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생, 심하게 적극적인 마케터 조아란

ⓒ이근영

조아란, 민음사 

2010년 첫 직장으로 민음사에 입사, 10년간 재직 중이다. 콘텐츠 기획팀장으로 도서 마케팅, 민음사 SNS 채널 및 유튜브 '민음사TV'의 관리·기획을 맡고 있다. 새것을 좋아하는 마음, 일과 나의 작은 연결고리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일하는 사람

정유선(이하 생략): 팀 이름이 '콘텐츠 기획팀'이네요. 일반적인 출판사 마케팅팀과 이름이 다른데, 어떤 일을 하는 팀인지 소개해주세요.

조아란(이하 생략): 마케팅팀 안에 있는 팀인데, 유튜브와 SNS 채널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생겼어요. 새로운 콘텐츠 기획과 채널 관리에 집중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마케팅팀 특성상 기존 단행본 도서 마케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년을 한 회사에서 일하셨으면 업무가 격변하는 걸 몸소 경험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입사했을 때가 2010년인데, 처음에는 서점 영업을 주로 했어요. 서점 MD와 미팅도 하고, 갓 입사했을 때는 직접 오프라인 서점에 수금하러 다니기도 했어요. 마케팅팀보다 영업팀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쓸 정도였죠. 

 

제가 입사할 때 즈음, 온라인 서점이 성장하고 SNS 채널이 발전하면서 온라인 중심의 마케팅 업무가 늘기 시작했어요. '영업'을 넘어 '마케팅'으로 업무 영역이 넓어지던 시기였죠. 이때 편집자, 마케터 등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으면서 헤맸어요.

 

콘텐츠 기획팀으로 나뉘면서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서점 영업이었어요. 서점 관련 프로모션은 그대로 기획·진행하는데 영업 업무는 하지 않게 된 거죠. 그때부터 콘텐츠 마케팅 전략 수립과 SNS 관리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이제 영업 일은 완전히 안 하나' 싶었는데 그때부터 동네서점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웃음) 워낙 단기간에 급증했고, 기존 서점과 다른 형태의 서점이라 기획팀에서도 접근 방법과 프로모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다시 동네서점 '영업'을 하고 있죠.

 

민음사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나요?

일단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원래 책을 좋아해서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저는 꼼꼼하지도 않고 무언가에 오래 집중하는 성격도 아니라, 애초에 편집자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아이덴티티는 확실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준비는 전혀 못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민음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채용 공고를 봤는데, 그게 마케팅팀이었어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지원한 회사였고, 정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락이 없더라고요. 지금 본부장님이신 당시 차장님께 면접을 보게 해달라고 한 번 더 연락을 드렸어요. 그 적극성을 높게 평가받아 채용되었던 것 같아요.

 

정말 적극적이셨네요. 입사 후에는 어떠셨어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영업이 중심이던 때였고, 마케팅 기획 업무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으니까요. '좋은 책은 결국 팔린다'라는 마인드가 강하다 보니 출판사의 역량이 편집부에 집중되기도 했어요. 물론 지금도 유효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이기도 하거든요. 

 

책의 출간 종수가 늘고, 마케팅 채널도 점점 다각화되면서, 출판사에서도 마케팅·홍보 영역의 전문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졌어요. 그때 일할 기회가 많이 열렸죠. '요즘 이런 것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건 어느 팀 일이지?' 하면 제가 가져왔어요. 단순히 일이 많아진다기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10년대 초반에는 마케터가 조금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SNS였던 것 같아요. 지금이야 누구나 하는 일이지만, 그때는 SNS에 대해서 다들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로 먼저 시작하느냐가 중요했어요.

 

근래 민음사의 마케팅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닐 거예요. 어떤 부분에서 마케팅에 변화를 주려고 하셨나요?

몇 년 전 구조적인 개편을 해서 내부 결재 라인이 짧아졌어요. 그러면서 팀장이 대표님과 직접 소통하게 되었죠. 여러 장단점이 있겠지만, 의사결정이 빨라진 것은 확실해요. 덕분에 팀이 처음 기획한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최종안이 통과될 수 있게 됐죠. 수평적 구조 덕분에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분위기도 만들어졌어요.

 

개편으로 회사에 젊은 팀장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시도로 젊은 감각을 발휘하자는 욕심도 커졌어요. 회사에서도 이런 변화를 환영했고요. 마케팅이 개선되었다면, 한 사람이 갑자기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은 아닐 거예요. 전보다 유연해진 조직 구조와 '새로운 아이디어는 일단 실천해보자'는 기업 문화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 관련 기사: 출판 명가 민음사의 신선한 변신 (시사IN, 2018.1.2)

쏜살문고, 독특한 디자인과 열린 큐레이션

진행하셨던 프로젝트가 궁금해요. 먼저 '쏜살문고'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쏜살문고는 편집부에서 기획한 민음사의 새로운 시리즈에요. 더 젊고 트렌디한 감각의 책, 컴팩트한 문고본을 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였죠. 민음사가 지금껏 잘해온 묵직함을, 새롭고 가벼운 외피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첫 시도가 세계문학전집의 고전 단편을 큐레이션 한 쏜살문고였어요. 쏜살문고를 통해 새로운 독자들이 더 깊이 있는 고전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였어요.

 

쏜살문고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시도를 위한 시리즈'라는 거예요. 민음사의 미래를 위한 시리즈죠. 그동안 '민음사라서', '민음사와 결이 맞지 않아서', '해오던 것이 아니어서' 등의 이유로 소개하지 못했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민음사라서 닿지 못하는 틈이 있는 거죠. 이 시리즈는 그런 틈에 닿기 위한 시도에요. 마케터로서도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볼 여지가 생긴 거죠.

 

쏜살문고를 보고 '민음사 디자인이 이렇게 예뻤나' 하고 감탄했어요.

디자이너나 편집자나 파격적인 디자인을 많이 시도했어요. 규격, 제목, 작가소개가 들어간 위치, 모양 등을 파격적으로 바꿨죠.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걱정이 많았어요. '새로운 것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하는 우려였죠. 기존 표지의 익숙하고 안정적인 문법과는 전혀 다르니까요. 

 

하지만 담당자들이 새로운 느낌을 강조했고, 거의 수정 없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젊은 실무자들의 감각을 믿어준 거죠. 재미있는 부분은 '파격적이고, 실험적이지 않나' 했던 내부 우려와 달리 독자들은 오히려 단순하게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그냥 '존예'라고. (웃음)

2016 쏜살문고 시리즈 7종 ⓒ민음사 

크기에도 신선한 매력이 있어요. 작은 가방이나 코트 주머니에도 들어가거든요. 지하철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고도 독서가 가뿐히 가능하죠. 양장본이 멋지긴 해도 들고 다니기엔 무겁잖아요. 여행지에서 호로록 읽기도 좋고요.

 

쏜살문고에는 거장의 소설도 있고, 에세이도 있어요. 시리즈인데 넘버링은 하지 않았고요. 여러 가지로 새로운 시리즈에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 토마스 만(Thomas Mann),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나쓰메 소세키까지 거장들이 쓴 고전이 많죠.

 

그 외에 작가 무라카미 류의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디자이너 이기준의 에세이 <저, 죄송한데요> 같은 국내외의 경쾌한 에세이도 있고, 명언 제조기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말을 모은 <오스카리아나>처럼 재치 있는 작품들도 있어요. 

 

최근에는 박완서 작가님부터 캐릭터 무민(moomin)으로 유명한 토베 얀손(Tove Jansson)까지 여성 작가 컬렉션을 쏜살문고 시리즈로 출간했어요.* 시리즈 속의 시리즈죠. 이런 부분이 쏜살문고만의 강점인 것 같아요. 다양한 큐레이션을 시도할 수 있는 열린 시리즈라는 것.

* 관련 기사: 아니 에르노·박완서, 여성 서사를 다시 펼치다 (서울신문, 2019.11.6)

* 쏜살문고 여성문학 컬렉션

쏜살문고로 동네서점 에디션을 진행하셨는데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쏜살문고 시리즈의 특성이 명확하다 보니, '민음사의 동네서점 에디션'보다 '쏜살문고x동네서점 에디션'이 더 엣지 있고 동네서점과 잘 맞겠다 싶었어요. 작은 서점의 작은 책, 개성 있는 이야기,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부담 없는 가격까지요.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인간실격><무진기행> 두 편을 진행했어요. 고려한 두 가지는 쏜살문고에 담을 수 있는 분량일 것, 그리고 민음사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일 것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세계문학전집의 스테디셀러 중 분량이 맞는 두 작품이 선정되었죠. 마침 제목 글자 수도 딱 맞았고요. (웃음)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새롭게 출간된 <인간실격>과 <무진기행> ⓒ민음사

쏜살문고는 얼마나 판매된 건가요?

동네서점 에디션은 초반에 3000세트를 만들었고, 최종적으로 2개월 사이에 9000부 정도 판매되었어요. 모르는 사람에겐 작은 숫자일 수 있지만, 당시 민음사도, 동네서점도 각자의 역량을 확인하기엔 충분한 수치였어요.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느꼈고, 동네서점 입장에서도 '이 정도는 팔 수 있다'고 생각했죠.*

* 관련 기사: 동네로 돌아온 동네책방 (한겨레21, 2017.9.11)

 

당시 론칭 초기였던 쏜살문고는 동네서점 에디션 덕분에 홍보 효과를 크게 보기도 했어요. 쏜살문고는 현재까지 50권 정도 발간되었고 총 20만 부가 판매되었어요. 도서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계산하면 한 권당 3000~4000부가 판매되었네요.

 

50권이 넘는 시리즈가 3000부가량의 안정적인 판매를 올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시리즈로 매출을 견인할 목표는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매출도 매출이지만 쏜살문고는 민음사 브랜딩에 큰 도움을 준 기획이었어요. 

 

동네서점 에디션의 또 다른 효과도 있었나요?

쏜살문고 시리즈가 동네서점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지금도 동네서점과 다양한 행사 및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 동네서점이 급속도로 증가했어요. 이제는 어느 지역을 가도 그 지역의 특색을 담은 동네서점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출판사들은 오랫동안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과 거래했는데, 이제 동네서점과 어떤 방식으로 거래하고 홍보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거예요. 동네서점은 운영 방식도, 팔고자 하는 책도 모두 다르거든요. 

 

점점 개인의 취향이 미분화되는 시대에 동네서점은 민음사에게 아주 중요한 거래처에요. 젊은 층의 취향, 새로운 삶의 방식에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니까요. 앞으로 동네서점은 더 많아질 것이고, 더 강한 고유의 색을 가질 거예요.

 

동네서점 마케팅을 할 때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점은 뭔가요?

 당연한 얘기지만, 동네서점 거래는 1:1 거래에서 발생하는 업무 로드(load)에 비해 눈에 보이는 매출 자체는 매우 적어서 직거래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어요. 서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일일이 거래하는 게 정말 힘들죠. 서점이 얼마나 많아요. 하지만 그게 저희가 동네서점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데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여러 제안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거죠.

 

마케팅은 여러 개 제안하면서 직거래는 어렵다고 하면 함께 일하기 힘들겠다고 판단했어요. 어떤 동네서점에 '쏜살문고x동네서점 에디션 이벤트'를 제안하는데 그 서점에 민음사 책은 없는 거예요. 과연 서점들이 민음사와 프로모션을 하고 싶을까요?

 

또 제가 동네서점 에디션을 진행하면서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합리적인 영업 관리였어요. 어떻게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을지, 그 거래는 어떻게 투명하게 관리 할 수 있을지, 서점과 출판사 사이의 루틴한 업무에서 오는 피로감은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반짝이는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요. 그래서 기존에 메일이나 전화로 주고받던 주문 관리와 거래 안내 등을 매뉴얼화하고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없어도 누구나 응대할 수 있고, 어떤 서점이나 거래처를 등록하면 동일한 조건으로 민음사와 거래할 수 있도록 했죠. 각각 다른 사람들과 지속 가능하게 일하려면, 감정 소모나 피로도를 줄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어요.

고전을 트렌디하게 만드는 브랜딩

민음사는 시리즈가 강한 회사죠. 이미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독보적인 시리즈를 구축하고 있는데, 시리즈 마케팅에서 단행본과 차별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요?

시리즈의 강점은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한 권 한 권 판매 후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쌓일수록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브랜드에 힘이 되죠. 저는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민음사에는 세계문학전집이라는 확고한 시리즈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의 마케터들이 단행본마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시도하는 게 굉장히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민음사

시리즈가 마케팅하기에 좋은 점이 많아요. 단행본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책정되는 마케팅 비용이 대체로 한정적인데, 시리즈는 여러 권이 받쳐주는 매출이 있기 때문에 단행본보다 여유 있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어요. 그럼 프로모션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생겨요. 덕분에 시리즈는 프로모션 혹은 마케팅한다는 느낌보다 '시리즈를 브랜딩한다'는 전략으로 진행할 수 있어요.

 

세계문학전집으로 진행한 기억에 남는 프로모션이 있나요?

작가 캐릭터로 굿즈를 만드는 프로모션도 있었고, 최근에는 일력 다이어리가 반응이 좋았어요. 일력 다이어리는 올해로 5년째 제작 중인데, 고전 시리즈에서 한 문장을 발췌하고, 한장 한장 뜯어낼 수 있도록 만든 달력이에요. 시리즈이기 때문에 매년 제작이 가능한 거죠.*

* 관련 기사: 하루를 뜯는 재미, 복고 바람 타고 '일력'이 뜬다 (조선일보, 2018.12.20)

 

일력 다이어리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세계문학전집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고전을 읽고 싶어도 막상 시작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마침 세계문학전집이 350권 정도 나와서 각 책의 첫 페이지를 모두 넣은 일력을 만들어보기로 했죠. 365일 매일 달력을 보는데, 그때마다 고전의 첫 페이지를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시작이 반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5권의 반은 읽은 거다'라고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었죠. 다들 시작하기가 힘들었는지,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웃음) 매년 반응이 좋아서 민음사의 연말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책 속 좋은 문장을 넣은 일력으로 바꾸어 제작 중이고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82년생 김지영>도 그 시리즈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많이 알려졌을 거예요.

현재 출판계에서 많이 시도하는 기획이죠.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나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도 있고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경장편 길이의 작품으로, 조남주, 정세랑, 최진영 등 젊은 한국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런칭한 지 6~7년 정도 되었네요.

 

시리즈의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마케팅을 하셨나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무엇보다 작가 마케팅에 집중했어요. 편집부에서 '당장 1~2만 부가 나가지 않더라도 앞으로 출판사의 새로운 얼굴이 될 작가들'이라며 시작한 시리즈였어요. 그래서 작가를 알리기 위해 더 노력했죠.

 

편집부와 마케팅팀이 긴밀하게 협조하는 편인가 봐요.

네.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신뢰가 형성되었죠. 책을 만든 편집자가 '작가님의 이번 책도 좋지만, 앞으로는 더 좋을 거다'라고 애정 어린 말을 했을 때 마케터가 이를 믿고, 작가를 알리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신뢰요. 작가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어요.

 

실제로 이 시리즈에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많아지면서 더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이로 인해 서로 간의 신뢰가 다시 쌓이는 연속성이 생기고요. 

 

<82년생 김지영> 출간 초기에 진행했던 행사에는 10명이 왔었어요. (웃음) 그때는 아무도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고, 작가님도 유명하지 않았어요. 베스트셀러 된 후에 초기에 참가했던 10명의 독자를 찾아야 하나 생각했어요. (웃음) 유명하지 않더라도,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꾸준히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있어요.

논란을 넘고 의미를 찾는 것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은 빼놓을 수 없는 책이죠. 대체 얼마나 판매된 건가요? 

지금까지 대략 130만 부 나간 것 같아요. 제 마케팅 인생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네요.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어요. 당시 페미니즘 이슈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해서 편집자들도 1만 부 이상은 나갈 거라고 확신했죠. 이 정도로 메가 베스트셀러가 될 줄은 몰랐지만요.

 

이 책이 처음부터 잘 팔리지는 않았어요. 계기가 몇 번 있었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했을 때에요. 그때를 계기로 여러 고민을 하다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마케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 환원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죠.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가 '미투 배지'를 무료로 배포하는 이벤트였어요. 1만 개를 만들어서 SNS로 신청하신 분들께 배송비 1000원에 보내드렸는데, 하루 만에 종료되었어요. 

책을 더 팔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도, 책을 파는 마케터들도 진심을 다한 책 중 하나가 <82년생 김지영>이었죠. 

 

저도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책 출간 초기에 작가님과 독서 모임을 많이 나갔어요. 독서 모임에 젠더 이슈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오셨죠.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라 작가님도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어요.

 

또 다른 계기도 있었나요?

고(故) 노회찬 대표가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었어요. 그전에는 <책 끝을 접다>라는 SNS 채널에서 제작한 카드뉴스가 폭발적인 반응을 끌었어요. 특히 명절 기간에 카드뉴스가 화제가 되면서 여러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엄청나게 바이럴 되었죠. 이후에도 여러 셀럽과 정치인들의 추천이 이어지며 화제성을 이어갔어요.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라 마케팅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려웠죠. '이 책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겠다, 많이 팔겠다'라는 의도를 밝히는 순간,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예를 들면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다고 했을 때도 최대한 간접적이고 방어적으로 홍보했어요. 홍보할 때도 스스로 검열을 많이 했죠.

 

한 번은 조남주 작가님과 네이버 생중계를 하는데, 댓글에 악플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거예요. 진행하는 스태프들도 사실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정서적으로 피폐해지더라고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작품을 뜨겁게 응원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어요. 책은 책의 힘으로 계속 나아가고, 독자들은 책을 계속 추천했죠.

 

밀리언셀러를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은 경험인데, 어떠신가요?

그냥 재미있는,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 이슈의 중심에 있는 작품을 마케팅했다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죠. 그리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내가 파는 책의 반이라도

닮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일종의 책임감도 생기고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말 한마디, 단어 하나도 더 조심하고, 틀린 것은 고치려고 노력했죠. 특히 젠더 이슈에 대한 공감대는 사내 문화도 많이 바꿨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스트셀러는 일하는 사람에게 큰 에너지를 불어넣어요. 물론 일은 많아져요. 대응해야 할 이슈도 계속 생기고요. 그래도 잘 팔리니까 좋죠. (웃음) 더 욕심이 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겼어요.

지속 가능한 것이 중요하다: 유튜브 <민음사TV>

민음사TV가 출판계에서 화제입니다. 어떤 컨셉으로 기획하시나요? 

유튜브를 기획할 때는 다른 출판사와 조금이라도 다른 걸 하고 싶고, 저 스스로도 챙겨 보는 재미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었어요. PD들과 첫 미팅을 할 때도 "책 홍보 영상이 아니라 재미있는 거 해보자"라고 말했죠.

 

2019년 초 본격적으로 기획해서 파일럿을 만들었어요. 내부에도 책 광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유튜브의 문법과도 맞지 않고, 사람이 모이지 않는 채널에서는 어차피 뭘 해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무조건 사람을 끌어오는 재미있는 걸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시리즈 마케팅과 비슷한 전략으로 접근했어요. 단행본처럼 영상 한 편, 한 편을 상세히 기획하기보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민음사라는 브랜드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영상 제작은 유튜브 PD들의 젊은 감각과 아이디어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는 내부자고, '고인물'이다 보니 의견이 다를 때도 있죠. (웃음) 그때마다 브랜드 마케터로서 중심을 잡으면서, 외부 의견을 유연하게 수용해 발전시킬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합니다.

 

구독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총 몇 명인가요?

이제 1만 명 되었어요. 영화 개봉에 맞춰서 올린 <82년생 김지영> 편집자 비하인드 영상이 이슈가 되면서 구독자가 확 늘었죠. 서효인, 박혜진 편집자가 직접 책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어요. 책을 만들게 된 배경과 논란,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까지요. 좋은 영상이라 계속 바이럴이 되었고, 업로드 일주일 만에 3만 뷰가 나왔어요. 출판사 유튜브 계정에선 잘 나오지 않는 수치죠. (웃음)

* <82년생 김지영> 편집자의 비하인드 ⓒ민음사TV 

 

이 영상은 특수한 케이스이고, 꾸준히 조회수가 나오는 영상은 '말줄임표 영상'이에요. 두 편집자의 좌충우돌 북토크쇼로, '그냥 수다 같은데 다 보고 나면 어쩐지 책 읽고 싶어지는 느낌(?)'을 지향합니다. (웃음) 말줄임표가 예능 파트를 담당한다면, '알려드림 영상'은 평소 궁금했던 작가나 작품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교양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요.

 

최근 말줄임표 영상 중 '편집자의 가방엔 무엇이 있을까'가 인기를 끌었어요. 편집자들 가방을 들여다보는 영상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유튜버들도 어떤 영상이 인기를 끌지 아무리 만들어도 모르겠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 [말줄임표 EP13] 출판사 편집자 가방엔 무엇이 있을까? ⓒ민음사TV

 

업로드 주기는 얼마나 되나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올리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정이에요. 그런데도 출연하시는 편집자분들이 즐겁게 해주셔서 늘 감사해요. 편집자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여러 가지를 요청하는 게 참 미안했어요. 요청하는 입장에서도 스트레스고요. 그래서 아예 기획단계부터 직원 출연료도 예산으로 잡았어요. 서로 조금 더 충실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고루함을 젊음으로: 콜라보 마케팅

오이뮤(OIMU) 디자인 스튜디오와 꾸준히 협업하고 계신데, 관련된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교보문고와 작가 성냥 굿즈 프로젝트를 하며 오이뮤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사은품 관련 일부터 책 사진 촬영까지 의뢰하며 계속 관계를 이어왔죠. 최근 워터프루프북(waterproof book) 프로젝트와 민음 북클럽 디자인도 함께했고요. 

*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와 함께(1) 민음북클럽 ⓒ민음사TV

 

워터프루프북은 정말 혁신적이라 생각했어요. 반응도 엄청나게 핫했죠.

마케터들은 시즌마다 무언가를 만들잖아요. 워터프루프북도 2018년 여름 휴가철에 처음 시작했어요. 휴가철에 바다로 놀러 가면, 사실 책 잘 안 읽잖아요? (웃음) 젖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조심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방수가 되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디어를 오이뮤에 이야기했더니, 너무 재밌겠다면서 물에 젖지 않는 종이를 찾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친환경 재생지로 방수까지 되는 종이, 미네랄 페이퍼(mineral paper)를 찾았어요. 판형에 대해서도 고민하다가, 여행지에서 읽는 책이라는 컨셉에 맞게 쏜살문고처럼 작은 판형으로 제작했어요.

<한국이 싫어서>, <82년생 김지영>, <보건교사 안은영>, <해가 지는 곳으로>까지 4종을 만들었고,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모두 오이뮤에서 진행하고 납품받는 방식이었어요. 종이가 특수하다 보니 인쇄부터 제본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고생한 만큼 출시 후 반응이 좋았어요. 세상에 없던 책이 나왔으니까요.  

 

2018년 첫 워터프루프북 시리즈는 1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2019년에 고전 여성 작가들의 고딕소설 3종을 출시해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어요. 아마 여름 시즌 민음사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콜라보에 굉장히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잘 어울리는 브랜드와의 협업이 주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민음사가 가진 기존의 고루한 이미지를 바꿀 방법을 고민하다가 콜라보 마케팅을 시작했어요. 가장 큰 화두는 '젊은 독자, 새로운 독자를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 였죠.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젊고 트렌디한 브랜드와 콜라보하며 민음사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알아주시는 분들은 "이런 콜라보를 자주 진행하는 기업에서는 젊은 감각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해요. 그렇게 계속 더 좋은 브랜드와 연이 닿기도 하고요. 이럴 땐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아요.

 

기억에 남는 콜라보는 의류 브랜드 키이스(KEITH)와 만들었던 에디션인데, <자기만의 방>, <폭풍의 언덕> 등의 표지를 키이스 시즌 화보로 만들었어요. 패션 화보를 표지로 쓰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독자들의 선택은 달랐어요. 3000 세트를 알라딘에서 단독 판매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완판됐어요. 1위도 하고요. 아마 이때부터 출판계에 에디션 제작이 유행했을 거예요. (웃음)

의류 브랜드 키이스와 콜라보한 에디션 ⓒ민음사

'새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10년간 마케팅을 해오며 드는 고민이 있다면?

가장 큰 고민은 대표작이 없다는 거예요. 편집자들은 본인이 만든 책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자부심도 있고요. 마케터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 책을 모두 맡아야 하니까 '내 것이 뭐지?'라는 콤플렉스 같은 게 생겨요. 특히나 출판계는 디자이너나 편집자처럼 각자 자기 것이 확실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저도 공감이 많이 되네요. 그럼에도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나요?

꽤 오래전인데, 고전 작가의 사진으로 작가노트를 만든 적이 있어요. 판매용이었는데 그게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했어요. 그해 민음사에 베스트셀러가 없었는데 말이죠. (웃음) 굿즈를 판매용으로 만들어 1위에 오른 첫 번째 사례였어요.

 

그 후로도 마케터로서 계속 무언가를 만들었어요. 일력도 그렇고, 워터프루프북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것들이 내 것이라는 감각보다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더 새로운 것, 더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고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서 짜릿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내 머릿속에 있던 것보다 더 멋지네!' 하고요.

 

이런 사례들이 모여 마케터에 대한 신뢰로 이어져요. 마케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수락할 수 있게, 함께 더 나은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게 하죠. 그러면서 더 큰 시너지를 내는 긍정적인 순환이 생겨요.

 

팀장으로서 팀원과 상사는 물론, 편집자와 디자이너, 작가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일해야 하는데요.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나요?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본인만의 팁이 있다면?

마케터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좋은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저는 제 의견을 최소화해요. 예를 들어 어떤 사은품을 만들 때 '사은품을 만든다'는 목표만 빼고 제 의견은 최소화합니다. 디자이너와 관련 업무를 논의할 때 '어떤 사은품을 만들고 싶어요'가 아니라 '사은품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 아이디어가 좋을까요?'라고 다가가는 거예요.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적용되니 더 멋진 디자인이 나오도록 노력할 가능성이 크겠죠. 결과적으로 관계에서의 스트레스는 줄고, 결과물의 퀄리티는 좋아져요. 상대에게 나를 맞춰서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랄까요? 그냥 '저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마케터로서의 강점이 있나요?

이건 성격 테스트에도 나오는데, '새것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책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정신없을 때도 있지만, 마케팅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트렌드는 공부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늘 관심을 갖고, 직접 해보고, 느껴야 해요. 본인이 이 과정을 재미있어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안에서 스스로 잘하고, 또 좋아하는 것을 찾아요. 다들 본인이 좋아하는 걸 일에서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을 일로 두되, 어느 한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두는 거예요. 일을 이용해 나의 욕망을 작게나마 이루는 거죠. 생각보다 그 기쁨이 큰 힘이 되거든요. 일과 나의 작은 연결고리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