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사라진 400억

Editor's Comment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아시나요? 게임을 해본 적은 없더라도 게임 이름이나 표지 이미지는 익숙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퍼블리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약 1년간 매달 배틀그라운드 제작사인 크래프톤 관계자, 이기문 저자와 만났습니다. '어떻게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라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에 대해 10년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결국 결론은 수많은 실패였습니다. 매해, 매달 크고 작은 헛발질과 좌절이 쌓인 덕분에 2017년 <배틀그라운드>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크래프톤의 가장 큰 좌절이었던 2012년 테라의 실패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우선은 재미있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읽고 나서 '아.. 개고생했네 진짜', '배그는 어쩌다 얻어걸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크래프톤이라는 회사와 그 안에 있는 많은 개인이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길을 뚫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만 알아주신다면 참 좋겠습니다.

주요 등장인물

  • 장병규: 블루홀(현 크래프톤) 의장 및 공동창업자
  • 김강석: 전 블루홀 CEO 및 공동창업자

4년간 제작비 400억 원을 들인 PC 게임 <테라(TERA)>의 기세는 급격히 꺾였다. 게임은 시장에 출시돼 고객을 만나기 전까지 그 흥행을 예측할 수 없다. 이제 게임의 성과는 매일 아침 숫자로 나타난다. 김강석은 2011년 테라 출시 한 달 만에 분명한 하락세를 느꼈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생각보다 일찍 트래픽이 빠지기 시작했다. 출시 2주가 지나면서 접속자 수 그래프가 하강 곡선을 거듭했다. 죽을 둥 살 둥 출시 고비를 넘었건만 다른 비탈이 눈 앞에 펼쳐진 셈이다.

 

출시하기만 하면 성공이 찾아올 줄 알았다. 달콤한 미래가 씁쓸한 현실로 변해버린 듯했다. 그대로라면 블루홀은 고난을 계속 겪어야만 했다. 런칭 초기의 반짝 효과로 매출은 제법 올리고 있지만, 당장 올해 예정된 미국과 일본 시장 런칭에 비상등이 켜졌다. 리텐션(retention)*이 약하다고 증명된 게임이 해외에서 통할 수 있을까. 성공은 언감생심, 제작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었다. 테라는 기대보다 재미없는 게임이었다.

* 사용자 잔존율

 

몇 번의 업데이트가 이뤄졌지만 테라의 리텐션 수치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개발진과 경영진 속이 타들어갔다. 이게 말썽이다, 아니 이걸 바꿔야 한다, 으르렁대는 일이 잦아졌다. 장병규가 보기엔 사람마다 문제의 진단과 해법이 다른 게 문제였다. "조직이 한 방향을 바라봐야 의도한 성과가 나오는데, 지금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며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간 테라를 이끌었던 공동 창업자이자 팀장(황철웅, 박현규, 김정한)들을 떼어 놓고, 중간 팀장들을 모아 논의를 시작했다.

 

20여 명을 단상에 세웠다. 직원들과 함께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말하는 발표 행사를 상시적으로 열었다. '포스트 모르템(post mortem)'이다. 라틴어로 '죽음 후'란 뜻이다. 시체를 부검하듯, 사고 이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을 말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은 업무를 마무리할 때 포스트 모르템을 통해 그간의 과정을 살핀다. 다음 작업에서 장점을 더욱 살리고, 실수나 아쉬웠던 점을 반복하지 말자는 의도에서다.

 

장병규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을 모아 같은 방향으로 달리자는 취지의 발표"라고 했지만, 일부 직원에겐 처방이 아니라 사약 같았다. 자기 반성이 아니라 자아 비판의 형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개발 리더들이 발표에 투입돼 개발 작업도 삐그덕거렸다. 

 

장병규는 강경했다. 개발 역량이 정체되는 한이 있더라도 전략을 제대로 정비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상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테라를 살려야 하는 십자가는 김강석이 짊어지고 있었다. 망가져가는 게임과 조직을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그의 화두였다. 비개발자 출신이다 보니 제작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의사 결정에 앞서 묻는 일이 잦아졌다. 중간 관리자와 의견을 나누며 개발 방향을 협의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의견을 또 다른 관리자에게 확인했다. 그저 개발 리더들과 이견을 조율하고 실행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와중에 블루홀을 지탱하는 한 축이었던 박용현이 공식적으로 퇴사했다. 그는 장병규와 함께 블루홀을 시작한 인물로, 테라 개발의 수장이었다. 2007년 블루홀 창업 당시 박용현을 따라 이직해온 직원만 50여 명. 그가 물러난 뒤로 업계에선 그 이유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추측이 무성했다. 블루홀은 박용현의 퇴사를 외부에 어떻게 알려야 하나 조심스러웠다. 그들이 바깥에 내놓은 보도자료는 이랬다.

테라의 안정적인 상용화와 해외 서비스를 준비했던 박용현 실장이 블루홀 퇴사를 결정했다고 밝혀졌다. 엔씨소프트 출신인 박용현 실장은 테라의 테스트와 상용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박 실장의 퇴사 결정은 변화의 초점을 맞춘 테라 조직 개편과 함께 테라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지친 상태라 회사에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압박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루홀의 한 관계자는 "우선 본인이 많이 지쳐 있고 테라가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기대에 만족할 만한 수준을 기록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부담이 박용현 실장을 힘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의견을 존중해 퇴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블루홀은 100점을 맞아야 한다는 절실함 위에 세워진 회사였다. 테라가 100% 성공했을 때의 모습만 머릿속에 새긴 채로 모든 사람이 온 힘을 짜내어 일했다. 잘해도 실패할 수 있는 게 게임판이었다. "과도한 기대치로 시작한 일에 대한 후과를 지금에서야 감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회사 안팎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부] 출근시간 준수

그럼에도 2011년 8월 블루홀은 일본 시장에 테라를 런칭했다. 해외 시장 진출의 첫 신호탄이었다. 국내 서비스를 통해 리텐션 수치가 낮은 게임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해외 시장 진출은 블루홀의 큰 사명이었다. 해외 런칭 계획을 뒤로 물릴 수 없었다. 형편이 어떻든 먹고살 방법은 테라뿐이었다. 한 달 동안 현지 서비스를 운영해본 결과, 하루 평균 동시 접속자 수 3만 명을 기록했다. 런칭 초반에 비해 1만 명가량 하락한 수준이었지만, '일본 온라인 PC 게임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에 위안을 삼았다.

 

일본에 이어 북미와 유럽 시장 런칭도 차근차근 진행했다. 김강석과 장병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테라를 새로운 시장에서 런칭시키고 성과를 낸다면 블루홀이 성장의 모멘텀을 얻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터지기만 한다면 블루홀이 겪은 모든 고난은 훗날 술자리 안줏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김강석과 장병규는 블루홀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조직 문화를 바꿨다. 자율적으로 출근하던 직군별 팀장들을 10시까지 출근하게 했다. 장병규는 조직 생산성과 성과를 높이는 관점에서 출근시간을 바라봐야 한다고 여겼다. 이 제도를 개발실 전체에 적용하고 싶었다.

 

장병규는 '[당부] 출근시간 준수'란 제목의 이메일을 전 직원에게 보냈다. 일부 직원들에겐 당부가 아닌 통보로 읽혔다. 장병규는 세 가지 이유를 댔다.

먼저,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짧은 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얼굴 보고 5~10분 대화하는 것은 미리 정한 시간에 50분간 일어나는 회의와 매우 다른(!) 효과가 있습니다. 새로운 조직 개편으로 이런 대화가 더욱 중요해졌지요. 당연히 짧은 대화를 위한 공통 시간대가 중요합니다.

 

저희가 하는 게임 제작과 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의 근면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꽤 장기간의 근면성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출근시간을 루틴처럼 정해두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도움이 됩니다.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게으름은 가지고 있고, 이를 규율하는 방법 중 하나로 출근시간 엄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는 지식 근로자들입니다. 지식 근로에 있어서 몰입과 집중의 중요성을 제가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요. 동일한 시간을 일하더라도 생산성의 차이는 상당합니다. 많은 사람의 출근시간이 사소하게 다르면, 그것으로 인한 어수선함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런 어수선함 또한 생산성에 매우 영향을 미칩니다.

장병규는 출근 직후 몇몇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회사가 제공하는 간이 아침 식사를 하는 것에도 원칙을 세웠다.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10시엔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으면 했다. 오후 12시 30분부터 시작되는 1시간 점심 식사 시간도 마찬가지. 1시 30분에는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단, 점심과 티타임은 편하게 업무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2시 정도까지 커피를 마시면서 업무를 협의하는 건 괜찮다.

 

이렇게 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30분까지, 오후 2시부터 퇴근시간인 저녁 6시30분까지 총 7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일반 회사에 비해 적지만, 일에 몰입만 한다면 다른 회사보다 훨씬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게 장병규의 지론이었다. 지식근로자는 업무 시간에 집중적으로 강도 높게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행위는, 결국 우리의 게으름을 방지하면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출근시간을 준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되지요.

 

아래와 같은 경우에는 예외 처리가 가능하니, 직군별 팀장을 통해 저에게 공유해주세요. 

  • 낮보다 밤에 일이 더 잘 되고, 짧은 대화에 참여가 적은 경우
  • 가족 일로 인하여 업무 시간 조정이 필요한 경우
  • 오전 근무가 잘 되기 때문에 오전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고 싶은 경우 등

성과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예외 승인 요청은 가급적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모든 개발실 구성원들이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예외인 분들은 사전에 정한 예외 규칙대로) 규율을 스스로 지키는 자율적인 조직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럼,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에 함께 건승해요.

눈보라에 휩쓸린 테라

2012년 블루홀은 북미 게임 시장에 사활을 걸었다. 해외 진출은 블루홀의 오랜 꿈이었다. 전 세계 시장에 게임을 서비스하는 미국의 블리자드 같은 회사가 한국에서도 하나쯤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명예를 블루홀이 차지할 것이라 믿었다. 블루홀을 아시아 시장에 갇힌 게임 회사로 두기 싫었다. 북미 시장 런칭은 블루홀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 시장에서 직접 서비스를 준비했다. 퍼블리셔를 끼지 않는 위험 부담이 있지만, 성공한다면 과실은 온전히 블루홀 것이었다. 유럽 시장은 여력이 부족해 현지 업체에 퍼블리싱을 맡겼다. 미국 현지 자회사 엔매스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 준비에 풀가동되었다. 엔지니어 인력을 크게 늘려 직원만 100명이 넘었다. 자체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장병규는 연초 전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2012년의 목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블루홀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제작, 온라인 게임, 남들의 인정 그리고 글로벌 정도가 있죠. 스스로의 비전과 블루홀의 비전에 적어도 교집합은 있어야 합니다. 블루홀 구성원의 삶은 비전을 향해가는 여정이어야 하고, 그런 여정 가운데 개인적인 성취를 해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왜 블루홀에서 일하나요? 블루홀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가 뭔가요? 10억 달러(약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는 개봉 3주 만에 1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콘솔 게임 <기타히어로3>는 2007년 10월 출시한 뒤 2년도 안 돼 10억 달러를 넘었고,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는 2009년 11월 출시 후 2개월 만에 10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은요? 블리자드의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있습니다. 해마다 10억 달러를 버는 유일한 온라인 게임입니다.

 

블루홀의 비전은 담대합니다. 우리의 꿈 또한 가까운 미래에 1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목표 달성엔 일단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힘들긴 합니다. 대형 MMORPG*를 다른 세계 시장에 출시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블루홀의 비전과 믿음에 변화는 없습니다.

*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줄임말로, 온라인으로 연결된 여러 플레이어가 특정 역할을 수행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뜻한다.

 

그동안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정말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계획하고 실행하고 또 학습했습니다. 이런 난리 중에도 블루홀의 가치는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글로벌에서 최대 성과와 비전을 달성해야 합니다.

 

글로벌 서비스는 대단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각 나라에서 사소한 것의 차이가 재미를 결정짓습니다. 시간과 언어, 문화, 사회 차이를 극복하고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블루홀 미국 법인인 엔매스는 블루홀에겐 기회입니다.

 

블루홀 초창기부터 투자를 거듭했고 앞으로도 투자를 할 겁니다. 수많은 실수들을 했고, 지금도 힘든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엔매스 CEO를 채용하는 데 실패하기도 했죠. 전 영어도 못 합니다. 하지만 테라를 미국 시장에 서비스하기 위해 어떻게든 협력하겠다는 체력과 의지는 충분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장병규는 회사의 명운을 걸고 큰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만 10여 명이 넘는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지원 인력까지 합치면 총 40여 명을 북미 런칭 준비에 투입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안 됐다. 스스로 총대를 멨다. 영어에 서툰 장병규가 엔매스엔터테인먼트 CEO를 겸직했다. 한 달에 2주씩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강행군을 9개월간 했다. 시차로 인해 생체 시계가 고장나 미국에선 하루에 두 번씩 나눠 자며 일했다. 오전 9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후 내 일하고 밤 11시에 잠에 들었다. 새벽 3시쯤 일어나 일을 했고 6시에 다시 쪽잠을 청했다.

 

테라는 북미와 유럽 서비스를 시작했다. 블루홀은 테라를 영어·불어·독일어 세 가지 버전으로 온·오프라인 매장 게임 패키지를 만들어 병행 판매했다. 서비스 개시 며칠 뒤, 미국 업체 블리자드가 액션 RPG 신작 <디아블로 3>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페인어로 '악마'란 뜻인 디아블로 시리즈는 1996년 첫 발매부터 게임 흥행의 역사를 새로 썼던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다.

게임 <디아블로3>(왼쪽)와 제작사 블리자드에서 연 행사 <블리즈컨>(오른쪽)

마케팅과 프로모션 계획을 이미 확정한 블루홀은 테라 런칭을 미룰 수가 없었다.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디아블로3의 전 세계 판매량은 출시 첫 주만에 630만 장을 기록했고 몇 달 뒤 3000만 장으로 뛰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게이머가 악마의 재림에 열광했다. 북미의 유명 게임 잡지와 언론,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 모두가 디아블로3 이야기로 도배됐다.

 

블루홀은 힘 한번 써보지 못했고, 테라의 판매량은 곤두박질쳤다. 장병규는 지난 2007년 블루홀의 첫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블리자드(눈보라, blizzard)가 블루홀(bluehole)이라는 심해의 구멍에 삼켜져서 조용해진 세상을 생각해 봅시다. 블루홀이 블리자드를 품는 광경을 상상해 봅시다.

그랬던 그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눈보라에 휩쓸렸고, 그 눈보라는 심해 구멍 속 바닷물까지 남김없이 얼려버릴 기세였다.

 

게임 매장에 유통된 테라 패키지의 재고는 거의 그대로였다. 북미 진출의 꿈은 비참한 백일몽이었고, 냉혹한 현실에서 맛보는 실패의 쓴맛은 진하기만 했다.

포스트잇 260장

이대로는 못 버팁니다.

몇 달 뒤 재무팀이 장병규와 김강석에게 회사의 위기 상황을 알렸다. 미국과 유럽에서 테라를 런칭해 현금 보유량은 일시적으로 늘어났지만, 전체 직원 260명 인건비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당장 2013년에 자금이 바닥나 회사가 망할 게 뻔했다. 설상가상으로 테라를 서비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났다. 테라는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테라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직원 260명의 20% 정도, 50~60명을 내보내야 블루홀이 살 수 있었다. 이사회는 감원을 결정했다. 장병규 마음에 납덩이가 가라앉았다. "희망퇴직 제도를 준비해 주세요." 피플팀장 임재연에게 말했다. 회사를 나가는 직원이 서운해하지 않고 최대한 혜택을 볼 수 있게끔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당부도 했다.

 

창업자들을 포함한 직군별 리더들에게 "남길 직원의 우선순위를 정해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 북미 런칭 팀에 합류했던 또 다른 창업자 김정한도 잔류 대상자 리스트를 써야 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의 이름을 제일 아래에 적었다. 충성심 높고 일 잘하는 경력자였지만, 연봉이 높았다. 참혹한 손으로 남은 칸에 이름들을 채웠다.

 

장병규는 황철웅, 김정한, 박현규를 포함한 직군별 리더들을 회의실에 불러모았다. 문을 걸어 잠갔다. 노란색 포스트잇마다 직원 이름이 적혔다.  포스트잇 260장을 직군별로 분류해 한쪽 벽에 모두 붙인 뒤, 꼭 있어야 할 사람, 그다음에 있어야 할 사람 등 남아야 할 순서를 정해달라고 했다. 신규 제작 라인을 포함한 회사의 미래, 테라 운영 등이 기준이었다.

 

직군별 리더들이 이름 하나를 부르면, 포스트잇 한 장이 떼어졌다 다른 자리에 붙었다. 회의가 끝나자 블루홀 직원의 이름 260개가 한 줄로 세워졌다. 

 

이후 장병규는 전사 발표를 열고 감원 계획을 밝혔다. '블루홀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회사의 사업과 재무 상황, 예상되는 재원 부족을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 감원은 빠르게 끝나야 고통이 덜하다. 한 달 내에 구조 조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장병규 손엔 명단이 들려 있었다. 잔류 명단에 오른 사람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100명 정도였다.

 

장병규는 "발표했다시피 희망 퇴직 신청을 받을 거지만, 여러분만은 꼭 남아주셨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경영진을 포함한 직군별 리더들은 이 행사를 최대한 내부에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회사엔 이미 소문이 돌았다. 팀장들은 방출 명단에 오른 대상자들과 일대일로 면담하며 퇴직을 진행했다.

 

한 달 새 많은 이들이 떠났다. 감원이 정리돼갈 무렵 사내 인사 공지 게시판에 이런 인사가 올라왔다.

블루홀에서 처음으로 희망퇴직이 있었습니다. 블루홀의 재건과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많은 분과 작별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동안 블루홀과 테라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퇴직하신 분들 몫까지 힘내서 더 좋은 블루홀과 테라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 뵙길 바라며… 모두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김강석은 2012년 겨울이 유난히 추웠다. 블루홀은 한 팀이길 추구하는 회사였다. 사업 부서 내에 있던 한 팀을 통째로 없애겠다는 통보도 직접 해야 했다. 익숙했던 얼굴들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회사를 욕하거나, 처지를 견디지 못해 울고 나가는 직원을 보는 건 괴로웠다. 그는 '언제까지 경영자의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구조 조정의 상처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은 알겠다'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