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성과'에서 '개인의 전인성'으로

컬쳐 서밋의 주최자 헝 팸의 간단한 인사와 첫 회부터 쭉 진행을 맡고 있는 아담 포스볼스키(Adam Poswolsky)의 단체 스트레칭으로 메인 세션이 시작됐습니다.

 

첫날은 주로 전반적인 조직문화와 신뢰·전인성, 둘째 날 오전에는 다양성, 오후에는 조직문화 변화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다뤘습니다.

리더십 작가인 사회자 아담과 함께 한 단체 스트레칭 ⓒ장영학

컨퍼런스 메인 세션은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What's your word)?'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다니던 엔지니어 크리스 판(Chris Pan)은 사람 사이의 대화와 연결이 대부분 날씨·스포츠·타인처럼 외적인 요소들로만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대화는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진정한 연결이 없는 시간 때우기 대화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는 페이스북을 나와 '마이인텐트(MyIntent)'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키우고 싶은 소양이나 삶에 닥친 가장 큰 도전, 또는 가장 열정이 샘솟는 영역을 한 단어로 써서 팔찌로 만드는 것이죠. 그럼 처음 만난 사람도 이 팔찌를 보며 왜 이 단어를 골랐는지 스토리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크리스는 자신이 주얼리 회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이인텐트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동기부여받는 요소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커뮤니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팔찌를 만들려면 단지 원하는 글자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단어를 골랐는지 이야기를 입력해야 하니까요.

사명을 새긴 저자의 팔찌 ⓒ장영학

크리스는 이렇게 홈페이지에 모인 이야기와 자신이 직접 고객들을 만나러 다니며 들은 이야기 중에서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팀원 중 한 명과 팔찌에 새긴 단어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이 사람이 몇 달 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문제는 크리스가 단 2분 만에 알게 된 사실을 이 조직의 상사와 동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이 왜 조직 문화에 중요할까요?

그보다 먼저,
조직문화가 왜 중요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문화가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대답할 것입니다. 경영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조직 문화와 성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연구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학자뿐만 아니라 경영자나 실무자들이 쓴 시중의 조직문화 관련된 책들도 대부분 조직문화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조로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문화에 접근하는 또 다른 관점으로 발달심리학에 기반한 부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에서 발달심리학을 연구하는 로버트 키건(Robert Kegan)이 쓴 <An Everyone Culture>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평범한 조직의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 월급도 받지 못하는 부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기업과 정부, 학교와 병원, 영리 단체, 비영리단체, 심지어 국경을 나눌 것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시간과 에너지를 약점을 감추고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판을 관리하며, 자기 장점만을 부각하고 사내 정치를 하면서, 부족함과 불안감,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업은 감추기입니다.

발달심리학 관점에서 쓰인 책들은 구성원들이 정신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문화를 바람직한 문화로 봅니다. 즉, 조직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구성원들이 정신적으로 발달하면 결과적으로 조직의 성과도 좋아지겠지만, 어쨌든 발달심리학의 방점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발달에 있습니다.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도 안전한 조직, 사람을 성과를 위한 도구로만 대하지 않는 조직을 나타내는 주요 키워드가 '전인성'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첫 워크숍의 '베스트셀프', 첫 메인 세션의 '나의 단어' 모두 조직보다는 구성원 개인의 충만한 삶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어진 세션에서도 회사가 직원들의 업무 외적인 삶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사생활을 회사에 얘기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일터에서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거죠.

 

전반적인 연사들의 어조가 조직의 성과보다는 직원들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좋은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는 쪽이었습니다. 심지어 조직의 성과를 우선시할 것 같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방법(How to Build a High Performing Culture)'이라는 세션의 연사조차 "성과는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성과를 위해 구성원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행복하기 위해 조직이 성과를 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자신'인 조직이 건강하다

'신뢰도 높은 문화'와 정 반대에 있는 단어가 바로 '드라마(drama)입니다. 첫날 워크숍부터 컨퍼런스 내내 사람들의 대화와 토론 속에 등장한 단어인데요. 처음엔 어떤 맥락에서 드라마라고 하는지 잘 몰랐었는데, 듣다 보니 '조직에서 원하는 (내가 아닌) 모습을 연기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조직에서 사람들을 번아웃시키고 퇴사하게 만드는 원흉으로 지목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조직이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기 위해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를 왜곡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업무 외적인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직 회사의 목표만이 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전설처럼 내려오는 한 선배 PM(Project Manager)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나서야 프로젝트 기간 동안 그 PM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다른 팀원들이 알았다는 것입니다. 팀원들은 출산은커녕 그 아내분의 임신 소식조차 몰랐던 거죠. 그렇게 개인의 삶은 전혀 회사에 드러내지 않고 조직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철저하게 프로다운 모습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휴직을 신청했더니 "네가 거기 가 있는다고 아버지 병이 나을 것 같냐"는 말을 들었다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가족이 아파도 모른 척, 내가 아파도 안 아픈 척, 업무 외적으로 아무 취미활동이 없는 척 회사를 출근하는 사람이 과연 요즘 그렇게 중시되는 창의성을 가지고 혁신을 일궈낼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각 연사에 대한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컨퍼런스였다면 'AA 회사의 채용 담당자였고 지금은 BB 회사의 인사팀장을 맡은 XX' 정도로 소개했을 텐데, 컬쳐 서밋에서는 이런 내용과 함께 '주말마다 스노보드를 즐기고, 로맨스 소설책을 낸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XX' 같은 멘트가 따라붙었습니다. 단지 일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삶을 가진 전인적 존재로서 연사들을 소개한 것입니다.

 

연사들 또한 자기 삶의 개인적인 부분들을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심지어 세션 전체를 본인이 어떤 과정과 생각을 거쳐 HR 직무를 맡게 됐는지 설명한 연사도 있었습니다. 어떤 연사는 자기가 어젯밤에 모든 슬라이드를 다 고치고 새로 써서 오늘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며 운을 떼기도 했고, 어떤 연사는 세션 도중에 자기 아들이 심한 ADHD*를 앓고 있어서 '가족의 조직문화'를 정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저도 강의가 본업의 일부인데, 설령 준비가 조금 부족할 때에도 절대 그런 사실을 청중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언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강사의 전문성이 부족해 보이거나, 듣는 사람이 괜히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컬쳐 서밋에서는 마치 '이곳에서라면 이런 사실을 밝혀도 나를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연사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하는 믿음이 연사와 청중 사이에 형성돼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연사 자신이 취약성을 드러내는 순간 가장 진솔하고 인사이트 있는 고백이 흘러나왔습니다.

 

한편 일은 일일 뿐 삶의 일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팔찌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하나 갖고 싶다는 부류가 있는 반면, 회사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다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굳이 내 이야기를 해서 득 볼 것 없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자기를 숨기는 것이죠.

 

하지만 직원들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그러면서도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느끼는 회사가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An Everyone Culture>의 인용문처럼 구성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맡은 업무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 외적인 모습을 숨기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자기 역량 대부분을 자기 정체성을 숨기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 업무 성과가 날 리가 없습니다. 업무 시간엔 '연기'하느라 지치고 피곤하기 때문에, 빨리 퇴근해서 자기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삶'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일과 삶의 문제는 단지 주당 근로시간이나 야근 수당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터에서 내가 얼마나 나일 수 있는지, 일과 삶의 통합 문제입니다.

제도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앞서 헝 팸이 왜 컬쳐 서밋을 열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 경영진이나 인사 담당자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 조직문화 컨퍼런스를 지향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컬쳐 서밋에서는 채용 과정이나 평가 등의 '제도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제도의 배경이 된 각 회사의 철학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제도의 디테일을 이야기하는 게 큰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대신 세션에서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제도를 실행하는 과정에서의 소통이었습니다.

 

스포티파이(Spotify)와 와비 파커(Warby Parker)의 인사 관리자(Head of People)였고 지금은 시트긱(SeatGeek)이라는 스타트업에서 인사를 맡고 있는 수잔 리(Susan Lee)는 사회생활 초창기에 광고회사 인사팀에서 일했던 경험을 나눴습니다.

 

이 회사는 출근했을 때 책상 위에 박스가 놓여있는 걸 보고 해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광고 업계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경영상의 이유로 수시로 해고가 발생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수잔은 아무 소통 없이 사람들 책상 위에 박스를 올려놓기는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잔은 해고를 해야 할 때마다 다른 지사에 남는 포지션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없으면 다른 광고회사 인사팀에도 문의했습니다. 해고될 사람에게 자리를 제시해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하는 포지션이 없거나 아예 광고 업계를 떠나기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헤어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해고된 사람 중에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파티를 하고 퇴사하는 사람들이 생겼답니다. 책상에 박스가 놓여 있는 걸로 해고 사실을 알았던 회사에서 말이죠.

 

수잔이 인사팀이 되었다고 회사의 평가 기준이나 해고 제도(policy)가 바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고가 실제 진행되는 관행(practice)은 바뀌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다른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인사 규정집, 매뉴얼을 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잔의 말 중에 "인간적으로 행동하고, 공감하며 들어라(Acting with humanity, Listening with empathy)"라는 말이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인사팀은 항상 자기가 내리는 결정이나 만드는 제도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솔직함과 투명성의 비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원 급여를 예로 들면, 극단적인 투명성을 추구한다고 모든 직원의 급여를 공개하는 급여 투명성(pay transparency)이 꼭 좋은 것일까요? 수잔은 반대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본인이 조직의 성과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직원들의 자기 인식 수준이 아직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급여 투명성 대신 제시한 것이 솔직한 급여 기준(pay honesty)입니다. 급여가 어떤 기준과 과정으로 결정되는지 모두에게 알려지면, 모두의 급여를 공개하지 않고도 충분히 신뢰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조직 문화를 이끌 만한 권한이 없을 때 어떻게 소통만으로 변화를 이끌지에 대한 패널 토의('How to Lead Change without Authority')도 있었습니다. 아마 주제에 공감하시는 조직 문화 담당자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보통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는 어떻게든 높은 임원의 관심을 끌어내 후광을 업고 일을 추진하거나, 이에 실패하면 아예 변화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패널 토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직급도 낮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데 어떻게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지 토론에서 논의된 주요 포인트를 공유해 드립니다.

 

우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생각을 경청해야 합니다. 어떤 패널 연사는 이를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라(Do your homework)'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특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아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경영진에 알려 조치를 취하게 하거나, 그중 일부라도 직접 해결해준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신뢰하고 당신이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 있는지 들어볼 것입니다.

 

때로는 세일즈 스킬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권한 없이 다른 사람에게 행동을 유도해야 하는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세일즈입니다. 제도를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흔히 셀링한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변화를 설득할 때는 세일즈맨의 노하우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서전이나 경영서적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리더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고 동기부여했는지 읽다 보면 지금 내 상황에 적용할 부분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와 닿은 부분은 '나는 권한이 없다'고 스스로 되뇌지 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어차피 조직에서 권한은 남이 부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얻어내는 것입니다. 평가나 예산 같은 권한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조직문화는 어차피 권한과 직급으로 찍어 눌러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뢰에 기반한 권한과 통제와 공포에 의한 권한은 다릅니다.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기회라 생각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스스로 권한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의는 멋진 문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권한을 나타내는 단어 'authority'는 글쓰기를 뜻하는 'author'로 시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권한은 원래 조직도(structure)가 아닌 이야기(story)가 부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 담당자는 제도의 설계자 이상으로 제도의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합니다. 조직 문화를 바꾸는 건 제도를 뒷받침하는 스토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