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만 알아보면 돼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빅 쇼트>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마크 바움은 모기지 공매도를 검토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두 가지만 알아보면 돼. 주택 시장에 거품이 있나? 만약 있다면 은행은 얼마나 노출돼 있나?

답을 얻기 위해 마이애미로 날아간 그는 대출이 연체되어 비어버린 집의 숫자를 세고, 소득이 없어도 승인이 나는 대출이 넉 달 전에 비해 네 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집값의 95%를 변동금리로 대출받아 다섯 채의 집을 구입한 스트리퍼를 만난 뒤 주택 시장의 거품을 확신한다.

영화 <빅 쇼트>에서 마크 바움은 거품 낀 주택 시장에 의문을 품는다. ⓒThe Big Short마크 바움이라면 '서울 집값은 오를까? 삼성전자를 살까, 셀트리온을 살까? 내년 연봉은 얼마일까?' 등 보통 사람이 자주 떠올릴 질문은 던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크 바움이 던진 두 가지 질문이야말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질문에 가깝다. 좋은 질문은 결과를 바꿀 수 있고, 경제학은 이런 질문을 던질 프레임을 제공한다.

경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큰 실익은 여느 사람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통념 중에서 지혜를 골라내고 상식 중에서 오해를 걷어내는 작업을 하는 데 경제학만큼 힘이 센 것은 거의 없다.

 

-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쥐와 비둘기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대학교 1학년 때 심리학 입문 수업을 들었다. A+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한 학기 동안 (조금 더 관심이 있었던) 여대생의 심리보다는 범죄자의 자기방어 기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한 학기로 부족한 것인가?'란 의문은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으신 교수님 덕분에 해소되었다.

 

교수님은 나처럼 인간에 대한 궁금증으로 심리학과에 입학했지만, 4년 동안 쥐와 비둘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경제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인간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왜 심리학이 아닌 경제학일까?

에릭 호퍼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에게 거짓말할 때 가장 큰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를 응원하다가도 토토에서는 벨기에나 프랑스에 돈을 걸고, 잘생긴 남자는 싫다던 이나영이 원빈과 결혼하는 현상을 심리학은 설명할 수 없다. 적은 돈보다 많은 돈을 내는 결정에, 여러 번 할 수 있는 결정보다는 살면서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결정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은 심리학이 아닌 경제학이다.

경제학적 관점에 익숙해지면 '어떤 사랑을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 대신 '이런 사랑을 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말'보다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느냐 하는 '행위'가 더 그 사람을 잘 설명해준다고 믿는 것이다.

 

-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라면을 먹고 게임을 하면서도 내 인생에 만족할 수 있는가?

경제학이 거창한 경제지표를 다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지표는 개인이 내린 중요한 결정들의 합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개인의 선택에도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된다.

 

2014년, 나는 5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닐지,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이룬 것은 없었고 미래는 불확실했다. 우수에 젖은 인간이 그렇듯 방황 끝에 혼자 사진전을 갔고, 필립 할스만 도록에 실린 김동조의 글을 만났다.

윈스턴 처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은 "무슨 일이 있어서도 꿈꾸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꿈꾸지 않으면서 지루한 시간과 내 마음속 의심을 맞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OpenClipart-Vectors/Pixabay

처칠은 우울증 환자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그는 평생 우울증과 싸웠다. 타고난 재능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명문 '이튼 스쿨'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고, 사관학교도 3수 끝에 간신히 입학했다. 마하트마 간디를 증오하고 쿠르드족 학살에 관여한 인종주의자였으며, 필요에 따라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제국주의자였다.

 

완벽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는 히틀러로부터 유럽을 구한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투자자가 되기 위해 증권회사에서 당차게 퇴사했다. 하지만 근 6개월 동안 '있는 돈을 다 잃으면 어떻게 하지?'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시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런 내 엉덩이를 걷어찬 것이 김동조였다.

 

모순에 찬 존재도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나를 정제하면 나 자신의 단순 합보다 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 물음은 '내 인생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로 이어졌다. '내 진짜 자원은 돈이 아니라 내 인생'이라는 생각 덕분에 투자를 시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운다. 누군가는 세상을 상대로 게임을 한다. 누군가는 라면을 먹으며 배고픔을 해소하지만, 누군가는 스테이크를 먹고 와인을 마신다. 어떤 삶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하는 인생이면 상관없다. 하지만 라면을 먹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면서도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역설적으로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 김동조,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면과 게임으로 점철된 삶을 살기에 내 인생은 너무 소중했다. 내가 매긴 내 인생의 가치는 그보다 컸고, 나는 행동으로 내 인생에 대답했다. 시장을 분석해 배팅하고, 새벽에 일어나 CNN을 보고 다시 잠이 드는 나날이 이어졌다. 내 머릿속의 생각을 시장에서 증명하고, 투자에 관한 글을 썼다. 모두 나 자신의 합보다 나은 결과였다.

조금 위안이 되는가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은 야망 가득한 소년 같은 매력이 있다. 말로는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다'면서 호기를 부리지만, 한편으로는 생각이 아집으로 묻히지 않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검증한다. 그리고 꼭 검증한 티를 낸다. 또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모험을 떠나 어디까지 편견을 펼칠 수 있는지 가늠한 뒤 '이 정도는 돼야 편견이라 할 수 있지'라며 웃는다.

 

김동조의 2015년 작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비교할 때 2012년 작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은 거칠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이혼에 대해서 후자는 "왜 로또에 당첨된 부부가 갈라서는가?"라고 묻고 파탄주의와 유책주의 등 어려운 말을 삼키게 하지만, 전자는 "연애는 사랑이지만 결혼은 성장이고, 성장의 속도가 달라지면 행복은 깨진다. 그래서 결혼하는 순간 행복의 조건은 사랑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관리하는 데서 완성된다"라고 우아하게 찻잔을 건넨다.ⓒ북돋움/김영사두 책이 발간된 해인 2012년의 김동조와 2015년의 김동조는 2012년의 스테픈 커리와 2015년의 커리만큼 차이가 난다. 2012년의 커리는 국내 뉴스에 기사 하나 없을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지만, 불과 3년 뒤인 2015년의 커리는 NBA 정규리그 MVP가 된다. 소년 같던 김동조 역시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엄청난 성장을 보여준다.

 

인생의 좋은 것과 높은 투자 수익률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 같은 데서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정말 좋은 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현명한 결정과 그 뒤에 따라오는 밀도 높은 고통 속에서도 그 결정을 믿고 나아가는 의지가 필요하다. 김동조는 3년 동안 묵묵히 그 일을 해냈다. 김동조의 성장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밀도 높은 경험과 도전에 찬사를 보낸다.

김대중은 자서전의 마지막 장에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라고 적었다. 후회는 없었다.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대중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철 같은 의지와 필요한 기술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불행도 자기의 승리로 탈바꿈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보다 더 여러 번 두려움을 느꼈지만, 담대함의 가면을 쓰고 두려움을 감췄습니다."

 

조금 위안이 되는가. 그들도 결코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 김동조,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조금 위안이 되는가. 김동조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동조는 꿈꾸는 사람이었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 큐레이터, 황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