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지붕에서 지구 최남단까지: 농심의 전략

Editor's Comment
- 이번 챕터는 농심 관련 기사를 큐레이션 했습니다.

1965년 라면 사업에 뛰어든 농심이, 1971년 소고기라면을 미국에 처음 수출한 지 46년 만에 해외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남다르다. 현재 농심 라면은 전 세계에서 하루 판매량이 300만 개에 달하며, 최근 30년 사이 수출액이 60배 증가했다.

 

이런 성공을 이룬 데에는 특히 1986년 출시한 '신라면 매운맛'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월마트의 모든 매장에 신라면이 입성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로 평가된다. 미국 식품 유통의 20%를 차지하는 월마트가 미국 전역에서 파는 식품은 코카콜라, 네슬레, 켈로그뿐이었다. 최근 5년 동안 미국에서 매년 평균 30% 이상 판매 성장률을 보인 신라면도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인의 라면에서 세계인의 라면으로 성장한 농심 신라면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비결 1: '한국의 맛' 고수한 고집과 뚝심

1987년 1월 서울 용산구 서계동 농심빌딩의 임원회의실. 신춘호 당시 농심그룹 사장(현재 회장)은 임원들과 며칠 동안 회의를 연 끝에 한국 제품을 그대로 수출하기로 결정한다. 단순히 맛뿐 아니라 제품 규격, 포장 디자인까지 똑같이 하기로 했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방식대로 가자. 한국의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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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시한 신라면이 석 달 만에 3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도 경영진의 자신감을 북돋웠다. 본격적인 수출은 그해 4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부터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교포가 많은 로스앤젤레스 등으로도 시장을 넓혔다.

 

그러나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신라면을 처음 맛본 일본 사람들은 "맛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라면은 면만 팔팔 끓인 다음 그릇에 담고 수프를 넣어서 섞어 먹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신라면도 그렇게 조리해 먹은 것이다. 1994년 중국에 진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도 면과 수프를 같이 끓여 먹는 라면은 거의 없었고, 뜨거운 물을 면에 부어 먹는 라면이 주류였다. 일부 중국인은 "끓여 먹는 것은 라면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농심 내부에서조차 "맛을 현지화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매운 것을 못 먹는다"며 전략 수정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맛은 한국 맛으로, 마케팅은 현지에 맞게. 이것이 신 회장의 해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