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왜 경제학인가

골목길 경제학은 무엇을 질문해야 하나

골목길 경제학이란

모종린

저자

다산북스

콘텐츠 제공

홍동희

큐레이터

한희진

편집

<q>Editor&#39;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7년 11월에 발간된 <a href="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782966" target="_blank">&lt;골목길 자본론&gt;</a>의 본문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q>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동네의 기준을 명문 학군이나 부동산 투자 가치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주거 환경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넘어 문화를 향유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meta charset="utf-8">&nbsp;그래서인지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성수동, 이태원 등 각 지역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골목길이 늘어나는 추세다. 거리와 동네를 중심으로 도시가 재생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발전한다.&nbsp;우리가 좋아하는 골목길의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발전하고 있을까. 저술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1960년대에 대규모 단지 중심의 도시 재개발을 비판하고, 공동체문화와 소상공인 산업을 창출하는 &#39;골목길 동네(Street Neighborhood)&#39;의 보전을 주장했다. 이후 도시학자들은 다양한 유형의 저층 건물, 거리의 보행 친화성, 짧고 촘촘한 블록, 주민과 상인이 공존하는 건축 등에서 골목길의 성공 요인을 발견했다.* 그의 저서 <a href="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60519" target="_blank">&lt;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gt;</a>은 &#39;도시 개발이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39;는 기존 도시계획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한다.&nbsp;공간 디자인 관점에서 골목상권의 활력을 분석한 건축가 유현준은 볼거리의 밀도와 우연성이 결정하는 &#39;공간의 속도&#39;에 주목했다. 한 예로, 홍대 거리를 걸어보면 골목 양쪽에 촘촘하게 들어선 가게 입구와 거리 가판 등이 이벤트의 밀도를 높이고 보행 속도를 늦춘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공해 홍대 이곳저곳을 &#39;걷고 싶게&#39; 만드는 것이다.&nbsp;

또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은 골목길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강조한다. 미국의 도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창조도시의 원동력으로 예술인의 집적(clustering)과 문화 정체성을 꼽았다. 실제로 문화산업 종사자와 기획자들은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고 갤러리, 문화행사, 공공 미술 등 도시 어메니티*(urban amenity)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시의 쾌적성과 편리함을 높여주고, 심미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유무형 문화적 생산물의 총 집합체<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3oth3oks7q81w.cloudfront.net/images/2019/07/29/1564364333_Qw5oX1Hmh9bSqf7BbsjXMadcrmAJl9umxuLyFKTL.jpeg"><figcaption>건축가 김종석이 기획한 외부로 열린 구조의 건물(서울 연희동) ⓒ다산북스</figcaption></figure>연희동은 건축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골목길이다. 건축가 김종석의 주도하에 마흔다섯 개의 건물이 외부로 열린 구조로 리모델링됐다. 건축 디자인을 통해 다양성을 지니고 소통이 가능한 동네 문화를 기획함으로써 정체성이 뚜렷한 도시 어바니티*(urbanity)와 도시 어메니티를 동시에 추구했다.* 세련된 공간 고유의 매력&nbsp;상권 전문가에게는 지역의 접근성과 임대료가 중요하다. 임대료가 낮고 자동차와 지하철로 접근하기 편리한 골목길은 작업실을 마련하려는 예술가,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고 싶은 요리사, 또 그들의 가게를 찾는 소비자를 유인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공간 디자인&middot;접근성&middot;문화 인프라&middot;임대료 조건 등을 갖췄다고 모두 우리가 좋아하는 거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몇몇 물리적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골목문화가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일궈낸 누군가의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nbsp;최근 젠트리피케이션&middot;도시재생&middot;골목길 조성사업 등 골목길 활성화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면, 정작 골목문화를 만드는 소상공인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 경제학이 기여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골목길 창업자의 성장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nbsp;골목길의 역사는 보통 그곳에서 처음으로 창업한 첫 가게에서 시작된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을 가진 첫 가게를 찾는 사람들로 인해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가게가 줄지어 들어선다. 그러다 보면 골목길은 활기찬 상권으로 거듭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골목상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저마다 첫 가게가 그 포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nbsp;홍대의 첫 가게는 1990년대 초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에 문을 연 펑크카페 드럭에 이어서 블루데빌&middot;재머스&middot;스팽글&middot;롤링스톤즈&middot;빵&middot;프리버드 등의 라이브클럽이 줄지어 생겨났고, 이를 중심으로 홍대 인디씬이 형성됐다. &#39;주류 가요계 및 기존 언더그라운드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음악을 스스로 생산해 소비하는 움직임&#39;에서 빚어진 독립적 실험정신은 이후 홍대의 인디문화, 언더그라운드문화, 거리문화, 출판문화, 카페문화 등으로 계승됐다.<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3oth3oks7q81w.cloudfront.net/images/2019/07/29/1564364867_SaqtpwuwXb3RoSJisBwpCg1VEWOoFtvnvECl4Kbw.jpeg"><figcaption>가로수길의 첫 가게 '블룸 앤 구떼' ⓒ다산북스</figcaption></figure>갤러리와 화방이 모여 있는 한산한 거리였던 가로수길이 2000년대 중반 새로운 카페거리로 부상한 것은 2004년에 문을 연 &#39;블룸 앤 구떼&#39; 덕분이다.* 유럽풍 노천카페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플로리스트와 파티시에인 두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일구어낸 결과물이다. 꽃과 차, 그리고 디저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신선하고 매력적인 콘셉트는 당시 여유와 휴식을 갈구하던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블룸 앤 구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로수길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39;페이지532&#39;, &#39;듀크렘&#39; 등 이국적인 카페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후 다채로운 가게들이 톡톡 튀는 개성을 뽐내며 가로수길의 성공을 이끌었다.* 관련 기사: <a href="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1/06/409894/" target="_blank">[서울 핫플레이스] 가로수길, 세로수길</a> (매일경제, 2011.06.28)&nbsp;삼청동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소비 공간으로 떠올랐다. 그전까지만 해도 1985년 신관을 개관한 갤러리 현대와 1989년 개장한 국제갤러리가 중심이 된 조용한 화랑 거리였다. 삼청동을 고풍스러운 골목상권으로 개척한 첫 가게는 1999년 문을 연 프랑스 음식점 &#39;더 레스토랑&#39;이다. 그 후 &#39;아따블르&#39;, &#39;두가헌 등 고급 레스토랑이 잇달아 개업하면서 삼청동은 고급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nbsp;2000년대 이전까지 이태원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는 바와 식당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다국적 음식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이런 변신을 주도한 가게는 2000년과 2006년에 각각 오픈한 &#39;르 생텍스&#39;와 &#39;소르티노스&#39;다. 두 곳 모두 외국인 셰프가 본토의 맛을 선보이는 식당이다. 르 생텍스는 프랑스 가정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했으며, 소르티노스는 이후 &#39;빌라 소르티노스&#39;, &#39;그라노&#39;를 추가로 개업해 서울의 이탈리안 음식문화를 개척했다.<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3oth3oks7q81w.cloudfront.net/images/2019/07/29/1564364571_87hfikNbcwOgnMuZODiQ60tswmhy7oHZMVUGdHNq.jpeg"><figcaption>이태원 소르티노스가 배출한 가게 중 하나인 소격동 이태리재 ⓒ다산북스</figcaption></figure>골목상권을 견인하는 가게가 반드시 첫 가게일 필요는 없다. 후발 창업 가게도 지역 상권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고객을 사로잡는 간판 상점(anchor store)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연희동에서는 1975년 개업한 &#39;사러가쇼핑센터&#39;가 소상공인 상권의 중심에 서 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제품들을 주로 판매했던 사러가쇼핑센터를 중심으로 소상공인 상권이 형성됐다. 간판 상점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nbsp;한국 고유의 골목길 경제가 방방곡곡 꽃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상공인 영웅들이 필요하다. 이들을 일깨우고 불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골목길 성공기 중심에 첫 가게를 세워 그 기업가 정신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nbsp;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골목상권에는 창의적이고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39;첫 가게 창업자&#39;가 부족하다. 만약 이런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면 도시의 문화를 찾는 젊은이들이 홍대나 가로수길 등 서울에 국한된 일부 지역에만 집중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해외 관광객이 한국에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부족하다고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자영업의 과잉 공급을 우려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춰 소비자의 차별적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고품질 공급자가 부족한 것이다.<figure class="image"><img src="https://d3oth3oks7q81w.cloudfront.net/images/2019/07/29/1564364766_mCZqA2wjUOCyaG5Vk0OBWmfQOq2Mtg7ERk4ID7jm.jpeg"><figcaption>장인 커피전문점 메뉴팩트(서울 연희동) ⓒ다산북스</figcaption></figure>프랜차이즈의 독무대가 된 한국 커피 시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진국의 도시에 가면 스타벅스, 코스타커피(Costa Coffee), 툴리스커피(Tully&#39;s Coffee) 등 몇몇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는 자영업자 고유의 개성이 드러나는 커피전문점이 거리에 즐비하다.&nbsp;반면 한국의 도시에서는 수십 개에 이르는 커피 프랜차이즈가 상권을 점령한 지 오래다. 경쟁력 있는 자영업 커피전문점은 대학가, 골목상권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찾을 수 있다.&nbsp;고숙련 자영업자가 적은 가장 큰 이유는 인력 양성 체계의 부재다. 우선 입시 중심의 교육제도 하에서 자영업 창업을 목표로 기술을 배우는 학생이 많지 않다. 설령 그런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해도 현장 훈련 시스템이 미비해서 기술 숙련에 필요한 경험을 쌓기가 어려운 실정이다.&nbsp;골목상권에 들어서는 커피 업계 종사자 중 현직 바리스타는 3개월 미만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26%, 3~6개월 사이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32%, 1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불과 19%밖에 되지 않는다. 카페 창업뿐 아니라 자영업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전문 교육 지원이 절실하다.&nbsp;장인 정신의 결여도 장애 요인이다. 자영업에 장인 정신이 필수적인 이유는, 일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고숙련 자영업자는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계속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면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가게를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nbsp;고숙련 자영업자가 많아지려면 직업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체계화된 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술 교육을 받지 못한 퇴직자나 대학졸업자를 위한 장기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기술 숙련에 필요한 현장 훈련을 위해 비숙련자를 고용하는 자영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고려되어야 한다.&nbsp;세제와 인센티브를 통해 대기업 유치에만 몰두하는 지방 정부도 지역에 필요한 자영업자를 양성하는 방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젊은이와 관광객이 몰리는 골목길 상권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창의인재와 산업을 지역에 유인하는 것은 대기업 공장이 아니라 적절히 구성된 자영업 인프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nbsp;자영업 육성은 국내외 대규모 관광 수요를 흡수하고 창조 인재를 거점 지역에 결집시켜 창조경제를 건설해야 하는, 한국의 시급한 정책 과제다. 고숙련 자영업자가 늘어나야만 해외 관광객과 창조 인재가 요구하는 도시문화 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정부는 실업 구제와 골목상권 보호 같은 보호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고품질 서비스와 문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영업 인재의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