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담는 그릇, 공간 기획

이전 과정에서 숫자 계산과 위치 선정까지 마쳤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공간의 프로그램과 레이아웃을 짜야할 차례입니다.

 

직장인 A는 밀도 높은 몇 주를 보냈습니다. 얼떨결에 공간 하나 계약했다가 매일 파란만장한 사건을 겪고 있어요.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어 "우리 서점 이름으로 이런 건 어때?"라거나 "내가 어제 퇴근하고 어떤 서점에 가봤는데 말이야." 같은 이야기를 한 시간씩 합니다. 브로드컬리 시리즈의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이 A의 이야기가 됐네요. 그런데 책에서도 그렇고, 독립서점 주인을 붙잡고 물어보면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서점일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요. 서점을 꼭 하셔야겠어요?

직장인 A는 어릴 때부터 대형서점 구석에 앉아서 몇 시간씩 책을 읽었어요. 물론 도서관도 좋아하지만, 어쩐지 서점이 더 마음이 편했다고 하네요.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된 A는 지금도 서점에 다닙니다. 오늘 했던 실수 때문에 괴로운 날에는 서점에 가고, 얄미운 상사 때문에 늦게 퇴근한 날에는 책이 있는 술집에 갑니다. 어쩌면 직장인 A가 충분히 서점을 경험하고 소비했기 때문에 이제는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어요.

'서점+카페+스테이'가 한곳에 모인 북살롱 이마고 ⓒ북살롱 이마고

자주 가던 서점이라 할지라도 공간 기반 창업자가 되어 다시 가면 다르게 보일 겁니다. 고객(소비자) 입장으로 방문할 때는 몰랐지만, 공간 주인(운영자)의 시선으로 보니 또 새롭습니다.

인테리어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종일 공간을 지키는 사람은 앉아 있지도 못해서 힘들겠네.

 

안쪽에 공간이 더 있는 건 알았는데, 인제 보니 운영자가 각종 살림살이를 숨겨두는 곳이었구나.

 

무작정 책을 많이 놓기보다 별도 공간이 있는 게 좋겠어. 안쪽에서 간단하게 식사도 하고, 잠깐씩 누울 수도 있었으면 해. 겨울 외투를 보관하는 장소도 생각해야겠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서점을 같이하는 커플이었네. 어쩐지 안쪽에서 회의하는 목소리, 업무 관련 통화가 들렸어.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고객이 왔는지 잘 모를 때도 잦았고.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일할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사용하는 개인 작업실이 아니라, 불특정한 사람들이 계속 드나들 공간이고요. 아직 누군지 모르는 사람(고객)들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동시에, 내가 일하기 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