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오해와 기대

저자 세 사람(박선민, 서창훈, 유승제)은 2016 AVPN(Asia Venture Philanthropy Network) 프로젝트를 통해 자선과 투자가 만나는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 여러분들께 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편인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신 두 분이 계십니다. 그 첫 번째 분은 이 연재글을 발행하는 퍼블리의 박소령 대표님이었습니다.

 

"기업사회공헌, CSR, 벤처자선, 벤처기부, 자선, 임팩트 투자 등 용어가 참 많은데 정의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저(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기업사회공헌이 제일 상위 단의 개념이고 그 안에 부분집합으로 벤처자선과 임팩트투자가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자들이 기업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이러한 인상을 드렸을 수도 있고, 일부 오해를 산 것 같아 잘못 전달된 점은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평소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종종 얘기를 나누던 직장 선배님이었습니다. 이분과 CSR에 관한 한 기사와 인터넷 댓글을 읽고 얘기를 나누던 중 공감하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주길 바라는 내용의 댓글이 꽤 많다
  • 바람직한 기업의 역할에 대한 실무 담당자의 의견과  댓글 여론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최종리포트 발간 전 마지막 연재인 이 글은 위에 나온 오해를 줄이고 거리를 좁히기 위해 쓰였습니다. 기업사회공헌 재단 실무자가 생각하는 자선과 기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기업사회공헌(Corporate Contribution 또는 Corporate Philanthropy) 개념,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을 정리했습니다.

 

사전적 의미 외에 저자 개인의 생각을 담았다는 점, 그리고 저자가 속한 조직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꼭 참고해주세요.

기부, Philanthropy와 Charity에 대해

영화 어벤져스에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은 본인을 "Genius, Billionaire, Play Boy and Philanthropist"라 불렀고 한국어로는 박애주의자로 번역됐습니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박애주의자라는 표현은 사상 또는 이념이 담긴 표현일 뿐 Philanthropy의 능동적인 면은 잘 표현되지 않으니 자선'사업'가로 번역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자선은 종교적이나 윤리적인 동기로 타인에게 인정과 자비를 베푸는 행위입니다. 영어로는 Charity에서 Philanthropy까지 다양한 용어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부는 Donation 또는 Giving으로 의미가 잘 전달됩니다. 기부는 어떤 목적 없이 금전 등의 물질을 보상이나 대가 없이 제공하는 것을 뜻합니다.

Philanthropy는 특정 목적을 전제한 자선 행위이며
Charity와는 시급성의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대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코세라(Coursera)의 스탠포드대학 Giving 2.0 수업은 Philanthropy와 Charity의 뜻과 역할을 이렇게 정의해놓았습니다.

1. Philanthropy
- Active Act to Promote Human Welfare(복지 증진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
- Proactive Attempt to Change Systems and Solve Root Causes(근본적인 사회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도움)

2. Charity
- Aid Given to Those in Need(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공)
- Immediate Relief from Suffering(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한 직접적인 도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상황 뿐 아니라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이 '시급한 문제의 해소' 또는 '근본적 문제의 해결' 중 어느 곳에 관심과 철학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서도 그 선택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Philanthropy의 경우 수혜/기부의 일방적 관계 형성이 아닌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에 엮인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각(과 함께 이를 인내할 수 있는 시간 및 자본) 또한 필요하며, 프로젝트 성격보다는 사업의 형태를 갖춘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결론부터 말하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제일 상위의 개념이고 기업사회공헌은 다양한 CSR 활동 중 일부에 해당합니다. CSR에는 기업이 사회와의 접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인 환경 경영, 윤리 경영, 사회공헌과 노동자 및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등 많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통상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 기반한 활동이다보니 GR(Government Relation) 또는 CR(Customer Relation) 관련 부서에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GR/CR 대응 등의 업무는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고 사회공헌 활동이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다 보니, 많은 분들께서 'CSR이 곧 기업사회공헌'이라 생각하실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업무를 담당하기 전까지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고 MBA 과정*에서 기업이 CSR과 사회공헌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전까지는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도 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냥 좋은 일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환경·윤리 경영, 기업사회공헌 등
CSR은 기업이 시민사회 일원으로
해야하는 영역을 포괄합니다 

흔히 논의되는 CSR의 정의**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EU의 설명이 가장 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 기업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지점에 대한 책임(The Responsibility of Enterprises for Their Impact on Society)

- CSR은 기업이 주도해야 하며 공공기관은 정책과 규제를 통해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렇다면 어떤 일들이 CSR 활동이라 할 수 있을까요? 국제표준화기구(ISO)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표준(ISO 26000)영역을 아래처럼 규정했습니다.

  • 거버넌스 :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하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함
  • 인권 : 조직 운영 시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취약 그룹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 함
  • 노동 관행 : 완전한 고용을 통해 고용자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해야 하며, 국제노동기준 및 국내법을 준수해야 함
  • 환경 : 환경오염 방지, 에너지 절약, 자원 보존, 기후변화 위험에 대응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함
  • 공정운영관행 : 조직 운영 시 부패를 방지하여야 하고, Supply Chain에서의 공정한 경쟁과 운영을 시행하여야 함
  • 소비자 이슈 :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지 않아야 함
  • 지역사회참여에 관한 활동 : 정당하게 부와 소득을 창출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함

정리해보자면 CSR은 기업이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당연하게 해야 할, 책임 영역에 있어야 할 전반적인 활동들인 것입니다.

 

* 경영대학에서 이런 내용도 배우는지 궁금해하실 분도 있으실 것 같은데, 제가 졸업한 학교에서는 경영전략 관점에서 '기업과 사회'라는 과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 조금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EU의 정의가 나오게 된 배경에 있는 자료들, UN이 발행한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또는 UNGC의 Guide to Corporate Sustainability를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기업이 CSR 영역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관행과도 같던 일들이 차차 개선되어 가듯, 기업 역시 미처 신경 쓰지 못하던 영역들에 대해 현 상태를 진단하고 정비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언젠가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험이 반대 급부로 돌아오게 됩니다.

 

기업은 온전히 그 존재를 다하기 위해, 주주들이 사업을 영위하라고 맡긴 자금을 잘 운용하기 위해서라도 사전적으로 사회와의 갈등 요소가 될 리스크를 파악하고 관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모든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느 정도의 사후 대응은 불가피합니다.

CSR은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 차원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의 갈등 요소가 발견되었을 때 이를 회피하기보다는 잘 대응해갈 수 있도록 사전적으로 리스크 대응 체계를 잘 갖춰두는 것이 CSR에 관한 기업의 바람직한 자세의 핵심 요소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업사회공헌이 필요한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문이 남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답은 쉽습니다. 이미 기업은 누가 이해관계자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업이 복잡해졌고 사회의 성장 과정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이해관계자로 둔 활동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기업은 사회공헌을 하기로 한 이상 이를 효율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다만, 서로의 관심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각 자의 영역에서 기업사회공헌 재단을 설립하기도 하고 Charity와 Philanthropy 가운데 하나에 집중하거나 적절히 배분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최근 몇몇 기업은 이를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벤처자선이나 임팩트투자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연재를 마치며

독자 분들께 자선과 투자 사이의 광범위한 세계를 소개드리려다 보니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저자 3명 모두 기업사회공헌을 배경에 두고 있다보니 비영리 또는 사회혁신과 관련한 다른 시각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은 업계의 다른 전문가 분들께서 채워주시리라 믿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아직 최종 리포트 발행 일정은 남았지만, 미리보기 글만 읽으실 분들을 위해 짧게 소회를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 AVPN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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