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그리는 디자이너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6월에 발간된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그림 한 장 그려줘, 너 성공하면 비싸지는 거 맞지?"
대학 전공을 디자인으로 선택한 후로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이중섭 같은 화가의 길이 제가 선택한 길이 아님을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그거 아니냐?' 하는 반문을 들을 때면 의례적으로, '시간 되면 한 장 그려드릴 테니, 비싸게 사 가세요'하고 웃고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디자이너의 위상이 예전에 비해 높아진 요즘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조금은 줄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과연 무엇일까요? 물건을 만드는 사람? 로고를 만드는 사람?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업에 대한 정의가 시대와 트렌드에 따라 진화 혹은 변형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디자이너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무언가를 그리는 능력보다 '스토리를 다룰 줄 아는 능력' 아닌가 합니다. 현대인은 더는 필요에 기인한 소비만 하지 않습니다. 또한, 소비를 위한 합리적 선택 기준도 사용성이 전부가 아니죠. 시장이 발달해 포화하면서 심미적인 측면과 사용자 경험 측면 모두 수준 높은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소비자의 눈높이도 덩달아 많이 높아졌죠.
프로덕트 혹은 서비스를 어필할 때 그것의 기술적 스펙과 높은 사용성은 장점이라기보다 이미 기본 사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단 한 가지라도 불편한 지점(미적 혹은 경험적)이 포착되면 바로 삭제해버립니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남들과 다른,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토리'입니다.
좋은 브랜딩엔 '썰'이 있다
박혁거세는 정말 알에서 태어났을까요? 로마를 건국한 쌍둥이는 정말 늑대 젖을 먹고 자랐을까요? 요즘의 과학적 기준에서 보면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런데도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패턴은 몰입도가 탁월한 영웅담, 즉 '건국 신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