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부모님을 졸라서 받은 돈에 인턴십을 하면서 모았던 돈 조금을 보태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UN의 새천년개발목표(MDGs)라는 단어만 들어도 피가 끓었고 개발도상국에 국가기반시설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국제개발은행에 가겠다고 멋모르고 30년 계획을 세웠던 때였습니다.

 

한 국제기구 홈페이지의 안내 계정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더니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일본인 공무원 한 분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분을 만나러 프랑스에 갈 핑계가 생겼던 것입니다. 사실은 다른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기도 했겠지요.

 

10년도 더 된 일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여러 국가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보니 협의체를 조직하거나 국가별 통계로부터 의미를 찾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어떤 일을 하고 싶던 간에 첫 직장으로 오는 것은 추천하지 않고 전문성을 쌓고 나중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얼마 전 이 기억들을 떠올리는데 부끄럽기도 하여 아내와 얘기하며 이불을 걷어찼더니, "외국 대학생이 여보가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누군가로부터는 멋진 일을 한다고 칭찬 받는 건데 기분 좋지 않겠어?"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몇 년 전 일본에 지진이 났을 때 괜찮으시냐 안부를 물었었는데, 그 멋진 분은 아직도 잘 계신지 궁금합니다.

주변인으로 살기

지금은 기업가 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투자자라하고, 어떤 분들은 중간지원기관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주변인'이라는 표현이 썩 나쁘지 않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다양한 사회양식 가운데 어느 하나에 통합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으며, '때때로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행동을 하기 어려워한다'고도 합니다(출처: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의 교육학용어사전).

 

'일관성이 없다'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금의 상황과 행동거지를 잘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조직 안에서는 사회가 바라는 것 또는 사회가 바람직하게 변화되었으면 하는 방향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오히려 밖에서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기업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주주가 주인으로 있는 회사에 왜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라고 냉소적으로 바뀝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사회가 가장 큰 이해관계자'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으나, 정말 주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싶습니다. 남들은 크게 관심없는데 혼자서만 고민입니다.

 

어찌되었든 사람들 저마다의 소명과 재능이 있는 것이고, 사회문제 해결을 생각하는 기업가들이 스스로 성장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이 일에 큰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사회공헌, 어느새 7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30년 후에 하고 싶은 일, 지금이라고 왜 못할까'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떠나 한 층짜리의 좁은 기업사회공헌 재단 사무실에 앉았었죠.

 

그간을 돌아보면 비영리재단 설립 실무, 연구, 전략 수립, 프로그램 기획, 투자 심사... 참 다양한 일을 했는데, 옮겨야겠다는 한 번의 큰 선택 이후로는 매 순간 선택하지 않음이 지금 저의 모습을 만든 것 같습니다.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들도 많으나, 사회가 변화하는 큰 흐름 속에 나를 맡기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 것도 즐거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또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기회들이 많을까, 기대됩니다.

Connecting the dots

"Connecting the dots" - Steve Jobs(1955-2011)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모르는 사이에 지나온 경험들이 내 모습을 만들고, 잠시의 힘든 일들이 있더라도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이겨낼 수 있는 맷집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숨가쁘게 점을 찍어나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이어놓은 점을 보고 멋진 길이라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고, 다른 길을 가시던 분들은 잠깐 숨을 돌리고 기업사회공헌과 투자의 영역 사이에 있는 이 일에 궁금즘을 갖고 물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퍼블리와 함께 하는 이번 프로젝트가 그 출발점이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