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힘은 '관찰'에서 온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6월에 발간된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첩보 영화 주인공이 실전에 투입되기 전 상투적으로 거치는 관문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실전 대비 테스트 같은 것인데, 포커페이스를 한 감독관이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방금 복도를 지나오며 마주친 여성의 스카프는 무슨 색이지?"라던지 "식탁에 몇 개의 잔이 있었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주인공은 당황하지 않고 "여성의 스카프는 빨간색이었고, 식탁에는 잔 7개가 있었습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그런데 여자분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처음 신는 하이힐 같아 보였고, 테이블 위의 잔은 하나만 거꾸로 놓여 있더군요"라며 추가 정보까지 제공하며 탁월한 눈썰미를 자랑합니다.

 

물론 디자이너가 007 같은 첩보원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관찰력은 좋은 디자인의 중요한 전제 조건입니다. 디테일한 관찰에서 사용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시작되고, 다양한 적용까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영역이 인간의 활동을 넘어 자동화 혹은 인공지능화된 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된 시대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인간의 행동 양식을 발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그래서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죠.

 

이를 위한 좋은 방법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것입니다. 소설가는 '말'을 모으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말과 행동을 모아 소설 속의 인물을 구성하는 데 아주 중요하게 사용하죠. 디자이너가 장편 소설을 쓸 필요는 없지만, 어떠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와 관련된 시나리오를 구축할 일은 실제로 아주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