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기반 창업을 반대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이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B: 나는 회사랑 잘 안 맞는 사람인 것 같아. 퇴사하고, 작은 가게 하나 하고 싶어.

 

C: 평소에는 커피 내려서 팔고, 종종 모임 공간으로 대관하면 월세는 충분히 벌 수 있지 않을까?

 

D: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여주며) 이런 카페 만들려면 얼마나 들어? 이렇게 인기 많으면 인테리어 비용은 금방 벌 수 있겠지?

 

E: OO동에 직장인 몇 명이 조금씩 투자해서 만든 작은 술집이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 이틀정도는 퇴근 후에 다시 출근해서 일한대. 나도 친구들이랑 그런 거 하나 만들고 싶어. 어차피 지금도 퇴근하고 술 마시러 가는데, 내 가게로 가면 내가 마시는 술값은 아낄 수 있잖아. 부동산 먼저 가봐야 하나? 친한 부동산 좀 소개해줘.

제가 공간 디자이너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공간 기반 창업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어서일까요? 이런 말을 자주 들을 때마다 저는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하루에 커피를 몇 잔 팔아야 지금 네가 받는 월급만큼 벌 수 있는지 계산해봤어?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은 아직 감이 없더라도, 음료 원가 생각해서 영업이익은 알아야지. 월세, 공간 유지비는 제외하고.

 

어떤 모임 공간을 만드는 건데? 누가 대관하는 거야? 한 시간 또는 반나절에 얼마를 낼 것 같은데? 세상에 대관 가능한 공간이 이미 많은데 네 공간을 빌려야 하는 이유가 있어?

 

그게 말이지. 그 카페는 OO 목적으로 만든 것이고, 실제로 돈은 OO로 벌고 있어. 커피로 버는 돈은 푼돈이라고….

 

네가 얼마나 진지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부동산에 가면 안 돼. 비슷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부터 해 봐. 너 술집에서 일해 본 적 없잖아. 주말이나 평일 저녁 시간에 다시 출근해서 일해 보면, 정말 돈을 들여서 네 가게를 차릴 만한지 감이 오겠지.

처음에는 구구절절 목이 아프게 설명했어요. 하지만 이미 공간 창업으로 마음이 기운 사람들에게는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에요. 분명히 똑똑한 친구들인데 말입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성적인 판단을 어려워합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시기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심지어 저를 찾아온 직장인 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A: 사실 나 이미 부동산 계약했어. 다다음주부터 월세 내기로 했거든. 그러니까 빨리 인테리어 좀 도와줘. 나 혼자 컨셉디자인 같은 거 못 하겠어. 진짜 긴급상황이야.

이쯤 되면 저도 울고 싶어집니다. 마음의 소리가 턱 끝까지 차오릅니다. '대체 뭐가 급해서 부동산 계약부터 했지? 계약을 제대로 했으면 공사 기간에는 월세를 안 낼 수도 있었을 텐데, 2주 뒤부터 월세를 낸다고?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한테 컨셉디자인을 맡겨뒀었나? 어쩜 저렇게 당당하게 재촉하지? 그리고 디자인 계약을 먼저 해야 나도 일을 하지 않겠니…'

 

하지만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것은 저 하나고, 당사자와 다른 직장인 친구들은 신이 나 대화를 이어갑니다.

B: 드디어 사장되는 거야? 멋있다.
 

C: 완전 용기 있어. 나도 퇴사하고 싶다.
 

D: OO가 공간 만들면 너무너무 예쁠 것 같아. 우리가 퇴근하고 매일 갈게.

 

E: 나도 일주일에 1~2일 아르바이트 시켜줘.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해도 말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카페, 서점, 편집숍, 갤러리, 커뮤니티 공간, 게스트하우스 등 영업공간은 결코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그곳은 오픈하는 순간부터 내가 매일 출근하고 일하는 회사가 됩니다.

 

이번 콘텐츠는 스스로 일하는 장소와 직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했습니다. 전편 <오피스 디자인 가이드> 초반에 '오피스 디자인은 인테리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요. 단지 예쁜 사무실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맞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했던 말이었죠.


창업을 위한 공간 디자인 역시 그저 예쁜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 공간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매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에게 어울리고 편안해야 합니다. 공간 기반 창업자라면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공간 기반 창업자는
'자신이 일할 공간'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말이죠

공간 기반 창업의 기쁨과 슬픔

(창업을) 안 하는 게 돈 버는 거라고요.*

* 관련 기사: 자영업 10곳 문 열면 8.8곳 망했다 (한국경제, 2018.7.20)

창업, 자영업이 얼마나 힘든 지 제가 굳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공간 기반 창업'은 더 어렵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한정된 공간에서 판매와 소비가 일어난다.
  • 한정된 영업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공간을 사용해야 한다.
  • 매출이 없어도 공간을 유지하는 데에 비용이 들어간다.
  • 영업 공간 마련을 위한 초기비용이 적지 않다.
  • 진입장벽이 낮아 상대적으로 시작이 쉽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 (IT 업계와 비교하면) 스케일업(Scale-up)이 어렵다.

이쯤 되면 몇천만 원을 써가며 직접 지은 아름다운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는, 세계여행을 하거나 스타벅스 주식에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사람들이 내가 만든 공간을 경험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절대 멈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심이 그렇다면 저도 막무가내로 말리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줘야겠지요.

 

저는 퇴사를 낭만적으로만 비추는 콘텐츠를 경계합니다. 미디어는 퇴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퇴사 후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의 멋진 삶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요.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대부분 망합니다. 소수의 성공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도 망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을 거예요. 워라밸은커녕 하루에 20시간 일해도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공간 기반 창업'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움직임으로부터 독립한 존재가 되고 싶다.

 

- <힙한 생활 혁명>, p.217

직장 다닐 때 받던 월급보다 소득이 절반, 또는 반의반으로 줄었는데도 얼굴이 좋아 보입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말하면서요. 대체로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나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공간과 상품을 기획할 수 있다.
  • 직접 기획한 공간과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 내가 만들었고, 좋아하는 공간에 종일 머물 수 있다.
  • 원하는 삶의 방향,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자영업은 힘들다. 공간 기반 창업은 더 힘들다. 말리고 싶다"라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사실은 저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는지 알 수밖에요.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따박따박 월급 받으면서 평당 1000만 원 이상의 공사비가 드는 별장을 설계할 때는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별장 주인은 파티를 자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지하에 40대 이상 주차가 가능한 공간을 설계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제 돈으로 평당 30만 원 정도 들여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만들 때는 세세한 모든 지출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돈을 아끼고 싶어서 제가 페인트칠도 직접 하고 수도꼭지도 사 왔으니까요. 6년 전 일이지만 처음 왔던 게스트 얼굴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때의 공간 창업 경험을 통해서 회사에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웠습니다. '디자인, 공사는 오히려 쉽다. 홍보와 공간 운영이 어렵다!'는 사실 말이죠.

 

에어비앤비 게스트들은 정말 다양한 요구를 합니다. '집이 덥다/춥다. 바깥 가로등이 너무 밝다. 햇볕이 세게 들어와서 새벽부터 깬다. 벌레가 있다. 물이 뜨겁다/차갑다. 수압이 너무 세다' 등등 그때마다 어떤 방법으로든 문제를 해결해 줘야 했습니다. 월급 받고 다니는 회사 일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공항버스를 타는 게스트를 배웅해주고 돌아와서, 그 친구가 써놓고 간 편지와 선물을 발견했을 때 울컥하곤 했습니다. 많이 부족한 집이었는데도 다들 좋은 후기*를 남겨줬어요.

*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에서 이어집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공간 기반 창업 역시 기쁨과 슬픔을 함께 선사합니다. 어차피 할 마음을 먹었다면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하고, 어디까지 해 볼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 봐야 후회가 없을 거예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이 되고 나면 매일 치열해집니다.

 

하루는 이번 콘텐츠의 담당 매니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성공하기가 어려운데도 왜 공간 기반 창업이 많아질까요? 이유가 뭘까요?

사실 공간 기반 창업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기보다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공간이 많아졌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사모투자펀드와 벤처캐피털들도 공간 기반 창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요. 왜 이런 흐름이 생겨난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 관련 기사 : PEF·VC 러브콜 받는 '공간 비즈니스' (이데일리, 2018.6.14)

  •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졌다.
  • 공간 소비가 대중화되었다.
  • 공간 기반 창업 비용이 저렴해졌다.

예전에는 '로스팅을 직접 해서 커피가 맛있고 디저트가 훌륭하다' 정도의 소개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한 카페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커피 맛은 기본이고, '카페 공간 구성이 특이하다, 혹은 인테리어가 예쁘다, 혹은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등 플러스 요인이 필요해진 거죠. 프랜차이즈보다 개인매장을 선호하며, 특별한 취향의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입니다.

 

공간을 경험하는 문턱이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일명 텐텐(서비스료 10%, 부가세 10%)이 별도로 붙는 호텔 커피숍과 고급음식점이 아니어도 훌륭한 개인 매장이 많아졌습니다. 5000원 남짓의 커피 한 잔, 1만 원대의 책 한 권 가격이면 개성 넘치는 공간을 즐기기에 충분한 입장료가 됩니다. 브랜드 호텔에서의 호캉스도 몇십만 원으로 누릴 수 있을 만큼 문턱이 꽤 낮아졌죠. 더 나아가 스페이스클라우드 같은 공간공유 플랫폼에서는 1시간 단위로 공간을 임대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공간을 빌리는 경험 자체가 간편하고 저렴해졌습니다.


예전보다 부담 없는 초기 투자금으로 공간 기반 창업도 가능해졌습니다. '식당에는 적어도 테이블 10개 이상이 있어야지'라거나, '서점이면 책이 1000권은 넘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와 같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테이블이 1개밖에 없는 식당' 또는 '음식 책만 모여있는 서점'에 더 가보고 싶어 하니까요. 무리하게 큰 공간을 임대하거나 인테리어 공사에 많은 돈을 쓰는 대신, 콘텐츠를 충실하게 갖추고 있어야 지속가능한 공간 기반 창업이 됩니다.

공간 기반 창업, 자기다움을 보여주는 일

저에게 작은 가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은 친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죠.

 

그것이 서점인지 카페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만들어 준 명함에 적힌 직함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든 공간에서 주인처럼 일하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렸거든요. 내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회사에 소속된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다움'보다는 '회사다운'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사장님이 되면 '자기다움'이 몹시 중요해집니다. 본인의 매력이야말로 프랜차이즈나 대기업에 없는 것이니까요. 회사에서는 무색무취하게 지내던 친구가 자기 사업을 시작한 다음부터 말과 행동에서 자신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을 볼 때마다 쾌감을 느껴요. 물론 신나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매출도 나날이 뛰고 있습니다. 전에는 회사 이미지에 피해가 있을까 봐 못 했던 과감한 머리 스타일이 그의 개성이 되고, 회사의 브랜드가 됩니다.

공간을 만든 사람의 매력이 곧 그 공간의 브랜드가 됩니다. ⓒPj Accetturo/Unsplash

제 관심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간에서 공간 기반 창업자의 매력을 더욱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매출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공간 기반 창업은 시간과 경험을 파는 사업이니까요.

부동산 가기 전에 이만큼은 준비합시다

이 리포트에서 이야기하는 '공간 기반 창업'은 프랜차이즈, 주식 상장 또는 IPO 공모, 대규모 투자와는 거리가 멀어요. 저도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크게 성공하는 방법보다 망하지 않는 방법을 아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먼저 이 정도는 생각해 두고 부동산에 방문해도 늦지 않습니다.

  • 나에게 맞는 공간 기반 창업 아이템 찾기
  • 창업 예산 범위 결정: 초기 투자금
  • 매출·비용 구조 확인
  • 상권분석: 위치 선정 기준과 방법, 데스크 리서치
  • 사업계획서: 아이템 결정과 브랜딩
  • 공간 후보지 방문 및 비교 분석
  • 계약 전 건축물대장, 등기부등본, 사업자등록 가능 여부 확인

<오피스 디자인 가이드>에도 일정 관리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새로운 오피스 이사 목표일부터 역순으로 계산해서 일정을 계획하는 방법을 추천했어요. 하지만 '공간 기반 창업'의 경우에는, 최소한 아이템을 결정한 후에 적합한 상권과 공간을 찾아야 합니다. 공간이 확정되는 순간, 사업의 절반 이상이 결정되니까요.

 

따라서 상권분석과 사업계획서 단계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시길 바랍니다. 아이템에 딱 맞는 상권과 공간에서 시작하면 결과적으로 권리금과 시설비 등 초기 투자금을 아낄 수 있고, 인테리어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그후에는 아래 과정을 하나씩 진행하면 되고요.

  • 인테리어: 공간 레이아웃과 컨셉 결정
  • 영업 신고, 사업자 등록, 사업자 통장 발행
  • 카드가맹점, 인터넷, POS 설치
  • 가오픈 준비
  • 피드백 반영
  • 공간 오픈 및 운영

오히려 퇴사 또는 부동산 방문보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 일은 브런치 또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SNS 계정 운영입니다. 저는 실제로 인스타그램 팔로우 숫자 5000명 이상 만들어서 오라고 고객을 돌려보낸 적도 있습니다. 5000명 중에 최소 50명은 오프라인 공간까지 찾아올 팬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 공간 오픈 준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월세 계약을 하고 온 제 친구, 직장인 A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간판을 단다고 해서 고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