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괴롭히는 것들

델리를 떠나 인도 남부 도시에 출장 와 있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스리랑카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야 했습니다. 델리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출장 예정일보다 넉넉하게 늦춰 잡았죠. 온 김에 맡은 일을 대강 철저히 해 놓고, 남쪽 나라 스리랑카로 날아갈 계획이었죠. 이름도 달콤한 바닷가 마을 '캔디'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드러누워 있으려 했죠.

 

계획이 아주 틀어져 버렸습니다. 일을 지시한 서울 본부에서 노예를 가만 놔두질 않는군요. 짜증이 납니다. 일정은 어그러졌고, 난 일주일 동안이나 이곳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습니다. 스리랑카로 떠나는 비행기 예약도 취소했죠. 스리랑카 여행에 대한 기대로 얼마 전까지 나는 부풀어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질소 빠진 과자처럼 눅눅해졌습니다.

 

기왕 이렇게 짜증이 난 김에 인도에서 겪는, 작지만 견고한 짜증 유발 요소들을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써야겠습니다. 벗기 어려운 군화에 들어간 돌 부스러기 정도로 확실한 물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 성가신 것들은, 자잘하고 집요하게 날 괴롭히고 있거든요.

1. 인터넷 종량제

집안에서 인터넷 랜선을 공유기에 연결해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나도 모르겠지만, 전화기 한 대가 꼭 필요합니다.

 

한국에선 그렇잖아요. 흰색 혹은 노란색 랜선 하나가 쑥, 불경스럽게 전화 콘센트를 타고 집 안으로 들어와 풍요로운 유비쿼터스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습니까. 외설적인 만큼 신뢰가 가죠.

 

인도에선 인터넷 연결을 신청하면 통신사 노동자 2명이 집으로 찾아옵니다. 공기계 전화기를 중간 매개 삼아 랜선을 연결하고 공유기를 설치하죠. 공유기는 안테나 하나 달린 싸구려 검은 플라스틱 재질이라 처음부터 믿음이 가질 않았습니다.

요란하게 크기만 하고 실속은 없는, 안테나 하나짜리 공유기. 단짝 전화기가 옆에 있어야 작동합니다.

역시나 연결 품질이 널뛰기하듯 들쭉날쭉하더군요. 다운로드 속도가 500 Kb/s를 넘으면 '앗싸'라고 외치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이 무제한 정액제가 아닌 종량제라는 거예요. 한 달에 몇 기가바이트가 한도였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보장되는 용량이 많은 가장 비싼 최상위 옵션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매달 인터넷 사용량은 한도를 넘기죠. 그걸 어떻게 감지할 수 있느냐. 한도를 넘어서면 인터넷이 끊겨버립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속이 아예 암전돼버리죠.

 

인도 최대 통신사 에어텔이 그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함양했는지, 정책을 좀 바꿨나 봐요. 전달엔 한도가 넘어가면 20~40kb/s 정도로 속도를 현저하게 낮춰 숨만 간당간당하게 붙여놓죠. 충전하기 위해선 근처 대리점으로 가 돈을 내야 합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고화질 사진이나 동영상을 내려 받을 때 한국에선 하지 않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쓸쓸한 방 안에 홀로 갇힌 나는, 그럼에도 인터넷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특히 요새 유튜브 열혈 시청자가 돼버렸습니다. '팔자 좋은 놈, 시간이 그리 남아도나 보다'라고 힐난하기 이전에 '가여운 사람, 인도에서 할 수 있는 즐길 거리가 그렇게 없는 모양이다'라고 부디 여겨주세요. 인도에 와서 새로 생긴 취미생활이죠.

 

한국에선 먹방이니 게임방이니 하는 아프리카TV 방송을 들여다보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막장 콘텐츠 소비자'라고 조롱을 일삼기도 했죠. 이제야 내 잘못을 참회합니다. 유튜브에 스타 BJ가 올리는 콘텐츠가 재밌어 죽겠어요.

 

신세계입니다. 무료하게 누워 있다 휴대폰 화면으로, 유튜브로 추억의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를 시청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연관 동영상에 아프리카 TV에서 활동하는 유명 스타크래프트 BJ들이 벌이는 게임리그가 뜨더군요. 몇 개 줍어 봤죠. 과연 유튜브는 콘텐츠의 바다였습니다. BJ들은 재미가 꿀처럼 흐르는 보물섬의 주인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아프리카 TV에 실시간으로 접속해 방송에 참여하진 않아요. 아무래도 이러다간 별풍선 수만원 쓰는 호구가 될까봐 제1원칙을 정했습니다.

 

'콘텐츠는 오로지 유튜브로만 소비한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 먹방을 켭니다. 요새 소 대창이 그렇게 생각이 나요. 대식(大食)을 내세우는 먹방계의 스타 BJ 몇 명이 있거든요. 20인분은 넘어 보이는 소고기, 대창, 곱창 등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는 동영상을 쭉쭉 넘기면서 보면 대리만족이 됩니다.

 

트랜스젠더 BJ 방송도 봐요. 트렌스젠더 BJ와 그의 LGBT 친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젠더적 환경이랄까, 자연스럽게 조성된 상황에서 나오는 화술과 이야기들이 재밌습니다. 차진 B급 욕설도 양념같이 맛있게 들려요.

 

게임에 소질도 없고, 게임을 하지도 않는 나는 게임 방송도 보게 됐습니다. 잘 만들어진 콘솔 게임에는 웬만한 영화를 뛰어넘는 잘 짜인 서사와 사실감 넘치는 액션이 있었습니다. 게임에 능숙한 BJ의 재치있는 입담, 성우 같은 목소리 톤까지 곁들여지면 머리, 눈, 귀가 모두 즐겁죠.

 

최근 발매된 '용과 같이-極(극)'이란 일본 게임 엔딩까지 봤습니다. 인성과 육체 능력을 양수겸장한 '도지마의 용' - 주인공 키류 카지마란 야쿠자의 별명인데 놀이터만 한 등짝을 용 문신이 덮고 있습니다 - 앞에 우정과 사랑, 배신과 믿음의 장구한 드라마가 스펙타클하게 펼쳐지죠.

 

라라 크로프트가 나오는 '툼레이더 리부트 시리즈'를 봤고, 요즘엔 보물 사냥꾼의 모험을 그린 '언차티드4'란 게임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동영상을 처량하게도, 인터넷 종량제가 걱정돼 화질을 240p로 맞춰서 봐요. 빠다코코낫 비스킷만 한 플레이 화면을 바라봐야 하는 눈에 여간 미안한 게 아닙니다.

 

가끔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싶을 땐 큰 맘 먹고 480p로 전환하긴 하지만. 어쨌든 유튜브를 틀고 있으면 '이거 인터넷 사용 용량을 너무 잡아먹는 거 아니야'라는 염려가 마음속에서 구정물처럼 흘러나옵니다. 대뇌에 깊게 매설된 수로에 상시로 흐르고 있다니까요. 제기랄,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2. 휴대폰 선불 결제 그리고 발열

스마트폰도 선불제 요금을 씁니다. 인도 휴대폰 소비자 90%가 선불폰을 쓴대요. 한국에서 삼성 갤럭시 노트4를 가져왔는데, 매달 통신사 대리점을 방문해 충전하고 있습니다. 요망한 통신사가 어디서 누구 꾀를 빌려왔는지, 통화 요금과 데이터 요금을 따로 충전해야 합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없죠.

 

다행인 점은, 통화료는 다 쓰기 전까진 은행 계좌에 입금된 돈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한번 충전하면 28일만 사용 가능해요. 통신사는 악독하게 소작농을 관리하는 유능한 마름처럼 굴죠.

 

28일 안에 주어진 용량을 다 써버리면 '여봐, 쟁여놓은 통화 요금은 모자란 데이터를 사는 데 얼마든지 끌어 쓸 수 있어'라며 나를 북돋습니다. 28일간 쓰고 남은 데이터 용량은 짤 없이 곳간으로 가져가 버리죠. 뭡니까 이게.

 

요새 인도 전역에 LTE통신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통신사들의 광고가 시종 울려 퍼지고 있는데, 잘 잡히지도 않아요. 차를 타고 델리 시내를 돌아다니면 스마트폰 화면 위쪽에서 분 단위로 LTE와 3G, 1G 환경이 왔다리 갔다리, 박수무당 난장 굿이 펼쳐지죠.

 

LTE 요금 꼬박꼬박 내는 나는 열이 확 뻗치는 데, 진짜 문제는 스마트폰이 나보다 더 뜨거워진다는 겁니다. 불안정한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찾아내느라 열심인 거죠. 배터리도 덩달아 급속도로 소진됩니다.

 

'어이, 과부하가 걸렸다고. 엔간히 좀 혀'라는 스마트폰의 불만이 열의 형태로 손에 전달됩니다. 비행기 모드를 해놓거나 모바일 데이터 수신을 꺼놓죠.

 

계속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면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씁니다. 뒷면 뚜껑을 벗기고 배터리를 비롯한 부품으로 이뤄진 - 잔뜩 달궈진 - 몸을 차량 에어컨 바람에 갖다 댑니다.

 

몸을 수그리고 에어컨 앞에서 스마트폰을 말리고 있으면 운전기사 상카의 입가에 비웃음이 살짝 걸려요. 그럴 때마다 'you know'라면서 멋쩍게 웃는 데 사실 좀 부끄럽습니다. 아니 짜증이 나죠. 왜 내가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에어컨 앞에 대고 있는지.

 

(말이 나온 김에 스마트폰 이야기를 더 하자면) 내 것과는 달리, 인도에서 판매되는 삼성 스마트폰은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기능으로 무장했습니다. '울트라 파워 세이빙'과 '울트라 데이터 세이빙'.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는 기능들인데 철저한 현지화 전략의 산물이죠. 스마트폰 스크린을 위에서 아래로 드래그하면 보이는 알림창에 떡 하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인도에서 방영되는 삼성 J 시리즈 TV광고입니다. 작년 9월 출시된 스마트폰 J1은, 6개월간 1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Z1을 제치고 월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J 시리즈에 담긴 '울트라 데이터 세이빙(UDS)'이란 현지 특화 기술이 노이다 연구소에서 탄생했죠. 노이다 연구소를 비롯해 방갈로르, 델리 연구소 등 1만명이 넘는 인도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삼성 스마트폰 성공 신화의 주역입니다.

 

인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질주하는 삼성전자는 뉴델리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노이다에 인도인 기술자 2500명이 근무하는 모바일 특화 R&D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이다 연구소에 방문했을 때 혹시 몰라 찍어 놓은 컨셉 사진. 터번 쓴 인도 아저씨들은 시크교입니다. 평생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죠. 몇몇은 탈모 가속화·비듬 등 머리카락 질환에 시달립니다. 고작 이런 사소한 문제로 종교적 신념을 꺾을 순 없죠. 북부 펀자브주(州) 출신들 대부분이 시크교입니다. 멋쟁이들은 산뜻 깨끗한 색깔별로 터번을 마련해 놓고, 그때그때 셔츠나 운동화 색에 맞춰 깔맞춤을 하죠.

여기서 내놓는 인도 현지화 기능이 최신 고급 기술이 아니에요. 현재 가진 기술 역량으로 인도에 어울리는 기술을 사려 깊게 만들어내는 겁니다.

 

말하자면 수세식 좌변기를 쓰는 길동이네가 푸세식 변기 쓰는 옆 동네 훈이네 화장실 벽에 '끈 잡아당기면 물 내려 보내는 플라스틱 통'을 달아주는 정도의 일이죠. 가령 울트라데이터세이빙의 경우, 연구원 아저씨가 그래요.

 

"인도 사람들은 모바일 데이터를 쓸 때만 키고 다시 꺼놓을 정도로 데이터 비용에 민감하죠. 이런 조작이 계속되면 배터리 용량도 빨리 소진되고 폰도 느려집니다. 이걸 어떻게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울트라데이터세이빙이 나왔죠.

 

유튜브를 보는데 원래 100메가바이트가 필요하다 칩시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데이터를 콤프레션(압축) 해서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30~50메가바이트를 세이브할 수 있죠. 서버 쪽에 압축된 데이터를 주고 디코딩한 결과물을 보는 거예요. 데이터 요금 걱정과 배터리 용량 소모, 폰이 느려지는 걱정을 모두 없앨 수 있는 거죠."

 

뭔 소린지 잘은 모르겠어도 좋긴 좋은 건가 보다고 생각한 나는 "그럼 한국에서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사실상 데이터 무제한 환경인 한국에선 굳이 필요가 없죠. '왜 데이터를 콤프레션 하냐, 영상 퀄리티만 나빠지는 거 아니냐'는 불만만 나올게 당연한데요."

 

"그렇군요..."

 

그런 것입니다. 인도에선 인도만을 위한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이로운 것입니다.

3. 쓸데없는 건물 보안

철도 역사(驛舍), 쇼핑몰, 호텔을 비롯한 큰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가방검색대에 가방을 내려놓고 내 몸을 더듬는 경비원의 손길을 견뎌내야 합니다. 보안 검색에 응하기가 성가시고 귀찮습니다. 고급 호텔이나 거대 쇼핑몰에 차를 타고 들어설 땐 정문의 보안요원들에 보닛과 트렁크를 열어 보여야 하죠.

 

일련의 폭탄 테러 사태로 만들어진 보안 시스템이라고 하던데요. 보안 요원들은 정년 하루 남긴 1970년대 시골 삼류 영화 극장 검표원처럼 세상 다 귀찮다는 표정을 지녔습니다.

 

나사 빠진 채 흐느적거리며 요식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죠. 솔직히 매번 검색대에 설 때마다 '맘만 먹으면 폭탄이든 총이든 가져와서 다 날려버릴 수 있겠군'이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4. 각 주(州)간 주류 반입 금지

멋모르고 델리에서 병맥주 한짝 사서 트렁크에 싣고 우타르프라데시주로 가다 그쪽 경찰에 걸렸습니다. 귀신같이 잡아내더라고요.

내가 사는 집에 찾아온 경찰 아저씨. 허름하지만 육중한 검은 가죽재킷은 그의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올해 초 외국인 거주 등록 사무실(FRRO)에서 비자연장을 신청했습니다. 경찰이 집에 왔어요. 내가 제출한 거주지에 정말 살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네요. 비자 연장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였지만, 일요일 저녁에 경찰이 연락도 없이 벨을 누르고 구두를 신은 채 뚜벅뚜벅 들어와 거실 소파에 앉는 모습을 보는 건 으스스하더군요.

경찰 세 명이 순식간에 차를 에워싸고 겁을 줬습니다. 감옥 갈 뻔했어요. 한국 감옥보다 사정이 훨씬 열악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습니다.

5. 조수석 안전벨트 미착용 시 벌금

헤드룸이 좁은 뒷좌석보단 앞 전망이 확 트인 데다 머리 공간도 높은 앞좌석을 선호합니다.

 

안전벨트 매는 일을 몇 번 까먹다 자이푸르와 델리에서 세 번 벌금을 냈습니다.

 

6. 나쁜 도로 사정

도로가 울퉁불퉁해 승차감이 좋지 않습니다. 탈것에 앉기만 하면 잠에 빠지는 체질인데,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7.8.9.10.11....

(쓰다보니 더 약이 올라서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