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은 막지 못했지만, 듀플리케이션은 막았다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7년 11월에 발간된 <골목길 자본론>의 본문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큐레이터의 코멘트는 회색 박스로 표시했습니다.

뉴욕과 현대 도시의 영웅으로 떠오른 도시계획가 제인 제이콥스*.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잡지사 직원으로 일했던 그를 위해 3개의 전기가 출판됐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만들어졌으며, 곧 전기영화도 개봉된다.**

* 1916년 태어난 그는 2006년 사망했다.

** 관련 기사: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도시, 최선입니까' 건축영화의 질문 (한겨레, 2018.10.25)

 

제이콥스의 가장 큰 업적은 뉴욕 원도심(1811년 도시계획에서 제외된 맨해튼 남부 지역)의 구제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그녀가 싸우지 않았다면, 웨스트빌리지, 그리니치빌리지, 소호(SoHo, South of Houston), 리틀 이태리(Little Italy) 등 맨해튼 원도심 지역은 빌딩 숲이 되었을 것이다. 대중은 그를 시민운동가로 기억하지만, 학계는 현대 도시학의 선구자로 존경한다. 학부 수료 학력만으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노벨경제학상 후보자로 언급될 수준의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제이콥스에 대해 관대한 주류 사회의 평가와 달리, 정작 그가 속했던 진보 지식인 사회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웨스트빌리지를 구했는지 묻는다. 그가 투쟁해 지킨 동네가 뉴욕, 아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로 '젠트리파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비판은 공정하지 못하다. 1960년대 제이콥스가 싸워 막아낸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닌 획일적 도시 모델을 강요하는 듀플리케이션(duplication, 복제화)이었다. 그는 웨스트빌리지가 고급 주택지로 변하는 것은 막지 못했지만 재개발을 통해 대형 아파트촌으로 변하는 것은 저지했다. 그 노력 덕분에 맨해튼 남부, 브루클린 중심부 등 뉴욕의 많은 지역이 재개발 없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됐다.

 

오랜만에 찾은 웨스트빌리지는 부동산 열기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불과 5년 전에 500만 달러 수준이었던 타운하우스가 지금은 2000~3000만 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2016년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140평 규모의 3층 타운하우스를 2750만 달러(약 300억 원)에 매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택 가격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골목상권이 걱정됐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부동산 투자 붐을 겪는 동네는 독립 가게는 물론이고 대기업 명품 브랜드도 운영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우려한 대로 블리커스트리트, 허드슨스트리트 등 중심 상가 거리에서 부동산 시장 과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활기 잃은 거리에는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임대문의(for lease)' 표지를 내건 빈 상점들이 즐비했다.

 

진보학계가 비판한 대로 이미 1980년대에 상류층이 중산층을 대체하는 거주 젠트리피케이션은 완료됐다.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가가 공동화되는 마지막 단계다. 제이콥스가 막은 것은 듀플리케이션이었다. 제이콥스의 골목 보호 운동이 없었다면, 정치인과 건설업계는 웨스트빌리지뿐 아니라 맨해튼 전체를 대로와 큰 블록으로 이뤄진 계획도시로 만들었을 것이다.

 

뉴욕은 도시 모델의 실험장이다. 끊임없이 도시 모델을 제공하는 세계의 수도 뉴욕이 처음 전파한 모델이 계획도시다. 마천루, 넓은 대로와 대형 블록, 그리드 구조, 도시 고속도로, 교외 공원 등으로 만들어진 글로벌 메가폴리스 뉴욕은 세계 모든 대도시가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계획도시의 전형이다.

 

흥미로운 점은 계획도시와 도시 재개발뿐 아니라 도시재생도 뉴욕의 수출품이라는 사실이다. 낙후된 지역에 대한 도시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건물과 도시를 철거해 새로운 계획도시를 건설하는 재개발 사업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 건물과 도로를 유지하면서 리모델링, 도시 어메니티 투자,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으로 낙후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 사업이다.

 

체계적인 도시계획 제도가 도입된 1911년 이후 지속적으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한 뉴욕 정부에 제동을 건 사람은 정치인·언론인·학자가 아닌 웨스트빌리지에 거주하던 평범한 시민 제인 제이콥스였다. 그가 이끈 주민단체는 뉴욕시가 제안한 로멕스(LOMEX, Lower Mahattan Expressway) 사업을 무산시켜 재개발 중심의 도시 개발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위: 임대를 알리는 사인이 늘어나는 블리커스트리트 상가 / 가운데: 뉴욕시가 로멕스(LOMEX)의 진입구로 지정한 워싱턴 스퀘어 공원 입구 / 아래: 계획대로 설치됐다면 로멕스(LOMEX) 진입로는 아치에서 시작해 공원 동쪽(이 사진의 오른쪽)을 지나갔을 것이다 ⓒ다산북스뉴욕 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1928년부터 1968년까지 무려 44년 동안 뉴욕 SOC 사업을 지휘했던 전(前) 뉴욕시 공원 관리위원장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다. 1946년 10월 그는 2차 세계대전 전부터 구상한 숙원사업인 로멕스 건설을 공식 발표한다. 계획대로라면 로멕스는 1948년 건설이 시작돼 1949년 완공될 예정이었다.

웨스트빌리지를 구하기 위해 기자회견 중인 제인 제이콥스 ⓒ다산북스로멕스는 맨해튼 남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다.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홀랜드 터널에서 시작해 맨해튼 동부의 브루클린브리지와 윌리엄스버그브리지를 통해 브루클린으로 빠져나가도록 디자인됐다. 이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소호와 리틀 이태리를 철거해야 했으며, 웨스트빌리지·그리니치빌리지·첼시 등 맨해튼 남부의 저밀도 지역 전체를 재개발 대상으로 지정해야 했다. 1958년 뉴욕시는 내부 조정 문제로 연기됐던 사업을 재추진하기 시작했다.

 

제이콥스는 1962년에서 1968년까지 로멕스를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주민 대표로 구성된 로멕스 저지 공동 위원회(Joint Committee to Stop the LOMEX)를 조직하고 시 정부를 압박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건축 비평가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도시계획 변호사 찰스 에이브럼스(Charles Abrams) 등 유명 인사들의 참여와 지원이 시민운동에 큰 힘이 됐다.

 

제이콥스는 시위, 회의장 점거 등의 혐의로 두 번이나 체포당할 만큼 공격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1950년대 웨스트빌리지 마을 보호 운동에 참여하면서 체득한 조직화와 선전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그가 주도한 주민 반대 운동에 부딪친 뉴욕시는 결국 1969년 공식적으로 로멕스 계획을 철회했다.

위: 로멕스의 시발점으로 지정된 홀랜드 터널 입구 / 가운데: 지금은 부동산 업소가 입점한 허드슨가 555호. 제이콥스의 자택이었다. / 아래: 저밀도 전원도시로 유지된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파크 지역 ⓒ다산북스제인 제이콥스는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으로 이주, 여러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뉴욕에 거주하면서 컬럼비아대학교 비학위 과정(General Studies)을 2년 동안 청강한 것이 그녀의 최종 학력이다. 그는 1952년 건축 잡지 <아키텍처 포럼(Architecture Forum)>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도시계획 이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다.

 

1954년에는 흑인 주민들을 거리로 내몬 필라델피아 재개발사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서 재개발 중심의 도시계획 패러다임에 도전했다. 외부인이 보기에 낙후된 동네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면 마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제이콥스는 저밀도 지역에서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이유를 공간 디자인에서 찾았다. 보행하기 편리한 골목길, 저밀도의 다양한 건물, 거리가 짧고 서로 연결된 블록 등 골목길 동네가 주민의 협력을 유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저층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발코니와 현관 층층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거리를 감시하는 눈이 된다는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 생활·일·쇼핑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한 지역에 공존한다는 의미의 '혼합적인 주요 용도(Mixed Primary Uses)', 골목 동네의 주민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도시 활력성을 높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등 제이콥스는 현재 도시학의 기본 개념으로 통용되는 다수의 개념을 발견했다.

 

도시 경제학에서도 제이콥스의 기여는 지대하다. 그는 도시 디자인과 경제 발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도시의 창조적 능력에 관한 가설을 정립했다. 그는 도시가 성장을 주도하는 이유는 생산과 소비의 집적을 통한 규모의 경제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혁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제이콥스의 도시 이론은 하버드대학 강연 발표를 통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력 경제 잡지 <포브스>는 1958년 '다운타운은 시민을 위한 것이다(Downtown is for People)'라는 기고문을 게재해 그를 도시학의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후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골목길 창조성 이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책이 도시학의 고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다.

 

현재 젠트리피케이션 논쟁으로 곤욕을 치르는 한국 사회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듀플리케이션의 차이를 인지하고 주목해야 한다. 뉴욕 역사는 골목길 정책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듀플리케이션 예방을 위한 현실적 대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도시 정책이 어려운 이유는 성장하는 도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과 듀플리케이션, 모두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골목길 구조를 유지하는 동네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는 동네, 즉 젠트리피케이션과 듀플리케이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선택은 물론 제이콥스 모델이다. 도시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듀플리케이션을 먼저 막아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과연 예방해야 할 질병인가?

샌프란시스코 도심 돌로레스 공원 ⓒ다산북스산업과 상권을 공동화시키고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지역 불균형은 우리나라가 풀어야 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만이 불균형 비용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도시가 신도시 건설이 초래한 원도심 낙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도심 재생은 오랫동안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로 여겨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다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05년 전후 서울 원도심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홍대·이태원·삼청동을 필두로 서울 강북의 골목상권이 젊은이와 외국인이 선호하는 신흥 상권으로 뜬 것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먹거리와 살 거리를 찾던 소비자들은 개성 있는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길의 매력에 눈을 돌렸다.


지역 발전 관점에서 보면 골목상권의 부상은 하늘에서 내린 선물과 진배없었다. 그 누구도 골목상권이 원도심 재생의 동력으로 부상할지 예견하지 못했다. 몇몇 골목길에서 시작된 골목상권 열기는 곧 서울시 전역과 전국으로 확산됐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젠트리피케이션 논쟁 ⓒ다산북스하지만 순탄하게 보였던 골목상권 가도에 암초가 나타났다. 인기 상권으로 부상한 지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골목상권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구 도시에서 유래된 젠트리피케이션은 임대료와 주택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기존 거주자가 고소득층 이주민에 의해 터전에서 밀려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은 우리가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던 골목경제 활성화에 제동을 걸었다. 계층·인종 간 갈등이 고질적인 서구 도시에서 기존 서민층을 몰아내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은 심각한 사회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서울 골목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서민 주거지의 고급화라는 고전적인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주거지와 상업지를 포함한 지역 전체를 고급화했다면, 서울 골목의 변화는 아직 상가에 한정된 상태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상인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퇴출되는 비(非)상인 주민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아니다. 골목길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거주민의 대규모 전치 현상*을 유발할 만큼 상류층과 중상층이 선호하는 주거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 거주민과 이주민의 위치가 바뀌다

 

서구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반(反) 젠트리피케이션 정서는 서구만큼 부정적이며 투쟁적 성격을 띤다. 우리 사회에서 날로 강해지고 있는 반 젠트리피케이션 정서를 방치할 경우 도시재생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할지도 모른다.

 

젠트리피케이션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 현상을 비판한다. 우선 골목상권의 발전이 지역에 터전을 둔 주민의 희생을 강조한다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자영업자·독립 가게의 노력으로 골목상권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실이 이들에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상권 활성화로 인해 임대료가 상승하면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고, 건물주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는 가게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사회 정의 이슈로 논의된다. 그에 대한 대책도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를 경제적 강자인 건물주로부터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집중된다.

 

골목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상권의 고급화로 골목길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높은 임대료를 내고 새로운 골목상권에 진입한 상점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이전에 있던 가게보다 훨씬 상업적이고 획일적인 상품을 팔게 된다. 개성 있는 독립 상점이 대기업 브랜드 매장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교체되는 모습은 도시문화의 퇴화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균형적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낙후 지역의 재생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 전 지역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관광객과 유동인구의 증가로 뜨는 동네에서 제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낙후 지역 입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서 발생하는 임대료 상승, 상권 구성의 변화는 행복한 고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도 오랫동안 경제적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온 낙후 지역이었다.

 

최근 다양한 문화예술가 그리고 힙스터들이 모이는 을지로 3가와 종로구 익선동은 강북 지역에서 골목상권 활성화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일대는 저층 노후불량 건축물이 전체의 82.8%에 달한다.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의 숍인숍(shop in shop), 콘셉트 카페, 전시관 등 복합 문화 공간들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재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낙후 지역의 경우, 젠트리피케이션 외의 뚜렷한 지역 발전 대안을 찾기 어렵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지역은 계속 도태되거나 아니면 대규모 재개발이 실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임대료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활기를 회복하는 상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낙후 지역에 주어진 세 가지 대안은 고급화된 골목길, 정체된 골목길, 재개발된 골목길이다. 이 가운데 자생적으로 고급화된 골목길이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지 않는 가장 지속 가능한 대안이다. 분명 젠트리피케이션 비용이 존재하지만, 그 비용은 낙후 상태의 악화와 대규모 재개발이 초래하는 비용과 비교할 때 결코 높지 않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주택을 구입한 샌프란시스코 미션디스트릭트 ⓒ다산북스젠트리피케이션의 편익도 비용만큼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 논쟁에서는 인재와 산업 유치에 끼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간과한다. 많은 서구 도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이 도시문화와 지역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성장 지역인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San Francisco Downtown)은 개성 있는 골목문화로 창조 인재와 창조산업을 유치해 급속히 발전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페이스북의 본사는 밸리의 북부 멘로파크 시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최근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Mission District) 지구에 주택을 구입했다.

 

저커버그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밸리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들의 거주지는 미션 디스트릭트를 비롯해 소마(SOMA, South of Market), 도그패치(Dogpatch) 등 실리콘밸리와 고속도로로 연결된 샌프란시스코 도심 지역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들을 위해 통근버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퇴근 시간이면 줄지어 서 있는 통근버스는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매일 버스를 타고 101번 고속도로를 왕복하는 것이 고된 일임에도 이들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거부할 수 없는 그 도시만의 문화적 매력 때문이다.

 

멘로파크, 팔로알토, 쿠퍼티노, 산호세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들은 전형적인 교외 도시로서 도시문화를 즐기고 싶은 젊은이에게는 다소 따분한 곳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젊은 노동자들이 선택한 샌프란시스코는 다르다. 남부 미션 돌로레스 공원 주변은 대표적인 보헤미안 지역이다. 이곳은 과거 이민자와 중산층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지금은 명품 상점이나 고급 식당보다는 보헤미안풍의 카페와 바가 즐비하다.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개성, 다양성, 사회적 책임 등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가치를 판매하는 친환경·유기농·채식·인디·빈티지·히피 아이템 상점 등을 애용한다.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이렇다 보니 기업도 이에 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통근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핀터레스트 등 일부 기업은 본사를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 우버, 트위터,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아예 처음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기업도 많다. 이들의 성공이 발판이 되어 창고와 소규모 공장이 모여 있던 샌프란시스코 소마 지역은 새로운 벤처 중심지로 떠올랐다. 샌프란시스코 사례는 리처드 플로리다가 주장한 대로 도시문화가 창조산업을 유치하는 중요한 조건임을 보여준다.

Curator's Comment
실리콘밸리 기업이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통근버스를 운영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것을 선호하게 되면서 집값과 월세가 계속 오르게 되었고, 정작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이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2014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던 당시에는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셔틀버스에는 앞 유리에 회사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만 붙어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셔틀버스 전체에 회사 이름을 래핑(wrapping)한 경우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감이 커지면서 조용히 다니는 추세로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의 주거비용은 계속 높아지고 있어서,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주거비용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관련 기사: 샌프란시스코 월세 350만 원···집값 올린 구글 개발자들 (머니투데이, 2014.1.13)

젊은 인재가 도시문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사업장을 도심으로 옮기는 기업 현상은 샌프란시스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6년 8월 1일 <뉴욕타임스>는 '왜 미국 기업이 교외를 버리고 도심으로 떠나는가?(Why Corporate America Is Leaving the Suburbs for the City?)'를 헤드라인으로 내걸었다. 오랫동안 뉴욕시 교외의 대학 캠퍼스 같은 단지에서 본사를 운영했던 GE도 최근 보스턴 도심으로 본사를 옮길 계획이다. 도시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위: 실리콘밸리 중심 도시 팔로알토의 전원적 거리 / 가운데: 창조 인재들이 모이는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의 히피풍 거리 / 아래: 최근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주거지역으로 떠오른 홍대 지역의 북카페 ⓒ다산북스한국에서도 도시문화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산업이 이동하며 새로운 창조산업 지역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한국의 도시문화는 그동안 산업 발전에 영향을 끼칠 만큼 다양하지도, 역동적이지도 못했다. 1970년대 강남 개발 이후 획일적인 신도시문화가 도시문화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도시문화 발전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도시문화에 대한 선호가 우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판교 테크노밸리를 건설했지만, IT 인재들은 판교보다는 강남에 위치한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서울 도심 선호 현상은 '2016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 지표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서울 시민의 59.4%는 '10년 후에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라고 응답했고, 특히 20대의 66.7%는 서울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했다. 서울 시민으로서의 자부심도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한국 젊은 층의 도심 선호 현상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실리콘밸리 인재들처럼 도심에 살면서 차별적 도시문화를 즐기길 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기존의 1)강남문화와 2)신도시문화,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3)골목문화, 이 세 문화가 소비 지역을 형성하고 수도권 산업의 미래를 이끌 것이다.

 

개성 있는 골목길이 정체성을 잃고 획일적인 브랜드와 프랜차이즈가 가득한 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샌프란시스코 도심 사례가 보여주듯이 골목길이 개성을 유지해야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인재와 기업을 유인하는 샌프란시스코 골목상권은 이미 상당 수준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상권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박한 근린 상권이 아니다.

 

골목상권의 발전 과정에서 낙후 상권이 활성화되는 단계와 활성화된 상권이 프랜차이즈화되는 단계를 구분해야 한다. 전자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 권장해야 하고, 후자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적극 관리해야 한다.

 

국내 모든 도시의 절실한 과제는 구도심의 재생과 정상화다. 현실적으로 골목상권 활성화 외에는 구도심에 창조 인재를 유치하고, 창조산업을 개척할 방도가 없다. 일정 수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동반하지 않는 원도심 재생은 불가능하다. 낙후된 원도심에 필요한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예방해야 할 질병이 아닌 이 지역을 창조도시로 탈바꿈할 묘약으로 활용하는 실용주의 철학이다.

포스트 젠트리피케이션 서울의 과제

서울의 4대 골목 권역 중 하나인 이태원의 한 루프탑 ⓒ다산북스지난 2016년 젠트리피케이션은 언론과 SNS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주목받았다. 한 유명 연예인 소유 건물에 임차한 음식점의 강제 철거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 관련 기사: 상가 임대차 갈등, 해법은 없나.."투명한 권리금 인정 등 상생의 길 찾아야" (파이낸셜뉴스, 2016.7.22)

 

일부 정치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으로 세입자 보호를 주장한다. 건물주의 부당한 개발이익 독점 방지를 위한 '임차인 보호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계약 기간 연장, 임대료 규제, 권리금 보호 등 임차권 보호 조항을 제안한다. 과연 정부가 이런 정책으로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할 수 있을까.

 

정책 실효성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상가 중심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장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경제 현상이라는 데 있다.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계속되려면 상업화될 골목 자원이 많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울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내의 도심권에서 골목상권으로 뜰 수 있는 지역은 이미 다 떴다고 봐야 한다.

 

서울의 젠트피케이션이 재현되지 않는 마무리 단계라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은 실효성이 낮다.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과 무관한 지역에서 임대차 시장이 위축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보다는 공공재 투자를 통해 이미 발생한 골목상권의 문화 정체성과 개성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2013년 이후 서울에서 발생한 유형의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은 골목상권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골목상권의 공급이 원활할 때, 새롭게 골목상권으로 형성된 지역에서 발생한다.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서울 상권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외지인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부상한 신흥 상권이다.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골목 가게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상인들이 도심에 널리 퍼져 공급이 풍부했던 저밀도 근린상권을 골목상권으로 개척했다.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조건이 골목상권에 대한 수요 증가라면 골목상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수요 분석으로 시작해야 한다. 골목 쇼핑에 대한 수요와 골목 건물 투자에 대한 수요로 구분되는 골목상권 수요는 독립적인 경제 현상이 아니다. 전자는 유통시장 경기, 후자는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당분간 저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저성장 시대에 골목 시장만 예외적으로 고성장하기를 바랄 순 없다.

 

골목상권은 또한 오프라인 상권이다. 인터넷 쇼핑의 부상으로 오프라인 상권 전체가 위축되고 있다. 골목상권이 도심상권·몰링상권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통시장 변동성을 고려할 때 골목상권의 꾸준한 인기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골목상권도 지나가는 트렌드일 수 있다. 설사 골목상권이 계속 성장한다 해도, 신규 상권의 형성보다는 기존 상권의 고급화를 통해 성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

 

골목상권 확산에 필요한 부동산 투자는 전체 부동산 경기의 영향을 받는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골목상권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나지 못할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고자 임대차 규제를 늘리면 골목상권 투자는 더욱 위축될지 모른다.

 

골목상권에 대한 수요 증가를 낙관할 수 없다면 공급 전망은 더더욱 어둡다. 새로운 골목상권이 탄생하려면 풍부한 골목 자원이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북한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서울은 더 이상 골목도시가 아니다. 풍치지구*·군사지구 규제로 고도제한이 적용되는 도심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지역이 대형 아파트와 상업 단지가 들어선 고밀도 지역이다.

* 도시의 자연 풍치를 유지·보호하기 위하여 도시계획구역 안에서 지정한 지역

 

종로 일대를 비롯해 홍대, 남산, 성수 등 저밀도 지역은 이미 골목상권으로 떴다. 이들 상권은 한강·강남 접근성, 보행이 편리한 평지에 들어선 대규모 골목 자원, 한옥·청년문화·외국인·소셜벤처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권역으로 성장했다.

 

삼청동 중심의 다운타운권, 홍대 중심의 홍대권, 이태원 중심의 남산권, 성수동 중심의 성수권이 서울의 4대 골목 권역이다.

 

서대문구·은평구·성북구·관악구 등 서울 외곽에는 골목 자원을 보유한 지역이 남아 있지만, 입지 조건이 좋지 않아 성공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하고 언덕이 많아 뻗어 나가기 힘들다. 서울의 중심상권인 강남과 종로 일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제약이다. 서울에서 하나의 독립된 골목 권역으로 성장할 만한 지역은 이미 모두 골목 권역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아파트숲 ⓒShutterstock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 대한 서울시 설명 자료 ⓒ다산북스

홍대·삼청동·이태원·성수동 등 4대 권역의 중심지는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의 마지막 단계거나 완료됐다고 봐야 한다. 망원동·연남동·연희동(홍대권)·익선동·서촌·을지로 3가·해방촌·한남동·보광동·우사단로(남산권)·뚝섬(성수동권)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존 권역의 확장에 따라 발생하는 여파일 뿐이다. 기존 권역의 골목 자원이 곧 고갈되기 때문에 서울에서 추가적인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중심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모두 유사한 과정을 답습했다. 먼저 임대료가 싸고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에 예술가와 활동가가 이주하고, 이후 맛집 등 개성 있는 상업시설이 골목에 들어서면서 다른 가게들의 잇따른 창업으로 골목상권을 형성한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건물 투자, 프랜차이즈, 대기업 브랜드의 유입으로 임대료가 급등한다. 결국 초기에 상권을 개척한 독립 가게들은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주변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2003년 전후 골목상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홍대의 경우 2010년부터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됐다. 2005년경 골목상권으로 부상한 삼청동·이태원·가로수길은 2013년을 전후로 외지인의 건물 투자가 급증해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가 가시화됐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은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가 바로 옆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한 권역 내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처음 시작된 지역의 주변에 풍부한 골목 자원이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 주민의 절대다수는 단독주택과 저층 아파트에 거주한다. ⓒ다산북스골목상권 수요와 공급은 서울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도시인 뉴욕과 도쿄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해준다.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패한 도시로 뉴욕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성공한 도시로 도쿄를 꼽는다. 뉴욕과 도쿄의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도시 성장, 골목 자원, 저소득층 거주 지역 분포 등 수요와 공급 요인으로 결정된다.

 

뉴욕 주민의 절대다수는 저층 건물로 구성된 '골목 동네'에 거주한다. 흔히 떠올리는 뉴욕의 마천루 숲은 맨해튼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인종차별과 이민으로 빈부격차가 심해 저소득층 거주 지역이 많은 뉴욕은 중산층과 부유층이 접근성 뛰어난 저소득층 지역을 잠식하는 '거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이유에서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반면 도쿄는 도심권의 고급화가 완료돼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도시다. 근대화 이후 원도심 시타마치 지역(우에노, 아사쿠사, 니혼바시)에서 신도심 야마노테(시부야, 신주쿠, 롯폰기, 아카사카) 지역으로 확장했다. 지진의 위험으로 고층 건물의 건축을 제한해 도심을 포함한 도시 전역에서 골목도시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골목 지역이 신흥 부촌과 패션과 도시문화를 선도하는 골목상권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50~1960년대 고성장기다. 이때 이미 중심부에서 새로운 골목상권으로 부흥할 만한 지역이 고갈됐다.

 

골목상권이 고급 상가로 자리 잡고 더 이상 확장할 수 없었으므로, 1980년대 버블경제 하에서도 새로운 골목상권이 뜨면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1991년 버블 붕괴 후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할 요인이 더욱 없었다. 급격히 냉각된 부동산 시장이 30년 가까이 회복되지 못해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2012년 도쿄 스카이트리*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경기가 회복된 스미다구의 무코지마가 유일하게 '신생'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곳이다.

* 일본 도쿄도 스미다 구에 세워진 전파탑

 

서울도 앞으로 도쿄와 비슷한 궤적을 따라갈 것이다. 4대 골목 권역이 도심 상권으로 편입되면서 대형 중심상권, 몰링상권, 대로변상권, 골목상권으로 재편성된 서울 상권은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골목상권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겠지만 다른 유형의 상권을 능가할 수준으로 급격하게 성장할 가능성은 작다. 골목상권의 유동인구와 매출액이 대형 중심상권에 비해 소규모에 그치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경제의 현주소에서 골목상권에 대한 수요가 2010년대 초중반 수준으로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2010년대 중반과 같은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이 한계에 달했다 해도 소규모 젠트리피케이션, 즉 역세권 골목길의 고급화와 작은 골목길의 카페거리화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대규모 젠트리피케이션은 오히려 지방 도시와 성남·안양·남양주·용인 등 원도심을 가진 수도권 도시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4대 골목 권역에 남은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로 약화된 골목의 고유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특히 피해가 심각한 홍대 정문과 삼청동 일대에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홍대의 청년문화, 삼청동의 전통문화 정체성을 복원할 수 있는 문화시설에 투자해야 한다. 개성 있는 가게를 창업할 수 있는 청년창업자와 문화기획자의 유치도 정체성 복원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주민·상인·건물주·시민단체·정부 등 이해당사자들이 골목상권의 장기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공동체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서울시도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으로 이해당사자 상생 협약을 장려한다. 세입자와 건물주가 단기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면 상권의 안정적 성장과 정체성 유지를 위해 서로 협력할 유인이 충분히 있고, 성수동 등에서 실제로 협력하는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셋째, 골목상권을 창조경제의 거점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홍대권·남산권·성수권은 이미 젊은이들의 새로운 창업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창조 인재와 창조기업이 골목상권에 정주해 골목 정체성을 활용한 상업활동을 주도할 수 있도록 교육과 거주 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 골목상권의 정체성 강화, 공동체문화 활성화, 그리고 창조경제화가 포스트 젠트리피케이션 시대를 맞은 서울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