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프라맹스를 기억할 것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3월에 발간된 <포노 사피엔스>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콘텐츠 발행일: 2020.01.08]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현대 미술의 시작점이자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작품 '샘(Fontaine)'을 출품합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작품은 소변기를 떼어내서 거기다 'R. Mutt 1917'이라고 쓴 오브제입니다. 예술계는 곧 난리가 났습니다. 이것이 과연 작품인가에 대해 의문이 쏟아졌죠. 뒤샹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도저히 예술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더러운 변기도 사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예술품으로 인지할 수 있다.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현대미술은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뒤샹의 작품은 예술적으로 많은 해석을 낳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뒤샹이 언급한 앵프라맹스(inframince)입니다.

 

'샘'이라는 작품이 보여준 예술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기성품으로 만들어진 더러운 소변기를 떼어낸 다음 사인을 넣어 예술품이라고 우겼을 때, '그러고 보니 이것도 관점에 따라서는 예술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지구상에 누가 있을까요? 물론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떤 것이라도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뒤샹이 이렇게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기성품 변기였지만 '샘'은 이제 작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 앵프라맹스가 더해져 변기가 엄청난 예술품으로 변한 것입니다.

 

앵프라맹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너무나 미세한 차이, 그러나 본질을 바꾸는 결정적 차이'라는 뜻입니다. 뒤샹은 기존 기성품과 물리적으로는 전혀 차이가 없는 변기를 선택한 후, 거기에 앵프라맹스를 더해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담은 예술품으로 탄생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