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헬리오시티에서는 무슨 일이?

Editor's Comment
- 이 리포트는 <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 45회, '전세의 거의 모든 것'을 재구성 및 편집했습니다.

듣똑라(이하 생략): 요즘 '역전세난*'이나 '깡통전세**' 같은 새로운 말들이 나오고 있어요.

고란(이하 생략): 포털 사이트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 본 뉴스들을 30개 정도 나열해놓는데요. 이 TOP 30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부동산 관련 기사입니다. 최근엔 '재건축 시장 얼어붙었다', '전세금 못 받아 발 동동' 같은 제목과 함께 '역전세난'이나 '깡통전세' 같은 단어가 등장했어요.

* 전셋집의 물량이 늘었지만, 그 수요가 줄어서 전세 계약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겪는 어려움

** 담보 대출과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전세 형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러면서 거론되는 지역이 송파구에 있는 '헬리오시티'입니다. 이곳이 약 9510가구 규모거든요. 요즘 4인 가구가 거의 없다고 하니까, 3인 가구로 계산해도 약 3만 명이 헬리오시티에 거주하는 거예요.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부 모습 ⓒ현대건설단지 하나에 그 많은 인구가 다 살고 있다는 건가요?

네, 지방 소도시 수준의 규모죠. 부지도 엄청 넓은데요. 헬리오시티 면적이 40만3782㎡이고, 여의도 공원이 22만9539㎡이니까 심지어 2배 정도 커요. 단지 안에 셔틀을 운행해야 하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죠.

무엇보다 헬리오시티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역전세난'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집은 있는데, 들어올 세입자가 없는 거예요. 보통 '전세난'이라고 하면, 세입자는 있는데 집이 없는 거잖아요. 거기에 '역'이 붙었으니 반대입니다. 헬리오시티가 들어서며 갑자기 1만 개의 집이 생겼어요. 전세 공급은 대폭 늘어났는데, 수요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거죠.

 

전세를 놓고 싶은데, 들어올 세입자가 없어 발을 동동대는 상황이네요.

헬리오시티 입주가 가까워질수록 전세금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그 주변 전세금까지 덩달아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2019년 1월에는 전용 면적 84㎡(약 30평)의 전세금이 4억까지 하락했어요.

 

사실 헬리오시티가 신축인 데다 송파구잖아요. 전세금 4억이면 저렴한 축에 속하거든요. 강북만 해도 30평형대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4억은 훌쩍 넘어야 해요. 이런 식으로 헬리오시티 전세금이 떨어지다가 입주 마감 즈음 다시 가격이 올랐다고 해요.* 그래도 어쨌든 물량 앞에선 장사 없거든요. 물량이 대거 공급되고, 수요는 그에 맞춰지지 않으니 주변 전세금마저 떨어뜨렸어요.

* 관련 기사: 송파구 전셋값 하락세 진정…20주 만에 상승 전환 (연합뉴스, 2019.03.14)

 

여기서 본인 돈으로 집을 샀다면, 그냥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데요. 문제는 오로지 자기 돈으로 전셋집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들어올 세입자의 전세금과 본인의 대출금을 합쳐 집을 삽니다. 이렇듯 세입자의 전세금이 있어야 집을 사는데, 정작 세입자가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발을 동동 구르는 거고요. 대출을 더 받을까 싶겠지만, 그것도 어렵습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너무 강화했거든요.

 

특히 다주택자의 경우, 대출이 더욱 잘 안 나옵니다. 때문에 금액을 납부하지 못해서 입주를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요. 부동산시장에서는 헬리오시티를 두고 여러 상황을 우려했는데, 다행히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진 않았어요.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최근 부동산 시장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부터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 전세난: 세입자 수요에 비해 공급(전세 물량)이 없는 겁니다. 세입자가 전셋집을 못 구하는 상황이므로 여기서는 집주인이 절대 갑이 되죠.
  • 역전세난: 전세난의 반대 상황입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전세 물량)이 많아져서 세입자를 못 구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세입자가 갑입니다.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는 거예요.
  • 깡통전세: 집값이 너무 내려가서 전세금과 대출금의 합보다도 낮아지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대출 이자 감당이 어려워져 집을 경매에 내놨을 때, 낙찰을 받으면 부채부터 우선 상환됩니다. 이건 은행이 선순위기 때문인데요. 부채 상환 후, 남는 돈으로 세입자에게 전세금 보증금을 주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못하는 거죠. 결국, 세입자가 손해를 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 반전세: 말 그대로 반만 전세를 놓는 거예요. 세입자는 전세를 찾고, 집주인은 월세만 놓다 보니 그 중간에서 타협을 본 게 '반전세'입니다. 예를 들어, 원래 전세금이 3억이라면 그것을 1억으로 낮추고 매달 50만 원을 내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역월세'가 있는데요. 이건 정말 최근에 생긴 단어예요. 보통 월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주는 거죠? 역월세는 그 반대 개념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2017년 7월에 세입자가 전세로 들어왔다고 해볼게요. 그때는 전세금이 최고점을 찍던 시기입니다.* 당시 전세금 5억에 들어왔는데, 2년이 지나니 전세금이 4억으로 떨어진 거예요. '헬리오시티' 같은 단지가 들어선 여파로요. 그런데 집주인은 당장 전세금 차액인 1억을 마련하지 못하고요.

* 관련 자료: 주간아파트가격동향(20170724기준) (한국감정원, 2017.7.27)

 

재계약을 하려면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잖아요?

네, 2년이 지났으니 재계약할 시점이죠. 그러면 그 집에 누군가 전세금 5억으로 들어오거나, 지금 세입자가 계속 살거나 해야겠죠. 그런데 세입자 입장에서 옆집 사람은 4억에 사는데, 굳이 5억을 내며 그곳에 지낼 필요는 없잖아요. 새로 들어올 사람도 마찬가지죠. 4억짜리 집도 있는데, 왜 5억짜리 전셋집에 들어오겠어요.

 

그런데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나가면 당장 그 집이 비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을 받느니, 지금 세입자에게 더 지내달라고 하는 겁니다. 대신, 전세금 차액(1억)에 대한 이자를 평균 시세에 맞게 월세로 계산해서 주겠다는 거예요.

 

아, 반대 상황이네요. 보통 전세금이 오르면 세입자가 오른 가격을 감당하기 힘드니까 1억을 올리는 대신, 그 이자를 계산해서 월세로 내잖아요. 이 방법이 세입자와 집주인에게 더 좋겠네요. 세입자가 4억짜리 집을 찾는다고 해도, 이사 비용과 복비가 들잖아요. 집주인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기존 세입자가 계속 있는 경우에는 시세보다 조금 더 비싸게 이자를 책정해서 타협 보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부동산정보서비스 '직방'을 봤더니, 2018년 기준으로 2년 전보다 전세금이 떨어진 아파트가 전국적으로 39%라고 합니다. 보통 2년 단위로 전세 계약을 하기 때문에, 2년 기준으로 확인한 건데요. 사실, 서울은 그 비율이 13%밖에 안돼요. 수도권은 30%고요. 문제는 지방입니다. 전세금이 하락한 아파트가 51%나 돼요.

권역별 아파트 2년 전 대비 전세보증금 하락 주택형 비율(연간 기준), 자료 출처: 직방

잠시 201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볼게요. 당시에는 2년 전보다 전세금이 하락한 아파트 비율이 전국적으로 10%, 지방은 20% 미만이었어요. 그런데 2018년 기준으로 보니, 지방은 50%가 넘는 거죠. 심각한 상황입니다. 수도권 기준으로, 2년 전 대비 아파트 전세금 차액이 2016년까지는 증가 추세였어요. 쉽게 말하면, 전세금이 점점 오르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평균 6천만 원 정도로요.

 

그런데 2017년부터는 2년 전 대비 전세금 차액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2018년이 되니 지방은 아예 마이너스가 되었고요. 상승폭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예요. 즉, 전세금이 떨어졌습니다. 2018년 4분기 기준으로, 2년 전 대비 전세금 차액을 확인해봤는데요. 전국이 388만 원이고요. 수도권은 1113만 원, 지방은 -825만 원이었습니다.*

* 관련 기사: "전국 아파트 10채 중 4채, 2년 전보다 전셋값 떨어져" (연합뉴스, 2019.2.18)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전세의 역사

사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입니다. 영어로 풀어쓰면 'Lump-sum Housing Fee'인데요. 여기서 Lump-sum은 큰돈을 뜻합니다. 즉, 한 번에 큰돈을 내고 집을 빌린다는 말이죠.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제도라, 그냥 고유명사 'Jeonse'라고 쓰기도 해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외국인 친구들이 당황스러워 했던 제도가 전세였어요. 월세를 찾기에도 보증금이 너무 비싼데, 전세는 그보다 더 큰 금액이 필요했으니까요.

외국인 입장에서는 심지어 금융기관도 두지 않은채, 개인에게 큰돈을 맡기는 행위가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관행적으로 줄곧 그렇게 해왔어요. 사실, 전세금을 못 돌려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전세금은 항상 올랐거든요.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지만요.

 

전세는 집값 상승, 부동산 상승을 배경으로 탄생한 제도입니다. 전세의 유래는 조선 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에 <실록 부동산 정책 40년>이라는 책을 냈어요. 이 책에 따르면, 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에 의해 세계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전세제도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1900년대 조선을 방문한 한 일본학자가 "전세는 조선에서만 행해지는 가옥임대차 방법으로, 주로 경성 내에서 행해지는 관습"이라고 소개했다는 기록이 있고요.

 

어느 나라든지 수도의 도심에서는 항상 집값이 오르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얼마나 급격한 집값 상승이 있었기에 새로운 제도까지 생겨났을지, 참 신기하네요.

전세라는 것이 결국 세입자와 집주인의 이해가 모두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건데요. 보통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면 농촌인구가 대거 도시와 공업 지역으로 몰립니다. 특정 지역으로 노동력이 몰리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보급하기도 하고, 세입자를 보호하는 방식을 마련해 민간임대주택 제도를 만들기도 하죠.

 

그런데 한국은 1970년대 후반, 급격한 압축 성장과 함께 집값이 급등했어요. 특히 박정희 정권 때, 쌀값을 인위적 낮춰서 사람들을 농촌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을 도시의 노동자 계급으로 흡수시킨 거죠. 그리고 이들이 도시에서 살려면 생활비가 많이 들면 안 되기 때문에 쌀값을 묶어두기도 했고요. 그렇게 농촌을 가난하게 만들고, 도시는 살찌우는 정책을 펼친 거죠.

ⓒchuttersnap노동자들이 도시에 왔으면 살 집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정부는 돈이 없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인 거죠. 거기다 민간에도 임대주택을 만들 정도로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민간임대주택도 만들 수 없었고요.

그래서 전세라는 제도를 통해
개개인에게 공급자 역할을 맡긴 겁니다

전세금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되니까, 가능했던 걸까요?

그렇죠. 당장 살 집이 필요한 세입자는 매매가와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를 따지는데, 대충 반값 정도면 2년간 주거를 보장받을 수 있잖아요. 게다가 은행 금리보다 높은 월세 부담도 줄일 수 있고요. 집주인도 월세를 받는 것보다 전세와 대출을 껴서 그 집을 사면, 이자와 전세금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집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소위 말하는 갭(gap) 투자죠.

 

그래서 경제 성장과 함께 집값은 꾸준히 올라왔어요.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975년 처음으로 전세와 월세의 비율을 조사해봤더니, 서울 가구 중에서는 38%가 전세였어요. 전국적으로는 17.3%였고요. 그런데 20년이 지나 1995년이 되니까, 전국적으로 전세 비중이 30%까지 올라갔습니다.

전세란 무엇인가(1): 전세가율과 가계 부채

전세라는 제도가 자리 잡은 이유가 정부의 여러 정책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당시 한국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쉽게 말해,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전세 제도가 나올 필요가 없어요.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 얻는 이자보다 월세를 받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됩니다. 월마다 따박따박 일정 금액이 들어오는 걸 더 반기는 거예요.

 

부동산 전망이 어두워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 같으면, 전세로 사는 사람도 주택 구입 시기를 점점 늦춰요. '집값도 떨어질 텐데 뭣 하러 집을 사?'라면서 미루는 거죠. 집주인은 물량을 월세로 전환하고 싶어 하고, 전세로 사는 사람은 계속 머물고 싶어하다 보니 전세가 부족해져요. 그러다 보니 집값이 안정화되는 시기에는 전세 가격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고 해석해요. 전세가율이 90%까지 갔다고 하면, 10%만 더 얹으면 그 집을 살 수 있는 거죠. 쉽게 말해, 매매가 10억인 집의 전세가율이 90%라면, 전셋값은 9억이라는 겁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세입자는 10%에 해당하는 1억을 더 내고 집을 사버리고 말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을 때가 전세가율이 꼭지에 다다를 시점이니까, 곧 '집값이 바닥'이라고 하는 거고요.

* 주택 매매가 대비 전셋값의 비율

 

전세가율은 부동산 시장을 보는 사람들이 가격 지표로 보는 요소 중 하나예요. 그리고 전세가율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이 실제로도 일어났어요. 얼마 전, 부동산가격이 계속 오르지 않으니까 집값도 오르지 않고, 정부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얘기까지 나왔거든요. 서로 집을 안 사려고 하니까 전세금과 매매 가격이 거의 붙다시피 했어요. 마포구는 전세가율이 90%까지 육박했습니다.

 

제가 그맘때 전세 계약을 했는데, 집주인이 계속 조금만 더 보태서 집을 사라고 권하더라고요.

전세 제도의 단점은 금융 시장을 왜곡한다는 겁니다. 세입자가 사회적 약자잖아요. 정부는 국민을 위한 주거를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하고요. 그래서 정부는 각종 기금과 은행을 통해서 전세자금대출 지원책을 꾸준히 늘립니다.

 

전세금이 오르면, 세입자들은 이런 지원책으로 대출을 받아서 전세자금을 충당해요. 그럼 그렇게 오른 전세금으로 집주인들은 투기에 나서기도 하죠. 하지만 세입자 중에는 대출을 못 받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럼 서울에 살다가 외곽으로 이동하거나, 평수를 줄여나가게 되겠죠. 결국, 전세 사는 세입자들은 계속 빚이 늘어나는 구조예요. 2012년 말, 전세대출잔액은 25조 원이었는데요. 2015년 말이 되니 45조7천억 원으로 두 배가량 늘어났습니다.

 

또한 집주인과 세입자 중 한쪽에서 펑크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세입자가 전세금을 더 마련하지 못한다거나, 전세 가격이 떨어졌을 때 집주인이 차액을 못 돌려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금융 시스템 전반에 위기가 옵니다. 한국 가계 부채가 1500조라고 하는데요. 이에 관해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 등이 2018년, <한국의 전세금융과 가계 부채 규모>라는 논문을 발표했어요.

 

김세직 교수는 보증금 대출 외에 전세금 마련을 위한 신용 대출 등을 포함해 보수적으로 '전세부채'를 책정했는데, 자그마치 750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가계 부채가 1500조가 아니라 약 2200조 원이라는 거예요.* 가계 부채 통계 1500조에는 전세보증금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가계 부채 걱정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죠.

*관련 기사 : 1514조원 대 2600조원…한국 경제 뇌관인 가계 부채 규모는 (중앙일보, 2019.2.18)

 

사실, 주변에서 가장 대출을 많이 하는 경우가 집과 관련된 일인데요. 특히 전세보증금 대출이 그렇죠.

전세보증금은 집주인한테 개별적으로 돈이 들어간 거예요. 1500조 원의 가계 부채 중 60% 정도가 주택담보인데, 이건 '주택담보대출'이잖아요. 집을 산 경우인 거죠.

 

금융기관을 통해서 전세금을 대출 받은 경우는 포함되는 거죠?

네. 그런데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세입자가 가진 돈으로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준 경우는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그냥 집을 내주는 대가로, 2년 동안 돈을 빌린 셈인 거예요. 그 전세금이 3억이라면, 그 돈은 어디에도 빚으로 잡히지 않아요. 즉, 이런 전세금까지 고려하면 한국의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예요.

전세란 무엇인가(2): 사회적 문제

'전세'라는 제도가 사회 문제를 여럿 낳기도 했어요. 1989년, 정부는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습니다. 전세 기간 1년이 지나 계약할 때마다 전세금이 자꾸 오르니까 세입자 입장에서는 힘들 수밖에요. 그래서 정부가 '주거안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세 기간을 2년으로 늘린 거였죠. 하지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정책에서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된 거잖아요. 만약 집주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2년 후에 더 많이 올리겠죠?

네, 2년 치를 한꺼번에 올리는 거예요. 한 번 올릴 때 확 올리는 거죠. 그렇게 전셋값이 폭등했습니다. 심지어 1990년에는 두 달 동안 17명의 세입자가 자살했다고 해요.* 1997년 외환위기에 직면하면서 하늘을 찌르던 집값과 전셋값이 모두 떨어졌고요. 외환위기를 넘기며 다시 집값과 전셋값이 무섭게 반등했습니다. 경기가 회복될 무렵인 1999년부터 2002년에는 전셋값이 66% 증가했어요.

* 관련 자료 : "엄마, 우리 또 이사 가?" (실록 부동산정책 40년, 2007.4.10)

이때부터 사회 양극화가
시작됐습니다
소위 말하는 강남권 집값이 넘사벽 수준으로 오르기 시작해요. 그렇게 전셋값이 계속 오르다, 딱 한 번 '시장이 변하나?' 싶은 조짐이 보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였습니다. 혹시 이때 서점에 주를 이루던 책 제목들을 기억하시나요?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이런 거요?

맞아요.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부동산 10년 대폭락' 등 부동산 하락세에 관한 전망을 내놓은 책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때 일본 이야기를 한창 했던 것 같아요. 일본은 집값이 내려가다 못해 빈집까지 생겼다는 등의 기사와 책이 많았죠.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정점을 찍고, 금융위기 이후 강남 3구(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일대가 급격히 하락했어요. 게다가 2008년에서 2010년 즈음, 출산율 감소로 한국 인구수가 확 꺾이거든요.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가 정확히 인구가 감소하던 시점이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일본을 예로 들어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게 된 거죠.

 

더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전세로 사는 사람들은 굳이 집을 사지 않아요. 집주인은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까 매매를 통해 자본 이득을 얻기가 힘들어지고, 결국 월세를 선호하게 됩니다. 이렇게 매물을 월세로 돌리면서, 시장에는 전세가 없어지게 되죠. 그래서 그때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전부 월세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어요.

 

2014년 주거실태조사를 봤더니, 월세 비중(23.9%)이 처음으로 전세 비중(19.6%)을 추월했습니다. 2015년이 되니 수도권의 경우, 3.3㎡당 아파트 전세금이 1년 전보다 15.7%가 올랐어요. 전세는 없어지는데 수요는 늘어나니까 전세금이 폭등한 거죠. 전세금 상승률은 2001년 21.7% 이후 1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2001년에는 IMF 때문에 떨어졌던 전셋값이 반등하는 시기라 급격히 오를 수 있었는데요. 2015년에는 단지 전세가 인기를 얻다 보니 전셋값이 높아진 거예요. 전셋값은 치솟는데 집값은 안 올라요. 그러니까 '전세가율'이 정말 높아진 거죠.

 

2011년도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56.6%였거든요? 이 정도가 보통이에요. 대체로 전세가율이 50~60%일 때를 평균으로 봅니다. 그런데 2015년에는 전세가율이 72.8%가 됐어요. 전세금과 집값이 거의 붙다시피 된 거죠. 그런데 이 72.8%의 전세가율도 평균값이었어요. 그러니까, 인기 지역은 거의 90%가 됐겠죠? 말 그대로 전세금에 조금만 돈을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2016년 6월에는 전세가율이 사상 최고점인 75.1%까지 오릅니다. 그 이후부터 전세가율이 하락하기 시작해요. 이유는 단순해요. 그 정도로 높은 전세금을 내며 집주인 눈치를 보느니, 아예 집을 구매하는 거죠.

 

전세난 때문에 전셋집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데다가, 금리는 엄청 낮아졌거든요. 박근혜 정부 때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할 정도로 LTV(Loan To Value ratio), DTI(Debt To Income)를 다 풀어버렸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도 이때 집을 마련했고요.

* 관련 기사 : [카드뉴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끝없는 부동산 사랑 (한겨레, 2015.12.18)

 

그때보다 집값이 많이 올랐을 것 같은데요.

노동의 무의함을 느낄 정도로 많이 올랐어요. 제가 1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번 돈보다, 1년 동안 오른 집값이 더 높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말씀드린 대로 전세가율이 최고점을 찍다 보니까 거의 붙게 되는 시점이 오는 거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냥 집을 구입하는 쪽으로 기울어요. 게다가 마침 대출 규제도 풀려서 집을 구입하는 게 수월해진 거고요.

이때 규제를 많이 풀어서
'갭투자'가 성행하고
다주택자가 많이 늘어났어요
언급했다시피, 전세가와 매매가가 붙어있다 보니 그 사이의 갭에 해당하는 금액만 있으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거든요. 이전에는 대출이 어려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런데 대출 규제가 완화되니, 대출금으로 집을 여러 채 사는 거죠. 예를 들면 제가 아는 분의 지인은 1억 원으로 집 10채를 샀다고 해요.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을 보면, '전세 끼고 매매'라는 옵션이 있는데요. 그런 집들은 매매가가 1억2천만 원이라고 쓰여 있어도, 실제로 전세로 1억이 들어가 있으면 계약서 쓸 때는 2천만 원만 내면 되죠. 그리고 세입자가 나갈 때, 보증금 1억 원을 돌려주면 되고요.

맞아요. 그렇게 갭을 여러 개 둬서 집을 사는 거예요. 사실 이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도 하잖아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라고 얘기했죠.

 

이렇게 다주택자들이 투기로 여러 채를 사다 보니까, 정작 집이 필요한 이들은 못 사는 거예요. 그러면서 전세금과 집값이 오르고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집값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고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여러 부동산 정책을 내놨습니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지지부진하다가 '9.13 부동산 대책' 이후로 부동산 시장이 조금 잠잠해지고 있어요.** 사실, 부동산 업자들 사이에서는 죽으라는 거냐며 비명까지 나오기도 했고요.

* 관련 기사 : [9·13대책] 문재인 정부 역대 부동산 대책 일지 (연합뉴스, 2018.9.13)

** 관련 기사 : 9·13대책 이후.. 주요 재건축 1~2억원 급락 (서울경제, 2019.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