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비자가 온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8년 2월에 발간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온다>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화해'라는 모바일 앱은 한국에 출시된 화장품들의 제품 정보와 화장품에 포함된 전체 성분을 보여준다. 유해성분이나 주의성분이 몇 가지나 들어있는지, 민감성 피부에 자극이 되는 성분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실제 사용 고객의 솔직한 리뷰를 제품 평가에 반영하여, 소비자가 안전한 화장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제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광고 메시지보다 이런 앱의 고객 평가나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사용후기를 보고 제품을 선택한다. 제품 사용 중에 문제나 불편이 발생하면 고객센터가 아니라 인터넷에 먼저 알리고 다른 소비자의 구매 선택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환경적으로 유해한 휴대폰이 무엇인지 비교하여 공개하는데, 그들에 의하면 휴대폰 제조사들은 고장이 나거나 수리를 어렵게 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제조사는 보통 개인이나 제3자에 의한 수리는 불가하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메모리 확장을 못하도록 회로기판에 납땜질을 하고, 배터리는 강력 접착제로 붙여서 신제품 구매를 유도한다.

 

별모양 드라이버 같은 특수 공구가 없으면 기계 자체도 열 수 없도록 만든다. 전후면 유리를 사용해 충격에 더 취약하게 만들고, 수리 매뉴얼이나 부품을 별도로 제공하지 않는다. 공식 수리센터에서는 과도한 서비스 비용을 청구한다. 심지어 일부 구형 기기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의도적으로 느려지거나 오작동하도록 만들어 신제품 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한스미디어

2003년 설립된 미국의 아이픽스잇(IFixIt)은 이런 제조사 정책에 반대하여, 소비자도 휴대폰 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폰이 나올 때마다 분해하여 수리방법을 연구하고, 수리 매뉴얼을 제작하여 배포한다. 그리고 필요한 부품과 도구를 제작하여 인터넷을 통해 판매함으로써 개인이나 사설 수리센터가 싼 값으로 아이폰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국 기업의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한 내용이 인터넷에 유포된 적이 있었다.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회장의 과거 행태까지 추가로 인터넷에 퍼지면서 기업 이미지는 실추되었고, 회장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모 기업은 여직원에 대한 연이은 성추문 논란으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기업이어서 소비자의 분노는 더 컸다. 이런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졌고, 그 후 입사거부와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홈쇼핑사들은 이 기업의 제품 판매방송을 즉각 중단했고, 기업의 주가도 떨어졌다. 인터넷에 한 번 올라간 내용은 원문이 삭제돼도 사본이 계속 퍼지기 때문에 내용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면신문 시절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안 좋은 기사를 가릴 수 있었지만, 온라인 뉴스 시대에는 기업에 불리한 기사라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기사가 맨 위에 위치하게 되어 더 많은 조회수를 얻게 된다.

 

인터넷은 정보 주도권을 기업에서 소비자에게로 이전시켰다. 전에는 충분히 숨길 수 있었던 기업의 치부가 쉽게 드러나고 퍼진다. 그리고 그 파급력과 영향력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커졌다. 경쟁제품이 많아진 만큼 소비자가 다른 제품으로 이전하기 위해 드는 교체비용은 매우 낮아졌다. 소비재의 경우는 그저 마음만 고쳐먹으면 비슷한 품질과 가격의 제품을 바로 옆에서 구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다른 나라의 제품까지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은 구매에 필요한 공간의 제약마저 없앴다.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더 싸게 구매하는 '쇼루밍(showrooming)'이 전체 구매의 18%를 차지하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정보와 가격을 비교하고 구매하는 '옴니쇼퍼(omni-shopper)'는 4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2015년).

포스트모더니즘, 새로운 소비를 이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소비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를 발달시키며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효율중시와 전체주의라는 문제를 남겼다.

 

현대에 전체주의가 가장 확실하게 남아있는 조직이 바로 기업이다. 전체의 목적, 즉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희생되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획일과 권위를 버리고, 소수의 개성과 자유를 추구한다. 하나의 정답만 있는 인생이 아닌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인생은 객관식이 아님을 깨우친다. 무작정 성공을 향해 달리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그에게 뭔가를 얻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마치 인류의 지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놓은 것처럼 회자되기도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세상에는 공짜도 있다'는 것으로 반론한다.

 

'이것만이 정답일까?',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한 것일까?', '다르게 살면서 행복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들이 여러 가지 삶의 방식,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낳게 되었다. 휘게나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의 인기는 이런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필연적으로 소비의 변화를 가져온다. '남들이 결혼한다고 나도 해야 하나?', '남들이 대기업에 간다고 나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은 '남들이 입는다고 나도 입어야 하나?', '남들이 산다고 나도 사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는 과시형 소비와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모방 소비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스미디어

한국은 세계 8위의 명품 소비국이다. 하지만 한국 명품시장의 성장세는 2013년을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하면서, 명품 브랜드 한국법인의 이익은 반 토막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 크리스챤 디올은 이때 이후부터 2016년까지 적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명품 시장 추이(1994년~2016년 추정, 단위: 십억 유로) ©한스미디어

세계 명품시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6년에는 금융위기 여파가 미쳤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백만장자를 꿈꾸는 많은 중국인들의 신분 과시형 소비가 세계 명품시장을 근근이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중국은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가 그만큼 적어 세계적 포스트모더니즘 흐름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2010년 세계 5위였던 중국의 명품 소비는 2015년 세계 3위로 올라섰다. 명품 브랜드들이 중국에 화려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여는 등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많은 중국인들처럼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명품을 구매한다. 그들은 내가 속한 계층의 상징으로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위한 소품으로 명품을 소유한다. 그러나 과거 명품 소비자 중 일부는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지, 거기서 명품 소유는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삶의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명품을 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시대 변화에 따라 구찌, 루이뷔통,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들은 그들의 유구한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마케팅으로 전환했다. 전시회를 열거나 카페, 플래그십 매장을 통해 새로운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기존에는 "아무나 못 살만큼 비싸니 사세요"라는 메시지였다면, "비결을 전수받은 장인이 수작업으로 정성 들여 만든 것이니, 소중한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거에요"라는 메시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스미디어

과시적 소비와 모방 소비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찾은 대안이 바로 가치소비다. 가치소비란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춰 소비를 하는 것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각자 가진 가치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준다.

 

값비싼 유기농 식품을 예로 들면, '건강'과 '안전'이 삶의 핵심가치인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의식주의 요소이지만,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보상과 과시의 역할을 한다. 미니멀리스트에게는 불필요한 과소비로 여겨질 수 있겠고, '관계'나 '가족'이 삶의 중심인 사람에게는 사랑이나 우정의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치소비 관점에서 보면, 같은 소비를 통해 얻는 가치의 크기와 의미는 개인마다 제각각이다. 이런 차이는 단지 나이나 소득 수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삶의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에서 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은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고민과 라이프스타일의 다양성을 가져왔고, 인터넷을 통해 빠르고 풍부하게 유통되는 정보와 제품들은 소비자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소비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에 따라 소비자에게 가치소비는 자연스런 선택이 되고 있다.

 

미래 소비자는 더 좋고 싼 제품을 찾아내기 위해 인터넷 정보력을 활용하는 현대 소비자보다 조금 더 똑똑해진 소비자가 아니다. 미래 소비자는 여론을 만들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하고, 신생 브랜드를 단숨에 명품의 반열에 올리기도 한다. 기업의 제조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며, 직접 제조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췄다.

 

더 이상 기업의 마케팅이나 유행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른 소비를 지향한다. 큰 기업이 아닐지라도 나를 이해하는 브랜드를 찾아내어 구매함으로써 개성을 표현한다. 좀 더 똑똑해진 소비자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소비자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