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2년 10월에 발간된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을 큐레이션하였습니다.

결혼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시도는 반감을 살 때가 많다. 하지만 경제학적 분석의 범주는 인간의 경제적 동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상적으로 중요하고 윤리적으로 쟁점이 되는 것일수록 경제학적 분석의 효용은 크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면,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현상의 이해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두 문제는 전혀 별개지만
사람들은 흔히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경제학은 냉혹하다. 제도와 인간을 분석할 때도 그렇다.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경제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결혼 제도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는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세요?"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대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어떤 상대와 결혼하는지에 더 주목한다.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다. 적어도 결혼을 한 시점이라면, 양쪽 모두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커플도 영화 <노팅힐>에서 서로를 비슷한 가치의 인간으로 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결혼에 성공했다면 말이다.

 

그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할리우드 톱스타로 나오고, 휴 그랜트는 작은 여행 서적 전문 서점 주인으로 나온다. 아무튼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많은 대안이 있는데도 바로 그 상대를 골랐다는 것은 그들이 서로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인간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한 뒤에 가치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두 사람의 가치가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 <노팅힐>의 한 장면 ⓒ노팅힐부모의 채근과 독촉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자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사람의 지나친 괴리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약간의 행운이 뒤따르면, 지금 만날 수 있는 사람보다 훨씬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상대의 수준은 꾸준히 내려간다.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생물학적 장점을 다른 사회적 요인으로 벌충하지 않으면, 인간의 총체적 매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면, 그 가치를 갖고 어느 정도의 상대를 만날 수 있는지 또는 자신이 어떤 상대를 선호하는지 모르겠다면, 이런 것을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흔히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게 된다. 돈이든 지위든 외모든 지적 능력이든, 그것이 판명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많은 이성을 접할수록 자기가 만날 수 있는, 자기가 결혼할 수 있는 상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빨리 깨달을 수 있다.

왜 첫사랑은 잊어야 할까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성공적이라면 그것은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비로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은 서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정릉 태생이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빠의 부재, 순대 국밥을 파는 엄마, 가짜 게스 티셔츠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모르고 살던 것의 의미에 민감해지는 이유는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건축학개론사랑에 빠지는 순간 승민은 그 대상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상대가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달갑지 않은 것이지만, 승민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승민은 정릉보다 강남 반지하방을 더 좋아하고, 잘생긴 강남 오빠 때문에 건축과 수업에 들어오는 서연을 이미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아름답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흔히 전력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첫사랑의 감정을 아름답게 느끼는 쪽은 대개 사랑의 관계에서 열위에 놓인 쪽이다. 첫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다면, 자신의 삶을 더 비루하게 만들면 된다. 첫사랑이 인생 최고의 상대였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첫사랑의 여운이 깊지 않은 사람은 그 뒤에 찾아온 사랑과 인생이 대체로 만족스러웠을 가능성이 높다.

 

15년 만에 서연을 만난 승민은 "왜 날 찾아온 거야?"라고 묻는다. "궁금했어. 지금은 어떤지"라고 서연은 말한다. 승민과 헤어진 이후의 사랑은 서연에게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름다운 사랑과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이 이어졌다면, 서연은 승민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이혼 이후의 삶에 어떤 기대 같은 게 있었다면 서연은 승민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승민이 만들어준 모형으로 된 집을 15년 동안 간직했다고 하더라도 추억은 추억일 뿐, 서연은 굳이 승민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서연의 삶은 결혼으로 정점을 찍고, 이혼으로 가속이 붙어 내려오는 중이었다. 서연이 승민을 찾아온 이유는 승민이 서연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려고 다짐하던 15년 전과 비슷하다.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던 승민처럼, 서연으로서는 승민을 다시 만난 뒤의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첫사랑이었다는 서연의 고백은 그것이 인생에서 최고의 사랑이었다는 고백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회고전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연의 고백 뒤에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고, 정황으로 보아 그 이상의 일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승민의 삶에는 변화가 없다.

 

15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서연을 본 승민은 마치 다시 만날 그날을 연습한 것처럼 누구냐고 묻는다. 아마도 승민은 서연을 다시 만나는 순간을 대비해 머릿속으로 숱한 연습을 했을 것이다. 승민에게 서연은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승민은 자신이 누군지 잘 몰랐고, 상대가 누군지는 더욱 몰랐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풋풋하고 아름다우며 세속의 때가 덜 묻었지만, 가슴 아픈 시절이다. 상처는 아물고 분홍빛 새살이 돋아나지만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승민에게는 젊고 아름다우며 뉴욕에서 좀 더 넓은 아파트를 구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을 둔 약혼녀가 있다. 비록 15년 만에 확인한 사랑이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약혼녀를 버리고 이혼녀가 되어 나타난 15년 전 첫사랑에게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승민은 이미 15년 전에도 자신을 찾아온 서연을 외면한 바 있고,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운 엄마를 놔두고 뉴욕으로 떠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이고, 대개의 인간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일관된 경향이 있다.

 

사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특히 젊은 시절의 사랑이 그렇다. 어떤 사람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기 위해서 시간을 소모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시작한 뒤 그 대상이 정말 자기에게 맞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시간을 소모한다. 둘 다 정작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게 만든다.

 

결혼은 사랑이 시간과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특정한 시기에 결혼을 하려는 추세가 있는 한, 섣부른 사랑의 시작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는 길로 이어지기 쉽다. 섣부른 사랑을 끝내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하려고 하면 그때는 이미 괜찮아 보이는 많은 상대가 결혼을 해버린 뒤이기 때문이다.

 

띠동갑 정도로 나이 차가 크게 나는 여성과 결혼하는 남자나 연상과 결혼하는 관습과 달리 연하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이런 추세에 저항하는 셈이지만, 역시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 그래서 영리한 사람들은 적령기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사랑 대신 가벼운 사랑으로 시간을 소비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사랑을 그리워한다. 승민과 서연의 모습에서 뭘 잘 모르는 아이들의 과장된 감정이 느껴지지만, 그런 과장된 감정이 가능한 이유는 세속의 때가 덜 묻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은 사람의 수보다 많다. 사람들은 흔히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사람은 변덕스러운 사랑을 하기 때문에 세상에 드러나는 사랑의 모습은 사람의 수보다 많다. 사랑의 모습은 여러 가지이지만,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마찬가지다. 되도록 훌륭한 상대와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마다 그런 마음이 있는 한, 특별히 자기만 이익을 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취향이 특이한 사람도 더러 있지만 인간의 선호라는 것은 아무래도 보편성을 띠게 마련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런 경향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킹카나 퀸카의 삶도 팍팍하고 힘들다. 그들 역시 비슷한 킹카나 퀸카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승민의 눈에는 모자란 것이 없어 보이던 서연의 삶이 팍팍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상대의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내게 유리한 결혼이다

결혼을 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언제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하는 것은 비교적 개인의 취향과 선호가 크게 작용하는 문제다. 사랑의 무게는 그래서 사람마다 무겁고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다만, 언제 결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쾌한 답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대로 자신의 가치가 최고일 때다. 자신의 가치가 최고일 때 최고의 상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가 최고의 상태인지는 일반적인 기준과 개인적인 기준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대학 졸업 뒤 직장을 잡고 난 몇 년 동안이 개인의 가치가 가장 높은 시기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대학을 보면 알 수 있다면, 대학 입학 뒤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어떤 직업과 직장을 택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본인이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스스로 원하는 직업을 가질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어느 시점이 지나면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가질 가능성이 점점 낮아진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선택의 여지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함량이 모자라는 사람을 자꾸 만나보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깨닫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지 사랑과 결혼의 상대뿐 아니라, 오래 교유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나 동료를 사귈 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성 관계란 결국 자기가 결정권을 가진 경우와 상대가 결정권을 가진 경우로 나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개 결정권을 가진 쪽이 강자이며, 한번 설정된 권력관계는 여간해서 잘 바뀌지 않는다. 누구를 소개받으러 나갔는데 상대가 우위에 서는 상황이 벌어지면 당혹스럽고 기분이 나빠지기 쉽다. 특히 자신의 객관적인 전력이 나쁘지 않다고 믿고 자존심이 강하며 자기에 대한 평가가 낙관적인 사람일수록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설령 받아들인다고 해도 상처로 남기 일쑤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누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그 사람이 맘에 들지 않아 자기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우야말로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 만남은 어떤 계기도 되지 못하고 어떤 의미 있는 정보도 자기에게 주지 않는다.

 

서로 상대가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이라 여겨 호감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 즉 자기는 호감이 가는데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제법 유익한 시간이다. 자기 한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객관적인 한계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일이고, 전혀 엉뚱한 상대에게 차이는 상황도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과 취향 그리고 자기의 디테일한 약점을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조금이라도 발전할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상대를 차는 소개팅은 시간 낭비에 가까운 나쁜 소개팅이고, 자기가 차이는 소개팅은 자신의 한계치를 알려주는 좋은 소개팅이다.

 

따라서 상대편 부모의 반대를 이해하기 어려울수록 그 반대하는 이유에 상처 받고 기분 나빠하기보다 자기의 다른 장점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은 태도다. 물론 상대 부모의 반대가 비합리적으로 심해서 몰상식해 보이면, 굳이 상황을 개선하려 애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달려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일단 자식이 고른 짝을 다양한 방식으로 검증하려는 경향이 있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크고 투자가 많은 부모일수록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양가 어른의 허락까지 받아놓고 준비 과정에서 결혼이 깨지는 일도 적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는 드문 풍경이지만, 이런 상황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저마다 머리 굴려서 생각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실제와 너무 차이가 날 때, 이해관계의 격차를 조율하는 방식이 자신들의 사고방식이나 예의범절에 크게 벗어날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이를 때 결혼은 깨진다.

 

그런 과정에서 상대의 모습과 태도에 실망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상대의 모습 또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진짜 모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온한 일상이 아닌 그런 비상 상황에서 나온 모습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솔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편이 경제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는 이쪽에 달려 있다. 그 결정이 바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받아들이되,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예의를 갖춰 거절하면 된다. 이쪽이 예의를 갖춰 거절했는데 저쪽에서 막무가내로 나오면 나쁜 시그널이다. 그런 일을 겪게 되면 결혼은 깨지기 쉽다. 이런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불필요하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혼 전에 상대의 진짜 모습과 가치를 알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왜 로또에 당첨된 부부가 갈라서는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혼에 관한 법률은 파탄주의다. 즉 이혼을 원할 때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의 과실을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것으로 이혼이 성립한다. 물론 이런 나라에서도 처음부터 파탄주의를 채택한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말부터 이른바 '과실 없는 이혼(no fault divorce)'이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혼을 원할 때 어느 한쪽의 과실이 입증되어야 하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혼을 하고 싶으면 배우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귀책사유가 없으면 법원은 기본적으로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나쁜 관계라고 해도, 법원은 일단 결혼을 "나쁜 관계"를 이유로 "해소"하는 데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한다.

 

이런 구조에서 이혼은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상대의 잘못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지위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월하던 시기에 유책주의는 결혼 생활에서 여성 쪽을 보호하는 구실을 했다. 과실 없는 부인을 남편이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거기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재혼 가능성이 거의 막혀 있고 취업조차 어렵던 지난날의 현실을 감안하면, 유책주의는 여성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 부분이 여성에게 한결 유리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추세는 이혼이란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비록 인식하기는 어려워도 결혼이란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경제학자들은 이혼의 정서적 영향보다 경제적 영향에 더 주목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혼은 자식의 경제적 후생을 감소시킨다. 미국 사회의 경우, 이혼 가정 자식의 고등학교 중퇴율은 일반 가정 자식의 그것보다 두 배 정도 높고, 대학 진학률은 훨씬 떨어진다. 국가가 이혼에 대해서 보이는 완강한 태도는 가족 시스템의 보호라는 측면보다는 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후생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점차 가족 구성원의 문제에서 손을 떼고 있고, 이런 경향이 잦아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004_stevepb ⓒPixabay필리핀처럼 이혼이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이혼이라는 옵션을 갖게 된다. 이 옵션의 가치는 몇 가지 요건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자식을 낳으면 이혼 비용이 급격히 커져서 이혼이라는 옵션의 가치는 큰 폭으로 하락한다. 이렇게 되면 이혼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와 달리, 배우자의 가치가 결혼 전보다 지나치게 떨어지면 옵션의 가치는 폭등하게 되고 이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자식을 많이 낳아서 성공적으로 키울수록 이혼 비용이 커지는 반면, 배우자에 비해서 자기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면 배우자의 옵션 가치가 크게 올라 이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결혼할 때 균형 상태에 있던 배우자가 갑작스러운 성공을 거둘 것 같을 때는 상대 또한 노력해서 배우자의 발전과 성공을 따라가지 않으면 이혼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실패와 몰락 또한 상대의 옵션 가치를 크게 하기 때문에 이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혼 가능성을 낮추는 현실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결혼을 너무 일찍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결혼한 커플의 이혼율은 50%에 이른다. 미국의 지역별 이혼율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남부는 복음주의 기독교 성향이 강하고 이혼에 대해서 아주 엄격하며 가족 중심의 보수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반면, 동부는 남부에 비해 자유주의적인 종교 분위기가 강하고 이념 측면에서 진보적이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혼율은 남부가 동부보다 훨씬 높다.*

* 2017년 통계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남부 사람들의 위선 때문이 아니라, 남부에서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즉 종교적인 신념보다는 일찍 결혼하는 남부 사람들의 관습이 이혼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일찍 결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가 정해지기 전에 결혼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한 뒤의 가치 변동은 이혼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혼은 남녀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 살피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현상이 큰 부자와 아주 가난한 남자들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된다. 부자는 재혼 비용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 것이고, 양육비를 부담할 능력이 아예 없는 가난한 사람은 이혼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