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낭만도, 초능력도 없지만
소비자들이 각자의 일상에서 루틴한 일을 하듯, 창작자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역시 지난하고 루틴합니다. 누군가는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분야에서 자리를 지키며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고, 다른 누군가는 요즘 다 하는 분야에서 나름의 차별점을 찾아가며 콘텐츠를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막막함을 견디며 뭔가를 만듭니다.
교보문고 '인문MD 통곡의 리스트(이하 통곡의 리스트)'는 그 루틴함이 잘 드러난 이벤트입니다. 통곡의 리스트는 2019년 1~10월 동안 교보문고에서 출간한 인문 분야 도서 중 MD들이 100권을 골라 만든 리스트입니다. 이 리스트로 매출 4000만 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벤트 페이지에는 매일 아침 '전일 성적'을 업데이트하는 걸 원칙으로 했습니다.
MD들은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통곡의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연 매출이 근로자 1인 평균 임금인 3500만 원에 못 미치는 출판사가 낸 인문 서적으로 1000권도 채 팔리지 못했으나 내용도 만듦새도 너무 좋은 책
콘텐츠 생산자의 관점에서 이 기준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죠.
"연 매출이 근로자 1인 평균 임금인 3500만 원에 못 미치는 출판사가 낸 인문 서적"
→ 이 출판사가 다음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만큼의 최저선이 필요하다.
"1000권도 채 팔리지 못했으나"
→ 이 책이 시장에 나온 직후 묻혔는데, 다시 한번 타이밍을 만들고자 한다.
"내용도 만듦새도 너무 좋은 책"→ 이 콘텐츠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한 번 더 알려주려는 온라인 서점 MD의 눈물 젖은 판단을 믿어달라.
이 리스트가 정말로 '통곡스러운' 이유는 MD가 100권에 대한 추천사를 80자씩 손으로 작성하고, 이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곡의 리스트는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작업이 교보문고 네이버 포스트에 연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