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플래너'라는 족속들

바람이 차가워질 즈음이면, 광고회사(이하 대행사)는 내년도 광고 대행권을 얻기 위한 PT* 전쟁에 나선다. 대개는 AE-AP-제작 부서가 하나의 팀을 꾸려 PT 준비를 하게 되는데, 한 해 농사의 절반이 이 시기에 지어지는 셈이다.

*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의 약자. 광고 집행 계획이 있는 상품·브랜드가 광고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및 광고물 제작, 매체 집행 등을 담당할 광고대행사를 선정하기 위해 복수의 대행사를 초청, 각 사의 제안을 비교 평가하는 과정

 

AE(Account Executive)는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담당하고, AP(Account Planner)는 광고 캠페인의 전략을 수립하며, 제작은 합의된 전략 하에 각종 광고물을 제작한다. 이 콘텐츠는 이들 중, 필자들의 현재 역할에 해당하는 AP 직군(이하 플래너)이 일하는 법을 소개한다.

사실 국내 광고회사 중 플래너 조직을 따로 두고 있는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상당수의 대행사가 수익성 개선 등의 이유로 지원부서인 AP 조직을 따로 운영하기보다는 AE 조직에 플래너의 역할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업계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콘텐츠는 PT 전쟁에 임하는 AE 직군이 일하는 법을 함께 다룬다고도 볼 수 있다.

 

PT라는 과업은 대행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우면서도 가장 가슴 뛰는 과업이다. 클라이언트를 개발해서 매출을 일으킨다는 측면은 물론, 들을 준비가 된 클라이언트에게 대행사의 생각을 오롯이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플래너가 있다.

가상 프로젝트: 필터링 안된 이야기를 위한 그릇

PT의 계절을 대비하고자 여름 내내 각종 기획 이론서를 섭렵했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다시 막막하다. 익혀둔 공식대로 칸을 채워 쓰다 보면, 자꾸 평범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본질적으로 기획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획 관련 책 또한 닥치는 대로 읽어본다. 새겨듣고 실천해야 할 내용이 가득하지만, 내일 미팅에 가져갈 좋은 기획 방향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콘텐츠는 기획의 다양한 방법론을 소개하는 이론서나 기획력을 높이기 위한 생활습관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그럴 만한 역량도 안 될뿐더러 이론서와 자기계발서는 이미 서점에 많다. 그보다는 주니어 기획자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 중에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과 그 해결 방식을 캡처해 보여주고자 한다. 독자들에게 보다 실전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플래너가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가상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물론 가상 프로젝트의 성격은 플래너에게 가장 중요한 'PT 상황'이다. 현재 시장 환경에 기반한 PT 과제를 정하고, 이를 플래너가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캠페인의 기획 과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말하자면 '현실'의 플래너를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한 '가상' 프로젝트의 수행기이다.

 

또한 실제 현장에서 단계별로 적용해볼 만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해, 광고대행사 대리급 플래너가 '직접 쓴' 업무일지 형식을 더했다. 업무일지는 주인공이 PT 과제를 받은 날부터 PT 당일을 맞이하기까지 하루하루 배운 것을 기록해가는 노트이다. 1일 차부터 6일 차까지의 'lesson learned'를 통해 독자들이 콘텐츠를 통해 얻어갈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고자 했다.

 

이 리포트는 광고대행사의 주니어 기획자는 물론 기획 업무를 하는 여러 직장인을 위해 작성했다. 당면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기획자들에게는 공통의 사고 과정이 존재한다.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면 다른 업계 사람들과도 네트워킹하라는 조언처럼, 다른 업역의 기획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깊게 들여다보는 것도 새로운 배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자, 이제 첫날의 기록부터 공개하려 한다. 필터링 되지 않은 날 것의 생생함에서 영감을 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