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호비치의 시작: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마음

ⓒ이근영

이채현&이나리, 호호호비치

2011년 4월 시작한 호호호비치는 이채현, 이나리 두 자매가 공동대표로 일하는 영화 홍보대행사다. <북촌방향>을 시작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피에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부산행>, <마션>, <겨울왕국>, <어벤져스> 시리즈, <알라딘>, <엑시트> 외 다수 작품을 담당했다. <어벤져스> 시리즈 중 호호호비치가 진행한 작품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다. 

정유선(이하 생략): 호호호비치 이름을 처음 듣고 '특이한데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릴게요.

이나리(이하 나리): 세계 주요 영화제들이 보통 해변에서 시작해요. 우리도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고 돈도 열심히 벌어서 나중에 꼭 그 해변에서 웃어보자는 의미로 지었어요. 해변에 앉아 샴페인을 마시며 '호호호' 웃는 소리를 떠올렸죠. 

 

어떻게 자매가 함께 대행사를 창업하게 되셨어요?

나리: 저는 영화 홍보대행사 마케팅팀에서 일했었어요. 그런데 대행사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월급이 몇 개월 동안 밀리게 됐어요. 이렇게 영화 일을 계속하는 건 비전이 없겠다 싶어 브랜드 홍보대행사로 이직했어요. 거기를 1년 정도 다녔는데, 이상하게 영화 일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홍상수 감독님이 잠깐 만나자고 연락을 하셨어요. <하하하><옥희의 영화>를 홍보하면서 인연이 있었거든요. 감독님께서 "영화 일을 오래 했지만, 너처럼 본인 영화라고 생각하며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고 하시면서 홍보를 맡겨주셨어요. 그렇게 창업을 하게 됐죠. '돈 때문에 영화 일을 그만두었는데, 돈 없이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었어요.

 

이채현(채현): 저도 신기하게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영화 홍보대행사에서 영화 마케팅 일을 시작했는데, 그곳도 영화가 망하면서 저 역시 월급에 문제가 생겼고, 마침 브랜드 홍보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곳에서 2년 반 정도 일했지만 영화가 가진 매력이 계속 떠올랐어요. 

 

콘텐츠 안에 다채로운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 담겨있고, 그 요소들을 활용해 다양한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영화만의 특징이니까요. 계속 새로운 콘텐츠를 마케팅할 수 있다는 매력도 컸어요. 그래서 저 역시 영화로 돌아오게 되었죠. 그때 동생이 홍상수 감독님의 <북촌방향> 마케팅을 시작했고, 1년간 나리 옆에서 아르바이트처럼 돕기 시작했어요.

 

동생인 나리 대표님이 먼저 창업을 하신 거네요.

나리: 네. 창업을 하고 혼자서 <북촌방향>을 홍보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기가 벅찼어요. 일정이 겹치는 게 가장 큰 문제였죠. 배우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둘이 회사의 꼴을 갖추고 있더라고요. 

 

영화의 캐스팅 소식이나 크랭크인(crank in)* 기사처럼 영화와 관련된 공식적인 뉴스를 언론이나 방송 매체 등에 메일로 보내야 해요. 그때 메일 마지막 부분에 문의할 연락처를 명시하는데, 개인 핸드폰 번호만 사용하면 개인 정보 노출 위험도 있고, 뭔가 준비되지 않은 느낌도 들어서 회사 이름을 고안했죠. (웃음)

* 영화 촬영을 개시함

 

채현: 다행히 <북촌방향>이 흥행했어요. 당시 깨알 같은 아이디어들도 화제였고요. 2011년 무렵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페이스북에서 북촌 투어나 북촌 관련 에피소드들이 화제가 되었거든요. <북촌방향> 이후에는 다른 영화들도 들어오기 시작했죠.

 

두 번째 작품이 <자전거 탄 소년>이죠?

채현: 네, <북촌방향>을 진행할 때 씨네큐브(Cinecube)에서 GV(Guest Visit)*를 참 많이 했는데, 그런 교류를 바탕으로 씨네큐브에서 <자전거 탄 소년(The Kid With a Bike)>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 감독이나 배우, 영화 관계자가 관객들과 만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운이 좋게 그 영화도 잘 됐어요. 홍보하는 영화들이 잘되면서 라인업도 생기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직원을 뽑아야 했는데, 그땐 나리 집이 회사였거든요. 그때 뽑았던 친구들이 집에서 일하면서 불편할 수 있는 부분에 잘 적응해줬어요.

 

나리: 한번은 제 침실을 시사실로 꾸며서 스크리너(screener)*를 봐야 했어요. 기자분들을 초대해서 침실에서 영화를 보고, 냉장고에서 맥주도 꺼내다 드리고 그랬어요. 돌아보니 소꿉장난처럼 일한 것 같네요. 6개월 동안은 시범 삼아 그렇게 운영했어요.

*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을 공식적으로 개봉·방영하기 전에 비평가나 산업 관계자, 프로듀서, 유통업자들에게 미리 공개하는 것

 

채현: 요즘 젊은 친구들이 생각하는 스타트업이나 창업의 개념과는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완벽하게 세팅해놓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하던 일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진 케이스입니다.

트렌드로 셀링 포인트를 만들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킹스맨>, <마션>

초기에 진행하셨던 작품을 살펴보면 <자전거 탄 소년>, <홀리 모터스(Holy Motors)>처럼 예술 영화들이 많아요.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채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흥행에도 성공했죠.*

* 관련 기사: 김기덕 '피에타',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경향신문, 2012.9.9)
 

<피에타>는 어떤 쪽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잡으셨나요?

채현: <피에타>는 제목이 키워드였어요. 제목의 '나를 구하소서'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성당에서 제작보고회를 진행했어요. 장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수많은 성당을 답사했죠. 고심 끝에 성당을 정한 후엔, 왜 이 행사를 해야 하는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신부님을 설득했어요.

 

작품이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타면서 다시 한번 흥행에 불이 붙었고요. <피에타>를 함께 했던 배급사에서 상업 영화를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 <몽타주>였는데, 호호호비치의 첫 상업영화였어요.

 

<몽타주>도 잘 됐고, 그때부터 상업영화 쪽으로 기회가 많이 열렸겠네요.

나리: 사실 그전까지는 저희를 예술영화 홍보대행사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마음속으로는 상업영화도 늘 하고 싶었는데, 마음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채현: <몽타주> 관련 메일을 처음 보내고, 기자분들에게 전화가 많이 오더라고요. 1년 반 만에 드디어 상업영화를 시작한다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돌이켜보면 저희는 영화 쪽에 인맥이나 연줄이 전혀 없었어요. 어떤 작품을 담당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관계가 새로운 기회가 되었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트버스터(artbuster)'라는 신조어도 그때 생겼고요.*

채현: 보통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할리우드의 액션, 어드벤쳐 영화처럼 거대 규모의 영화를 뜻해요. 아트버스터는 예술영화의 아트(art)와 블록버스터의 버스터(buster)를 합친 신조어고요. 예술성이 강한 영화지만, 예술영화로는 규모가 크고 흥행 역시 예상된다는 자신감을 표현했어요.

* 호호호비치는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첫 국내 개봉시 마케팅을 담당했다. 이 영화는 2018년 다른 배급사를 통해 재개봉되었다.

 

'아트'에 예술영화의 의미도 있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면서 영화 자체가 '아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감독인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기존 영화들과는 차별화해서, 보다 대중적으로,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트버스터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어요.*

* 관련 기사: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이 이룬 아트버스터의 기적 (뉴스엔미디어, 2014.3.31)

 

인스타그램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굿즈도 화제를 모았어요.

나리: 마케팅 예산이 큰 영화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할 즈음이 한국에서 막 인스타그램이 태동하던 시기였거든요. 팬시하고 감각적인 인스타그램 인증샷이 유행하기 시작한 초기였죠. 많은 비용을 쓰기보다, 예쁘고 귀여운 제작물로 프로모션하는 게 영화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에서 홍보하기 적격인 영화였죠. 

 

예를 들면 시사회도 작고, 귀엽게 진행했어요. 시사회 장소에 마카롱을 탑처럼 쌓아두거나 영화에 등장하는 '멘델스 케이크'의 분홍 박스를 직접 만들어 놓는다거나 했죠. 그럼 관객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거든요. 사람들이 '예쁘네. 찍어서 올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어요.

 

SNS에 인증샷이 업로드되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인싸들의 영화'가 되어갔어요. 이 영화를 봐야 더 트렌디하고 앞서간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 허영을 건드린 거예요. 당시에는 처음으로 셀럽 시사회 컨셉으로도 진행했어요. 유명 스타일리스트나 패션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분들을 초대했는데,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관계자분들 모두 놀라셨어요.

이나리 대표 ©이근영

그다음 영화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네요. 저도 우연히 예고편을 보고 '저 영화 대체 뭐지? 그런데 재밌겠다'라고 생각한 기억이 나요. 실제로 보고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요.

나리: <킹스맨>은 지금이야 다들 아는 영화지만, 처음에는 정반대였어요. B급 감성이 있는 마니아 취향의 작품인 데다, 주연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의 인지도도 굉장히 낮았고, 주인공인 태런 에저튼(Taron Egerton)은 아예 신인이었죠. 영화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굉장히 고민했어요.

 

채현: 그래서 초기에는 힙한 느낌을 최대한 살렸어요. 영화 속 수트를 배우 배정남 씨가 직접 입고 시사회에 오기도 했어요. 영화처럼 검은색 우산도 들고 오셨고요.

 

셀럽 마케팅,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잘하신 것 같아요. 지금이야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채현: 지금처럼 인플루언서의 개념이 없을 때여서, 패션 에이전시에 연락해 쇼핑몰 모델을 모아 시사회를 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팔로워 100만 명의 '핵인싸'들이 모여 영화를 본 거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다들 <킹스맨>에 꽂힌 거예요. 당시 시사회에 참석한 분들이 본인 SNS에 추천 리뷰를 많이 올리셨고, 그게 퍼지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한 작품은 대체로 누구나 알 만한 유명 배우가 없는 작품이에요. 첫 번째 셀링 포인트인 유명 주연배우가 부재할 때, 이를 대체할만한 인지도가 필요한 거죠. 셀럽이나 인플루언서가 부족한 부분을 백업해줄 수 있었어요.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막 뜨던 시기라 특히 효과를 많이 봤다고 생각해요.

 

마케팅에서 트렌드를 굉장히 잘 활용해오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언론 시사를 두 번이나 하셨다고요.

나리:  언론 시사를 2차로 진행한 건 아마 처음이었을 거예요. 첫 언론 시사 때 기자분들이 기대보다 많이 안 오셨어요. 그래서 관련된 담당자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죠. 언론 시사 한 번만 더 하자고, 기자들이 더 많이 보게 하자고요. 

 

언론 시사를 2차로 진행하며 기자분들도 이 영화를 더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어요. 일단 보면 재미있으니까요. 이후 일반 시사도 계속 늘리면서 점점 반응이 뜨거워졌어요. 이 영화는 2주 차부터 본격적으로 잘되기 시작했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나중에는 마니아들이 N차 관람을 많이 했죠.

 

두 번의 언론 시사회는 콘텐츠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채현: 네. 확신이 있었어요. 이 영화뿐만 아니라, 저희가 확신이 들었던 작품은 대부분 결과가 좋았어요. 확신이 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담당자들이 영화를 보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자신감, 그게 크죠.

 

영화 속에 어떤 '확실함'이 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겨요. 확실한 재미든, 확실한 캐릭터든, 확실한 이야기든.  최근의 <알라딘(Aladdin)>이나 <엑시트(Exit)>도 그렇고, <내부자들>도 생각나네요. 확신이 생겼을 때는 '무조건 가자!'라고 생각하며 밀어붙여요.

제작자는 상이라도 받지만, 마케터에게는 그런 인정과 보상이 없다. 무슨 영화를 홍보했냐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택할 것이다

 

- 호호호비치 이채현, 이나리 대표 씨네21 인터뷰

두 작품이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했네요. 그다음 작품이 <마션(The Martian)>인가요?

채현: 네. <마션>은 조금 특이했어요. 저희가 잡은 컨셉이 '우주 영화+삼시 세끼'였거든요. (웃음) 당시에 '혼자 살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요. 제주에서 한 달 살기, 해외에서 한 달 살기 같은 체험이 유행하기 시작한 때였죠. 지금 생각하면 확실히 트렌드가 흥행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한 것 같아요. 

 

더불어 사회적으로, 여러 매체에서 요리가 비중 있게 다뤄지기 시작했어요. 셰프라는 직업이 셀럽이 되기 시작하던 때에 <마션>이 개봉한 거죠. 원작이 있는 작품임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원작은 베이스로 두고 "네가 만약에 화성에 혼자 남는다면, 어떻게 살겠니?"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나리: 최현석 셰프와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그분이 우주선에서 요리하는 컨셉이었어요. 당시에도 유명했던 분이라, 그 프로모션에 집중했죠. 시사회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영화처럼 씻은 감자를 나눠준 이벤트도 기억에 남아요. (웃음)

<마션>은 책의 첫 문장이 컨셉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라는 문장이죠. 기존의 SF 영화가 영웅담, 스케일, 감동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달랐어요. 책의 첫 문장이 이를 말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채현: 거기에 긍정적인 휴머니즘을 강조하자고 했죠. '긍정의 힘이 결국 살아남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내적 컨셉으로 잡았습니다.

좋은 마케팅에 대한 생각의 전환: <겨울왕국>, <어벤져스> 시리즈

<겨울왕국(Frozen)>은 마케팅하면서도 굉장히 신났을 것 같아요. 영화 주인공들도 자매고요.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하는 작품인데, 어떻게 마케팅하셨는지 궁금해요. 

채현: 당시 필모그래피만 보면 저희가 디즈니의 블록버스터 기대작을 진행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이전에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3D> 재개봉으로 함께 일했던 당시 배급사 담당자분들이 저희를 좋게 보셔서 <겨울왕국>도 같이 하자고 제안해주셨죠.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신났어요. 디즈니잖아요. 어린 시절 꿈이 담긴 디즈니 영화! 우리가 마치 엘사와 안나가 된 것처럼 너무 신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작품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모두가 그렇게 느꼈어요. '모두가 재미있어하는 작품이니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자. 성인도 볼 수 있도록 뮤지컬이라고 하자'고 했죠. 성인 대상 시사회도 많이 했고요. 어른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했습니다.

 

나리: 저희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 영화를 담당하는 모든 사람과 의견이 일치했어요. 어떤 결정도 밀어붙일 수 있는 원동력이었죠. 팀워크가 만들어낸 시너지인데, 이 작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음악부터 의상까지 정말 돌풍이었죠. 어떤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나리: 1000만 영화로 만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했던 건 아니에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는 영화 자체의 힘이 너무 강력했어요. 스스로 팬덤을 만들고* 노래부터 의상까지 계속해서 파생 콘텐츠가 나오고. 오히려 저희가 팬덤을 공부했어요. 어떤 패턴이 있는지, 어떤 세대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등이요.

* 관련 기사: 익명의 관객, 영화의 주인이 되다 (cultura, 2019.9.1) 

 

이 영화로 싱어롱(sing along) 시사회를 하셨죠? 

나리: 이 영화를 보면, 저부터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더라고요. 이 영화에 반한 관객이라면 모두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엘사처럼 얼음을 만지는 연기를 하는데, 다시는 못 볼 광경이라고 생각했어요. 

 

채현: 그런데 <알라딘>에서 반복되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캐릭터의 특정 연기를 따라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엔딩 크레딧 때는 다들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도 하고. (웃음) 

* 관련 기사: 흥행 신화 쓴 '알라딘' 4DX 댄서롱 상영회, 나오미 스콧이 이 광경을 봤다면 (맥스무비, 2019.7.26)

이채현 대표 ©이근영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The Avengers: Age of Ultron)>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대대적인 촬영을 했는데, 그날 모두의 관심이 쏠렸을 것 같아요.

채현: 기존에 진행했던 작품들과 확연하게 다른 전략은 '방어적 홍보'였어요. 대부분은 공격적으로 하잖아요. 홍보에도 카테고리가 많은데, 이 영화는 보안과 비밀유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촬영하는 사례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저작권, 초상권, 콘텐츠 사용권 등 스터디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나리: 촬영 현장 자체가 생중계되는 해프닝도 있었어요.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었는데, 모두가 촬영 현장을 몰래 찍고 있으니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았어요.

 

채현: 이 영화를 하면서 기자분들께 제일 많이 한 말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였어요. 저희가 비밀유지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지만, 계속 이런 이야기만 들으면 기자분들도 기분이 나쁠 수 있잖아요. 저희도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컸어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대응하려 노력했습니다. 

 

다음 해에 기자분들이 뽑은 홍보인 상을 저희가 받았는데,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고생했다는 의미로 주신 것 같아요. (웃음)

 

누구나 당연히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영화잖아요. 부담이 크셨을 것 같아요.

나리: 잘 안되면 이상한 영화들이 있어요. 이런 작품을 마케팅할 때는 많이 알리는 것보다 일을 얼마나 매끄럽게 하는지가 더 중요해요. '좋은 마케팅'의 기준이 달라지는 거죠.

 

채현: 일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에요.

 

2009년에 저희 둘이 극장에서 <아바타(Avatar)>를 봤어요. 그때는 둘 다 급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거든요. 영화가 끝나고 "지금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평생 이런 블록버스터는 할 수 없을 거다"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면서 영화 일을 떠나는 게 맞다고 판단했죠.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벤져스> 시리즈도 하게 되더라고요. 감회가 새롭기도 했고,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배워야 할 게 여전히 많구나'를 또 한 번 느꼈어요. 이 시리즈를 통해 더 노력하고 공부할 기회를 얻어 기쁘기도 해요.

 

<어벤져스> 시리즈 기자회견 같은 대규모 행사 날은 준비를 정말 많이 하실 것 같아요. 그럴 때 본인이 지키는 원칙이나 빼먹지 않는 것들이 있나요? 

채현: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스케줄이나 상황 등에 무리수를 두지 말자고요. 사고는 대부분 원칙을 깼을 때 일어나잖아요. 내가 만든 규칙을 깨지 않으면 정말 불가피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안전하게 갈 수 있어요.*

* 관련 기사: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슈퍼 히어로들의 한국 공략기 (시사위크, 2018.4.12) 

 

나리: 대규모 행사일수록 시뮬레이션을 해야 해요. 예를 들어 배우가 1박 2일 일정으로 내한하면 언제 입국해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교통체증 때문에 딜레이는 어느 정도 될지 분 단위로 예상이 됩니다. 이를 클라이언트 측에 계속 공유하고 수정해요. 일반적으로 이런 큐시트가 17 버전까지 나오는 거 같고요.

 

채현: 시뮬레이션을 고사성어로 풀면 '역지사지'거든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예요. 내가 배우 또는 진행자가 되어서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고 여러 번 시뮬레이션 회의를 합니다.

"아이디어 회의도 안 하고, 책도 안 읽어요" 이 자매가 일하는 법

직원들과 시뮬레이션 회의, 아이디어 회의 등 굉장히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채현: 아이디어 회의는 안 해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책상에 모여 앉아서는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회의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회의는 주로 시뮬레이션 회의만 하고 있어요. 

 

그럼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세요?

나리: 페이퍼 워크(paperwork)를 해요. 메모하고 취합하는 방식이죠.

 

채현: 가이드가 정확하면 그에 기반한 아이디어는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가이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를 받고 직원들에게 가이드를 줄 때 아이디어를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하라고 해요. 들었을 때는 좋은 아이디어 같아도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해보면 막히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건 문제가 있는 아이디어인 거죠. 

아이디어의 가치는 

효용성입니다.

써먹을 수 있어야 

좋은 아이디어죠.

홍보 일을 하다 보면 공식 입장문 성격의 글을 내야 할 때가 있는데, 대처하는 방법이 있나요?

채현: 저희가 담당했던 작품에서 리스크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2년 전부터 위기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이제는 사회적 논란이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리스크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어요.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여러 번 시뮬레이션 해요.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협력하는 변호팀과도 자주 이야기하고요. 어떤 협업을 할 때도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법무팀이 이야기할 때 공신력이 더해져요. 이런 시스템은 문화계 미투 운동 등 사회적 이슈가 계속되면서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마케팅에서 포스터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야말로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진행했던 포스터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나리: 저는 최근작인 <엑시트>가 기억에 남아요. 포스터를 하나씩 공개할 때마다 악플에 시달렸거든요. 사람들이 정말 싫어하는 거예요. (웃음) 영화가 개봉한 후에야 '그래서 포스터가 저렇구나' 하는 반응이었어요. 시사회가 시작되면서 반응이 확 오기 시작했죠.

호호호비치 사무실에 붙어있는 <엑시트> 포스터(왼쪽에서 두 번째) ⓒ이근영

'<엑시트> 포스터는 이래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다들 <엑시트>만큼은 불쌍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어요. 한마디로 짠 내가 나야 한다고요.* 덕분에 <엑시트>다운 포스터가 나올 수 있었죠. 코믹하고 불쌍한 표정을 허락한 배우분들께도 감사해요.

* 관련 기사: 조정석X임윤아 '엑시트', 짠내 폭발 포스터 공개 (한국경제, 2019.7.8)

 

채현: 저는 <부산행><숨바꼭질>이 생각나네요. <부산행>은 포스터에서 '좀비'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까지 한국 영화에서 좀비를 다룬 적이 없었으니까요. 고민 끝에 '전대미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전대미문의 블록버스터', '전대미문의 재난' 같은 느낌으로 포스터를 만들었죠.* 

* 관련 기사: 부산행, 런칭 포스터 전격 공개 전대미문의 재난 예고 (한국경제, 2016.5.4)

 

<숨바꼭질>은 마케팅 컨셉을 설정할 때, 예전에 저희가 살던 집을 떠올렸어요. 원룸, 초인종, 여성들이 느끼는 괴담 같은 것을 떠올렸죠. 여성들끼리 살면서 느끼는 공포감을 현실화해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첫 번째 포스터에 최대한 현실 괴담 같은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초인종 옆에 X 표시를 디자인하고 '우리 집에 누군가 숨어 산다'라는 카피를 썼어요. 

 

포스터, 카피, 예고편 등 많은 것들을 창작하시잖아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마케터도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해요.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인데, 두 분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채현: 저는 시나리오를 제외하곤 책을 거의 안 읽어요. 경험과 지식은 직접 해봐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실생활에서 주위 사람들의 패턴을 잘 관찰해요. 몇 년 전에 누구와 무엇을 먹었고, 그때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당시 상황과 감정을 잘 기억하는 편이죠. 

 

마케팅 인사이트는 다양한 영상이나 광고, 해외 기사에서 찾아요. 키워드를 검색해서 나오는 자료나 이미지 등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에요.

 

나리: 영감을 얻는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저는 영화 일을 하는 '생활인'이에요. 규칙적인 생활 패턴에서 영감을 찾고 아이디어도 떠올리죠. 뛰고, 걷고, 대화하는 생활 속에서요.

 

특히 채현 실장님과 정말 대화를 많이 해요. 둘 다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웃음) 하루에 두 시간씩 대화하다 보면 저희에게 필요한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떠올라요. 대화하면서 생각나는 것들은 바로 메모하고요. 가끔 메모를 보면 왜 썼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것들도 있어요. '한복을 왜 적어놨지?' 하다가 몇 주 뒤에 '배우들에게 한복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하죠.

대화 속에서 영감을 얻는 이채현, 이나리 대표 ⓒ이근영

천재 마케터는 없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시네요.

채현: 가족이기 때문에 오래 같이 있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가족이라서 오래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 사람과 내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는, 주고받는 시너지에 달린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던졌을 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피드백을 주는 대화가 정말 큰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수많은 인간관계에 둘러싸여 일하는 사람이 마케터인데, 커뮤니케이션 팁이 있을까요?

채현: 저는 방어적인 자세를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디어가 더 빠르고 쉽게 디벨롭 돼요.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더라도, 방어적인 자세만 버려도 대화 상대가 불편함을 덜 느껴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와 통화할 때 '안 된다' 또는 '못하겠다'는 대답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나리: 대개 소통을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겨요. 특히 일할 때 '업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네트워킹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죠. 그래야만 스스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관계를 일로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이고요. 

 

하지만 소통은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해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존경심도 생기죠. 그걸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좋은 소통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영화에 애정이 크시겠지만, 본인들의 대표작 혹은 특히 재미있었던 작품이 있다면?

채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서 역대 박스오피스 상위권 영화들이 호호호비치의 대표작인 것 같아요. <어벤져스> 시리즈, <알라딘>, <엑시트>, <겨울왕국> 등 상위권에 랭크된 작품 중에 저희가 마케팅한 작품이 제일 많더라고요. 역대 1000만 영화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 <부산행>, <알라딘> 6개로 가장 많고요.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웃음) 2020년이 호호호비치의 10주년인데요, 이 작품들이 호호호비치의 10년을 대표해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싶으신가요?

나리: 필모그래피보다 '관계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관계가 망가지지 않는 것,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채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몇 년 전부터 브랜드 홍보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해외에는 워킹 타이틀(Working Title Films)처럼 제작사를 홍보하는 회사가 따로 있거든요. 저희도 앞으로는 콘텐츠를 넘어 브랜드까지 홍보 분야를 확장할 계획이에요.

 

지금 마케터로 일하는 혹은 앞으로 마케터로 일하고 싶은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나리: 오래 일할수록 이 일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야구 뉴스도 로봇이 쓰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마케터는 수치와 정보만 전달하는 직업이 아니에요. 늘 창의력과 센스를 업무에 투영해야 하죠. 

 

결국 이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인 거죠. 얼마나 비전이 좋은 직업인가요. (웃음) 하고 싶은데 아직 시작하지 못한 분들께는 꼭 도전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채현: 일하면서 계속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일의 원동력이 됩니다. 중요한 건 시간과 지구력이에요. 저는 천재 마케터는 없다고 생각해요. 10년을 일하면 '업'이 되고 20년을 일하면 '달인'이 되고, 30년을 일해야 '장인'이 될 가능성을 찾는 정도 아닐까요? 보고 배우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계속 숙련하는 시간, 결국 시간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