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이 깁스를 하고 나타난 이유

Editor's comment

- 이 콘텐츠에 등장하는 모든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이며, 실제 기업이나 프로젝트와 관련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AE 김 팀장님이 우리 팀장님과 대화 중이다. 그가 나타나면 100% PT 호출이다. '이번엔 어떤 브랜드일까?', '오늘 저녁 약속은 접어야 하는 건가?', 벌써 한숨과 두근거림이 교차한다. 그런데 김 팀장님의 모습이 평소와 달리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어랏,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셨네….'

 

두 분의 대화 속에 '리듬'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잽싸게 검색해보니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다. OT*를 받기 전날, 집 근처에서 한 번 타봤다가 심하게 넘어지셨다고 한다. 이건 이번 PT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시그널인가? 그날 오후 우리 팀은 PT 킥오프 미팅**에 소집됐다.

*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의 약자. 여기서는 클라이언트가 광고대행사에게 PT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는 미팅을 뜻한다.

**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AE팀에서 플래너와 제작팀(CD, CW, AD)에 클라이언트 회사 정보, 과제, 예산, PT 준비 일정 등을 공유하는 회의

 

세계 1위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리듬'이 한국에 상륙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경쟁 PT에 참여하는 대행사는 총 4곳, 예산은 80억 원이다. 잘나간다는 대행사는 다 모아놨다. 게다가 요즘 흔치 않은 예산 규모다. 꽤 치열한 경쟁이 될 거란 생각에, 회의실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김 팀장님이 한 줄짜리 광고주 브리프를 화면에 띄우셨다.

과제: 한국 시장에서 '리듬'이 보유한 경쟁 우위를 규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각인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제안

전체 PT 준비 기간은 약 4주, 이 기간에 플래너가 해결할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셉, 그리고 최종 기획서.

전략과 컨셉 도출에 주어지는 시간은 프로젝트 시작 시점부터 약 4일 정도에 불과하다. PT 성격에 따라 제작물을 고퀄리티로 편집해 가거나 촬영을 해가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은 최소 2주 이상 확보해야 무리가 없다.

 

따라서 플래너에게 헤맬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4일 만에 괜찮은, 아니 이길 수 있는 전략과 컨셉을 제작팀에 전달해야 한다. 제작물이 완성되어 갈 때쯤 근사한 기획서 한 벌이 나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팩트북: 정보가 쌓이면 구조가 드러난다

I. 시장 규모 및 성장 추이

II. 경쟁 구도 및 경쟁사별 주요 전략

      i. 주요 경쟁사 운영 현황
      ii. 주요 경쟁사 커뮤니케이션 이력 및 소비자 인식

III. 당사 정보
      i. 당사 운영 현황
      ii. 당사 커뮤니케이션 이력 및 인식

IV. 시장 주요 이슈

AE팀에서 '팩트북'*을 보내왔다. 처음 접하는 시장이라 공부할 게 많다. 필요한 내용을 모두 숙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목별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팀장님이 늘 쓰시는 항목을 참고했다.

* 대략적인 시장 상황과 기업 상황을 수집한 문서

I. 전동킥보드 시장 규모 및 성장 추이

    i. 국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규모
        - 2016년: 6만 대
        - 2017년: 7만 5000대
        - 2022년(예상): 20만 대 이상
        - CAGR(연평균 성장률): 22%
매출로 환산하면 약 8000억 원, 국내 대중교통 시장의 약 10%를 차지하게 될 큰 시장이다. 국내 성장성도 놀랍지만, 지금 미국에서 킥보드는 그야말로 '핫'하다. 돌이켜보면, 스티브 잡스는 이미 20년 전에 전기 스쿠터를 "인터넷보다 더 큰 발명"이라며 극찬한 바 있다.

 

일반 스쿠터와 비교하면 월등히 친환경적이고, 자전거와 비교하면 훨씬 적은 노력으로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윈윈(win-win)인 셈이다. 게다가, 실리콘밸리 전동킥보드 사업자들은 이미 소비자의 이동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기 바쁘다. 스티브 잡스의 예상처럼 꽤나 큰 패러다임 변화임은 분명해 보인다.

 

1. 경쟁 구도 및 경쟁사별 주요 전략

 

1) 국내 주요 3사 운영 현황

 

2) 국내 주요 3사 커뮤니케이션 이력 및 소비자 인식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이력에 무게를 두고 정리하는 편이다. 경쟁사가 이미 하고 있는 이야기나 이미 선점한 인식은 의도적으로 피해야 하며, 또 동시에 이겨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가입자와 킥보드를 보유한 업체는 '킥고잉'이다. 소비자가 인식하는 킥고잉은 패션 브랜드로 치면 '자라(ZARA)'에 가깝다. 국내에 최초로 전동 킥보드를 소개했고, 저렴하며 접하기 쉽다. 2018년 서비스를 런칭하며 전동킥보드 하우투(how-to) 영상을 공개했고, 이후 교통안전공단과 협력해 안전 캠페인을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대대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 적은 없다. 브랜드 슬로건은 '21세기 축지법'을 사용하다가, 현재는 'Enjoy Your Move'로 변경했다.

 

그리고 얼마 후 '유니클로'가 등장한다.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고고씽'이다. 고급형 모델을 들고 나타난 만큼 승차감이나 안정성 등을 내세워 커뮤니케이션한다. 다만 킥고잉에 비하면 느리고 앱 구동이 불편하다. 소비자 인식에 고고씽은, 마치 소재는 월등하지만 자라의 트렌디한 디자인 양산력에는 뒤처지는 유니클로와 비슷한 형국이다. 2019년 서비스를 런칭하며, 영화 예고편 형식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브랜드 슬로건은 가변형으로, 'OOO 땐, 고고씽'의 빈칸에 '늦었을', '급할', '출근할' 등을 붙여 사용한다.

 

'씽씽'의 성장 역시 무섭다. 배달 앱 '띵동'의 창업자가 시작한 서비스로, 띵동의 운영력, 24시간 콜센터, 사옥 등의 인프라를 내세우며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 중에 있다. 광고 캠페인에도 가장 공을 들였다. '새로운 이동생활과 스마트한 탈 것'을 내걸고 대대적인 런칭을 했고, 브랜드 슬로건은 '라이프 모빌리티(Life Mobility)'다.

커뮤니케이션 이력

-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킥고잉 (2018.10 주식회사올룰로)
퀵출근 서비스, 고고씽 (2019.4 Maas Asia)
새로운 이동생활, 씽씽 (2019.9 라이프모빌리티씽씽)

웹상에 올라온 이용 후기는 보이는 대로 모두  읽었다. 서비스마다 자주 등장하는 소비자 반응이 있어, 밑줄을 긋고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나눠보았다. 예전에 상무님이 하시는 걸 보고 그때부터 따라 했는데, 무척 유용하다.

2. '리듬' 기업 정보

 

1) 기업 운영 현황

국내 타사에 비하면 2배 정도 되는 가격이다. 가격적인 열위를 보완하기 위해 '리듬'은 세 가지 경쟁력을 강조했다.

  • 최신 기기(자체 개발 3세대 모델)
  • 예약 기능(특정 킥보드를 선택해 예약해둘 수 있다)
  • 24시간 운영

2) 커뮤니케이션 이력

리듬 글로벌 캠페인 슬로건: 'More Life'

리듬이 커뮤니케이션에서 강조하고 있는 단어는 More, Life, Ride이다. 캠페인 영상 속 리듬 유저들은 평범하지만 반짝이는 일상을 산다. 그 일상 속에서 리듬의 아우라는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게다가, 리듬 유저들은 자발적으로 오프라인 커뮤니티 '모어 라이드(More Ride)'를 형성해 그곳에서 함께, 안전하게, 즐겁게 타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안전 교육을 받고, 각자의 라이딩 노하우를 공유하고, 헬멧 등이 들어 있는 라이딩 키트를 나누면서. 도시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상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한 것이다.
 

3. 전동킥보드 시장 주요 이슈

 

1) 안전한가?

인도에서 타면 보행자가 위험하고, 도로에서 타기엔 킥보드 운전자가 위험하다. 안전 장비 착용을 권장하고, 보험상품도 개발 중이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개선되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새로운 규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2) 소비자는 왜 화가 났나?

출퇴근·통학 시간에는 수요가 많아 킥보드 쟁탈전이 치열하다. 일부 이용자들이 킥보드를 건물 내에 숨겨놓는 등, 독점 사용하기 위한 비매너 행위를 일삼고 있어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게다가 운영 초기이다 보니, 앱 오류가 많이 발견된다. GPS 이슈, 블루투스 연결 이슈, 배터리 부족 이슈 등으로 인해 사용 편의성이 현저히 낮다.

 

3)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많은 브랜드들이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했다. 무료쿠폰, 할인 프로모션, 이벤트 등의 자본 소모전이 동반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의 경제를 누가 먼저 달성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경쟁 구도로 재편될 것이다.

 

항목별로 정보를 정리했으면, 이제 멀리서 바라볼 차례다.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결국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 예를 들어, 통신사의 5G 캠페인 팩트북을 만들다 보면, 대체 5G 기술이 뭐고 왜 좋은 건지를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또 전자회사의 신제품 런칭 캠페인 팩트북을 작성할 때는 신제품의 차별적 스펙을 열심히 정리하게 된다.

 

이번 팩트북을 돌이켜보면, 유난히 경쟁사 분석 내용이 많았다. 이는 곧 고객도 많은 브랜드 중 무얼 고를지 혼란스러울 거라는 이야기다. 필연적으로, 이 캠페인은 경쟁자와 선을 긋기 위한 움직임이어야 한다.

정보가 쌓이면, 캠페인의 방향이 드러난다

다시 브리프: 공감할 수 있으면 시작해도 좋다

팩트를 입력해야, 비로소 클라이언트의 언어가 제대로 해독된다.

과제: 한국 시장에서 '리듬'이 보유한 경쟁 우위를 규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각인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제안

아까 미팅에서 읽을 땐 당연하게 느껴졌던 '한국 시장', '경쟁 우위', '각인' 같은 단어에 힘이 생겼다. 클라이언트는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고민 1. '한국 시장'은 경쟁사가 달라서 비교 우위도 다르다. 가격이나 킥보드 대수 면에서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 시장에서 '리듬'의 비교 우위는 무엇인가?

 

고민 2. 경쟁이 치열한 만큼, 시장에서 중요하게 워킹하는 경쟁력 한 가지를 의도적으로 '각인'해야 한다. '전달' 대신 '각인'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각인할 것인가?

 

고민 3. 글로벌 '리듬' 브랜드 자산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차별적 커뮤니케이션도 필요하다. 어디까지 활용하고, 어디서부터 새로 쓸 것인가?

 

팀장님이 왜 이러한 브리프가 탄생했는지 공감할 수 있으면, 이제 생각을 시작해도 좋다고 했다.

Day 1. Lessons Learned
: 접근 가능한 팩트는 가능한 한 빠짐없이 소화하자.

OT를 받고 하루 이틀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가장 우선적인 일이다. 항목별로 팩트가 누적되면 어느덧 시장 구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시장은 뭐가 가장 중요한 시장인지, 어떤 영역에서 가장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지, 아직 남겨진 영역은 없는지 등등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팩트북을 한참 정리하다 보면, 벌써부터 기획서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좋은 생각은 불현듯 떠오르지 않는다. 불현듯 떠올랐다고 믿어온 대부분의 좋은 생각들은 당신이 양껏 소화한 팩트들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직관과 통찰은 재능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라는 점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