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운명을 개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2년 10월에 발간된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을 큐레이션하였습니다.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인 권구훈은 2012년 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가계의 지출 구조를 미국과 일본의 가계 지출 구조와 비교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엄청나게 높은 한국의 교육비 비중이었다. 한국의 교육비 지출은 가계 지출의 14%로 일본의 6%나 미국의 3%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교육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인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높은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경제의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그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교육 수준에 따라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면,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인적 자본 투자 면에서
타고난 불리함을 극복해야 한다

즉, 남보다 불리한 교육 환경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더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공부는 인생을 개척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계급이 있던 시기에 밑바닥 출신은 능력이 뛰어나도 사회적으로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계급이 사라지면서, 정부나 기업은 이제 사람을 능력에 따라 쓰게 되었다. 특히 경쟁이 심화되고 능력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지면서, 계급이나 성별 그리고 인종에 대한 편견에 근거한 차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에 따라 불평등은 심해졌다. 흔히 사람들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따라 사물이나 현상을 보기 때문에, 계급이 있던 시기보다 계급이 사라지고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능력에 의해서 사람을 평가하고 보상하게 된다고 해서 불평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타고난 능력은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 외모, 운동 능력, 공부나 일에 대한 자세, 부모의 재력, 운.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은 평등하게 타고나지 않는다. 따라서 능력 위주의 사회가 되면 편견에 의한 차별이 없어지는 대신 능력에 따른 불평등은 커진다.

 

그래서 개인의 입장에서는 교육을 통해 후천적인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불평등이 너무 확대되면 설령 사회 전체로 봐서 효율성이 커진다고 해도 사회적 안정이 확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후천적인 능력을 올리는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교육이다.

ⓒTim Mossholder/Unsplash사람들이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이 주는 편익이 큰 반면 좋은 대학에 치러야 하는 비용은 적기 때문이다. 대학의 가격(등록금)을 결정하는 것은 대학의 질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은 학교의 수준과 낮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좋은 학교의 등록금이 특별히 높지는 않다. 하지만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의 질은 교수의 수준, 학교 교육의 인프라, 취업률, 졸업생으로 연결되는 만족도 등을 고려했을 때 명문 대학이 월등히 높다.

 

가격은 거의 비슷한데 서비스의 수준인 가치는 훨씬 높다 보니, 사람들이 명문 대학을 선호하는 걸 막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런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시장의 기능을 왜곡하고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에, 국가로서는 경쟁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소득 수준이 낮으면 사교육을 받기 어렵고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런 주장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공부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의사가 누리고 있는 사회 경제적 지위를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사가 되어서 반드시 의사와 결혼하라는 것이라기보다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의사 대신 다른 좋은 직업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공부(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며, 공부는 다른 방법이 지닌 불확실성에 비해서 무척이나 분명하고 불확실성이 적은 성공 방법이다.

당신의 모습이 자녀의 미래다

사춘기가 지나고 어른이 되기까지 부모와 불화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부모도 많고,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도 있다. 자식 입장에서는 뭘 나누기보다는 강요하고 가르치려고만 드는 부모가 못마땅할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결론이 뻔히 보이는데 자꾸 반대로 가는 자식이 못마땅하고, 기껏 말해줘도 귀를 열지 않는 자식을 인내심을 갖고 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정치적 옳고 그름 따위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맞는다고 생각되면 자식에게 말하고 심지어 강요하게 된다.

 

부모의 이런 방식은 자식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일쑤다. 이를테면, 아무리 다른 일로 돈을 잘 버는 사람도 대개는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전문적인 직업을 갖길 바란다. 진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시장에서 보내는 삶은 당장 돈벌이가 좋다고 해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이나 숙련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지대의 이익은 시장에서 벌이는 끊임없는 경쟁에 지친 사람이 보기엔 퍽 부러운 것이다. 실제의 소득 분포를 보면, 소득 상위 1%에 있는 사람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중은 아주 작다. 미국의 경우 변호사와 의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학자인 스티브 레빗은 <괴짜 경제학>에서 재미있는 주장을 한다. 레빗은 광범위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아이의 학교 성적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골라냈다. 레빗에 의하면 대체로 여덟 가지 요인이 성적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 부모의 교육 수준
  •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
  •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
  • 아이 부모의 영어 사용(미국의 경우)
  • 부모의 학부모회 활동
  • 집에 보유한 책의 양
  •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
  • 아이의 입양 여부

여덟 가지 가운데 다음 여섯 가지는 아이의 성적과 높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가 30살 이상일수록, 아이의 부모가 영어를 쓸수록(미국의 경우), 부모가 PTA(학부모회) 활동을 할수록, 집에 책이 많을수록 성적이 좋았다.

 

다음 두 가지 요인은 높은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가 덜 나갈수록, 입양된 아이일수록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요소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이 온전한 것, 최근에 주변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 엄마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 아이를 직접 기른 것, 부모가 아이를 박물관에 자주 데려간 것,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한 것, 부모가 거의 날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것, 아이가 TV를 많이 보는 것.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렸겠지만,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대부분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고 있고, 영향을 주지 않는 요인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 즉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건강한 부모의 아이는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키우거나 상관없이 학교 성적이 높은 경향이 있다.

 

반면, 아이를 박물관에 데려가든, 아이를 처벌하든, 아이에게 자주 책을 읽어주든, 아이가 TV에 빠져 있든, 이런 것은 자녀의 성적과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레빗이 내놓은 분석의 결론이 냉혹한 이유는 아이에게 부모가 해주는 일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부모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여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 양육 책을 집어 드는 시기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라는 점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버리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누구와 결혼을 했으며, 어떤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만일 당신이 머리가 좋고, 근면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봉급도 많고, 당신만큼이나 운이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면, 당신의 아이들도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지만 당신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 스티븐 레빗, <괴짜 경제학>

레빗의 말이 잔인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이를 생각해 부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데 있다. 즉 부모로서 무엇을 해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레빗의 결론은 단지 성적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MD Duran/UnsplashEBS TV에서 방영한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 엄마는 아이의 낮은 자존감이 걱정되어 도움을 요청한다. 카메라는 엄마와 딸을 밀착 촬영한다. 아이와 엄마가 대화하는 방식, 아이가 엄마를 대하는 방식,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 대화의 디테일을 모두 촬영한 뒤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모니터한다. 아이를 목욕시킨 엄마가 아이의 젖은 머리를 말려주면서 하는 말을 들은 한 심리학자가 말한다.

아이의 낮은 자존감의 이유는 엄마의 자존감이 낮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으면 아이에게 높은 자존감을 심어주는 일은 어렵습니다.

엄마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의 낮은 자존감에 더 민감하다. 그런데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엄마 본인의 자존감을 높이라고 한다. 마치 차를 몰려면 자동차 면허가 필요해서 운전면허 시험장에 갔더니 차를 몰고 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경력이 필요해 인턴십을 찾는 대학생에게 경력이 있어야 뽑아주겠다는 대기업 인사 담당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의 성적뿐 아니라 아이와 관련된 교육과 육아의 많은 부분에 이런 원칙이 적용된다.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것보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자체가 더 중요하다. 그 이유는 부모의 말이 갖는 무게와 아이의 자발성이 깊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무엇이든 자발적으로 자기 주도성을 갖고 사물을 대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대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알아주는 학원의 최고 수준의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해도 억지로 가서 공부하는 학생과 남다른 의지로 혼자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학생의 학습 효율에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으면 아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하지만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다면 아이는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부모 자신도 그러지 못한 것을 왜 자기에게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스스로에 대한 내적인 자극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하도록 설득하는 데는 엄청난 노고와 에너지가 들기 일쑤다.

 

공부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나 어렵게 얻은 교훈을 전달하고 나누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그 깨달음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않고 있다면, 자식이 그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 내적인 동기로 삼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아이를 사랑한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이면에는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한다.

'타이거 맘'이 자식 교육의 정답일까

예일 대학교 법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쓴 <타이거 마더>라는 책이 있다. 추아는 "좋은 학업 성적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서양식 통념을 전면 거부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무시했다. 이와 달리 그는 아이가 학교에서 최고의 학생이 될 수 있고, 아이가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믿었다.

 

에이미 추아와 전혀 다른 양육 철학을 가진 엄마도 있다. 가수 이적을 포함해 세 아들이 모두 서울대에 진학한 여성학자 박혜란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란 책을 낸다. 그는 아이를 부모의 뜻대로 키우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아이는 아이의 뜻대로 자라야 한다. 왜냐하면 "과연 얼마만큼의 부모가 자신의 뜻을 세울 만큼 성숙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고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를 억지로 공부하게 할 순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자발성이라는 가치를 잃게 된다. 자발성이 없으면 투입하는 에너지에 비해서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좀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식이 자기 주도성을 회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도정일과 함께한 <대담>에서 최재천은 유전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에 나오는 이야기. 생화학자 조지 월드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로 윌리엄 쇼클리 정자은행으로부터 정액 샘플을 요청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생산하는 정자를 원한다면 우리 아버지처럼 외국에서 이민 온 가난한 재단사를 만나보시오. 내 정자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아시오? 두 명의 기타리스트요!

부모로서 자녀의 재능을 어떻게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는 늘 논란이 된다. 조지 월드의 아들이 어떤 기타리스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프게니 키신이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같은 클래식 음악가가 되는 것은 대개 15살 이전에 결정 난다. 김연아 같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나 박지성 같은 축구 선수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하는 일에 구체적인 열정을 갖고 자신의 인생에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에 어떤 분야의 일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하기는 몹시 어렵다.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이다.

 

"그러면 뭐 어때. 그냥 좋아하고 즐기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재능과 열정이 살아 있어서 그 일을 인생의 소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절실한 사람으로서는 늦은 나이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자율적으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열심히 할 수는 있겠지만,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그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이런 분야에 재능을 보인다면, 아이의 자기 주도권에 그냥 맡겨두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다른 가능성을 봉쇄하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정명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두 성공해 정경화가 되고 타이거 우즈가 될 수는 없잖아요. 죽어라고 했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삶이 힘들어지죠. 자녀 교육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밀어붙이기만 하면 아이가 압박감을 갖거든요. 특별히 재주 있는 경우라야 견뎌낼 수 있습니다.

 

- 정명훈·황호택, <신년음악회 지휘한 세계적 마에스트로 정명훈> (신동아, 2004.1.29)

아이가 엄마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추아의 교육 방법은 아주 훌륭하다. 아이는 부모의 도움으로 재능을 일찍 발굴하고 시간 낭비 없이 그것을 꽃피움으로써 본인도 만족하는 순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질에 따라서는 아이가 이런 엄마에게 크게 저항한다는 것이다. 어느 아이에게는 부모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느 아이에게는 친구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아이는 순종적이지만, 어느 아이는 반항적이다. 어느 아이는 길게 보지만, 어느 아이는 짧게 본다.

마츠나가 노부후미의 <작은 소리로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법>이란 책은 에이미 추아와 박혜란의 중간 지점에 있다. 그 책을 보면 이런 사례가 나온다.

 

부모가 사준 적이 없는 과자를 아이가 먹고 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니 "친구 엄마가 사줬다"며 어딘가 석연치 않은 대답을 한다. 아이의 말은 사실일 수 있지만, 몰래 사 먹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훔쳤을지도 모른다.

 

이때 '내 아들을 내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어' 하는 생각에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은 아이를 정직하게 키우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마츠나가는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네 눈빛만 봐도 아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하고 추궁하면 될까? 당연히 그것은 더 나쁘다. 아이가 삐뚤어지기 쉽다. '어디 그럼 다음에도 한번 맞춰보시지' 하는 식의 반감을 키운다.

 

이런 문제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아이와의 관계뿐 아니라 회사에서, 친구 사이에서, 부부 사이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부하 직원이 거짓말을 할 때 직장 상사로서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보면, 아이의 거짓말에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할지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부하 직원의 거짓말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의 거짓말에도 잘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많은 육아 관련 책을 읽어도 그런 생활과 육아를 딱 잘라서 별개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활은 사건의 연속이고, 각 사건의 매뉴얼을 다 확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마츠나가는 이럴 때는 사실 확인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랬니? 그러면 친구 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화를 해야겠구나"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숙제가 분명히 있을 텐데 숙제가 없다고 하면 "날마다 숙제를 내주시던 선생님이 웬일로 오늘은 왜 안 내셨을까? 왜 그런지 아니? 모르면 네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라고 슬쩍 말을 꺼내보는 것이 좋다. 진위가 분명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부모는 진위를 반드시 확인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한다.

 

흔히 경제학자는 부모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지, 부모가 무엇을 해주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부모의 현재 모습이 초라하다면, 아이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잔인하게 들리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아이를 자기보다 훌륭하게 키우고 싶으면, 동기 부여에 대해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자발성이 운명을 바꿔놓는다

경제학자들은 부모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지, 부모가 무엇을 해주는지는 자녀의 교육(성적)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틀렸다. 먼저, 부모가 무엇을 해주는지는 자녀의 교육과 그다지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아무것도 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서 우리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진짜 중요한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도 바로 그 단서만 찾아내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자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게 뭘까?

 

그 수수께끼의 핵심은 자발성 같은 인성적 특성이다. "타이거 맘"은 아이가 자발성을 가질 수 있는 단계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엄격하게 아이를 다룬다. 일단 그 단계에 이르면 아이는 성취의 기쁨을 바탕으로 더 큰 성취를 향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그것을 강요하기 어렵다. 기질적으로 그런 방식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성적이 지능의 함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능은 10대만 되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반면, 성적을 올리기 위한 결정적 지식은 계속 습득할 수 있다. 지능이 높은데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계속 습득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아이를 억지로 공부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아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려는 충동과 의지를 갖는 것만 못하다. 학습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계속성과 항상성이기 때문이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게 하기는 힘들다. 아이를 책상 앞에 억지로 열 시간 앉혀놓을 수 있지만, 그것은 아이 스스로 한 시간 공부하는 것만 못하다. 에이미 추아와 오바마의 어머니는 아이를 물가로 데려간 뒤 어쨌든 아이에게 물맛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학력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모를 둔 아이는 억지로 물가에 끌려가지 않아도 물맛이 어떻다는 것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안다. 이런 아이는 스스로 물가로 가서 물을 먹는다.

 

학력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부모는 아이를 억지로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맛이 어떻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데 실패한다. 아이의 저항이 이어지면 끝까지 진짜 물맛을 모르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헤크먼이 주목한 또 다른 요인은
비인지적 특성이었다

비인지적 특성이란 인성적 특성을 말한다. 인내심, 성실성, 성취동기, 자발성, 극기심, 자제력, 집중력, 의지력, 온순함, 올바른 습관 따위와 같이 흔히 사람들이 측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속성이다.

 

헤크먼은 이런 인성적 특성을 "소프트 스킬(Soft Skill)"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런 소프트 스킬이 사회적 성취에 아주 중요하며 사회적 차별을 줄이기 위한 교육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가 실시한 여러 리서치를 보면 높은 임금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인성적 특성이고, 그다음이 학력 평가 점수이며, 가장 상관이 없는 것이 지능이었다.

 

지능 테스트는 오로지 지능만 측정한다. 하지만 학력 평가 시험은 순수한 지능뿐 아니라 지식과 욕구 그리고 동기까지 함께 측정한다. 따라서 지능은 높지만 학습 동기가 약한 학생보다는 지능은 낮아도 학습 동기가 강한 학생의 성적이 더 좋다.

 

흔히 우리는 아이의 지능을 높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이의 지능을 높이려고 하는 행동은 정작 아이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아이에게 좋은 인성적 특성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인내심, 절제, 집중력, 자제력 같은 좋은 인성적 특성을 심어줄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효과가 있을까 없을까? 아이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외우도록 하면 될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