 우다다다 산길을 달리고, 아무리 물건을 떨어뜨려도 척척 주워다 나르는 이족보행 로봇들도 속속 공개됐지요. 바야흐로 로봇의 시대가 온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두가 갑자기 로봇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우리가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만큼이나 중요한 시대의 시작점을 살고 있다는 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지난 세기는 할 수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이 시대의 기록자가 되고 싶었어요. 지도와 창세기, 이것이 로봇계를 대하는 저의 키워드였습니다. 

 

* 기계와 전자 등 공학 분야가 복합적으로 섞인 학문을 뜻합니다. - PUBLY

로봇 하는 여자의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즘 세례 20년차, 걸스로봇 업력 반 년차 만에 페미니즘이 전대미문의 핫이슈로 등장했습니다. 맨 처음 제게 프로젝트를 제안한 박소령 PUBLY 대표도 고백했지만, 제 사십 평생 여성문제가 이 정도로 뜨겁게 논의된 건 처음입니다. 워낙 뜨겁다보니 아무나 숟가락을 얹기도 하고, 반대로 쉽게 입을 열지 못하게도 되더군요.

 

한국 페미니즘 운동사를 모르는 남성 지식인들의 '맨스플레인'도 한참 들었죠. 이른바 인터넷에서 벌어진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올바른 페미니즘', '바람직한 페미니즘' 논쟁도 말 없이 지켜봤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할 때 누락되는 것들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왜,
우리는,
여자들은 말하는가,
왜 말할 수밖에 없는가.

이것이 페미니즘의 본질이고, 저는 그걸 건져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요행히 KAIST 한복판에서 자생적인 페미니즘 연구회가 생겨나는 걸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이름이 '마고'에요. 설화에 등장하는 한반도의 창시자에 해당하는 조물주 할머니시죠. 엄청난 거구인 데다, 스스로 남편을 고르고 여덟 딸들을 낳아서 팔도 무당들의 어미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임의 리더는 남학생이었습니다. 남녀 구성 비율도 반반에 육박합니다. 똑똑한 남자들이 페미니스트가 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통해 엿보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여자가 로봇을 만들고, 남자가 페미니즘을 말하는 시대의 한복판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페미니즘이란 건 다른 운동들만큼이나 역사도 있고, 깊이도 있고, 스펙트럼도 다양한 운동입니다. 무엇이 기고 아닌 게 아니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가 다 페미니즘입니다.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분파가 생기고 경쟁이 벌어지고 사라지거나 살아남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내부적인 변혁의 한가운데 역시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동시에, 스스로도 돌고 있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페미니즘은 바깥의 오해들과 피 흘리며 싸우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도 스펙트럼이 다른 이들끼리 치열하게 논쟁 중입니다. 그러면서 하루가 가고, 일 년이 지나가겠지요. 세월이 쌓이면 안팎이 모두 변할 겁니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기 위해선,
남자들, 당신이 필요해요.
정말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곱게 산 것 같은데 왜 페미니스트가 됐느냐고. 뭐가 그렇게 힘들었느냐고."

 

네, 대체적으로 곱게 살았습니다. 사실이에요.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부르주아 페미니스트쯤 될 것입니다. 유학 가서 박사 학위는 못했지만 국내 최고 교육기관에서 배울 만큼은 배웠고, 재벌 같은 부자는 아니어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은 없고, 여기저기서 좋은 대접 받으며 살았습니다. 딸바보란 말이 생기기도 이전에 이미 딸바보였던 아버지와 페미니스트는 아니라지만 생존 요리와 설거지의 달인이 되어가는 남편 덕분입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면 저는 정말 꽃길만 걸어왔던 걸까요?

제가 여자로서 겪어온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는 걸까요?

우리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나 영부인 미셸 오바마 같은 정치경제적 최상류층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말하는 걸 보고 듣습니다. 헤르미온느로 사랑받은 배우 엠마 왓슨처럼 '세젤예(세계에서 제일 예쁘다는 뜻)' 공주님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한 때 우리 아빠가 대통령, 우리 아빠가 재벌이 아니고서야 성적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프로페셔널이나 리더로서 마땅히 하리라고 기대되는 일을 못했을 때 비판 받는 건 당연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의상만 가지고 비판받거나 이부진 사장이 오빠를 대신하기 어려운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지난 연말 걸스로봇 런칭파티 이후 반년이 조금 넘은 시점, 여전히 저에게도 "비전공자가 왜?" "어디서 꿀이라도 떨어지나?" "뭐 하자는 신선놀음인가?" 하는 의구심 어린 시선이 따라 붙습니다. 페미니즘이 핫이슈가 되면서는 "걸스"를 떼고 활동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비전공자이긴 하지만 20년 가까이 묵은 로봇 덕후고요, 꿀이 떨어지기는커녕 제 사비를 쏟아 붓고 있는 중입니다. 즐겁고 기쁘니까 하지, 시켜서는 못하는 일이죠.

 

걱정해주시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걸스는 어쩌면 제 소명이고 분신이고 딸이에요. 하지만 사람은 소명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엔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들었어요. 만나는 사람 모두를 붙잡고 설득하려 했지요. 인사이드 아웃처럼 까뒤집어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통장을 펼쳐 보여주듯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걸 포기했습니다. 모두를 설득할 순 없는 일이에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요. 저는 다만, 제가 관찰한 바를 기록하고 전하는 한편, 묵묵히 네트워킹 자리를 마련하고, 여자들이 서로 만나게 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하고,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면 됩니다.

나이 어린 여자의 페미니즘,
나이 든 여자의 페미니즘,
싱글 여자의 페미니즘,
유부녀의 페미니즘,
배운 여자의 페미니즘,
덜 배운 여자의 페미니즘,
여교수의 페미니즘,
여학생의 페미니즘,
남자의 페미니즘까지
다 다른 모양새의 페미니즘을
말하도록 돕는 것.

그게 제 일입니다.

지난 연말 첫 번째 네트워킹 파티에서 의도했던 것도 바로 그런 거였습니다. 여성의 생애주기란 게 있다면, 각기 다른 양상으로 살고 계신 여성 공학자 다섯 분을 모셨죠. 

 

로봇계 30년 '홍일점' 조혜경 한성대 교수님은 기혼 여성에게 기대되는 모든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여성 연구자로, 국방로봇계 20년 '홍일점' 조경은 동국대 교수님은 "사랑에 목숨 걸지 않고 연구와 결혼한" 싱글 여성 연구자로서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중간 세대인 이동희 독일 뮌헨공대 교수는 "독일인 연구자인 남편과 살림과 육아를 5:5로 최적화하는 법"을 강의해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습니다. 진짜 멋있는 건 이런 말씀이었어요. "제 연구에 대해 궁금하시면 TED Talk 들으세요. 오늘은 여자의 삶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무려 테드 톡 있는 여자였던 겁니다.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여자가 살림과 육아에 대해 말하니 우리 공대생 친구들이 귀담아 듣더라고요.

 

역시 중간 세대인 키네틱 아티스트 엄윤설 선생님은 로봇 공학자인 남편 한재권 한양대 교수님과 딩크족으로 살면서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과 헌신을 주고받는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로봇계의 브란젤리나 커플'로서 명성을 굳히는 순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신세대인 박혜원 미국 MIT 미디어랩 박사님은 "여성 로봇공학자는 어떤 걸 잘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뒤, "섬세한 감정 로봇이요.", "음, 커뮤니케이션 로봇?", "양육 로봇이겠지요.", "가사 도우미 로봇 아닐까요?" 같은 답변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선명한 빨간색으로 질문 자체에 엑스자를 그렸어요.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여성이라 더 잘 하는 건 없어요. 개인차가 있을 뿐이죠." 그것이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만남을 도와주신 분이 바로 이재웅 SOPOONG 전 대표님이셔요. 그리고 로봇 커뮤니티의 남성 교수님들과 남학생들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어떤 운동도
여성 혼자만,
남성 혼자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성별 카테고리로 분류되거나 차별당하지 않고, 개인의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학문과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원하는 분야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머물거나 이동할 수 있는 자유, 궁극적으로는 여교수나 여학생이나 여기자나 여류 작가 같은 말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페미니즘의 이상일 겁니다.

 

'로봇'하는 여자의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걸스로봇도 그래요. 컴퓨터나 인터넷처럼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너무 당연해지는 시대를 앞둔 지금, 로봇 하는 여자, 페미니스트 남자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시대를 꿈꿉니다.

 

다음 편에선 걸스로봇 런칭 파티 이후, 올 상반기 최우선 프로젝트였던 'KAIST 레지던시'에서 어떤 학생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는지 들려드릴게요. 한 편의 인터뷰로 다 담기 어려울만큼 다양한 모습들을 기대해 주세요.

 

8월 16일(화), Women at KAIST 프로젝트의 네 번째 미리보기 글이 올라옵니다.

 

[Women at KAIST]
걸스로봇 이진주 대표의 본격 인터뷰 시리즈

 

과학하는 여자 6명과 남자 6명, KAIST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 12명의 삶을 '여성'이란 키워드로 인터뷰한 콘텐츠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