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는 '먹고살 기술'이 필요하다

출판 번역 아카데미가 개강을 맞았다. 지금까지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기초 지식 쌓기에 매진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번역 기술을 배울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어딘가에 입학하거나 입사하기 위한 점수 따기용 공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기술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지금부터 배울 지식은 말 그대로, 어르신들이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는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혀~"의 바로 그 '기술'이었다.

ⓒ서메리아카데미 과정은 번역에 꼭 필요한 문법 지식을 배우는 입문반과 문맥을 살리고 오역을 없애는 훈련을 받는 중급반, 고난도의 텍스트를 반복해 실습하며 데뷔 평가를 받는 실전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3개월 동안 입문반 수업을 들으면서 중급반 편입 테스트에 떨어진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직 영어 실력도 국어 실력도 모자란 내게는 기초 강의도 낯선 지식투성이였던 것이다. 게다가 입문반 수업을 듣는 그 3개월은 내가 그때부터 첫 계약을 따내기 전까지 겪은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아니 사실상 거의 유일하게 희망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입문반 수강 기간이 끝나고 중급반으로, 다시 실전반으로 진급하는 동안 행복과 불안의 비율은 점점 역전되기 시작했다. 과제의 양이 늘어났다든지 텍스트의 난이도가 올라갔다든지 하는 당연한 얘기는 굳이 자세히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운 지적 호기심으로 수강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었고, 수업 분위기 또한 프로 출판 번역가를 꿈꾸는 수강생들에 맞추어 진지하고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번역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과 '프로 번역가가 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내 관심사 또한 전자에서 후자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입문반에서 기초 지식을 쌓을 때까지만 해도 내 주된 고민은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을 만나면 어떡하지?', '마감에 늦으면 어떡하지?' 같은 기술적이고 절차적인 것들뿐이었다.

ⓒ서메리하지만 배움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생각 자체가 지극히 안이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다. 업계를 막론하고 한 분야의 프로라면, 그것도 경력과 평판이 전부인 프리랜서라면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고 납기에 맞추지 못한다는 건 애당초 자격 미달이었던 것이다.

 

한때 최종 목표라고 생각했던 자질이 프리랜서에 입문하기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새로운 종류의 초조함이 나를 엄습했다. 알고 보니 세상에는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번역가들이 수두룩했다(마찬가지로 꽤 괜찮은 그림 실력, 글 실력, 요리 실력, 영상 편집 실력을 가진 프리랜서들은 정말 수두룩 빽빽하게 존재한다).

 

특별히 천재적인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은 이상,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 존재를 어필하고 일감을 따내려면 업계와 관련된 기술 이외에도 무언가 내세울 수 있을 만한 플러스알파가 필요했다.

 

아카데미 생활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찾아온, 고만고만한 실력만 갖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은 맨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당시 내 마음을 괴롭혔던 질문을 또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평범한 전공에, 평범한 경력에, 취미와 특기마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도대체 무슨 수로 눈에 띄는 플러스알파를 만들어 낸단 말인가?

ⓒ서메리

[Curator's Comment]  회사 밖에서 '먹고살' 생활비도 필요하다

퇴사 후 덜 불안하게 다음 스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얼마가 필요한지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금전적인 부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고 중요하지만, 퇴사를 준비하며 이를 미리 계산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이 부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서메리님은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치의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건 개인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죠?

다음 커리어를 모색하기 위해 잠시 쉰다고 가정할 때,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생활비, 제대로 다음 길을 모색할 여유를 주는 생활비가 얼마일지 생각해보세요. 이걸 계산해 놓으면 역으로 내가 얼마나 쉴 수 있을지, 언제부터 어떤 규모의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알게 되기도 하니까요!

플러스알파가 필요해

내가 일상툰을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한창 번역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블로그 이야기냐고? 우선 이 블로그는 훗날 일이 없어서 힘들 때 내게 정신적 위안이 되어 주었고, 실제로 일감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내가 번역 외에 여러 가지 분야로 도전 범위를 넓히는 데 크게 일조한 프리랜서 생활의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평소 디지털파보다는 아날로그파에 가까워(기계치라는 뜻이다) 그 흔한 SNS조차 거의 하지 않던 내가 블로그 운영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은 프로 번역가로 데뷔하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플러스알파가 모자라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에 다닌 지 어느덧 몇 달이 지나 중반 정도의 시기에 들어갔을 무렵, 나를 가장 괴롭힌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플러스알파'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프로로서 계약을 따내야 할 시기가 다가올수록, 실력도 실력이지만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내 프로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플러스알파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내게 주제가 확실한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나 꽤 괜찮은 아이디어로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불안한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서점의 책장 사이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내가 자신 있게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만한 코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서메리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인터넷상에 나만의 공간을 열고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조금씩 쌓아 가다 보면, 적어도 그 분야를 다룬 책을 계약할 때만큼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할 것이라는 위안이 생겼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얼마 가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과 비용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는 도전으로 밝혀졌다. 평소 내게 '그림'이란 언제 어디서든 펜 한 자루만 있으면 가볍게 끄적일 수 있는 소소한 취미생활이었다. 일반 연습장은 물론이고 이면지, 전단지, 포스트잇, 냅킨까지 종이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스케치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려고 마음먹으니 태블릿이며 스캐너며 포토샵이며, 온갖 고가의 장비들이 필요했다. 마음 같아서는 각종 그래픽 프로그램이 쌩쌩 돌아가는 고사양의 컴퓨터까지 갖추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도저히 여력이 되지 않아 우선은 원래 쓰던 고물 노트북으로 최대한 버텨 보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하지만 블로그는 내게 번역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비록 다소 우연한 계기와 세속적인 목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내 일상이 담긴 그림 한 장 한 장이 모여 한 편의 웹툰이 되는 과정은 재미와 성취감을 동시에 주었다. 게다가 부족한 실력이나마 매일같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고 포스팅을 하는 동안 내 그림 실력과 글 실력, 포토샵 실력은 저도 모르는 새 조금씩 늘어 갔다.

 

이렇게 낮에는 번역 공부를, 밤에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지내는 동안 아카데미 종강이 하루하루 가까워졌다. 마지막 날은 여지없이 찾아왔고, 동기들과 나는 조촐히 쫑파티를 한 뒤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애매하게나마 '학생'으로 지낼 수 있던 시절이 완전히 지나가 버렸다는 찝찝한 기분을 곱씹으며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내 신분이 번역가를 지망하는 학생에서 번역가를 지망하는 백수로 바뀐 그 시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지 약 1년이 지난, 딱 그때만큼 맑고 따뜻한 초여름이었다.

[Curator's Comment] 나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세요

요즘 '자기 브랜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지면을 가진 일간지 기자들도 자기 브랜딩을 위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쓸 또 다른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이게 현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론 '일을 하기도 벅찬데 모두가 꼭 자기 브랜딩을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회사의 이름이 더는 나를 대표하지도, 지켜주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들이 더 풍성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떤 형태가 되었든지요.

서메리님은 일상툰 연재로 자기 전문성, 자기 브랜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채널과 방법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아닐까요?

<오늘의 집>의 콘텐츠 매니저, 무과수님은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글로 꾸준히 기록하여 자기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배달의 민족>의 마케터 이승희님 역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순간들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있어요.

한 장의 사진, 짧은 영상, 밑줄 그은 한 문장. 나의 전문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세요.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게 내 일의 또 다른 이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으니까요.*
* 관련 글: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 9개월의 기록 (생각노트, 2019.3.17)

모로 가도 프리랜서로 가기만 하면 된다

반 백수, 반 프리랜서로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경찰관으로 일하던 소꿉친구가 평일 대낮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밥이나 술을 먹자고 연락할 시간은 아니고, 특별히 죄 지은 일도 없는데…. 의아해하며 휴대폰을 집어든 그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그 통화가 내 첫 번째 정식 프리랜서 일감으로 연결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가 연락한 목적은 밥도, 술도, 수사도 아닌 부탁이었다.

 

경찰 내부적으로 쓰는 용어인 듯 생소한 표현이 군데군데 섞인 복잡한 설명을 통해 내가 이해한 그의 아쉬운 소리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친구는 모 지역 경찰서의 '청문감사관실'이라는 팀에서 일한다고 했다(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일반 기업의 법무팀 비슷한 곳인 것 같다). 경찰도 일종의 조직인지라, 각 지역 경찰서들은 상위 기관인 중앙 경찰청의 지휘 아래 다양한 내・외부 홍보 캠페인을 진행한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경찰서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한 경찰이 웹툰을 통해 홍보 활동을 벌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윗선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작품을 본 내 친구와 팀원들은 마침 내부적으로 기획 중이던 경찰관 품위 유지 캠페인에 웹툰을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조직 규정 상 내부 캠페인에는 예산이 거의 책정되지 않는 데다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이름 있는 작가를 섭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던 친구는 마침 출판계 쪽에서 밥을 벌어먹고 있다는 내 존재를 떠올렸고, 평일 대낮에 뜬금없이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설명이 따라 붙은 부탁의 핵심은 바로 '주변에서 웹툰을 그릴 수 있을 만한 이름 없는, 즉 단가가 매우 저렴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알아봐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당시에는 몰랐지만, 훗날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돈을 많이 안 주려는 고객들은 꼭 이렇게 길고 장황한 명분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다).

ⓒ서메리물론 친구가 내 사정을 정확히 알았다면 이런 부탁을 했을 리 없었다. 나는 엄밀히 말해서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어 얼쩡대는 뜨내기였으니까. 상황을 잘 모르는 그가 나를 찾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내게는 이름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소개해 줄 능력이 전혀 없었다.

 

예전 같았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하고 끝낼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몇 개월 간 매일같이 일상툰을 그려 올렸던 내 블로그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이 한 통의 전화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찰나의 희망과 함께

평소의 나라면 언감생심 그 일에 숟가락을 들이밀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일상툰 블로그를 운영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번역가'가 되는 데 일말의 차별성이라도 만들어 보고자 시작한 일이었지, 그 아마추어 수준의 그림들을 가지고 정식 일감을 따거나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원고료를 많이 쳐줄 수도 없고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해서도 안 된다는, '진짜' 일러스트레이터라면 누구나 꺼릴 만한 악조건이 내 마음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호기를 묘하게 자극했다. 어차피 제대로 된 프로를 섭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쪽도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미안하지만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소개해 줄 여건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며, 혹시 사정이 급하다면 내 그림도 한번 고려해 줄 수 있겠느냐는 말과 함께 그동안 부끄러움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블로그 주소를 슬쩍 불러 주었다.

 

20년을 알고 지냈지만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친구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절반씩 섞인 반응을 보였다. 부탁을 하러 전화했다가 졸지에 부탁을 받게 된 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일 터였다. 그는 일단 윗선에 한 번 보고해 보겠다는 대답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나는 놀랍게도 그 '윗선'이 내게 일을 맡기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록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멀쩡한 기관(세상 모든 기관 중에서 사기를 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바로 그 기관)과 웹툰 그림 작가 계약을 맺은 것이다. 사정이 얼마나 급했기에 검증된 것 하나 없는 나를 쓰기로 마음먹었을까 진지하게 궁금해할 새도 없이, 경찰서에 찾아가 관계자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얼떨떨한 웹툰 작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맡겨진 일은 경찰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정을 주제로 한 캠페인 웹툰의 '작화' 부분이었다. 쉽게 말해서, 글 부분을 맡은 작가가 그 주에 연재될 줄거리를 보내 주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당장은 돈도 안 되고, 경력에 도움이 될지 어떨지도 알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 뜻밖의 기회는 내게 프리랜서의 업무 프로세스를 제대로 체험시켜 주었다.

 

원고 작성에 앞서 기획 회의를 거치고, 완성된 글 원고를 받고, 마감에 맞춰 스케치 초안을 보내고, 몇 번의 협의와 수정을 거친 뒤 채색까지 마친 최종 원고를 납품한다. 당시에는 한 명의 프리랜서로서 이러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격스러웠다.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것도 뿌듯했고, 비록 경찰서 인트라넷에만 올라가는 작품일지라도 한 편의 웹툰에 '그림: 서메리'라는 문구가 떡하니 찍히는 것도 신기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프리랜서 뽕'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서메리

내내 얼떨떨한 기분으로 참여했던 웹툰 연재는 약 8개월의 여정을 끝으로 무사히 완결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가장 큰 자산은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프리랜서의 도전 범위가
무한히 넓다는 사실이다

그 전까지의 나는 '일단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블로그 운영을 포함한 모든 노력의 초점을 그쪽으로만 맞추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인 시절을 쭉 거치며 몸에 밴, 한 방향만 바라보고 달리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들어온 웹툰 일감에 어설프게나마 도전하는 동안, '프리랜서는 내키는 일에 마음껏 도전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유튜버가 TV에 출연하고, 작가가 콘서트를 여는 시대인데 나는 어째서 한 우물에만 목을 매고 있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번역가 지망생'에서 '프리랜서 지망생'으로 넓히고 점점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다만 내가 8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애매한 웹툰 하나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프리랜서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업로드가 몇 화쯤 진행됐을 무렵부터는 긴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듯 다른 일감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답답하고 지지부진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기회의 물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트이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Curator's Comment] 혹시 모르죠, 이름대로 될지!

일을 한다는 것은 내 능력과 가능성을 점점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주는 것 아닐까요?

서메리님이 자신을 '번역가 지망생'에서 '프리랜서 지망생'으로 다시 정의하는 부분은 그래서 재미있고 또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돌아볼 시간 없이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고 열심히 하면서 직장인으로 일했던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내용의 성장기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자신을 더 넓게 정의하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우연히 기회가 왔을 때 우연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회사의 대리, 어느 회사의 마케터 말고, 내 일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내 일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이름을 붙여보세요.