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이 성공하기 위한 6가지 조건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도시재생과 골목상권 재생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 지역은 대부분 골목길로 이루어진 구도심 지역이다. 낙후 도심을 살리는 도시재생 사업에서 골목상권 재생은 핵심 사업이다. 상권 활력 없는 도시재생은 불가능하다.

매력적인 가게가 많은 서울 서촌의 골목길 ⓒ다산북스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생산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성공 조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골목길 경제학에서 검토한 국내외 사례를 종합하면, '씨-레디(C-READI)'로 정리된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씨-레디' 개념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6가지 성공 조건의 실태를 평가한 후 부족한 부분에 자원을 투입해 골목상권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효율적인 정책으로 6가지 영역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 골목길의 문화자산을 확충하고,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골목 창업을 지원하여 필요 인력을 훈련·육성하고, 골목길 연결성과 대중교통 접근성을 개선하며, 골목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다.

 

'씨-레디' 모델은 단순하지만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기존 연구가 문화자원·임대료·거리 디자인·접근성을 강조한다면, 이 모델은 기업가 정신·정체성 등 새로운 성공 요인을 제시한다. 영역별 성공 가능성은 다르다.

 

저층 건물, 걷기에 편한 거리, 주거지·상업시설 공존 등의 복합적 공간 디자인, 편리한 대중교통 구축을 통한 접근성 개선은 정부가 비교적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지역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관과 공방 유치, 적정 임대료의 유지, 개성 있는 가게를 창업해 골목문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 고양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일궈내기 힘들다. 주민·상인·예술가·청년창업가 등 골목길 주체들의 협력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국내외 성공 사례는 골목상권 지속 성장의 핵심이 골목문화 유지와 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에 있음을 보여준다.

씨-레디(C-READI) 모델 ⓒ다산북스성공적으로 성장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창업자(E)가 접근성(A)이 좋고 골목 자원(D)과 문화 자원(C)이 풍부하지만 임대료(R)가 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하고, 이를 본 다른 창업자가 주변에서 새로 가게를 열어 지역만의 정체성(I)이 뚜렷한 하나의 상권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역으로 이 6가지 기준을 만족하는 골목길은 성공적인 골목상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6가지 기준을 'C·R·E'와 'A·D·I'로 구분하면, 각각 골목상권의 1단계·2단계 성공 조건에 해당한다. 1단계 골목상권의 출발은 문화 자원(C)이 풍부하고 임대료(R)가 저렴한 지역에 진입한 기업가(E)의 역량에 달렸다. 2단계에 접어들어서는 접근성(A)과 골목 자원(D)을 개선하면서 공동체 정체성(I)을 유지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여섯 개 조건의 영어 이니셜(C-READI, Culture-Rent-Entrepreneurship-Access-Design-Identity)을 모아 발음하면, '문화가 준비되어야 한다(Culture-Ready)'는 뜻이 된다. 모든 조건들 중에서 문화자원과 문화 정체성이 골목상권의 핵심 경쟁력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C: 골목의 색깔을 만드는 문화예술 인프라

골목문화(C)는 문화예술인, 공방 공예인, 소상공인이 창출하는 도시문화와 주민 생활문화의 복합체다. 다양한 문화예술 인프라 중 골목문화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원은 예술가다. 정부는 미술관, 공연시설, 예술가 창작 시설 등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함으로써 미술가·디자이너·작가·음악가·건축가 등 문화 생산자들을 집적시킬 수 있다.

 

홍대·가로수길·삼청동 등 서울의 1세대 골목길도 문화예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많이 알려졌듯이 홍대 골목상권의 문화기반은 화랑, 미술학원, 예술가 작업실, 인디뮤직 산업이었다. 가로수길도 2000년대 중반 골목상권으로 부상하기 전에는 갤러리, 화방, 건축사무소가 모인 문화 거리였다. 삼청동은 2000년대 중반 서울의 대표적 문화 소비 공간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전에는 갤러리가 중심이 된 조용한 화랑 거리였다.

 

새로운 문화예술 시설 건설이 문화 인프라를 공고히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나 폐쇄된 공장과 학교 등 골목 역사문화 유산을 활용, 예술가가 기술과 재능을 발휘해 골목 정체성에 어울리는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골목문화 형성에 기여한 건물과 공간을 문화재로 지정해 개성 있는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예공방, 독립 가게 등 상업시설도 중요한 문화 인프라다. 골목문화 정체성을 접목시킨 공방·갤러리·편집숍·북카페 등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상업시설이 골목에 자리 잡는다면, 특정 골목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들을 유인할 수 있다.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도 특색 있는 골목문화를 창출한다. 양양 죽도해변 서퍼, 홍대 독립 가게 사업자와 출판산업 종사자, 성수동 소셜벤처 사업가 등은 모두 독특한 골목문화를 창출하는 생활문화 공동체다.

 

R: 임대료 안정에 기여하는 공공재 투자

골목상권 활성화 전략은 곧 임대료(R)와 연결된다. 다양하고 독특한 골목문화를 지탱하는 골목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골목상권으로 불리는 도쿄의 기치죠지(Kichijoji)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상생하는 일본 특유의 마을문화가 임대료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공동체문화가 일본만큼 강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정부가 공동체 강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골목 경제 육성이라는 공통된 비전을 가지고 임대인과 임차인 간 파트너십이 발휘될 수 있도록 중재적 역할을 해야 한다.

 

모범적인 공동체 투자 모델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들 수 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골목상권 임대료 안정을 위해 건물주·임차인·지자체 상생협약, 소상공인을 위한 앵커 시설 대여, 장기 안심상가 운영, 소상공인 상가 매입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 골목길 창업의 유도와 지원

골목문화 인프라 구축 및 임대료 안정화 정책에 이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창업자(E) 지원이다. 매력적인 가게를 창업해 골목 선구자가 되겠다는 개척자 정신을 가진 혁신가들이 골목에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 서울의 1세대 골목상권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지역에서 첫 가게를 연 창업가에 의해 발전했다. 연희동 사러가쇼핑센터가 보여주듯, 이들 첫 가게 중 상당수는 골목상권이 성숙한 후에도 유동인구를 유발하고 지역 거점 상점으로서 골목 발전을 위한 공공재를 제공한다.

 

가게를 운영하며 고도의 전문기술과 경험을 쌓아 골목 장인으로 성장하는 이들은 곧 골목문화 계승자이기도 하다. 장인으로부터 훈련받는 차세대 장인들은 고유의 영역을 개척해 골목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골목 정체성이 결합된 창의적인 아이템으로 창업을 주도하고, 장인 정신을 토대로 전문성을 길러 다양한 골목 장인을 배출하는 골목 장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 창업자들의 유입과 정주 여건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골목길 창업자를 전통적인 소상공인 창업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창업지원센터와 코워킹 스페이스를 지원해 도시재생 스타트업, 기술 기반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문화기획자 등 골목길에 다양한 유형의 창업자를 유치해야 한다. 홍대 및 합정지역 예술가와 창업가·소상공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혁신 창업을 지원하는 홍합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업시설이 열악한 지역은 시 정부가 건물 재생을 통해 직접 상업시설을 유치한 광주 쿡폴리 사업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 관련 기사: 도심재생 예술 프로젝트 '광주 폴리' 주목 (연합뉴스, 2017.9.13)

 

골목상권을 직접 기획하는 기업도 골목길 창업문화에 크게 기여한다. 제주 원도심의 아라리오뮤지엄, 대전 원도심의 성심당은 기업이 주도해 지역 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상업시설과 공공시설에 투자한 사례다.

 

A: 내외부 접근성의 제고

골목상권 발전에는 접근성(A)을 빼놓을 수 없다. 버스·트램·지하철·기차 등 다양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리하게 골목을 찾을 수 있도록 교통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골목 어귀 대로변에서 대중교통 수단의 환승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많은 사람이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 골목상권이었던 이대 후문 지역의 쇠락에서 볼 수 있듯 접근성 제약은 골목상권 발전에 치명적이다.

 

외적인 접근성 향상과 함께 중요한 것은 골목 내적인 거리 구조다. 걸어 다니기에 쾌적한 거리, 자전거 전용 도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탐방할 수 있는 작은 골목길 등 내부적으로 편의성을 제공하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거리 공간 디자인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한 '서울로 7017'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기능도 서울역 인근의 내부 연결 기능이다. 서울로 구축으로 기찻길과 대로로 단절됐던 서울역 인근이 통합된 상권으로 거듭났다. 일본 도야마 시처럼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도심을 순환하는 트램과 편리하게 환승될 수 있도록 교통체계를 정비하는 것도 내부 접근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다.

 

D: 골목 자원의 보호와 확장

골목 접근성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공간 디자인(D)은 골목 자원 보호와 홍보에 중요한 요소다. 골목 정체성을 표지판·간판·조경 등을 통해 형상화하고 조화로운 건물 양식이나 색깔 등 디자인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복합적 용도의 골목 건물들과 친환경적 골목 풍경을 완성한다면, 골목마다 다양성과 개성이 넘쳐날 것이다. 정부는 특히 대중교통체계 및 문화 인프라 구축, 거리 디자인 등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골목 주체들과 정부 간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시너지를 내도록 힘써야 한다.

 

중국 상하이와 전주 한옥마을 사례가 보여주듯이 정부 주도의 골목 지역 확장도 상권을 활성화시킨다. 골목 자원이 부족한 지역은 경쟁적인 상권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근 골목 지역과의 연결성을 확대하거나 신규 골목 지역 건설을 통해 골목 자원을 확장하면, 상업시설과 거주민 유치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

 

전주 한옥, 에든버러 고딕 건축 등은 특정 건축 양식이 차별적인 골목문화를 창출한 사례다. 동일한 건축양식으로 건설된 지역은 대규모 문화 인프라 투자 없이도 쉽게 문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한국 도시도 전통가옥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 건축된 건물이 집적된 지역을 문화지역으로 인식해 건축물을 도시문화 자원으로 보존해야 한다.

 

I: 공공재 투자지원과 골목 공동체 강화

'씨-레디'의 마지막 핵심인 정체성(I)은 골목 정책의 구심점이다. 정체성은 골목문화와 전통이 내재되어 골목 유·무형 자원을 통해 드러나는 고유의 분위기와 가치를 의미한다. 문화예술산업 종사자, 주민, 창업자, 장인, 투자자, 골목 시민단체 등은 골목만이 가진 특유의 가치가 있는 정체성을 발굴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주체들이다. 골목문화와 경제의 지속 발전이라는 공통의 비전을 가지고 공동체를 구축해 함께 번영하는 골목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 후손들의 공동체 정신으로 지켜지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 골목길 ⓒ다산북스골목문화를 토대로 경쟁력 있는 상권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이들의 골목 라이프스타일 생활화가 중요하다. 미국 버클리의 보헤미안, 양양 죽도해변의 서퍼, 홍대의 인디뮤지션과 독립 가게 등이 골목문화를 추구하며 결속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공동체로 꼽힌다. 안동 하회마을과 선비길이 한국 유교문화의 상징으로 보전되는 것 역시 안동 사대부 정신을 이어가려는 지역 후손들의 공동체 정신 덕분이다.

 

골목 정체성이 담긴 상품과 서비스의 꾸준한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혁신적인 골목 장인들이 성장할 수 있다. 골목 정체성 기반 커뮤니티가 골목문화의 자생적인 생산과 소비를 지탱할 수 있도록 정체성 발굴 사업, 골목 사업가 모임 지원, 청년창업자와 예술가 지원 사업 등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씨-레디(C-READI) 모델과 국내외 사례 ⓒ다산북스'씨-레디' 모델에 의한 골목길 정책은 건축·디자인·문화기획·경제학·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 지식이 접목되는 대표적인 융복합 정책이다. 정부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전국 곳곳에 6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골목상권, 즉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골목상권 모델인 장인 공동체가 등장할 것이다.

 

사회의 관심과 더불어 시장 환경도 '씨-레디' 모델의 확산에 우호적이다. 골목상권과 비골목상권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골목상권 주체들도 공동체(골목상권 전체) 경쟁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공공재와 골목 가치 투자를 유발하는 공동체 인식의 확산이 궁극적으로 골목상권의 지속 가능 발전에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잊지 말자.

단기 상권 조성에서 장기 산업 육성으로

'씨-레디' 모델은 골목상권 조성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초적인 분석 틀이다. 정부가 이 모델의 전 영역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으나, 특정 지역의 골목상권을 지원하는 사업은 항상 정부 실패 리스크가 따른다. 미래 성장산업의 선정과 마찬가지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골목 지역을 선택하는 것은 정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울의 골목상권 역사를 보면, '씨-레디' 모델이 제시하는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지나친 자신감은 금물임을 알 수 있다. 골목상권 조성은 다른 도시재생 사업과 마찬가지로 오랜 준비와 정교한 설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골목상권 전반의 시장 환경을 개선해 장기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은 골목 장인 육성, 그리고 골목산업과 관광산업의 연계다.

 

홍대·삼청동·가로수길·이태원 등 1세대 골목상권은 정부의 조성 노력이 아닌, 자생적인 '씨-레디' 환경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정부 개입은 이들 상권이 이미 뜬 후 실시한 문화사업 지원, 가로경관 지원 등에 한정됐다. 정부가 초기부터 문화지역으로 지정해 적극적으로 지원한 대학로·인사동은 1세대 골목상권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정부 개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삼청동·압구정동 로데오거리·전주 한옥마을에서 급격히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독립 가게가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별 소득이 없었다. 이제까지 축적된 경험과 향후 법 개정을 통해 필요한 정책 수단이 확보되면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으나,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 규제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저지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정부가 임의로 조성한 골목상권을 살펴봐도 정부 개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00년 중반 서울에서 골목상권이 새로운 상권으로 주목받고 예상치 못한 지역 활력 효과를 유발하자, 전국의 지역 정부들이 경쟁적으로 골목상권 조성에 나섰다.

 

언론은 대구 근대문화거리와 김광석거리, 광주 송정역 등을 성공한 골목상권 조성 사업으로 자주 소개한다. 이들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서울 신촌도 대대적인 도시재생(경제활성화 분야) 사업으로 도시 경관과 유동인구가 크게 변한 지역이다.

1세대 골목상권과의 경쟁에 밀린 인사동 ⓒShutterstock

그러나 정부가 기획한 골목상권은 아직 1세대 골목상권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2017년 맛집 가이드 블루리본이 선정한 서울의 맛집 상권(맛집 수)은 홍대앞(121), 이태원(102), 연남동·연희동(65), 청담동(58), 여의도(49), 정동·시청·소공동(48), 가로수길(47), 압구정동(43), 삼청동·안국동(40), 광화문(34) 순이다. 반면에 정부의 재생산업이 진행된 신촌·이대 앞(18), 을지로·충무로(25)의 맛집 수는 상위권에 접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

 

물론 상권 활성화 사업을 맛집 수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접근성·쾌적성·문화 자원 등 전반적인 상권의 질을 평가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상권 재생을 위해서는 개성 있으면서도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시설의 질이 중요하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상권 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운 이유는 도시재생 사업 구조에 있다. 골목상권 문화를 창출하는 상인을 지원하기보다는 거리 조성, 가로수 정비, 공공공간 조성, 문화 시설과 행사 유치 등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도 토목·건축·디자인·문화기획 분야가 주종을 이룬다.

 

도시재생 사업을 '씨-레디' 기준으로 평가하면, 정부가 집중한 분야는 문화자원(C), 접근성(A), 골목 자원(D) 등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영역에 국한된다. 보다 장기적인 노력이 투입되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임대료(R), 기업가 정신(E), 정체성(I) 강화를 위한 기반 조성이 절실하다.

 

건축 인프라와 문화 인프라 사업은 기존 상인에게 혜택을 줄지 모르지만 신규 사업자를 육성하거나 유치하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서울로 7017에서 신규 상업시설을 유치했지만, 대표적인 상가가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많은 식당가인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의 경험은 '씨-레디'가 개념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충족시키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조건임을 보여준다. 특히 시장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는 임대료(R), 공동체문화로 형성되는 정체성(I), 경제·문화·제도적 변수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가 정신(E)은 정부 개입으로는 쉽게 개선하기 어렵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등 골목상권 발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궁극적으로 골목상권 이해당사자들의 상생문화, 즉 장인 공동체 구축에 달렸다. 정부도 지구단위 계획, 청년창업과 예술가 활동 시설 공급 등 공공재 투자를 통해 장인 공동체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정부는 꼭 필요한 지역의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전 지역에서 장인 공동체 모델이 확산될 수 있는 시장 환경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골목상권 활성화 사업이 불가피하다면, 청년창업 지원 시설·대학시설·청년창업몰·청년 창작촌 등 청년문화를 창출하는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청년문화 공공재는 유동인구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상권의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한다. 서울시도 청년 인구의 중요성을 인식해 대학가 주변 지역을 재생하는 캠퍼스타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골목상권 전체, 즉 골목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거시적인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 정책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4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현재 골목산업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숙련 자영업자를 공급하기 위한 새로운 양성 시스템의 구축이다. 정규교육·학원·도제제도 등 모든 훈련 과정을 강화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일정 기간 경험을 쌓고 재능을 보인 장인 후보생을 장인으로 키우기 위해 장기간 훈련하는 장인대학을 주요 지역에 설립해야 한다.

 

둘째, 골목산업이 열악한 지역 도시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골목상권을 단기간에 육성하기 위한 도시형 관광단지 사업 추진이다. 관광산업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도심 골목 지역을 도시형 관광단지로 지정, 장인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한 체계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문체부가 이미 음식점·숙박시설·서점·갤러리·체육시설 등 골목상권에서 중요한 업종을 다수 지원하고 있어, 기존 법 제도를 활용한 체계적인 골목산업 육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현재 비공식으로 이루어지는 소상공인 창업 시장의 제도화다. 골목 장인을 기획하고 이들의 창업과 경영을 지원하는 '골목길 기획사'가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골목상권은 독특하고 경쟁력 있는 골목문화 확립을 지향하는 문화산업의 성격이 강하다. 골목문화를 창출하는 장인 자영업자들과 그들이 경쟁하는 골목상권을 문화산업 육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산업은 공통적으로 과잉 공급이 발생한다. 이 가운데 극히 일부의 예술가만 성공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골목상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골목상권에서는 문화산업과 달리 재능 있는 예술가를 발탁하고 키우는 기획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넷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이다. 서울 도심의 경우 골목 자원의 고갈로 2010년대 중반에 발생한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재현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소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고 이미 진행된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골목상권 공공재에 투자해야 한다.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상생 협력을 유도하며, 골목 자원의 자산화를 지원하는 서울시 2015년 종합대책을 성실하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은 특정 상권의 활성화다. 특정 상권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하다면, 골목상권의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한 지구단위 계획의 수립과 청년문화와 공동체문화 창출을 위한 공공재 투자사업으로 정부 지원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골목 장인이 운영하는 독립 가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도시문화를 창조하고, 골목상권 발전에 장애가 되는 공동체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장인 공동체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골목상권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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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포트는 2019년 8월 8일에 발행된 것으로, 일부 참고 링크의 경우 만료될 수 있습니다. help@publy.co로 말씀해주시면 빠르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