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숙명

Editor's Comment

- 본 콘텐츠는 2019년 3월에 발간된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의 본문 내용을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발췌하여 구성하였습니다. 큐레이터의 코멘트는 회색 박스로 표시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제공하는 편견(偏見)의 사전적 정의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이는 '치우칠 편(偏)'과 '견해 견(見)'의 뜻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 낸 문장이다.

 

하지만 나는 편견을 담은 말이나 행동에 단순한 치우침 이상의 불편한 느낌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정의는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수록된 편견(prejudice)의 첫 번째 뜻풀이다. 그 뜻풀이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실제 경험이나 근거에 바탕을 두지 않은 선입견'이다.

 

다시 말해 편견이란 실제로 어떤 상황을 경험해 본 적도, 그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도 못한 사람이 품는 얄팍한 선입견이다. 이렇게 얕고 무신경한 바탕에서 나온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은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프리랜서가 마주하는
편견은 광범위하다
구체적인 직업군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선입견의 원천은 대개 프리랜서의 일이 '재미있고, 창의적이고,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나도 영어 좀 하는데, 번역가나 해볼까?" 혹은 "나도 코딩 좀 하는데, 개발자나 해 볼까?"라는 식으로 듣는 사람의 의욕을 확 꺾어 놓는 무신경한 발언은 사실 매우 애교스러운 축에 속한다.

ⓒ서메리

프리랜서들이 겪는 편견은 단순히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생계나 생활에까지 직접적인 불편을 초래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고민은 정해진 직장이 없다는 이유로 가사와 육아를 온전히 떠안고, 각종 집안 행사에 1순위로 동원되는 바람에 업무에 집중할 시간을 제대로 낼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사무실과 출퇴근 시간이 있든 없든 일을 향한 열정은 다를 것이 없는데, 상대방의 직업에 대한 몰이해와 배려 부족이 한 개인의 커리어에 의도치 않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프리랜서의 특성을 악용하는 일부 클라이언트의 이기적인 태도다.

 

실제로 내가 겪은 거래처 중에는 매번 목요일 혹은 금요일 저녁에 일거리를 던져 주고 월요일 오전까지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곳이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너무 급해서 그렇다는 말과 구차한 사과에 넘어가 주말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의 요구사항에 맞춰 주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될수록 외주 용역인 내 일감을 휴일에 처리함으로써 자기 회사의 업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리겠다는 그들의 자기중심적 심보가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악덕 거래처가 통상 임금의 1.5배에 해당하는 주말 수당을 제대로 쳐주었을리는 만무하다. 결과적으로 그곳과는 자연스레 거래를 끊었지만, '프리랜서는 아무 때나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무신경한 편견 때문에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열이 확 오른다.

 

이 세상에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나부터도 프리랜서이기 이전에 특정 성별로서, 특정 지역과 특정 학교 출신으로서, 한때 특정 직업을 가졌던 전직 직장인으로서 날마다 크고 작은 편견을 마주하며 살아 왔다.

 

때로는 내가 가진 하나의 속성을 두고 전혀 다른 두 개의 모순되는 편견에 시달릴 때도 있다. 예를 들면 30대 초반에 속한 내 나이가 일부 10대들에게는 다 늙은 '꼰대'로 비치는 반면, 일부 어르신들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요즘 젊은 것'으로 평가되는 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프리랜서를 향한 편견에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면이 있을지 모른다. 때로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악의 없는 관심이 본의 아니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역에 대해서든, 편견이 초래하는 오해와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결국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들을 사회적 약자처럼 조심스레 대우해 달라거나, 평균을 넘어서는 배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편견의 바탕이 '경험과 근거의 부족'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정확하다면, 이런 글을 통해 그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워나감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길 조심스레 바랄 뿐이다.

[Curator's Comment] 나를 불안하게 하는 질문과 만났을 때

편견을 마주하는 일은 사회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에겐 숙명 같은 일인 듯합니다. N잡러인 저 역시도 "N잡러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가능해요?", "돈은 벌면서 일하나요?" 같은 질문을 종종 듣곤 했습니다.

이 질문들은 '전문성은 하나의 회사에서 꾸준히 일할 때 생긴다'라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은 벌지 못할 것이다'라는 편견에 기반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두 회사 모두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및 캠페인 기획을 담당하며, 하나의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두 배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또 제가 원하는 연봉을 정하고 그걸 두 회사에서 나눠 받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지 않을 수 있었죠. 그래서 질문을 받으면 늘 '아니오'라고 답한 뒤, N잡러의 전문성과 근무 조건에 대해 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편견 어린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에요. 새로운 일 환경에 적응해가던 시기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없이 불안해졌습니다.

'저렇게 물어보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말 전문성을 쌓지 못하면 어떡하지? 너무 자유분방하다고 나를 받아줄 회사가 없으면 어쩌지?'

걱정들이 쌓여갔습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마음속에서 저런 질문들이 스스로 깨어나기도 했어요.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일이었죠.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할 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질문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 질문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묻는 것이라고요.

만약 똑 부러지는 대답을 하지 못했어도 불안해하지 마세요. 지금의 경험과 여정이 자기만의 답을 만드는 과정일 테니까요.

회사 체질이지만 회사 체질이 아닌 당신

김과장은 정말 회사가 체질인 것 같아. 아무래도 난 회사 체질이 아닌 것 같아.

이 책을 통해 '회사 체질'이라는 단어의 조합을 처음으로 접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만들어 낸 신조어가 아니라 원래부터 사람들, 특히 회사원들 사이에 널리 쓰이고 있던 표현이니까.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혹은 스스로를 평가하는 잣대로 이 말을 사용한다.

 

이 두루뭉술한 잣대 안에는 회사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각종 능력과 성격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 모든 자질들은 결국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라는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 능력이나 성실함, 책임감 같은 부분이 회사 체질의 개인적 요소에 해당한다면, 리더십이나 영업력, 사내 정치력 같은 부분들은 사회적 요소에 해당한다. 물론 이 기준은 업무에 따라, 또 지위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질 수도 있다.

 

스스로 회사 체질이 아니라는 판단 끝에 프리랜서의 길을 택한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그 잣대에 해당하는 자질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 체질'이라는 항목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겼을 때 100점이나 0점을 받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중간치인 50점이 회사 생활을 평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최저 기준이라고 가정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충 40점에서 60점 사이의 점수를 받지 않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내 점수 또한 그 언저리쯤은 되었던 것 같다. 그 점수를 채우며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것들이 대부분 개인적 요소였다면, 나머지 부분을 깎아먹어 결국 사표를 던지게 만든 것은 거의 사회적 요소들이었다.

 

비범한 능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반 사무직으로 일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 자체 때문에 퇴사를 생각할 정도로 괴로움을 느낀 기억은 별로 없다. 어쨌든 회사는 월급을 주는 곳이니, 맡은 일을 열심히 하거나 업무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가려 노력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밥값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복잡하고도 미묘한 사내 인간관계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소심하고, 둔하고, 단순하고, 미련한 나로서는 도대체 왜 겉뜻과 속뜻이 다른 말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업무와 아무 관계도 없는 부분을 지적하고 압박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메리

결과적으로 나는 그런 점들을 견디지 못해 조직을 떠났고, 이제 와 새삼 위계질서니 사내 정치니 하는 부분들을 들쑤시며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 지난 얘기를 굳이 끄집어낸 이유는, 과거의 나처럼 겉으로는 회사 체질처럼 보이지만, 속은 전혀 회사 체질이 아닌 이들이 적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회사 체질에 딱 맞는 인재라면, 그런 자질을 갖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나로서는 그저 부럽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반대로 만약 회사와 털끝만큼도 맞지 않는 인재라면, 이 역시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이므로 심심한 위로 외에는 특별히 전할 말이 없다. 사실 이 분류에 해당하는 사람이 회사에 다니고 있을 가능성 자체가 현저히 적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만약 당신이 어느 정도는 회사 체질이면서도 동시에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이라면, 특히 그중에서도 개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생활의 고충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다행히도 당신에게
프리랜서라는 제3의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어질 장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란 결국 회사 체질의 개인적 요소들을 모아 놓은 집합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Curator's Comment]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

"세상에 회사 체질인 사람이 어디 있어?"

회사 체질인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서메리님의 말처럼 점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느꼈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프리랜서일 수도 있고, N잡러일 수도 있고, 또 지금은 없지만 내가 곧 만들어 낼 형태의 일 일수도 있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주변 환경을 기준으로 나를 내려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약해. 나는 능력이 부족해" 같은 말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을 수도 있고요.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욕구와 나의 기준을 제대로 관찰해야 선택의 시간이 왔을 때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찰해보니 나의 적응도는 몇 점인데, 이 점수가 몇 점 이하로 내려가면 다른 선택을 하자'는 기준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때, 내게 없는 능력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나의 흥미나 재능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다음 장에서는 그 능력 중 하나가 '평범함'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평범함도 자질이 될 수 있다고요?

평범함은 최고의 자질이다

프리랜서의 세상은 무한히 넓고 깊기 때문에, 그중에서 어떤 분야를 선택해서 도전할지는 순전히 본인의 취향과 적성에 달린 문제다.

 

처음부터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다해도 이 책에서 쭉 이야기한 것과 같이 좋아하는 분야에 일정 수준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누구나 기술적으로는 비슷한 출발선에 설 수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기술을 갖추었다고 해서 누구나 안정적인 프리랜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눈에 확 띄는 학력이나 경력, 남들보다 뛰어난 운, 생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는 타고난 경제력은 시작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해주는 자산이다.

 

그러나 한 인간을 프리랜서로서 차별화시켜 주는 밑바탕에 이렇게 불공평하거나 개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물론이고 이러한 사기적 아이템을 하나도 장착하지 못한 채 프리랜서 세상의 문을 두드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개인의 태도와 성격 또한 운과 경력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아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초반 시선 끌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학력이나 언제 기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운보다는 태도와 성격 같은 요소가 클라이언트에게 훨씬 더 깊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너무 평범한 조언 아니냐고? 벌써 실망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더 평범하니까.

 

가족과 지인들에게 하릴없이 백수 취급을 받던 프리랜서 지망생 시절, 나는 어떻게든 회사 밖에서 먹고살 길을 뚫어 보려고 주된 목표였던 번역 외에도 웹툰과 1인 출판, 문서 디자인을 포함하여 아주 조금이라도 돈이 될 만한 온갖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업계의 현실을 조금씩 체험하는 동안 내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가 있었으니. 

프리랜서에게 책임감과 인내심보다
중요한 자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당연한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프리랜서에게 책임감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니. 까놓고 말해서 세상에 돈 받고 일하는 직업 중에 책임감과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프리랜서 바닥에 머물고 있거나 프리랜서와 정기적인 업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이 '당연한 소리'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세상에는 책임감과 인내심을 인정받는 프리랜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심지어 나는 업계에서 수십 년 이상 잔뼈가 굵은 분들이 이 두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춘 프리랜서가 '매우 드물다'거나 '거의 없다'고 평하는 이야기마저 들었다.

 

다시 말해서, 헛웃음이 나올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자질들은 전쟁 같은 프리랜서 세상에서 당신을 돋보이게 해주고, 콧대 높은 클라이언트가 앞다퉈 당신을 찾게 만들 것이라는 말이다. 책임감과 인내심이란 자질은 부와 명예는 몰라도, 최소한 생계 걱정을 하지는 않도록 도와줄 마법의 열쇠다.

ⓒ서메리

3개월 작업 일정으로 수백 페이지짜리 번역서를 계약해 놓고 두 달 반이 넘은 시점에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번역가, 잡지에 정기적으로 그림을 싣기로 해놓고 매번 마감일 만 가까워지면 갑자기 중요한 경조사가 생기는 삽화가, 이미 선금까지 받은 상태에서 오류투성이의 코딩을 내놓는 개발자, 기본적인 틀조차 어긋나는 편집물을 내놓는 디자이너.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업계의 일원으로서 이런 낯부끄러운 일들이 예외적인 사례이자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잠적한 번역가 때문에 또 애를 먹었다는 에이전시 담당자분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이 바닥에 무책임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책임감을 갖춘 프리랜서, 혹은 프리랜서 지망생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마감을 성실히 지키며 맡은 작업을 성의 있게 해낸다는 평판만 얻는다면, 당신은 업계를 막론하고 클라이언트의 섭외 1순위에 오를 것이다.

 

책임감이 프리랜서의 친구인 성수기를 빛내 줄 자질이라면, 인내심은 프리랜서의 피할 수 없는 적인 비수기를 버티고 극복하게 해 줄 자질이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경력 초반에 일시적인 공백기 몇 번을 겪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프리랜서 세계의 불문율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 공백기를 묵묵히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인내심을 발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번뇌를 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개중에는 비수기를 기회 삼아 훌쩍 장기 여행을 다녀오거나 운동으로 체력을 쌓으며 다음번 성수기에 대비하는 대범하고 초연한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인내심을 갖고 버티는 것이다. 사실 프리랜서로서 내 경력은 이제 막 안정기에 접어든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와 함께 출발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벌써 공백기의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를 선언했다. 분명한 것은, 그들 중에 기술적으로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언제라도 배울 수 있지만 이런 자질들은 대학원에서도, 아카데미에서도, 에이전시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혹시 자신에게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책임감과 인내심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몸담고 있는 장소에서 스스로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면 된다.

  • 당신은 회사, 학교, 혹은 가정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가?
  • 늘 정해진 기한을 지키는가?
  • 불편한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하는 편인가?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네'라는 답이 나온다면, 당신에게는 프리랜서에 도전할 자질이 충분하다.

ⓒ서메리

[Curator's Comment] 지금, 어떤 태도로 일하고 있나요?

서메리님은 프리랜서의 자질로 책임감과 인내심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건 프리랜서의 자질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로 바꾸어 얘기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자질은 아무 데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 오신 선배 창업가에게 '같이 일할 사람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라고 묻자, '태도'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업무 스킬을 이끌며 일을 하겠다는 태도가 있다면, 어떤 일이든 완성도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 역시 '태도는 아무 데서도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자질'이라는 얘길 하셨어요.

나는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가요? 어떤 태도로 일과 동료, 그리고 일하는 나를 대하고 있나요? 그동안의 일 경험과 타고난 체질이 나의 태도를 만들었다면, 이 태도를 정리해 보는 것도 내 일 여정을 돌아보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