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칸은 또 왜 가세요?

그러게 말이다. 나는 대체 왜 칸에 가려고 하는 것인가? 사실 주변에서도 왜 가는지 이해를 못하는 분이 많다.

 

필자의 상황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정리를.

  • 첫째, 최근 신작 '클래시로얄'의 마케팅 일로 회사 일이 엄청 바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출장 나와 있음…)
  • 둘째, 처자식이 딸린 가장이다. 아들은 아직 두 돌도 채 안됐고, 와이프도 요즘 출장이 아주 잦다.
  • 게다가 몇몇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집 공고가 불과 2주 전에 나왔다. 나는 마감 1시간 전에 참가 의사를 밝혔고, 7시간 뒤 퇴근길에 참석 컨펌 전화를 퍼블리 측에서 받았다. 전화를 받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와, 대박." "이거 어떡하나…"

결국 칸 광고제에 엄청 가고 싶었거나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거나, 혹은 둘 다일 것이다.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자.

칸은 '광고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꼭 가야만 했던 이유 (1)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칸 국제 광고제 공식 홈페이지

퍼블리에서도 칸 프로젝트를 '칸 국제광고제'라고 명명했지만, 엄밀하게는 Cannes Lions라는 광고와 마케팅에 포커스 된 메인 프로그램, 그에 추가로 Health, Entertainment, Innovation이라는 별도의 3가지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Health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제약, 바이오 업계 및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포커스되어 있고, 메인 패스에서도 추가 구매를 해야 참가할 수 있다.)

 

'정통 브랜드 마케터'가 아닌 디지털 미디어에 포커스 된 경력을 가진 필자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다수의 독자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는)이 특히 Entertainment와 Innovation 프로그램의 소개다. 

먼저 Entertainment의 한 줄 소개.
"New for 2016, Lions Entertainment is dedicated to unskippable creativity."

'Unskippable'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전통 매체에서도 소비자가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이목을 끄는 광고의 역할은 중요했지만,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사용자들에게 광고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건너뛰기 버튼이 나타나면 광고의 94%는 바로 건너뛰기 된다. ⓒAdweek

Adweek(광고 뉴스 전문잡지)는 과거 조사에서 94%라는 극단적인 수치를 발표한 적이 있으며, 마케터로서 직접 경험치를 가지고 짐작해보는 수치 역시 적어도 80% 이상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광고를 보기 싫어하는데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대놓고 "이건 광고야"라고 알려주니 마케터와 광고 제작자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2015년 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Geico의 "Unskippable"이 이 업계에서 이러한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광고 자체도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 Geico의 'Unskippable'이 2015년 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위와 같은 광고 형태를 취한 극단적인 접근법 이외에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브랜디드 콘텐츠*'다. 모바일 시대에는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에서 소비자들이 언제나 손쉽게 비디오를 소비하고, 거기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파급 효과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노출하는 광고 기법 중 하나로 PPL의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광고 대신에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광고주들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광고대행사의 영역이 위협받게 되었고, 그 자리를 방송 제작자, 뮤지션,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등 실제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 및 개인들이 채우는 일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다.

 

이번 Cannes Lions Entertainment의 연사로는 영국 뮤지션 마크 론슨(Mark Ronson), 드라마 <더 오피스(The Office)>에 출연한 배우이자 제작자인 민디 케일링(Mindy Kaling), 유튜브 MCN의 선두주자로서 디즈니에 인수된 Maker Studios 등이 포진되어 있고, 이들이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관점을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은  Innovation의 한 줄 요약.

"Lions Innovation is an exploration of data and tech as catalysts for creativity."

여기서는 '데이터'와 '기술'을 강조한다. 크리에이티브와 데이터, 기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데이터와 기술을 통해서 마케터는 소비자에게 더욱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 역시 능력만 된다면 실시간으로 상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 리서치 회사를 통해 설문 조사를 실시할 필요도 없이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바로 모든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이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일 것이다. 이론 상으로 페이스북에서는 소비자 한 명 한 명에게 개인화된 광고를 만들어서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학생을 타깃으로 삼은 광고라면, 대학생 전체에게 "대학생 여러분~"이라는 카피 대신, "홍익대 학생 여러분~", "서울대 학생 여러분~", "경희대 학생 여러분~"처럼 여러 가지 버전으로 광고를 제작하고 전달할 수 있다. 개별 대학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수집하는 모든 정보는 타깃 적용이 가능하다. 즉, 사는 지역, 좋아하는 영화, 기혼/미혼 여부 등 모든 영역이 적용 대상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실리콘밸리의 존재감이 칸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기술 기업들이 칸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아주 미미했다. 그동안 한두 가지 섹션에서 연사로 참여하는 정도였다면, 올해는 그 정점에 다다른 것 같다. Adweek의 기사 헤드라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이 곧 주인공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Tech Companies Are Preparing to Take Over the Beaches of Cannes at This Year's Festival - Facebook, YouTube bring the party to the sea &#9426;Adweek

Entertainment와 Innovation 섹션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와 같은 콘텐츠와 기술/데이터와 광고가 점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 논점이고, 메인 행사인 Lions의 세션들도 이와 같은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중요하다

꼭 가야만 했던 이유 (2)

우리 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면서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모바일 게임 카테고리 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마케팅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 일해서 행복하다.

 

PUBLY 독자분들에게도 전 세계에서 스토리텔링을 가장 잘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 슈퍼셀의 'insider story'를 가능한 범위까지 전달하고 싶었다. 칸 광고제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2015년 유튜브 전체 광고 카테고리 영상 가운데 조회수 1위는?

정답: Clash of Clans: Revenge

Views: 82,239,882

 

지난번 글에도 공유했던 리암 니슨의 60초 광고다. 국내에서도 2015년 설 연휴 기간 공중파를 탔다. 미국에서는 슈퍼볼 기간에 전파를 탔고, 온라인에서는 대부분 organic으로 달성한 수치다.

 

* Clash of Clans: Revenge ⓒClash of Clans

 

그렇다면 2014년 12월 광고 조회수 1위는?

정답: Clash of Clans 360: Experience a Virtual Reality Raid
Views: 30,272,392

 

* Clash of Clans 360: Experience a Virtual Reality Raid ⓒClash of Clans

 

이건 좀 새로운 사례인데, 국내에서는 미디어에 적극적인 노출을 하지 않아서 못 보신 분도 많을 것 같다. '360˚ video*'라는 새로운 기술로 만든 영상이다.

* 재생 도중 키보드나 마우스 등을 활용해 사용자가 보고 싶은 방향이나 지점을 선택해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을 말한다. (출처: 한경 경제용어사전)

 

슈퍼셀은 물론 아주 훌륭한 게임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마케팅으로 성공했다. 마케팅의 여러 영역 가운데서도 앞서 언급한 기술과 데이터, 콘텐츠 제작자와의 협업 등 새로운 트렌드를 앞장서서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전통적인 ATL* 중심의 접근법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  Above The Line. 전통적인 광고 매체인 TV, 신문, 잡지, 라디오 등에 노출되는 광고를 말한다.

 

특히 우리는 TV 광고를 업계에서 가장 잘 만들어왔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한 애니메이션 광고, 그리고 리암 니슨의 연기가 화제가 된 슈퍼볼 광고, 가장 최근에는 국내에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2012)에 나온 배우 정도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왈츠가 출연한 광고를 또 히트시켰다. 팀 내부에서는 뉴욕에 위치한 작은 부티크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Barton F. Graf'와의 훌륭한 파트너십 덕분으로 언제나 공을 돌린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 회사의 CMO(최고마케팅책임자)인 Ryan Wener님과, 크리에이티브 파트너 Barton F. Graf(이하 BFG)의 CSO(최고전략책임자) Laura Janness님이 Cannes Innovation 트랙에서 슈퍼셀의 마케팅 케이스로 세션 하나를 맡기로 했었다. (그러나 사실을 고백하자면 프로젝트를 맡기로 하고 나서 불과 3일 뒤, 이런저런 이유로 세션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구체적으로 슈퍼셀 케이스에 대한 세션은 물 건너갔지만, BFG 창립자이자 전설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Gerry Graf가 'Anyone Can Have An Idea. Few Have THE Idea'라는 이름의 세션을 가질 예정이다. 아마도 저 'few'에 슈퍼셀도 포함될 것이다.

 

BFG는 슈퍼셀을 맡기 전에도 뉴욕에서 꽤나 유명한 부티크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였다고 한다. BFG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조금 더 깊게 소개하겠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킹: 기대 반 우려 반

꼭 가야만 했던 이유 (3)

세션도 세션이지만, 칸 광고제는 파티 및 네트워킹 비중이 상당히 높은 행사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여름에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에서 열린다는 것부터 그러하다. 보통 자비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연사 혹은 스폰서 관계사, 그리고 영업 목적이 있는 광고대행사와 매체의 높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에 살던 2013년, '선댄스 영화제*'를 자비로, 말 그대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 오직 독립영화에 대한 순수한 팬심으로 말이다. 그때, 영화 쪽에서 일하던 한 선배 덕분에 박찬욱 감독님과 저녁도 먹고 업계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살짝 있었다.

* 미국의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1월 중순 무렵 10일 동안 개최되는 미국의 대표 인디 영화제. 더 자세한 내용은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왜 선댄스로 가는가 - 선댄스 영화제 2018> 참조

 

업계 종사자들은 내가 자비로 영화를 보러 왔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고, 덕분에 특별히 잘 대해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행사에서는 이미 업계 지인들끼리 회포를 풀고, 저녁에는 특정 회사에서 후원하는 파티에 가서 또 한 잔 나누며 이야기하고, 아는 사람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특별한 이벤트에서 그들끼리 즐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내가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운이 좋았던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 &#9426;이지홍

참고로 미국 디지털 산업 전문 매체 디지데이(Digiday)에서 2015년 칸 광고제를 커버한 기사만 보아도 명백하다. 제목은 'The real winners of the 2015 Cannes Lions'이고, 이미 첫 번째 단락에서 이런 대목을 언급하고 있다.

The real action at Cannes rarely happens inside the Palais des Festivals. Instead, the scene is centered on yachts docked out to sea, in nearby Antibes or one of the numerous villas off the main Croisette.

과거 미국에서 모바일 광고 분야 일을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내가 맡은 직무가 제휴 및 영업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람들을 소개받아서 파티도 따라갔고, 가서는 이야기 나누며 우리 회사 제품 홍보도 하곤 했다. (한국에서 보통 학교 선후배 혹은 업계 선후배를 통해서 소개를 받아 술자리를 가지는 것과 사실상 똑같다.)

 

칸 광고제는 사실 분위기가 어떤지 감이 없어서, 또한 공식적인 회사 업무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약간 애매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과를 위해 필요하다면 '광고주'라는 위치를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현명하게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펀딩에 참여하시는 독자분들께도 충분히 흥미롭게 다가올 이야기를 몇 가지는 건질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주옥같은 세션들을 직접 가서 잘 듣고 정리하여 독자분들에게 전달해드리는 일이다. 많은 세션이 진행될 예정이고 어떤 게 좋은지 나쁜지는 일정표와 개요만 봐서는 알기가 어렵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기대하는 큰 주제들과 세부 세션들을 상세히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